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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곰탱이의 현타

Author: 라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30 19:31:07
희수를 집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재원은 핸들을 잡은 채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차 안에는 여전히 희수가 남기고 간 은은한 향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 향기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전 편의점에서 들이킨 컵라면 국물 때문인지 가슴팍이 자꾸만 간지러웠다.

[진짜 웃겨. 너 사실 마음 약해진 거 아니야?]

“...약해지긴 누가.”

재원은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혼잣말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입꼬리는 이미 제 의지를 배신하고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눈가에는 묘한 생기가 돌았다.

평소의 그 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비효율적이고 나사 풀린 표정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재원은 한참 동안 내리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그는 '연락'이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용건 없는 메시지는 시간 낭비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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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75화. 로그아웃 불가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시선이 맞닿은 채 멈춰버린 찰나의 시간. 희수는 재원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평소라면 차갑고 이성적인 빛을 띠던 재원의 눈이, 지금은 갈 곳을 잃은 채 일렁이고 있었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재원의 시선이 희수의 눈동자를 지나 입술 근처에 잠시 머물렀다. 희수는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인데.’분명 피곤해서 기대고 싶었을 뿐인데, 지금 이 공기는 단순한 ‘피로 해소’의 영역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재원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의 울대뼈가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여 희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 희수의 배에서 아주 우렁차고 정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륵.”정적이 박살 났다. 재원의 고개가 멈췄고, 희수는 그대로 재원의 어깨에 다시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수치심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루틴이 무너진 것도 모자라, 이 분위기에 배꼽시계라니. “...배고파?”재원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잔뜩 섞여 있었다. 그는 조금 전의 그 팽팽했던 긴장감을 어디로 보냈는지, 희수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렸다. “아니, 아니거든? 아까 미용하면서 공기를 많이 마셔서 그래!”“공기를 마시면 배에서 소리가 아니라 트림이 나야 하는 거 아냐? 역시 넌 이과가 아니야.”재원은 차 시트를 다시 세웠다. 희수는 빨개진 얼굴을 가리려 애쓰며 창밖을 보았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희수의 허기는 이제 숨길 수 없는 통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들어가서 자라니까, 결국 밥까지 먹여야겠네. 우리 집으로 가게.”“뭐? 자기네 집을 왜 가! 내 집 바로 앞인데!”“우리 집에 너 좋아하는 그 브랜드 냉동 곰탕 남은 거 있어. 너희 집엔 먹을 거 하나도 없잖아. 뻔하지.”재원은 희수의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74화. 루틴의 몰락

    봄의 끝자락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장대비가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희수는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뚫고 가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예감했다.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고 고될 것임을.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전부터 대형견 미용 예약이 줄을 이었고, 평소 얌전하던 강아지들마저 빗소리에 예민해졌는지 내내 칭얼거렸다. 희수는 젖은 털의 비린내와 사투를 벌이며 쉬지 않고 가위질을 했다. 손목은 시큰거렸고, 서 있는 다리는 부어올라 카디건 아래로 느껴지는 압박 스타킹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하지만 희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었다. ‘하... 진짜 방해돼.’희수는 소독약을 뿌리며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애써 무시했다. 재원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일상을 중계하고 있었다. [본사 회의 끝][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웠어][서울 비 많이 오네. 가게 앞은?]희수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이 ‘용건 없는 보고’들을 업무 중간중간 확인하고 있었다. 가위질을 멈추고 휴대폰 화면을 힐끗거리는 자신의 모습은, 희수가 가장 경계하던 ‘감정에 휘둘리는 전문가’의 모습이었다. 희수의 자괴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그녀가 가장 공들여 세운 것은 자신만의 철저한 '방어 루틴'이었다. 퇴근 1시간 전에는 무조건 기구를 소독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의 감정을 정돈하는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희수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의식이었다.그런데 재원이 돌아온 이후, 그 견고했던 성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재원이 보낸 사과 사진 한 장에 웃음을 터뜨리고, 그가 젤리를 사 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풀려버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희수는 지독한 패배감을 느꼈다. 그것은 재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스스로의 통제권을 너무나 쉽게 내어주고 있는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오후 7시. 보라색 간판 불을 끌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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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수를 집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재원은 핸들을 잡은 채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차 안에는 여전히 희수가 남기고 간 은은한 향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 향기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전 편의점에서 들이킨 컵라면 국물 때문인지 가슴팍이 자꾸만 간지러웠다. [진짜 웃겨. 너 사실 마음 약해진 거 아니야?] “...약해지긴 누가.” 재원은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혼잣말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입꼬리는 이미 제 의지를 배신하고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눈가에는 묘한 생기가 돌았다. 평소의 그 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비효율적이고 나사 풀린 표정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재원은 한참 동안 내리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그는 '연락'이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용건 없는 메시지는 시간 낭비였고, 감정 섞인 안부는 업무 흐름을 방해하는 노이즈일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무슨 짓을 했는가. 기상 보고부터 시작해 본사의 날씨 중계, 심지어는 아무 구도 없이 찍은 사과 사진까지 전송했다. 재원은 등받이에 머리를 툭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래서 내가 곰탱인가...’ 희수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평생을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날카롭고 예민하다는 소리만 듣던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곰탱이'라는 별명.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더 기가 막힌 건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희수가 자신을 그렇게 정의해준 것이 일종의 '입국 허가'처럼 느껴져 내심 안도하기까지 했다. “미쳤나 봐, 진짜.” 재원은 스스로가 한심해 헛웃음을 터뜨리며 차에서 내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평소보다 유난히 쓸쓸하게 다가왔다. 이 넓은 아파트에서 희수와 보냈던 시간은 사실 그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72화. 틀린 그림 찾기

