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화에드리안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검은 망토라는 조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있나?”“아뇨. 잘 모릅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검은 망토에게 습격당한 적은 있었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조직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여기 온 지 얼마 안됐으니까.에드리안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검은 망토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조직이 아니었네.”“네?”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처음에는 리벤델 마을 주변에서 활동하던 작은 범죄 조직에 불과했지.”나는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도박장을 운영하거나, 행인들의 돈을 빼앗고,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뜯어내는 정도였네. 당시에는 경비대가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에드리안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작은 조직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흡수된 거지.”“...흡수요?”“그래.”에드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누군가 리벤델 주변에서 활동하던 범죄 조직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네. 그리고 조직의 우두머리를 제거하거나, 협박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였지. 그렇게 여러 조직이 하나로 합쳐졌고 조직 이름을 검은 망토로 바꾸더군.”“그 누군가가 설마... 꼬맹이?”내 질문에 에드리안의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그래. 자네도 얼핏 봤다고 들었네.”“...그럼 그 꼬맹이만 잡으면 해결 되는거 아닌가요?”“검은 망토의 보스는 신원을 알 수 없네.”“예? 신원을 알 수 없다고요?”“그래. 이름도, 출신도, 나이도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지.”에드리안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확실하게 알려진 건 단 하나뿐일세.”“그게 뭔데요?”“키가 상당히 작다는 것.”“...예?”나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끝이에요?”“그래.”에드리안은 내 황당한 표정을 본 것인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처음에는 우리도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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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화리벤델 경비대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마을 중심에 자리한 제법 큰 저택이었다. “......” 나는 저택 앞에 멈춰 서서 건물을 올려다봤다. 높게 솟은 3층짜리 석조 건물. 정문 앞에는 잘 정돈된 작은 정원이 있었고, 입구 주변에는 경비대원들이 서 있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의 저택이었다. 그래도 평소 내가 지내던 여관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여기가 리벤델 마을 영주님이 사는 곳인가.’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경비대원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 생각보다 화려하진 않았다. 깨끗하게 정리된 복도와 벽에 걸린 몇 장의 그림. 그리고 곳곳에 놓인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구들. 평범한 사람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규모가 컸지만, 그렇다고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화려한 곳은 아니었다. ‘...이런 집은 가격이 얼마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경비대원을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한 응접실 앞에 멈춰 섰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 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적당한 크기의 응접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에는 고풍스러운 나무 테이블과 푹신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리벤델 가문의 문장으로 보이는 장식이 걸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음. 살짝 긴장되네.”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깔끔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화려한 옷은 아니었지만, 단정한 모습과 고급스럽게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앞까지 다가오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자네가 렌인가?”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예, 안녕하십니까!” 남성은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이곳 리벤델의 영주 에드리안 리벤델 남작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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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9화나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그리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절로 기쁨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하아... 맨날 이렇게 뒹굴거리면 얼마나 좋을까?'잠시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던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상태창을 띄웠다.“레벨 67?”그라우즈를 잡고 퀘스트를 완료한 보상으로 12레벨이 올라가 있었다.나는 망설임 없이 보너스 스탯 60을 전부 체력에 투자했다.━━━━━━━━━━━━━━━━━━[체력 : 515 ➡️ 575][HP : 5,150 ➡️ 5,750]━━━━━━━━━━━━━━━━━━“좋아. 이 정도면 탱커 해도 되겠는데? 물론 그런 미친 짓은 안 할 거지만. 하하핫!”나는 신나서 한바탕 웃은 다음, 스킬창을 열었다.━━━━━━━━━━━━━━━━━━ ◆ 스킬창이나엘의 축복(패시브): 30m 이내 아군의 물리, 마법 공격력이 180% 증가(Lv.36)이나엘의 가호(패시브): 30m 이내 아군의 방어력이 5% 증가(Lv.1)이나엘의 은총(패시브): 30m 이내 아군의 생명력과 마나가 55% 증가(Lv.11)이나엘의 숨결(패시브): 30m 이내 아군의 공격속도와 마법 시전 속도 2% 증가(Lv 1)이나엘의 구원(패시브): 30m 이내 아군의 상태 이상 저항력 5% 증가(Lv 100 필요)이나엘의 손길(패시브): 30m 이내 아군의 물리 치명타, 마법 치명타 2% 증가(Lv 150 필요)이나엘의 군단(액티브): 발키리 1명을 1시간 동안 소환(Lv 200 필요)사용 가능 스킬 포인트 : 12━━━━━━━━━━━━━━━━━━‘음...이건 일단 에르시한테 물어봐야겠다.’나는 스킬은 그대로 놔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어라? 잠깐만.’나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지금까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이 버프 스킬들은...”나는 손가락으로 내 자신을 가리켰다.“왜 나한테는 적용이 안 되는거지?”스킬 설명을 보면 내 주변 아군의 능력치는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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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화"일단 점심부터 먹죠!! 제가 다 쏘겠습니다!! 음하하!!"“이 멍청아,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에르시는 흥분한 나를 한대 쥐어박고 메뉴판을 들었다.