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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전야제

Author: 라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25 14:26:58

단체 여행 전날 밤.

희수의 방 바닥은 이미 캐리어와 파우치, 정리 체크리스트로 보이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는 희수의 기본값.

특히 ‘재원과 함께하는 첫 단체 여행’이라 집중도 120%다. 허둥대는 덜렁이 처럼 보이면 안되니까.

휴대폰은 계속 울렸지만,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MT 추진 (6)] 단톡방이었다.

희수: 민지, 알코올 장본 거 영수증 꼭 챙겨. 정산해야 하니까.

희수: 지용, 펜션 예약 시간 다시 확인하고 공유해. 실수 없이.

총무 모드 풀가동.

턱도 살짝 들린 효율의 자세.

그때—

재원의 야간근무 후 루틴이 도착했다.

[집 도착] 00:32

[씻고 쉰다] 00:33

희수는 바로 답을 쓰려다,

단톡에서 폭탄 질문이 올라오는 걸 보고 멈췄다.

민지: 야 희수! 너 재원이랑 같이 자냐?

“…뭔 소리야.”

희수가 코웃음 치며 답하려던 찰나,

민지: 근데 펜션 사장님이 방 구조 여자3 남자3이라고 못 박았다며?

“아… 맞다. 그거…”

그 부분 확인을 놓친 걸 깨닫자

희수는 약간 짜증이 밀려왔다.

바로 재원에게 넘어갔다.

[고생했어 내자기❤️] 00:45

[자기야, 우리 내일 방 어떻게 할까?] 00:45

겉으론 가볍게 보냈지만,

속으로는 희망이 찰랑거렸다.

그러나 재원의 답은 칼같았다.

[왜요?] 00:56

[다 같이 가는데.] 00:56

[여자방 들어가세요.] 00:56

“…???”

여자방… 들어가라고?

희수는 화면을 들고 그대로 굳었다.

이건…

너무 단호한 거 아니냐? 

희수는 마지막으로 감정 한 방을 넣어봤다.

[우리 첫 여행인데 같이 자면 안 돼?] 00:59

그랬더니 돌아온 건,

전형적인 ‘재원식 냉정함’이었다.

[불편하지. 사람 많잖아요.] 01:01

[생각 좀 하세요.] 01:02

“…하?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말은 싸늘하고,

논리는 완벽하고,

반박은 불가능하고…

그게 더 열 받는다.

희수는 베개를 끌어안고 뒤집어졌다.

“아 진짜…! 감정이란 게 없냐고…!”

엎어져서 침대를 팡팡 두드리며 화를 참아본다. 메세지에 쏟아내고 싶은걸 꾹 참아보기로 했다.

재원식 논리에 반박하려던 손가락을 멈추고 희수는 가만히 생각해봤다.

근데 또

‘단체여행 인원 3:3 → 남녀 나눠 자는 게 효율적임’

이라는 계산이 떠올랐고…

“아… 맞는 말이네. 또 맞네. 또…!”

서운+이성+짜증이 뒤엉켜 머리가 지끈거렸다.

희수는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감정 소모 없이 끝날지 고민했다. 

물고 늘어지는 순간 싸움으로 번지는 서로의 논리로 맞불을 놔볼까? 말까?

그때—

재원에게서 톡이 하나 더 왔다.

[내일 도착 시간 보내드릴게요] 01:15

[짐 무거운 건 제가 들면 됩니다] 01:15

희수는 멍한 눈으로 메시지를 바라봤다.

'방은 안 된다.'

→ 로맨스 차단.

하지만

‘짐은 내가 든다.’

→ 실질적 불편함 해결.

그리고 순간 떠오른 바디클렌저 사건.

“아… 이 인간은 왜 이런 식으로 챙겨…”

감정 대신 효율.

로맨스 대신 실속.

말투는 차갑지만 행동은 다정.

너란 남자 대체 속을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 거지? 오늘은 메모장을 켤 힘도 없다.

희수는 결국 한숨을 쉬며 타자를 쳤다.

