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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T들의 감정선

作者: 라율
last update 公開日: 2026-03-27 13:06:05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 재원의 루틴이 오늘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12:30 / 15:40 / 18:00] 같이 칼같이 들어오던 보고였다.

희수는 처음엔 “바빴겠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왜 보고 안 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희수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선물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희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진심을 담아 길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 늦어도 괜찮은데, 상황 정도는 말해줬으면 좋겠어.] 19:15

[오늘은 왜 이렇게 연락이 끊겼는지… 나 혼자 계속 자기 루틴 시간 맞춰서 기다렸어.] 19:16

[사람이니까 물론 변수 생길 수 있지. 그런데 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마음이 흔들려. 불안하고.] 19:17

[갑자기 연락이 안 오니까 내가 어제 보낸 메시지 때문인가? 하는 생각까지 드네.] 19:18

답이 올 때까지 휴대폰만 멍하니 바라봤다. 초조함은 희수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잠시 후, 재원의 답은 희수의 마음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일하다 바빴는데 왜 그렇게 예민해?] 19:25

[일이 먼저지 너한테 메시지 보내는게 먼저겠니?] 19:26

“...예민?”

희수는 이마를 짚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명확한 정보가 없어서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확인하려는 건데? 이걸 왜 감정적이라고 치부하는 거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예민하다고 잘라버리는 재원에게 또 한 번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참지 않고 다시 메시지를 눌렀다. 억눌렀던 감정적인 논리가 폭발했다.

[나는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자기랑 나 사이의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기다렸던 거야.] 19:30

[자기는 항상 정확하게 말하잖아. 근데 오늘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상황 파악을 해야지.] 19:31

[내가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자기는 단 한 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속상한 거야.] 19:32

재원은 한참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아마도 어플로 이미 읽었을 거다.

희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결국 도착한 재원의 메시지는 희수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나 씻고 나중에 말하자.] 19:40

[이런 얘기 계속하면 기분만 상해.] 19:41

[일단 그만 하자.] 19:42

“.........”

희수는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다. 허무함과 싸늘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분만 상한다라니... 지금 이 상황을 해결도 안 하고 종료하겠다는 거야?’ 재원의 회피는 희수에게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놓은 지 20분쯤 흘렀을까.

‘띠링-’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재원이었다.

[회의가 길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늦었다.] 20:02

희수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상황 설명.’ 그것은 그 흔한 ‘미안하다’는 말보다 더 명확했다. 냉정하지만, 이것이 재원식의 최대 배려라는 걸 희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심장이 살짝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희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답장을 보냈다. 희수는 감정보다는 상황을 개선할 규칙을 제안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앞으로 늦어질 것 같으면 한 줄만 미리 알려줘.] 20:05

[난 그거 하나면 충분해.] 20:06

재원의 답은 바로 왔다. 여전히 차가운 단문. 하지만 희수에게는 더없는 설렘이었다.

[알았다.] 20:10

[그 부분은 내가 조정할게.] 20:12

“.........”

희수는 휴대폰을 가슴에 품었다. ‘이게… 이게 재원식의 사과와 배려의 최대치구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기 전 재원에게서 도착한 마지막 메시지는 희수를 완벽하게 무장해제시켰다.

[내일 오전 회의 김] 23:55

[보고 조금 늦어질 수도 있음] 23:56

[미리 말하는거다.] 23:57

희수는 휴대폰을 덮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얼굴은 뜨거웠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하고, 동시에 미칠 듯이 설렜다.

희수는 다시 메모장을 켰다. 이 연애 지킬려면 그를 알아야 한다.

​[❤️ J (웬수)]

​징징대지 말기. (서운하다고 백날 해봐야 '예민한 사람' 취급만 당함. 나만 손해.)

​감정 대신 '팩트'만 던질 것. -> "연락 없으면 답답해서 내 할 일에 집중이 안 됨." (이래야 '아, 내가 방해됐구나' 하고 알아먹음.)

​사과 바라지 말기. 어차피 이 남자는 입으로 "미안해" 절대 못 함. 혀에 가시 돋나 봄.

​대신 행동이 바뀌면 그게 사과임.

*오늘의 수확: "내일 미리 말한다" = 재원식 '미안해, 사랑해' 종합 선물 세트. 잊지 말자. 이 인간 사전에 말로 하는 사과는 없다.

‘아… 못 놓는다. 이 남자… 진짜.’

