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주 평범했던 어느 날. 숲에서 길을 헤매다 마신 물 한 모금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터 내 특별한 능력을 알아본 위험한 남자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한다. 황위 계승과 가장 거리가 먼 제6황자. 제국의 돈줄을 쥔 대부호 상단의 후계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한 백작. 그리고 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는 사상 최악의 살인마. 각각의 비밀과 목적을 가진 네 남자. 그들은 왜 하나같이 나에게 집착하는 걸까?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나의 위험하고도 달콤한 제국 생존기!
View More보잘것없는 평민이었던 내가 이런 위험한 남자들과 얽히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황위 계승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던 제6황자. 제국의 돈줄을 쥐고 있는 대부호 상단의 후계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한 백작. 그리고, 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는 사상 최악의 살인마. 어느 한 사람만 만나도 평범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질 만한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네 남자와 모두 얽혀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나 때문에 싸우고 있었다. "그 더러운 손 치워."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싫은데요?" 곧바로 앳된 남자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콰앙!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굉음과 함께 창문이 흔들렸다. "다들 꺼져. 뒤지고 싶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벽을 부수고 들어온 남자가 살기 어린 눈으로 다른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챙! 챙! 콰앙! 순식간에 세 남자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방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 인간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걸까. "아, 좀 제발!"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좀 싸워요! 그러다 진짜 누구 한 명 죽겠어요!"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휴우, 이제 좀 진정됐나요? 다들 그만 싸우고..." 벌컥!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닫혀 있던 문이 대차게 열렸다. 황복을 입은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린, 괜찮아? 너희들! 당장 아이린에게서 떨어져!" "닥쳐. 죽여버리기 전에." "아무리 황자님이라 해도 그건 안 되겠습니다." "저도 싫습니다만." "......" 나는 네 남자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하나같이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아주 평범했던 어느 날. 숲에서 길을 헤메다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응접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레오넬은 이에노스에 가겠다는 말을 꼭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녀가 다가와 레오넬과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오스틴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에노스에 가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오스틴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다시 썼다.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건지부터 말해." "......" 나는 찻잔에 코를 박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쩌려고요, 황자님!! "자네 다리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황궁의 의원들이 줄줄이 다녀가는 것도, 신관들이 기도하는 것도 옆에서 다 봤으니까." 오스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탁자 모서리를 꾹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휠체어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지금은 잘도 걷는군." "......" "설명해 주게, 레오넬." 레오넬은 오스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몹시 놀란 얼굴이군, 오스틴." "당연하지." "오스틴, 자네는 기적을 믿나?" "...기적?" 오스틴은 한참동안 레오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나에게로. "......" 나는 얼른 고개를 들고 자연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 그냥 차 마시는 중이에요. 쳐다보지 마세요. 꿀꺽. "아, 뜨거! 켈록, 켈록." "......" 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잡한 얼굴로 찻잔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오넬은 기적이라 하고, 오스틴은 의아해하고, 카시안은 입을 다물고, 나는 혀를 데었다. 셋 다, 아니 넷 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침묵이었다. "...기적이라." 이윽고 오스틴이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있긴 있군. 일단 그렇다고 해 두지." 오스틴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안경을 고쳐 썼다. 레오넬은 작게 헛기침을 한 후
