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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Author: 쌍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2 17:53:44

이에노스로 출발한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나와 카시안, 레오넬이 탄 마차 뒤로 짐마차 두 대가 천천히 따라왔다.

"아직 반란군이 로웬을 점령하고 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군."

카시안이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레브란트에서 북서쪽에 있는 이에노스로 가려면, 원래는 로웬을 지나는 길이 가장 빨랐다. 그런데 반란군 때문에 멀리 돌아가야 한단다.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이었다.

덜컹, 덜컹.

마차 안은 꽤 넓었다. 여섯 명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

그런데 나는 지금 마차 한가운데에 끼어 있었다.

"......"

왼쪽에는 카시안. 오른쪽에는 레오넬.

그리고 맞은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저기요."

"왜."

"예, 영애."

"맞은편에 자리 많은데 왜 다들 제 옆에 앉아 있어요?"

"......"

"......"

카시안은 창밖을, 레오넬은 반대편 창밖을 보았다. 둘 다 못 들은 척이었다.

"...오후쯤에야 도착하겠군."

"...영애, 오늘은 보름달이 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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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한 네 남자의 침술사가 되었다!?   73화

    "...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나는 아기를 꼭 끌어안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도망쳐야 해! 아니, 반란군이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질러야 하나? 내가 고민하는 사이, 크로이츠가 천천히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에노스에서 왔다더니.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거, 거짓말한 적 없거든요?" ...는 거짓말이다, 이 자식아! 크로이츠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내 품에 안긴 아기에게로. "꺄르르."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크로이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 크로이츠는 한참 동안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 아기, 확실히 역병이 나았군. 얼굴에 반점이 사라졌어." "그, 그랬나요? 원래 멀쩡했던 것 같은데..."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아기까지 역병에 걸렸다고." "......" "그리고 네가 아기와 입을 맞췄지." "......" "...의원들이 몇 달을 붙잡고도 못 고치는 병을, 입맞춤 한 번에 낫게 할 줄이야." 크로이츠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칠흑 같은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했다. "병사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지. 상처를 하룻밤 만에 낫게 하는 성녀가 내린 성수가 있다고." "......!" "너, 설마 성녀인가?" "아, 아니거든요! 성녀는 얼어 죽을! 전 그냥 평범한 여자라고요!" 나는 펄쩍 뛰었다. "...성녀도 아닌 것이, 병을 낫게 한다고? 넌 정체가 뭐지?" "...꺄아아아아악!" 나는 대답 대신 비명을 질렀다. 품에 안긴 아기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짚더미 위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고, 환자를 돌보던 사람들도 손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수십 개의 눈이 한꺼번에 쏠렸다. "......" 크로이츠는 움직이지 않았다. 천 위로 드러난 칠흑 같은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화가 난 것도, 당황한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

  • 위험한 네 남자의 침술사가 되었다!?   72화

    이에노스로 출발한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나와 카시안, 레오넬이 탄 마차 뒤로 짐마차 두 대가 천천히 따라왔다."아직 반란군이 로웬을 점령하고 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군."카시안이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레브란트에서 북서쪽에 있는 이에노스로 가려면, 원래는 로웬을 지나는 길이 가장 빨랐다. 그런데 반란군 때문에 멀리 돌아가야 한단다.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이었다.덜컹, 덜컹.마차 안은 꽤 넓었다. 여섯 명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그런데 나는 지금 마차 한가운데에 끼어 있었다."......"왼쪽에는 카시안. 오른쪽에는 레오넬.그리고 맞은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저기요.""왜.""예, 영애.""맞은편에 자리 많은데 왜 다들 제 옆에 앉아 있어요?""......""......"카시안은 창밖을, 레오넬은 반대편 창밖을 보았다. 둘 다 못 들은 척이었다."...오후쯤에야 도착하겠군.""...영애, 오늘은 보름달이 떴군요.""......?"이 양반들아, 나도 창가에 앉고 싶다고!!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맞은편으로 옮겨 앉으려고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었다.그 순간, 양쪽에서 동시에 손이 뻗어 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원래 자리에 앉혔다."멀미하기 싫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달리는 마차에서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영애.""......"덜컹, 덜컹.마차가 살짝 흔들릴 때마다 양쪽 어깨가 번갈아 부딪혔다. 왼쪽으로 쏠리면 카시안, 오른쪽으로 쏠리면 레오넬....하아. 불편해 죽겠네, 정말.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 버렸다.그냥 잠이나 자자.그렇게 밤새 몇 번이나 졸다 깼는지 모르겠다. 깰 때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있었는데, 그게 누구 어깨였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늦은 오후, 이에노스 성문 앞."멈추시오!"창을 든 경비병 둘이 마차 앞을 막아섰다. 둘 다 눈만 남기고 얼굴을 하얀 천으로 칭칭 감고 있었다."레브란트 후작가에서

  • 위험한 네 남자의 침술사가 되었다!?   71화

    "......" 응접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레오넬은 이에노스에 가겠다는 말을 꼭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녀가 다가와 레오넬과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오스틴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에노스에 가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오스틴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다시 썼다.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건지부터 말해." "......" 나는 찻잔에 코를 박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쩌려고요, 황자님!! "자네 다리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황궁의 의원들이 줄줄이 다녀가는 것도, 신관들이 기도하는 것도 옆에서 다 봤으니까." 오스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탁자 모서리를 꾹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휠체어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지금은 잘도 걷는군." "......" "설명해 주게, 레오넬." 레오넬은 오스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몹시 놀란 얼굴이군, 오스틴." "당연하지." "오스틴, 자네는 기적을 믿나?" "...기적?" 오스틴은 한참동안 레오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나에게로. "......" 나는 얼른 고개를 들고 자연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 그냥 차 마시는 중이에요. 쳐다보지 마세요. 꿀꺽. "아, 뜨거! 켈록, 켈록." "......" 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잡한 얼굴로 찻잔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오넬은 기적이라 하고, 오스틴은 의아해하고, 카시안은 입을 다물고, 나는 혀를 데었다. 셋 다, 아니 넷 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침묵이었다. "...기적이라." 이윽고 오스틴이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있긴 있군. 일단 그렇다고 해 두지." 오스틴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안경을 고쳐 썼다. 레오넬은 작게 헛기침을 한 후