희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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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6화. 다들 왜 이래

    월요일 저녁이었다.재원이 미용실에 데리러 왔을 때 희수는 마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재원이 들어오자마자 희수 얼굴을 봤다. 평소랑 똑같았다. 그런데 희수가 청소를 하는 동안 재원이 핸드폰을 보다가 희수가 돌아보는 타이밍에 화면을 끄는 게 보였다.희수는 그냥 넘겼다. 기분 탓이겠지.그런데 수요일에도 그랬다. 재원이 뭔가를 보다가 희수가 옆에 오면 핸드폰을 뒤집어 놨다. 희수는 그 모습을 보며 잠깐 멈췄다."자기야, 뭐 봐?""아무것도.""핸드폰 뒤집었잖아.""습관이야."희수는 재원을 봤다. 재원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어색했다. 저 남자가 뭔가를 숨길 때 저런 얼굴을 한다는 건 이제 알았다.금요일엔 더 이상했다. 재원이 오늘은 좀 늦겠다고, 볼일이 있다고 했다. 볼일이 뭔지는 말하지 않았다. 희수는 그냥 알겠다고 했는데, 재원이 볼일이라고만 하고 더 설명을 안 하는 게 낯설었다. 이 남자가 요즘 먼저 말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번엔 먼저 말하지 않았다.희수는 혼자 미용실 마감을 하면서 생각했다. 뭔가 있긴 한데, 뭔지 모르겠다.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이상했다.재원이 뭔가를 숨길 때는 보통 이유가 있었다. 혜리 건으로 불안할 때도 달력을 보는 행동으로 나왔고, 희수 걱정될 때는 주변을 정찰하는 행동으로 나왔다. 그 남자가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이제 알았다. 근데 지금은 행동이 뭘 말하는 건지 읽히지 않았다.핸드폰을 숨기는 건 뭔가를 보고 있다는 거였다. 볼일이 있다는 건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거였다. 그게 연결되는 게 뭔지. 희수는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더 지켜보기로 했다.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건 ESTJ 스타일이 아니었다. 데이터를 더 모아야 했다.---토요일 오전이었다.희수가 미용실에서 첫 손님을 보내고 잠깐 쉬고 있는데 동현한테서 문자가 왔다.'누님 잠깐 통화 가능해요?'희수는 전화를 걸었다."왜, 무슨 일이야?""누님, 저 요즘 이상한 것 같아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5화. 진짜?