“후후훗, 그럼 렌씨가 사는 걸로 알고 저도 주문할게요.”로제타도 웃으며 메뉴판을 들었다.잠시 후,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한 후 에르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디 가?”내가 묻자 에르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화장실.”“아, 미안.”에르시는 몇 걸음 옮기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그러더니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렌.”“응?”에르시는 로제타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그리고 내 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없는 동안 입 조심해.”“입 조심? 뭘?”“니 스킬. 로제타가 물어봐도 모르는 척 하라고.”“알았어.”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에르시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몸을 돌렸다.“그럼 갔다 올게.”에르시는 그대로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그리고 테이블에는 나와 로제타만 남았다.“......”“......”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에르시가 없으니까 더럽게 어색하네.'나는 괜히 딴청을 피우며 주위만 두리번 거렸다.로제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아, 하하... 에르시가 좀 늦네요. 큰 거... 였나?”로제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렌씨.”“...네, 넵?”로제타는 턱을 살짝 괴고 나를 바라봤다.“아까 그라우즈와 전투 중에 제 상태창을 봤어요. 제 공격력과 HP, 심지어 MP까지 올라가 있더라고요. 심지어 지금도 올라가 있군요.”“아, 그, 그랬나요? 저는 모, 모릅니다.”“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데 혹시...”“......”나는 애써 로제타의 시선을 피했다.그런데 로제타가 의자를 내 옆으로 옮기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정말 어떻게 된건지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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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7화그라우즈가 완전히 쓰러진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에르시는 지팡이를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로제타 역시 방패를 내려놓은 채 한쪽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아... 하아...” “후우...” 두 사람 모두 완전히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멀쩡했다. 숨도 차지 않았고, 땀도 거의 나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 한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뒤에서 응원하고, 가끔 소리 지르고, 에르시 뒤에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미안해지네.’ 나는 지쳐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기... 두 분 괜찮아요?” 에르시가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조금 쉬면 돼.” “저도 괜찮습니다.” 로제타도 애써 웃었다. 하지만 둘 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쳐 보였다. “그럼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돌아갈까요?” 내가 말하자 에르시와 로제타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유적지 한쪽에 무너진 돌벽을 등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는 멀쩡한 몸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괜히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딱히 지치지도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용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에르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돌아가자.” “그러죠.” 로제타도 천천히 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리벤델 마을 여관 식당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적당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르시는 인벤토리를 열어 보상 아이템을 하나씩 확인했다. “일단 아이템 분배부터 정리하자.” 가장 먼저 나온 건 그라우즈의 판금 부츠였다. ━━━━━━━━━━━━━━━━━━ [그라우즈의 판금 부츠] 등급: 영웅 • 방어력 : +120 • 힘 : +63 • 체력 : +77 • 이동 속도 -6% [착용 조건] • 힘 180 이상 ━━━━━━━━━━━━━━━━━━ “이건 로제타씨 아이템이네요.” 에르시가 판금 부츠를 로제타에게 건넸다. “상당히 좋은 장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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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화에르시의 외침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곧, 지팡이를 중심으로 거대한 얼음 결정들이 허공에 생성되더니, 그대로 그라우즈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쾅! 콰앙! 쾅! 뾰족한 얼음 파편이 그라우즈의 몸 곳곳에 연달아 박혔다. “크아아아악!” 그라우즈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얼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하얀 냉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곧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마수 : 그라우즈(네임드 보스)] 레벨: 130 [HP: 92% → 81%] ━━━━━━━━━━━━━━━━━━ “...11%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번의 공격으로 무려 11%나 깎였다. “이얏호!” 나도 모르게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에르시와 로제타는 시스템 창을 보고 잠깐 놀란 기색이었으나, 곧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에르시의 마법 폭격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로제타는 그라우즈의 앞을 막고 버텼다. “파이어 볼!” 콰아앙! “아이스 랜스!” 쾅! “라이트닝 볼트!” 파지지직! 불꽃과 얼음, 번개가 연달아 그라우즈의 몸을 강타했다. 로제타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아아앗!” 쾅! 창을 휘둘러 그라우즈의 앞발을 찌르고, 곧바로 방패로 그라우즈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에르시와 로제타의 공격이 이어지던 순간. ━━━━━━━━━━━━━━━━━━[마수 : 그라우즈(네임드 보스)]레벨: 130[HP: 52% → 49%] ━━━━━━━━━━━━━━━━━━ “좋아! 50% 아래로 떨어졌어!” 내가 신나서 외치던 그 순간, ━━━━━━━━━━━━━━━━━━[경고!][마수 그라우즈가 '광폭화' 상태에 돌입합니다.][광폭화] 그라우즈의 공격력과 이동 속도가 200% 상승합니다. ━━━━━━━━━━━━━━━━━━ 그라우즈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로제타를 들이 박았다. 꽈앙! 로제타가 방패를 들어 공격을 받아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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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2화주미와 통화를 끝낸 지희는 한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아, 결국 서울로 가야겠네."남은 휴가가 아직 이틀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쉬울 상황이 아니었다.지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소파 쪽을 바라봤다.독고춘은 여전히 소파에 누운 채 잠들어 있었다."