[알겠어. 내일 봐요.] 01:20

[...같이 못 자는 건, 일단 생각해볼게요.] 01:20

답은 1초 컷.

[네에] 01:20

[조심히 주무세요] 01:21

희수는 휴대폰을 캐리어 위에 던져두고 중얼거렸다.

“진짜… 연애는 하는 거 맞지? 좋아는 하는데 왜 표현은 이래…”

'이거 나만 지치는 연애 이런건가?' 

대체 이 남자는 어떤 연애를 해왔었 던 걸까? 문득 궁금해지는 그의 연애사.

물어보면 대답은 절대 안해주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희수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한마디 더 내뱉었다.

“전야제부터 이러면… 내일은 대체 어떻게 되려나.”

서운함 반 기대감 반.

그리고 희수는 아직 모른다.

여행에서, 재원이 평소와 0.1초도 다르지 않은 말투로

예상 밖의 행동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재원의 의외의 모습에 희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연애 지금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거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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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현이 자료 출력하러 복사실에 갔다가 혜리랑 마주쳤다. 혜리도 뭔가를 출력하고 있었다. 둘이 좁은 복사실에서 어색하게 섰다.혜리가 먼저 말했다."오늘 저녁 뭐 먹어요?"동현이 잠깐 혜리를 봤다."왜요.""그냥요. 저 오늘 회식도 없고 혼자 먹어야 해서.""저도 혼자인데요.""그럼 같이 먹어요."동현은 잠깐 멈췄다. 혜리가 태연하게 출력물을 챙기며 말했다."부담 갖지 말고요. 그냥 밥이에요.""...그냥 밥이요.""네. 혼자 먹기 싫어서요."동현은 출력물을 챙기며 대답했다."알겠어요."복사실을 나오면서 동현은 생각했다. 그냥 밥이라고 했다. 그냥 밥이면 그냥 밥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심장이 괜히 한 번 내려앉는 건지 몰랐다. 동현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냥 밥이다. 그냥 밥.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켜면서 동현은 또 생각했다. 혜리가 혼자 먹기 싫다고 했다. 그게 동현한테 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한 말이 아니라. 팀에 동현 말고도 사람이 있는데, 왜 동현한테 물어본 건지.동현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세게 저었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밥이다.근데 퇴근 시간이 됐을 때 동현은 자연스럽게 혜리 자리 쪽을 봤다. 혜리도 일어서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갈게요?"혜리가 물었다. 동현이 대답했다."네."둘이 어쩌다 보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동현은 정면을 봤고 혜리도 정면을 봤다. 1층에 내려서도 같은 방향이었다. 동현이 먼저 말했다."어디 먹을 거예요?""이동현 씨가 골라요.""왜 제가요.""선배잖아요."동현이 기가 막힌 얼굴로 혜리를 봤다. 혜리는 태연하게 걸었다. 동현은 결국 고깃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냥 밥이니까. 뭐든 상관없으니까.---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둘이 마주 앉아서 고기를 구웠다. 동현이 고기를 뒤집으면서 혜리를 흘끗 봤다. 혜리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야, 밥 먹을 때 핸드폰 보지 마요.""왜요.""같이 먹자고 해놓고 핸드폰 보면 혼자 먹는 거랑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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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수가 미용실 마감을 끝내고 나왔을 때 재원이 핸드폰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희수가 옆을 들여다봤다. 메모장이었다. 항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희수가 멈춰 서서 읽었다.[처가 방문 준비 목록]1. 선물 — 과일 세트 vs 홍삼 vs 와인 (아버님 취향 확인 필요)2. 복장 — 캐주얼 vs 세미 포멀 (너무 격식차리면 부담, 너무 편하면 실례)3. 대화 주제 — 아버님 취미, 직업, 관심사 파악4. 도착 시간 — 약속 시간 10분 전 vs 정각 (일찍 오면 부담줄 수 있음)희수는 그 메모를 보며 잠깐 굳었다. 그러다가 웃음이 터졌다."자기야, 이게 뭐야.""처가 방문 준비.""D-6라고 써놨어?""일요일에 가는 거잖아.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D-6 맞아."희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재원이 진지한 얼굴로 핸드폰을 봤다."아버님 취미가 뭐야?""등산."재원이 메모장에 뭔가를 추가했다. 희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남자가 처가 방문을 프로젝트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항목별로 정리하고, 변수를 예측하고, 리스크를 줄이려는 거였다. 재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대하는 방식이었다."엄마가 좋아하는 거 있어?""글쎄, 별로 내색을 안 해서.""드라마는 봐?""봐.""어떤 거.""왜 그걸 알아야 해.""대화 소재."희수는 웃으며 재원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재원이 핸드폰을 뒤로 뺐다."아직 못 다 적었어."희수는 포기하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저 리스트가 일요일까지 몇 항목이 될지 궁금했다.수요일에 재원이 또 물어봤다."아버님이 드라마 봐?""아니, 뉴스.""어느 채널.""왜 그걸 알아야 해.""대화 소재."목요일엔 또 물어봤다."어머님이 싫어하는 음식 있어?""고수.""식당 예약할 때 참고할게."희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식당도 예약해?""점심 드시고 가야 하면 근처 좋은 데 알아봐뒀어."희수는 말을 잃었다. 이 남자, 밥집까지 알아봤다. D-6에 시작한 프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3화. 합격, 방문, 그리고 또 투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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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2화. 혼돈의 밥상