    동현이 자료 출력하러 복사실에 갔다가 혜리랑 마주쳤다. 혜리도 뭔가를 출력하고 있었다. 둘이 좁은 복사실에서 어색하게 섰다.혜리가 먼저 말했다."오늘 저녁 뭐 먹어요?"동현이 잠깐 혜리를 봤다."왜요.""그냥요. 저 오늘 회식도 없고 혼자 먹어야 해서.""저도 혼자인데요.""그럼 같이 먹어요."동현은 잠깐 멈췄다. 혜리가 태연하게 출력물을 챙기며 말했다."부담 갖지 말고요. 그냥 밥이에요.""...그냥 밥이요.""네. 혼자 먹기 싫어서요."동현은 출력물을 챙기며 대답했다."알겠어요."복사실을 나오면서 동현은 생각했다. 그냥 밥이라고 했다. 그냥 밥이면 그냥 밥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심장이 괜히 한 번 내려앉는 건지 몰랐다. 동현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냥 밥이다. 그냥 밥.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켜면서 동현은 또 생각했다. 혜리가 혼자 먹기 싫다고 했다. 그게 동현한테 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한 말이 아니라. 팀에 동현 말고도 사람이 있는데, 왜 동현한테 물어본 건지.동현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세게 저었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밥이다.근데 퇴근 시간이 됐을 때 동현은 자연스럽게 혜리 자리 쪽을 봤다. 혜리도 일어서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갈게요?"혜리가 물었다. 동현이 대답했다."네."둘이 어쩌다 보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동현은 정면을 봤고 혜리도 정면을 봤다. 1층에 내려서도 같은 방향이었다. 동현이 먼저 말했다."어디 먹을 거예요?""이동현 씨가 골라요.""왜 제가요.""선배잖아요."동현이 기가 막힌 얼굴로 혜리를 봤다. 혜리는 태연하게 걸었다. 동현은 결국 고깃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냥 밥이니까. 뭐든 상관없으니까.---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둘이 마주 앉아서 고기를 구웠다. 동현이 고기를 뒤집으면서 혜리를 흘끗 봤다. 혜리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야, 밥 먹을 때 핸드폰 보지 마요.""왜요.""같이 먹자고 해놓고 핸드폰 보면 혼자 먹는 거랑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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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수가 미용실 마감을 끝내고 나왔을 때 재원이 핸드폰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희수가 옆을 들여다봤다. 메모장이었다. 항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희수가 멈춰 서서 읽었다.[처가 방문 준비 목록]1. 선물 — 과일 세트 vs 홍삼 vs 와인 (아버님 취향 확인 필요)2. 복장 — 캐주얼 vs 세미 포멀 (너무 격식차리면 부담, 너무 편하면 실례)3. 대화 주제 — 아버님 취미, 직업, 관심사 파악4. 도착 시간 — 약속 시간 10분 전 vs 정각 (일찍 오면 부담줄 수 있음)희수는 그 메모를 보며 잠깐 굳었다. 그러다가 웃음이 터졌다."자기야, 이게 뭐야.""처가 방문 준비.""D-6라고 써놨어?""일요일에 가는 거잖아.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D-6 맞아."희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재원이 진지한 얼굴로 핸드폰을 봤다."아버님 취미가 뭐야?""등산."재원이 메모장에 뭔가를 추가했다. 희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남자가 처가 방문을 프로젝트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항목별로 정리하고, 변수를 예측하고, 리스크를 줄이려는 거였다. 재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엄마가 좋아하는 거 있어?""글쎄, 별로 내색을 안 해서.""드라마는 봐?""봐.""어떤 거.""왜 그걸 알아야 해.""대화 소재."희수는 웃으며 재원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재원이 핸드폰을 뒤로 뺐다."아직 못 다 적었어."희수는 포기하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저 리스트가 일요일까지 몇 항목이 될지 궁금했다.수요일에 재원이 또 물어봤다."아버님이 드라마 봐?""아니, 뉴스.""어느 채널.""왜 그걸 알아야 해.""대화 소재."목요일엔 또 물어봤다."어머님이 싫어하는 음식 있어?""고수.""식당 예약할 때 참고할게."희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식당도 예약해?""점심 드시고 가야 하면 근처 좋은 데 알아봐뒀어."희수는 말을 잃었다. 이 남자, 밥집까지 알아봤다. D-6에 시작한 프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3화. 합격, 방문, 그리고 또 투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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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2화. 혼돈의 밥상

    희수는 뒤통수를 긁으며 유리창 너머를 봤다.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그 여성이 아직 거기 있었고, 희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야 입을 뗐다."저 사람... 우리 엄마야."재원이 굳었다."...뭐?""우리 엄마. 내가 집에 잘 안 가니까 몰래 보러 온 것 같아."재원이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희수는 그 얼굴을 살폈다. 황당하다는 게 얼굴에 써 있었고, 그러면서도 뭔가를 빠르게 정리하는 것 같기도 했다. ISTJ 특유의 상황 파악 모드였다."며칠째 저기 있었던 거야?""...아마도.""그럼 내가 며칠 동안 정찰한 미행범이 어머님이었던 거야."희수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재원은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했는데, 그 진지함이 더 웃겼다."...응."재원이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넥타이를 고쳐 매며 일어섰다. 희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남자, 황당한 상황에서도 넥타이부터 고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준비 동작이었다."나가자.""...지금?""그냥 두면 더 거기 서 계실 거잖아."희수는 앞치마를 벗으며 웃음을 참았다. 재원이 넥타이를 고쳐 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희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 진짜 대단하다.---희수가 미용실 문을 열고 나가자 골목 입구의 여성이 멈칫했다.오십대 중반, 장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서 있는 여자. 딸이 나오는 걸 보자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가 이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엄마, 여기서 뭐 해?""...길 지나가다가."희수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멈췄다. 마치 희수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하는 엄마를 보며, 이 무뚝뚝함이 어릴 때부터 봐온 거라는 게 새삼 실감났다. 보고 싶었는데 말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며칠째 여기 서 있었던 거였다."며칠째 여기 있었지?""...아니야.""엄마.""그냥 지나가다가 본 거야."희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엄마랑 이 주제로 대화하면 끝이 없었다.그때 저 멀리서 인기척이 났다.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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