잘도 자네."지희는 작게 중얼거리며 소파 앞으로 다가갔다."꼬춘씨."그녀가 살짝 몸을 흔들어 깨웠으나 대답이 없었다."꼬춘씨, 일어나요."지희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평소엔 일찍 일어나던 사람이 왠일이래."다시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흔들던 순간,덥석.독고춘의 손이 지희의 손목을 붙잡았다."...어?"지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한 힘이 손목을 잡아당겼다."아앗!"푹!지희의 몸이 그대로 소파 위로 넘어졌다.그리고 잠결에 움직인 독고춘의 팔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어머머..."지희의 눈이 동그래졌다.독고춘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누워버린 상태였다.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독고춘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꼬춘씨? 지금 뭐하세요?"지희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이익... 하! 진짜 꼼짝도 못 하겠네. 힘이 얼마나 쎈 거야. 이봐요! 얼른 일어나라고요!"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지희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아니, 하... 이게 무슨 꼴이야."그때,철컥.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짜잔! 지아 등!...장..."지아의 목소리가 뚝 끊기며 지희와 눈이 마주쳤다.지아는 눈을 껌뻑껌뻑 거린 뒤, 소파 위에 엉켜 있는 두 사람을 다시 바라봤다.잠시 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지아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죄송합니다... 아침부터 러브러브 일 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그 말에 지희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아니, 아니야!""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럼 이만 즐거운 시간 되시길.""지아야! 잠깐만!"지희가 황
최신 업데이트: 2026-08-22
Chapter: 81화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주미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헉...!"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주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꿈이었다.분명 꿈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느꼈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하아..."주미는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은정이의 뒷모습과 자신을 휘감던 검은 연기, 그리고 귓가를 맴돌던 목소리까지 모든 장면이 뒤섞여 머릿속을 어지럽혔다.그때였다."주미야."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주미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엄마?""왜 그렇게 놀라? 계속 불러도 일어나지도 않고. 악몽이라도 꿨어?""...아니, 아니야."주미의 어머니 한정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딸을 바라봤다."너,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픈거야?""괜찮아, 엄마. 지금 몇 시지?"주미는 멍한 얼굴로 휴대폰을 확인했다.평소라면 이미 출근 준비를 끝냈어야 할 시간이 지나 있었다."...아, 회사 가야지."주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러나,휘청.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어?"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정희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주미야!"주미는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손끝까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괜찮긴 뭐가 괜찮아!"그녀는 딸의 얼굴을 살피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오늘 회사 가지 마.""엄마, 나 정말 괜찮아.""괜찮기는! 일단 병원부터 가자."주미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결국 주미는 엄마의 부축을 받아 집을 나섰다.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뒤 의사는 크게 걱정할 만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검사 결과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정말 괜찮은 건가요? 애가 쓰러질뻔 했는데.""네. 다만 최근에 피로가 많이 쌓인 것 같습니다. 며칠 푹 쉬면서 수액 치료를 받
최신 업데이트: 2026-08-18
Chapter: 80화호텔로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바닷물에 젖은 발과 옷자락을 정리하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나니, 하루 종일 이어졌던 긴장도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먼저 씻고 나온 지희는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침대에 앉았다.휴대폰을 손에 들었지만 화면에는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았다.평소 같았으면 SNS를 확인하거나 연예 쪽 기사를 확인했을 텐데, 오늘따라 손가락만 괜히 화면 위를 움직였다.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욕실 쪽을 바라봤다.아직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지희는 괜히 입술을 꾹 다물었다.지금까지 독고춘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다.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있었고, 촬영장에도 함께 있었고, 심지어 오늘은 바닷가에서 사람들 앞에 그에게 안겨 호텔 로비까지 들어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이 가장 어색했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은 방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지희는 괜히 침대 위에 놓인 베개를 끌어안았다."...왜 이러지."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순간,철컥.욕실 문이 열리고 독고춘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걸어 나왔다.지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독고춘의 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희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애매해졌다."..."독고춘 역시 지희를 잠시 바라봤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 눈길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잠시 동안 눈이 마주치자 지희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왜 그렇게 쳐다봐요?"독고춘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아직도 그 여자가 신경 쓰이나?""뭐, 그렇긴 한데...아 몰라요, 몰라."지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벌러덩 누웠다.독고춘은 반대편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거리가 평소보다 가깝게 느껴졌다.지희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그러나 이번에도 몇 초 지나지 않아 화면을 껐다.옆에 있는 독
최신 업데이트: 2026-08-17