    희수는 뒤통수를 긁으며 유리창 너머를 봤다.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그 여성이 아직 거기 있었고, 희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야 입을 뗐다."저 사람... 우리 엄마야."재원이 굳었다."...뭐?""우리 엄마. 내가 집에 잘 안 가니까 몰래 보러 온 것 같아."재원이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희수는 그 얼굴을 살폈다. 황당하다는 게 얼굴에 써 있었고, 그러면서도 뭔가를 빠르게 정리하는 것 같기도 했다. ISTJ 특유의 상황 파악 모드였다."며칠째 저기 있었던 거야?""...아마도.""그럼 내가 며칠 동안 정찰한 미행범이 어머님이었던 거야."희수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재원은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했는데, 그 진지함이 더 웃겼다."...응."재원이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넥타이를 고쳐 매며 일어섰다. 희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남자, 황당한 상황에서도 넥타이부터 고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준비 동작이었다."나가자.""...지금?""그냥 두면 더 거기 서 계실 거잖아."희수는 앞치마를 벗으며 웃음을 참았다. 재원이 넥타이를 고쳐 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희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 진짜 대단하다.---희수가 미용실 문을 열고 나가자 골목 입구의 여성이 멈칫했다.오십대 중반, 장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서 있는 여자. 딸이 나오는 걸 보자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가 이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엄마, 여기서 뭐 해?""...길 지나가다가."희수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멈췄다. 마치 희수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하는 엄마를 보며, 이 무뚝뚝함이 어릴 때부터 봐온 거라는 게 새삼 실감났다. 보고 싶었는데 말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며칠째 여기 서 있었던 거였다."며칠째 여기 있었지?""...아니야.""엄마.""그냥 지나가다가 본 거야."희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엄마랑 이 주제로 대화하면 끝이 없었다.그때 저 멀리서 인기척이 났다. 전봇대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1화. 미행범 색출 작전

