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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이! 현

Author: 휘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5 18:06:25

4. 하이! 현

찬우는 뒷목을 잡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 같아선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인 크리스털 명패를 소준에게 던지고 싶었다.

그래. 생각뿐이다. 도저히 행동으로는 할 수 없는.

태강 그룹의 소중한 하나뿐인 아드님을 어찌 감히.

“소준아. 회장님이 아시면, 아니 아니, 어머님이 아시면…….”

“이혼해서 마음이 너무 아픈 나머지 잠시 힐링하러 간다고 전해줘.”

“퍽이나!”

“아윽, 마음 아파 당장에라도 급사할 것 같아.”

소준은 보란 듯이 가슴을 쥐어짜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씩 웃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의 행동에 찬우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쳐댔다.

***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그 한가운데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뿜어대는 강렬한 태양 빛!

미세먼지로 가득한 희뿌연 곳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이곳!

드디어 기대하던 스페인에 도착했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

“아. 벌써 공기부터 달라.”

공항을 빠져나온 이현은 선글라스를 쓰고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주변 공기를 힘껏 들이켰다.

하지만…….

“캑. 콜록, 콜록, 콜록.”

연신 기침을 해대는 바람에 환상에 젖은 그 기대는 옆에서 날아오는 연기와 함께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미간을 구기고 그 주범을 찾아보니 한 외국인 남자가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매너 없게 담배질은. 나 임산부라고!’

이현은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캐리어를 끈 채, 택시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금연 구역이 많은 한국에서는 담배 연기를 맡아본 경우가 손에 꼽혔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아쉽지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호객하는 택시 기사 중, 섹시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다가가 캐리어를 내밀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캐리어를 실어주고 뒷문까지 열어주었다.

‘그래, 이거지! 아직 안 죽었어, 하이현. 스페인에서도 통하는 외모라고!’

“올라.”

고상한 몸짓으로 뒷좌석에 오른 이현은 기사에게 기분 좋게 인사한 후, 가고자 하는 호텔을 알려주었다.

“오케이! 아 유 코리언?”

“예스!”

“와우. 유 아알 뷰티~풀!”

이현은 그의 칭찬에 두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땡큐!!”

이렇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니. 정말 행복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현은 배를 토닥거리면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 밖을 구경했다.

***

이현이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고 정확히 24시간 후.

소준이 그녀가 머물렀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날씨 한번 더럽게 덥네.’

선글라스로 가려진 소준의 눈매가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시원하게 하늘색의 린넨 셔츠를 입었건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도착할 때까지 구겨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승무원이 퍼스트 클래스 서비스를 해주면서 눈치를 볼 정도였다.

공항 주변엔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관능적인 스페인 남자들이 득실거렸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의 동양인 피지컬이 군중 속에서 확연히 더 튀어 보였다. 여성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갔지만, 소준은 관심 따위 주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그때, 그의 앞으로 스르륵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번호판을 슬쩍 보니 미리 예약해 둔 택시다.

탁.

택시에 오른 그는 무뚝뚝한 영어 말투로 에어컨을 더 세게 틀어달라고 요청한 후, 시트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승차감 거지 같네. 당장 렌터카부터 알아봐야겠군.’

***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외출 준비를 끝낸 이현은 전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자, 새하얀 민소매 원피스가 무릎 위에서 나풀거렸다. 시원하게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단내가 나는 틴트를 입술에 툭툭 발랐다.

“좋았어. 아주 완벽해.”

하루 동안 호캉스를 즐기면서 시차 적응도 끝냈으니, 이젠 즐겁고 산뜻한 기분으로 외출하면 되었다.

저녁 여덟 시가 되어가는데도 밖은 대낮처럼 밝았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고 필요한 소지품을 미니 핸드백에 챙겨 넣은 후, 반짝반짝 페디큐어 한 작은 발을 샌들 속으로 살포시 넣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텔을 나선 이현은 타파스를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거기에 무알콜의 와인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정말 상상만 해도 즐거워서 절로 몸이 들썩거렸다.

잠시 후, 호텔과 그리 멀지 않은 가게로 들어갔다.

무리 지어 먹고 있는 젊은 외국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테이블에 앉은 이현은 직원에게 먼저 생긋 웃어주었다.

인종 차별 못 하게 미리 미모로 눌러 놓아버릴 테다.

능숙한 영어 발음으로 주문을 끝낸 이현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가 등골이 서늘해짐을 감지하고 앞을 쳐다봤다.

“……!”

털썩.

깜짝 놀란 이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느릿한 자세로 자리에 앉은 상대방은 선글라스를 벗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조소 섞인 웃음이 그의 정갈한 얼굴 위로 그늘처럼 번졌다.

“하이! …현. 역시나 취향 한번 독특하네. 어떻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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