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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XX
우아한 XX
Author: 휘린

1. 우아한 XX

Author: 휘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5 17:57:53

1. 우아한 XX

“나, 임신했어.”

이현은 W 호텔 내부 커피숍의 한 테이블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등은 꼿꼿이 세우고, 턱은 도도하게 치켜들었다. 긴장감에 속은 타들어 갈 지경이었지만, 이 남자 앞에선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

소준의 가지런하고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커피라 그런가.

속이 화끈거렸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아이스커피를 시킬 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명색이 아이 아빤데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친절하네. 하이현.”

소준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긴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두드렸다.

이현은 그런 소준의 모습에 인상을 썼다. 마치 사무적으로 대하는 그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했다.

“걱정하지 마. 애는 나 혼자 낳아서 잘 키울 테니까.”

“그럼, 애를 혼자 낳지, 둘이 낳나?”

소준은 마치 남 얘기하듯 중얼거렸다.

아니, 솔직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현이 임신을 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지금은 분간하기 힘들었다.

엿 먹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도…….

“내가 아이 아빠는 맞아?”

소준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이현을 올려다봤다. 표정은 평온한 척 애쓰는데, 도도한 시선위로 미세한 진동이 일어났다.

“아. 맞나보네?”

“…….”

“얼굴에 커피는 뿌리지 마. 뜨거운 거라서. 하려면 여기 차가운 생수로 해줘.”

“태소준.”

어금니를 맞물린 이현의 입술이 그의 이름을 뱉어냈다.

생수? 웃기지 마.

이현이 커피에 손을 가져가려는 찰나, 뒤에서 한 여자가 소준의 이름을 불렀다.

“소준 씨?”

여자는 실실 웃고 있는 소준과 그의 앞에 서 있는 이현을 쳐다보며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낯선 이가 소준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은 여자를 무시하고 소준을 내려다봤다. 여자가 그의 맞은편에 앉는 게 느껴졌지만, 철저히 투명 인간 취급했다.

“하이현. 보다시피 상황이 이러네? 내가 지금 선을 보고 있는 중이라서.”

“아. 그렇구나.”

소준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다 알고 왔으면서 모른 척하긴. 정말 엿 먹이려면 이 여자 있는 상태에서 임신 소식을 알렸어야지. 하여튼 착해빠져서는.

뭐, 그런 빈틈이 있는 게 이현의 매력이긴 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

“그래, 잘 가.”

또각. 또각. 또각.

소준은 하이힐 소리를 내며 멀어져가는 이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시폰 원피스 치맛자락이 무릎 언저리에서 찰랑거렸다. 그리고 가느다란 허리를 보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제 품에 쏙 들어오는 저 몸을 탐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감을 맛보았던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참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막상 또 만나게 되니 잠재되었던 욕구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이현이 문을 열고 나가려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소준을 바라봤다.

그녀를 보고 있던 소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이현이 다시 돌아보리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했다.

이현은 소준을 보고 생긋 웃더니 갑자기 무표정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아주 멋지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인 후, 밖으로 나가버렸다.

“풉.”

소준은 이현이 사라지자마자 저도 모르게 웃음을 내뱉었다.

웨이브 진 긴 머리를 한번 넘기고, 유유히 사라지는 그녀를 당장에라도 쫓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커피가 아니라 아마 제 중심이 차일지도 몰랐다.

‘하아. 하이현. 진짜 엿 먹으라는 거야? 소심하게 가운뎃손가락이 뭐야?’

여자는 소준의 작은 웃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소준 씨?”

소준은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맞선 상대를 바라봤다.

이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아, 미안해요.”

“아니에요. 그런데 아까 그 여자분은 누구예요?”

“전처요.”

“…네?”

“알고 나오신 거 아니에요? 나 한번 갔다 온 돌싱남인데.”

소준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커피를 마셨다. 정말 이 여자한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혼남이라고 해도 좋다고 나왔을 테니.

“그, 그렇군요.”

“아참. 이제 돌싱남은 아니네요. 싱글이라 하기엔 책임질 소중한 게 생겨버려서.”

“그게 무슨 뜻인가요?”

소준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어머니와 약속한 시간이 끝이 났다.

한 시간만 앉아 있으라는 그 약속.

이젠 지켰으니 그만 일어나도 될 것 같았다.

“이 생수가 아니라 커피를 끼얹으려고 하는 거 보니, 진짜인 것 같아요. 거짓말 잘 못하는 여자거든요.”

여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예의 없게 전처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본 것도 기분 나쁜데,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까지 하고 있으니,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뭐, 나도 지금 어안이 벙벙하긴 한데……. 기분은 되게 묘하네요. 그럼, 이만 먼저 실례할게요.”

소준은 몸을 일으키고 살짝 묵례한 후, 먼저 자리를 떴다.

“소, 소준 씨. 태소준 씨!”

소준은 여자의 외침에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커피숍을 나서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끝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고, 소준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형. 하이현 만났는데, 걔가 폭탄을 던져두고 갔네? …아, 아니다. 폭탄이 아닌가? 의외의 선물일 수도 있겠는데? 형 생각은 어떤 것 같아?”

***

쾅!

현관문이 부서질세라 세게 닫고 들어온 이현은 구두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핸드백을 침대 위에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야 조금씩 진정되어갔다.

“하. 누가 또라이 자식 아니랄까 봐, 뭐? 잘 가? 자아아알가?”

이현은 소리 나게 컵을 식탁 위에 내려두고 화장대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래, 아주 잘 가주마. 태소준 이 개같은. 헙.”

순간적으로 내뱉은 욕설에 깜짝 놀란 이현은 재빨리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오묘한 시선으로 제 평평한 배를 내려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그 어떠한 변화도 없는데, 작은 생명이 이 몸 안에 자리 잡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한 생리 불순이라 여겼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종종 일어난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축하합니다, 임신 육 주에 들어섰네요. 여기 아기집 보이시죠? 다음에 오셨을 땐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의사가 전하는 말을 듣고 과히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임신이라니? 내가?

왜?

지금 이 상황에서? 나 이혼했는데?

그리고 피임을…….

안 했나보다, 그 새끼가.

휘린

안녕하세요. 휘린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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