    희수와 재원이 미용실 근처 카페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재원이 희수 손을 잡고 걷는 평범한 오후였다. 하늘이 맑고 거리는 한산했다. 별일 없는 주말이었다.그런데 희수는 걸으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시선이었다. 어딘가에서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희수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훑었다. 카페 앞 벤치에 앉은 노인, 편의점에서 나오는 아주머니, 자전거 타는 아이들. 딱히 이상한 사람은 없었다.희수는 그냥 넘겼다. 기분 탓이겠지.근데 며칠이 지나도 그 느낌이 계속됐다. 미용실 마감할 때도, 재원이랑 저녁 먹으러 갈 때도. 희수는 결국 재원한테 말했다."있잖아, 요즘 누가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재원이 멈췄다."언제부터.""한 일주일 됐나? 확실하지 않은데 자꾸 그래."재원의 표정이 굳었다. 희수는 그 표정을 보며 살짝 후회했다. 말했다가 재원이 과도하게 반응할 것 같았다."기분 탓일 수도 있어. 혜리 씨 때문에 예민해진 건지도 몰라.""아니야. 확인해볼게."재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희수는 잠깐 재원을 봤다. 저 눈빛 한번 켜지면 멈추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업무 모드가 켜졌다. 미행범 색출 프로젝트 시작이었다.희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거 좀 크게 말했나.재원이 이미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희수 옆에 서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훑는 눈빛이었다. 평소에 보고서 검토하던 그 집중력이 지금 동네 골목을 향하고 있었다. 희수는 그 옆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남자한테 뭔가 말하면 반드시 행동으로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왜 말했지.근데 사실 말하고 나서 좀 홀가분하기도 했다. 혼자 며칠 동안 찜찜하게 안고 있었는데, 말하고 나니까 덜했다. 재원이 알면 알아서 뭔가 하겠지. 그리고 재원이 하면 뭔가 나올 거라는 것도 알았다.문제는 그 뭔가가 얼마나 진지하게 나올 거냐였는데.---그날부터 재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퇴근하면서 미용실 주변을 빙 돌았다. 자연스럽게 걷는 척하면서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희수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59화. 등대와 표류선

    희수는 텅 빈 거실에 앉아 자신의 SNS 프로필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텅 빈 사진, 비워진 상태 메시지. 그것은 재원을 향한 시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희수 자신을 깎아 먹는 자학이었다. 재원을 잊기 위해, 혹은 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두는 '이별 장례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수의 숨통을 조였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희수는 깨달았다. 자신은 표현하고, 확인받고, 뜨겁게 사랑을 쏟아내야만 비로소 숨을 쉬는 사람이었다. 재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혹은 그를 자극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58화. 막다른 길

    대구의 밤은 이제 재원에게 거대한 수조와 같았다. 숨을 들이켜려 해도 차가운 정적만이 폐부를 찔렀다. 희수가 소식을 끊은 지 일주일째. 처음엔 오기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 들 줄 알았지만, 희수는 정말로 단 한 톨의 신호도 남기지 않은 채 증발했다. 재원은 불도 켜지 않은 숙소 소파에 앉아 차 키를 만지작거렸다. 카카오톡 창을 열어 희수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프로필 사진도 없는 텅 빈 하얀 원을 응시했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재원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57화. 이별의 의식 : 재회 프로젝트

    희수에게 ‘재회 프로젝트’는 이중적인 의미였다. 그를 다시 내 곁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정교한 덫임과 동시에, 만약 이 시도가 실패한다면 그를 내 인생에서 완벽하게 삭제하기 위한 가장 잔인하고도 정중한 장례 절차였다. 그녀는 더 이상 재원의 침묵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활동 중단, 카카오톡 프로필 초기화. 이것은 재원을 흔들려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희수 스스로가 재원이라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이기도 했다. 희수는 자신의 일과에 더 지독하게 몰입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56화. 관측 불가능의 지옥

    재회 프로젝트의 첫 번째 수칙은 '완벽한 증발'이었다. 희수는 그날 이후로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비웠고, 인스타그램의 업로드도 완전히 중단했다. 인천 바다의 잔상만을 남겨둔 채, 희수는 자신의 디지털 세계를 스스로 닫아버렸다. 희수는 보란 듯이 자신의 일과에 몰입했다. 오전에는 밀려드는 미용 예약을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소화했다. 가위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가게 안에서 희수는 오로지 털 끝의 각도와 샴푸의 향기에만 집중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도 닦지 않았다. 몸이 고될수록 잡념이 파고들 틈이 좁아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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