"...황자님.""예.""그럼 다리가 움직이면, 에단님을 도와주실 수 있는 거예요?""......"레오넬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물론입니다."그리고 담요 위에 놓인 두 손을 모았다."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너무 진지한 목소리였다. 장난처럼 넘길 틈도 없이."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휠체어 앞으로 다가갔다.'으... 괜히 긴장되네...'지난번에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때는 진흙탕 한가운데였고, 등 뒤에서 함성이 들렸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햇빛이 쏟아지는 조용한 방이었다.창밖의 새소리까지 다 들렸다. 내 심장 소리도.나는 휠체어 앞에 쪼그려 앉아 레오넬과 눈높이를 맞췄다.레오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촉하지도,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준비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그 눈이 너무 가까워서, 결국 내가 먼저 눈을 질끈 감았다.쪽.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천천히 눈을 뜨자, 레오넬이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붉어진 얼굴로.그때, 레오넬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구두 끝이 바닥을 더듬듯 움직였다.레오넬은 팔걸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담요가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졌다.그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햇빛이 고인 바닥 위에 멈춰 섰다."......"레오넬은 한동안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일어섰던 그날처럼, 아주 신기한 것을 보는 얼굴로."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나는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들고, 괜히 코끝을 문질렀다.레오넬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고맙습니다, 영애. 이제 오스틴에게 가 봐야겠습니다."--------------같은 시각, 응접실."그래서 반란군의 병력은 얼마나 되던가?""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로웬을 함락할 만큼은 됐겠지요.""흠. 로웬이라."오스틴은 안경을 고쳐 쓰고, 탁자 위에 펼쳐 둔 지도를 손가
해가 중천에 걸릴 무렵,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백작님." 마부가 문을 열었다. 나는 카시안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리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와." 반듯하게 깎인 정원수.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깔린 돌길. 창문마다 똑같은 높이로 걷힌 커튼. 그 정교함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카시안 백작." 현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콧등에 걸친 둥근 안경.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셔츠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오랜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오스틴이 내민 손을 카시안이 부드럽게 잡으며 악수를 나눴다. "서신이 무례했지? 사정이 급해서 그리 썼으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스틴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 왔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나를 차분히 훑었다. 머리부터, 드레스, 그리고 손끝까지. "이분이 사촌 동생인가?" "아, 안녕하세요." 나는 최대한 우아하게 치마 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연회 때 수십 번 연습했던 그 인사였다. "반갑습니다, 영애. 오스틴 레브란트라고 합니다." "아, 아이린입니다!" 오스틴은 내 인사에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사람, 웃고 있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선한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 보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지." 나와 카시안은 오스틴을 따라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 안 응접실로 안내받은 우리는 고급스러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책장의 책들은 키 순서대로 꽂혀 있었고, 탁자 위의 꽃병은 정확히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음, 이 저택에서 일하는 건 굉장히 피곤할 것 같아. 그때, 하녀가 소리 없이 차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은은한 꽃향기가 김을 타고 피어올랐다. "레브란트에서 나는 찻잎일세.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향이 좋네요." 나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새끼
루텐부르크 영지, 칼튼 상단의 집무실. 사각, 사각. 에단은 서류 더미 사이에서 펜을 굴리고 있었다. "후... 지루하네." 에단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카르디아 영지 쪽 하늘이었다. '누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벌컥! 순간, 집무실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도, 도련님!" 상단 직원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손에는 서신이 들려 있었다. "...노크하는 법도 잊어버린 건가?" "죄,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건이라..." "뭔데 그러지?" "그, 그게 이에노스에서..." "이에노스?"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병에 걸린 이에노스 사람들이... 몸이 굳어서 쓰러지고 있답니다. 팔이며 다리며, 하룻밤 새 수십 명이..." "역병이 그런 병이었나?" "아닙니다. 다들... 성수를 마셨답니다." "...성수?" "예. 칼튼 상단 깃발을 단 마차에서 샀다고 합니다." 집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우린 이에노스에 그런 걸 보낸 적 없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내밀었다. "버려진 병마다, 저희 인장이 찍혀 있었답니다. 벌써 황도에도 소문이..." 에단은 서신을 받아 들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표정이 지워졌다. 상단 인장. 성수. 이에노스. 쾅! 에단은 한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런, 젠장. 당했어." 에단의 머릿속에 연회장에서 이에노스 이야기를 꺼내던 아르덴 공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 뭘 말입니까?" "아니야." 에단은 서신을 신경질적으로 구겼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창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칫, 벌써 온 건가." 쿵, 쿵, 쿵.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도, 도련님.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손님 맞을 준비해야지." 에단은 구겨진 서신을 서랍에 밀어 넣고,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했다. 벌컥. 이번에도 노크는 없었다. 황실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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