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7 화

Author: 용용자
심지우는 협의서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주승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변승현 씨에게 전해주세요. 이혼 관련한 나머지 절차는 제 변호사가 연락할 거라고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주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지우 씨, 혹시 현민이도 여기 있나요?”

심지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주승희는 부드러운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며칠째 현민이를 못 봤어요. 혹시 위로 올라가서 아이를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심지우는 주승희가 자신의 작업실에 발을 들이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지만 변현민은 주승희가 낳은 아이였다.

그리고 변승현과 이혼하면 이제 양육자라는 타이틀조차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던 찰나 어린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그들을 덮쳤다.

“엄마!”

심지우가 돌아보니 변현민이 이미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곧장 심지우에게 안겼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를 품에 안으며 익숙하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혼자 내려왔어?”

“영지 누나랑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왔어요. 제가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거 보고서야 다시 간 거예요.”

변현민은 그녀를 꼭 안은 채 볼을 비비며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변현민의 애교에 심지우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두 사람의 따뜻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주승희의 가녀린 몸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그 예쁜 얼굴은 단숨에 새하얘졌다.

“현민아...”

변현민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주승희의 상처 입은 듯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작고 여린 그의 몸이 순간 굳었다.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변현민을 발견한 심지우도 깜짝 놀랐다.

심지우가 아이를 내려놓으려던 순간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승희야.”

고개를 돌리자 변승현이 보였다.

그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주승희의 곁에 서서 외투를 벗어 그녀의 머리 위로 조심스레 덮었다.

그녀를 꼭 안아 보호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고통이 퍼져나가며 심지우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변승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파파라치가 있어.”

그 말에 주승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변승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예쁜 얼굴은 철저히 그의 품에 숨겨졌다.

변승현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카페를 나서다 심지우 옆을 지나치며 단 한 마디를 남겼다.

“현민이는 집에 데려다줘. 조금 있다가 데리러 갈게.”

통보에 가까운 그의 말에 그녀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우는 변현민을 꼭 안은 채 유리창 너머로 그들이 차에 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 순간의 변승현은 정말이지 다정한 신사처럼 보였다.

코트 아래에 숨겨진 주승희는 단 한 가닥의 머리카락조차 드러나지 않은 채 완전히 보호받고 있었다.

마이바흐가 출발했다.

심지우는 고개를 숙여 손에 쥔 이혼 협의서를 바라봤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엄마, 괜찮아요?”

변현민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심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웃어보였다.

“괜찮아.”

변현민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겉보기에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여서 그는 안심했다.

하지만 아까 주승희가 슬퍼하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했다.

그 사실을 떠올린 변현민은 자신 때문에 엄마가 속상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한 심지우는 곧 산부인과 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변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현민아, 엄마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올게. 작업실에 가서 기다릴 수 있지?”

“싫어요.”

변현민은 지금 당장 주승희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심지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엄마, 요새 집에도 안 왔잖아요. 아까 아빠도 엄마보고 나 먼저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잖아요. 혹시 엄마한테 할 얘기라도 있는 거 아닐까요?”

‘중요한 얘기라 해봐야 이혼 얘기일 텐데...’

하지만 어른들 사이의 문제를 아이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엄마, 저랑 먼저 집에 가요.”

변현민이 그녀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네? 저 아빠도 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심지우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엄마가 집에 데려다줄게.”

“야호!”

변현민은 환하게 웃었다.

“엄마 최고예요.”

심지우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진난만한 변현민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깊은숨을 내쉬었다.

5년 간의 결혼생활에서 진심이었던 건 어쩌면 변현민과의 감정일 지도 몰랐다.

그 외의 모든 건 다 거짓이고 허상이었다.

...

30분 뒤, 심지우와 변현민은 남호 팰리스에 도착했지만 변승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변현민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안절부절못했다.

“엄마, 아빠 언제 와요? 전화해서 물어봐 줘요.”

심지우는 변승현이 곧 올 줄 알고 그가 오면 바로 병원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도 변승현은 받지 않았고 세 번 연속으로 걸었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심지우는 답답했지만 변현민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아빠가 바쁜가 봐.”

변현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엄마가 울고 있어서 아빠가 위로하느라 연락을 못 받으시나?’

그렇게 생각하자 변현민은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내가 아까 지우 엄마한테 안기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울 일은 없었을 텐데...’