    퇴근길, 희수의 집 앞 가로등 밑에는 여전히 검은색 세단이 서늘한 광택을 내며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린 재원은 평소처럼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민 작은 종이 상자 위로 내려앉은 시선만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나왔네?”재원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희수는 걸음을 멈추고 팔짱을 낀 채 그를 응시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대신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 성미대로, 행동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 들 뿐이었다. “그건 뭐야? 또 뭘 나한테 버릴려고.”희수의 가시 돋친 농담에도 재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상자를 희수의 가슴팍 쪽으로 툭, 밀어 넣듯 건넸다. “작년 이맘때, 네가 잃어 버렸다고 했던 거..”상자 안에는 희수가 연애 초기에 잃어버렸다고 한참을 찾았던 작은 키링이 들어 있었다. 희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재원을 보았다.“재원 씨. 이걸 1년 동안 자기 차에 두고 이제 주는 거야? 장난치는 거아?”희수의 쏘아붙임에도 재원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수는 알 수 있었다. 재원이 넥타이를 괜히 한 번 고쳐 매는 그 짧은 손길이, 그가 나름대로 이 '민망함'을 견디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재원은 타인의 감정에 기민한 편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희수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시간적 태만이 얼마나 비논리적으로 보일지는 알고 있는 듯했다.“세차하다 발견했어. 그냥 뒀다가 잃어버릴까 봐 가져온 것뿐이야.”재원의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딱딱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조금 편해지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 했다.절대로 미안해서 찾아왔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하겠다는 완강한 고집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자 안에는 키링만 있는 게 아니었다. 희수가 예전에 “이거 맛있는데 요즘은 잘 안 보이네”라며 지나가듯 말했던, 수입 젤리 몇 봉지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이 젤리는 뭐야? 이것도 세차하다가 시트 밑에서 나왔어?”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71화. 복구 프로젝트

    오전 8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휴대폰이 가벼운 진동을 내뱉었다. 희수는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화면을 확인했다. 이제는 일종의 '기상 로그'가 되어버린 재원의 메시지였다.[재원]- 기상.- 아침은 사과랑 요거트. - 오늘 본사 정식 발령 통보 받았어. 이제 아파트 짐 정리 시작하려고.희수는 이불 속에서 사과 반쪽이 덩그러니 놓인 재원의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구도는 엉망이고 초점은 사과 뒤의 냉장고 문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 ‘인간미’ 넘치는 사진이 희수를 피식 웃게 만들었다. ‘누가 TJ 아니랄까 봐, 보고 하나는 확실하네.’희수는 답장 대신 화면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는 봄날의 햇살이 가득했다. 봄의 끝자락이라지만 이제는 서늘함보다 나른한 온기가 더 짙게 배어 있었다. 희수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재원의 아파트를 떠올렸다. 희수의 빌라에서 골목 몇 개를 지나 큰길 하나만 건너면 닿는 거리. 도보로 10분, 뛰어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그 지근거리에 재원의 베이스캠프가 있었다.한 달 전, 이별하던 날 그 거리는 천 리 길보다 멀게 느껴졌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마주칠까 두려워 길을 돌아가던 시간들.재원의 빈 자리를 느끼며, 향하던 그의 아파트.하지만 이제 그 거리는 재원의 '일일 보고'를 타고 희수의 생활권 안으로 무섭게 좁혀지고 있었다.오후 2시. 가게 안은 미용을 마친 강아지들의 털 날림과 샴푸 향기로 가득했다. 희수가 강아지의 털을 정리하며 한숨을 돌릴 때,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딸랑이며 울렸다.“어서 오세… 어?”입구에 서 있는 건 재원이었다. 그는 한 손에 커다란 종이박스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희수가 평소 즐겨 마시는 브랜드의 카페 라떼가 들려 있었다. 재원은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박스를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집 정리하다가 나왔어. 버리긴 아깝고, 너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희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박스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재원이 ‘버리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70화. 틈