Chapter: 79화저녁 노을이 바다 위로 천천히 가라앉을 무렵, 호텔 레스토랑 창가. 붉게 물든 석양이 유리창 너머로 잔잔한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지희는 식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후우..."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독고춘이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 "...땅 꺼지겠군." "아, 진짜!" 지희가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그 여자가 신경 쓰이나." "그럼 안 쓰이겠어요?" 지희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사랑이 엄마 친구잖아요. 안색도 너무 안 좋아 보였고..." "...신경 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아오, 진짜." 지희는 결국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꼬춘씨는 걱정도 안돼요? 분명 주미씨가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조만간 다시 만나겠지. 그때까지는 별일 없을거다." "하아, 그럼 일단 안심이네요. --- 레스토랑을 나온 두 사람은 말없이 해변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짙푸른 밤하늘 위에는 별들이 하나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철썩. 철썩. 잔잔한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두 사람의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걷던 지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독고춘이 슬쩍 그녀를 바라봤다. "...또 한숨이군." "안 쉬게 생겼어요?" 지희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원래 휴가 오면 아무 생각 없이 놀아야 되잖아요." "...음." "근데 오늘은 머릿속이 엉망이에요." 지희는 괜히 발끝으로 모래를 툭 걷어찼다. "고은정씨 일도 그렇고... 주미 씨도 계속 신경 쓰이고." "...신경 쓴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했을텐데." "알아요." 지희는 피식 웃었다. "근데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거예요." "..." "꼬춘씨처럼 뭐든 무덤덤하게 살면 얼마나 편할까요." 독고춘은 대답 대신 잔잔한 바다를 바라봤다. 잠시 후,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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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8화우우우웅ㅡ띵.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춰 섰다.문이 열리고 중년 부부와 젊은 커플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서다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음?""...어머."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독고춘과 지희에게 향했다.정확히는 대낮에 멀쩡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여자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든 채 덤덤하게 서 있는 독고춘에게로.그 기묘한 광경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곧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묘하게 어색해졌다.젊은 커플은 쿡쿡거리며 웃음을 흘렸고, 중년 부부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었다.지희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아랫배를 찌르는 고통보다도 몰려오는 민망함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차라리 기절해 버리고 싶었다.반면 독고춘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온해 보였다.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마지막 사람까지 내리고 나서야 지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아아...""...땅 꺼지겠군."독고춘의 말에 지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뭐요?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아니, 하...사람들 보는 데서 이게 뭐냐고 진짜...""...뭐 잘못됐나?"독고춘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지희는 결국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아, 됐어요.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띵.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독고춘은 지희를 안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 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침대에 지희를 조심스럽게 눕혔다.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지희의 아랫배에서 다시금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으읏..."지희가 침대 시트를 꽉 쥐며 허리를 웅크렸다.고통 때문에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오고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독고춘은 말없이 침대 옆에 앉았다.그리고 지희의 아랫배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곧 독고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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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7화"...은정이가...그렇게 가 버릴 줄...정말 몰랐어요..."주미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 흩어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꽉 쥔 두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일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갑작스럽게 걸려왔던 은정이의 전화.그리고 다음 날 들려온 부고.자신이 조금만 빨리 눈치챘더라면.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은정이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주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결국 그녀의 가슴속에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 후회뿐이었다.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희는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독고춘을 바라봤다.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근데."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이어졌다."정말 은정이를 봤다는 거예요?"지희도 순간 독고춘을 바라봤다.주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는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아까 분명히 봤다고 했잖아요.""...""...은정이가 지금 제 옆에 있는 건가요?"바닷바람이 세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독고춘은 잠시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확히는...아닙니다."그 말에 주미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게 무슨 소리죠?""...제가 본 건...그분의 기억입니다.""...기억이라고요?"주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독고춘은 그 말을 끝으로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결국 주미는 어이없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그럼 그렇지..."주미는 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그리고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잠시나마 기대했던 제가 바보였네요."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최신 업데이트: 202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