그의 행동 때문에 엄마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한 변현민은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 분노는 심지우를 향한 원망으로 변했다.

심지우는 그런 변현민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일이 좀 생겨서 오늘 검사는 내일로 미룰게.]

[내일 오전 근무니까 바로 오면 돼.]

[알았어.]

[근데 너 아직도 안 해봤지?]

그 말에 심지우는 무심코 가방을 흘끗 보다 답장을 보냈다.

[지금 할게.]

친구는 곧 폭탄 이모티콘을 보냈다.

심지우는 잘못을 비는 이모티콘으로 응수한 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현민아, 엄마 화장실 좀 다녀올게.”

변현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심지우는 그가 변승현에게 삐졌다고 생각하며 별다른 의심 없이 2층으로 향했다.

2층에서 안방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변현민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베개 밑에 숨겨둔 전화 손목시계를 꺼냈다.

첫 번째 연락처를 찾은 그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이 몇 번 울리고 상대가 받았다.

“현민이?”

전화기 너머로 변승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의 숨소리는 살짝 거칠었다.

변현민은 순간 멈칫했다.

“아빠? 왜 아빠가 받아요? 엄마는요?”

“엄마는 좀 피곤해서 방금 잠들었어. 무슨 일이야?”

그 말에 변현민은 더욱 급해졌다.

“엄마 울었어요?”

변승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아졌어.”

“걱정돼서요. 아빠, 저 집에 있으니까 데리러 와주면 안 돼요? 저 엄마랑 있고 싶어요.”

“알았어. 지금 갈게.”

전화를 끊은 변현민은 활짝 웃었다.

그는 전화 손목시계를 외투 주머니에 숨긴 뒤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변현민은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한편 안방 욕실에서 심지우는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12. 12. AM. 03:55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이별은 나의 시작   1499 화

    심윤영은 큰아들을 안고 코끝을 살짝 톡 건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바보야, 엄마 종일 못 봤는데도 안 울어? 동생 좀 배워야지. 우는 애가 떡 하나 더 받는 거야.”도윤이는 엄마를 닮은 큰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다가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환하게 웃었다.그 모습이 마치 아기 곰돌이 같아 심윤영은 마음이 녹아내릴 듯했다.위준하가 손을 내밀었다.“내가 안을게. 넌 좀 더 먹어.”“저 이제 겨우 5분 안았어요!”심윤영은 아들을 내주지 않았다.“전 다 먹었으니 준하 씨 먹어요.”“나도 다 먹었어.”위준하는 진지하게 말했다.“

  • 이별은 나의 시작   1498 화

    심윤영은 실행력과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다이어트를 결심한 다음 날부터 바로 식단 조절과 요가를 시작했다.위준하는 전 과정에 함께했다.그녀가 다이어트 식단을 먹으면 같이 먹고, 아침 러닝도 같이 뛰었다.요가를 할 때는 아예 커플 요가 강사를 불러 스스로 기꺼이 보조 역할을 했다.한 달 만에 심윤영의 체중은 임신 전으로 돌아갔고, 몸매는 오히려 더 날씬하고 아름다워졌다.위준하는 그녀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예쁜 원피스, 가방, 신발, 액세서리를 전부 사주었다.심윤영은 산후조리를 마친 이후 매일 외출했다.로펌에 가거나 친

  • 이별은 나의 시작   1497 화

    이제 심윤영은 더는 자신의 감정과 의존을 억누르지 않았다.오늘처럼 체중 때문에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위준하가 몇 마디 달래주면 금세 풀어져 애교를 부렸다.두 사람이 함께하며 서로의 성격을 맞춰가고, 결국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지금의 심윤영은 예전처럼 다시 위준하를 믿고 의지하는 상태로 돌아왔지만, 5년 전의 경험 덕분에 이제는 그의 필요도 살필 줄 알게 되었다.그가 자신이 애교 부리고 매달리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더 다가가고 애교를 부렸다.그럴 때마다 억지로 입꼬리를 누르고 있는 위준하의 모습을

  • 이별은 나의 시작   1496 화

    이번 출산으로 심윤영의 몸이 크게 상한 것을 고려해, 위진우는 산후조리 기간을 두 달로 늘렸다.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쌍둥이도 어느덧 조금 크며 통통하게 살이 올라 건강하고 귀여운 모습이 되었다.북성에는 초겨울이 찾아와 찬 공기가 몰려왔지만 심윤영의 외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위준하는 그녀가 두 달 동안 집에만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잘 알고 있었다.가족과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두 달 동안 한 번도 외출하지 못한 것은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이다.그래서 그는 하루 시간을 비워 직접 그녀와 함께 쇼핑도 하