    희수는 가슴팍까지 카디건을 여미며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익숙한 검은색 세단이 가로등 아래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대구 본사까지 내려가 발령 신청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희수의 퇴근길을 기다리고 있었을 재원이다. ‘피곤할 텐데, 진짜 무식하게 저러네.’희수는 마음 한구석이 홧홧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재원은 희수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평소 같으면 빳빳하게 각이 잡혀 있어야 할 셔츠는 군데군데 주름이 가 있었고, 넥타이는 살짝 느슨해진 상태였다. 그 흐트러진 모습이 희수의 눈엔 생경한 데이터로 읽혔다. 늘 완벽함을 연기하며 상대를 압도하던 남자의 균열. “나왔어? 늦었네.”재원이 먼저 말을 건넸다. 목소리는 잠겨 있었지만, 희수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기이할 정도로 맑았다. 희수는 그의 얼굴을 빤히 관찰했다. 하루 종일 장거리 운전을 한 남자의 피로도가 눈가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대단한 선물을 들고 온 아이처럼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전 운전도 했고, 커피도 잘 마셨고,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어. 아까 사진 보냈는데, 봤어?”재원의 말에 희수는 대답 대신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랐다. 차 안은 재원의 향수 냄새와 약간의 커피 향,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섞여 묘한 안도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희수는 벨트를 매며 힐끗 재원의 옆얼굴을 살폈다. 재원은 시동을 걸기 전, 잠시 희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전 같으면 바로 엑셀을 밟으며 다음 행선지를 통보했겠지만, 지금 그는 희수의 호흡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이 인간, 진짜 작정했나 봐.’희수는 휴대폰을 꺼내 [🙏웬수] 폴더를 떠올렸다. 오늘 하루 종일 쏟아졌던 재원의 일방적인 보고들. 기상부터 점심 메뉴, 본사 로비의 풍경까지. 그는 마치 희수가 곁에 있는 것처럼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열했다. 그건 재원이 평생 유지해온 ‘효율성’이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3화. T들의 감정선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 재원의 루틴이 오늘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12:30 / 15:40 / 18:00] 같이 칼같이 들어오던 보고였다.희수는 처음엔 “바빴겠지” 하고 넘겼다.하지만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왜 보고 안 해…?’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희수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선물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희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진심을 담아 길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 늦어도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화. 몰래 읽기 의혹 1차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재원이 아침부터 보내는 ‘초건조 모드’를 보며슬슬 불쾌함이 쌓여갔다.[회의들어간다] 09:30[끝났다] 10:10[밥먹고 쉰다] 12:31[일하는 중] 13:05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오늘은 유난히 ‘정보만 던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심지어 온도도 없음.희수는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나름의 감정을 조금씩 섞었다.[나 지금 밥먹었어!] 13:30[오늘 손님 많아 ㅠㅠ 지쳐어~] 14:25그런데 돌아오는 답은—[네에] 15:40[집이다 쉰다] 15: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1화. 투명인간이 된 기분

    무릎 수술 후 회복기.희수는 여전히 두꺼운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집 안에만 갇혀 있는 게 답답해, 재활 겸 아주 천천히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절뚝, 절뚝.걸음은 느렸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골목은 조용했다.봉지를 든 손이 조금 시리다고 느꼈을 때였다.저만치 앞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어?’재원이었다.칼퇴근을 하고 집 근처로 온 모양이었다.반가움에 희수가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려던 순간,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그는 혼자가 아니었다.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직장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3화. 나쁜놈 인 줄 알았는데 그냥 곰이었다

    그날의 ‘외면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났다.표면적으로는 다시 평화로운 루틴이 돌아왔다.[기상] 06:11[출근 준비] 06:12하지만 희수의 마음속에는 아직 잔여물이 남아 있었다.친구들에게 하소연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야, 그거 완전 나쁜 놈 아니야?”“지인한테 숨기는 거? 빼박이지. 어장관리 아니야?”“희수야, 너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같아.”친구들의 말은 논리적이었다.사생활 숨김, 차가운 말투, 감정 회피.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체크리스트와 일치했다.희수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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