  • 위험한 네 남자의 침술사가 되었다!?   70화

    "...황자님.""예.""그럼 다리가 움직이면, 에단님을 도와주실 수 있는 거예요?""......"레오넬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물론입니다."그리고 담요 위에 놓인 두 손을 모았다."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너무 진지한 목소리였다. 장난처럼 넘길 틈도 없이."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휠체어 앞으로 다가갔다.'으... 괜히 긴장되네...'지난번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때는 진흙탕 한가운데였고, 등 뒤에서 함성이 들렸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햇빛이 쏟아지는 조용한 방이었다.창밖의 새소리까지 다 들렸다. 내 심장 소리도.나는 휠체어 앞에 쪼그려 앉아 레오넬과 눈높이를 맞췄다.레오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촉하지도,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준비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그 눈이 너무 가까워서, 결국 내가 먼저 눈을 질끈 감았다.쪽.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천천히 눈을 뜨자, 레오넬이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붉어진 얼굴로.그때, 레오넬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구두 끝이 바닥을 더듬듯 움직였다.레오넬은 팔걸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담요가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졌다.그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햇빛이 고인 바닥 위에 멈춰 섰다."......"레오넬은 한동안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일어섰던 그날처럼, 아주 신기한 것을 보는 얼굴로."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나는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들고, 괜히 코끝을 문질렀다.레오넬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고맙습니다, 영애. 이제 오스틴에게 가 봐야겠습니다."--------------같은 시각, 응접실."그래서 반란군의 병력은 얼마나 되던가?""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로웬을 함락할 만큼은 됐겠지요.""흠. 로웬이라."오스틴은 안경을 고쳐 쓰고, 탁자 위에 펼쳐 둔 지도를 손가

  • 위험한 네 남자의 침술사가 되었다!?   69화

    해가 중천에 걸릴 무렵,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백작님." 마부가 문을 열었다. 나는 카시안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리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와." 반듯하게 깎인 정원수.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깔린 돌길. 창문마다 똑같은 높이로 걷힌 커튼. 그 정교함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카시안 백작." 현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콧등에 걸친 둥근 안경.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셔츠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오랜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오스틴이 내민 손을 카시안이 부드럽게 잡으며 악수를 나눴다. "서신이 무례했지? 사정이 급해서 그리 썼으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스틴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 왔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나를 차분히 훑었다. 머리부터, 드레스, 그리고 손끝까지. "이분이 사촌 동생인가?" "아, 안녕하세요." 나는 최대한 우아하게 치마 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연회 때 수십 번 연습했던 그 인사였다. "반갑습니다, 영애. 오스틴 레브란트라고 합니다." "아, 아이린입니다!" 오스틴은 내 인사에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사람, 웃고 있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선한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 보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지." 나와 카시안은 오스틴을 따라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 안 응접실로 안내받은 우리는 고급스러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책장의 책들은 키 순서대로 꽂혀 있었고, 탁자 위의 꽃병은 정확히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음, 이 저택에서 일하는 건 굉장히 피곤할 것 같아. 그때, 하녀가 소리 없이 차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은은한 꽃향기가 김을 타고 피어올랐다. "레브란트에서 나는 찻잎일세.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향이 좋네요." 나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새끼

  • 위험한 네 남자의 침술사가 되었다!?   68화

    루텐부르크 영지, 칼튼 상단의 집무실. 사각, 사각. 에단은 서류 더미 사이에서 펜을 굴리고 있었다. "후... 지루하네." 에단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카르디아 영지 쪽 하늘이었다. '누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벌컥! 순간, 집무실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도, 도련님!" 상단 직원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손에는 서신이 들려 있었다. "...노크하는 법도 잊어버린 건가?" "죄,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건이라..." "뭔데 그러지?" "그, 그게 이에노스에서..." "이에노스?"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병에 걸린 이에노스 사람들이... 몸이 굳어서 쓰러지고 있답니다. 팔이며 다리며, 하룻밤 새 수십 명이..." "역병이 그런 병이었나?" "아닙니다. 다들... 성수를 마셨답니다." "...성수?" "예. 칼튼 상단 깃발을 단 마차에서 샀다고 합니다." 집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우린 이에노스에 그런 걸 보낸 적 없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내밀었다. "버려진 병마다, 저희 인장이 찍혀 있었답니다. 벌써 황도에도 소문이..." 에단은 서신을 받아 들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표정이 지워졌다. 상단 인장. 성수. 이에노스. 쾅! 에단은 한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런, 젠장. 당했어." 에단의 머릿속에 연회장에서 이에노스 이야기를 꺼내던 아르덴 공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 뭘 말입니까?" "아니야." 에단은 서신을 신경질적으로 구겼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창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칫, 벌써 온 건가." 쿵, 쿵, 쿵.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도, 도련님.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손님 맞을 준비해야지." 에단은 구겨진 서신을 서랍에 밀어 넣고,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했다. 벌컥. 이번에도 노크는 없었다. 황실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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