  • 이별은 나의 시작   1495 화

    “엄마는 이해해. 자기 자식이니까 마음 아픈 건 당연하지.”심지우가 따뜻하게 말했다.“하지만 먼저 네 몸부터 회복해야 해. 그래야 아이들을 오래 잘 돌볼 수 있어. 네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엄마 품에서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는 거야.”심윤영이 코를 훌쩍였다.“엄마, 알겠어요... 미안해요. 또 걱정 끼쳐서...”“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심지우가 미소 지었다.“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야. 네가 엄마가 됐어도, 우리한테는 여전히 애야. 언제든 기대도 돼, 알겠지?”심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대화가 끝나자 문

  • 이별은 나의 시작   1494 화

    도우미는 아이를 안고 방을 나갔다.문이 닫힌 뒤에도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그 소리를 듣는 심윤영은 마음도 몸도 괴로웠다.모성애는 본능이었다.출산 3일째, 한 번도 수유하지 못한 그녀는 가슴이 단단히 붓고 통증이 심했다.하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워 그저 눈을 붉히며 위준하를 노려봤다.“준하 씨,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그래, 내가 나쁜 놈이야. 때려도 되고 물어도 돼.”그는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던 그녀는 가슴을 감싸 쥔 채 눈물이 차올랐다.“너무 괴로워요...

  • 이별은 나의 시작   1051 화

    게다가 단순히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되도록이면, 확실한 카드를 하나 더 챙기는 것이 좋았다.온주원은 아직 일이 남은 상태라 보름간의 휴가가 한계였다.송해인은 그런 그를 이해했고 6월 초 두 사람은 비행기표를 예매해 함께 북성으로 돌아갔다....북성 국제공항.오후 3시, 온주원과 송해인이 공항에서 나왔고 심지우가 보낸 운전기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온주원은 운전기사에게 곧장 운귀로 가달라고 했다.운귀로 간다는 말에 송해인은 조금 의외라는 듯 물었다.“주원 씨, 평소엔 안강 별장에서 지내지 않아요?”

  • 이별은 나의 시작   1007 화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함명우는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그날 문태윤이 위민정에게 건넸던 USB 안의 영상은 편집된 것이었고 안에는 위우진이 손을 쓰는 장면만 있을 뿐, 위민정이 피해를 입는 영상이나 사진은 없었다.경찰 조사에서 모든 죄를 자백한 문태윤은 당시 녹화만 했을 뿐이며 그마저도 절반쯤 찍었을 때 돌아온 임다해에게 휴대폰을 빼앗기고 쫓겨났다고 진술했다.그 영상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기에 함명우는 반드시 임다해에게서 그것들을 전부 받아내어 완전히 파괴해야만 했다.십여 분 뒤, 권현기에게서 다시

  • 이별은 나의 시작   1015 화

    함명우는 불현듯 두 눈을 떴다.그러자 눈앞에 드러난 건 하얀 천장이었다.“명우야!”드디어 의식이 돌아온 함명우를 보며 손현희는 눈물을 훔쳤다.“아들, 정신이 좀 들어? 엄마 정말 식겁했어.”그 옆에 선 함기철은 무뚝뚝하고 차갑던 평소와는 다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때, 의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섰고 함명우는 주변을 빙 둘러보고는 본인이 병실에 있음을 알아차렸다.그래서 손현희를 향해 물었다.“엄마, 어떻게 된 일이에요?”“너 이 녀석, 자살 시도는 왜 했어? 일주일 동안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널 보는 내 마음이 어땠겠어

  • 이별은 나의 시작   1034 화

    송해인은 온주원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녀의 직업상 누군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하물며 온주원은 예전부터 고민이 있으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타입이었다.그녀는 붉은 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며 무심하게 일침을 가했다.“온주원 씨, 나한테 사과하고 싶은 거면 그냥 말해요.”온주원은 순간 멍해졌다.“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니까, 진심으로 사과하면 뒤끝 없이 받아줄게요.”온주원은 붙잡았던 손을 놓고 가볍게 헛기침하며 조금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미안해요. 방금은 내가 오해했어요.”때마침 택시 한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