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남우는 영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영은의 품에 안긴 맑음에게 다가갔다.“맑음이 나한테 줘. 애 상태가 왜 이런지 내가 직접 볼 거야.”영은은 맑음을 더 세게 안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억지로 만들던 미소도 점점 굳었다. 이대로 계속 버티다가는 결국 숨긴 일이 드러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더는 물러날 데가 없었다. 영은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다.필요하면 맑음을 앞세워 남우를 막을 생각까지 했다.그때 남우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효찬이었다.남우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효찬의 목소리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큰일 났어! 은희 씨가 미행하던 사람한테 습격당했어. 지금 병원으로 실려 갔고!]그 말을 듣자 남우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분명 은희 곁에 여러 사람을 붙여 두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남우는 영은과 더 이야기할 생각도 못 한 채 문 쪽으로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지금은 다른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은희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남우가 그대로 나가 버릴 줄은 영은도 예상하지 못했다. 꽉 조여 있던 가슴이 조금 풀리며 숨이 나왔다.영은은 졸음에 겨워하는 맑음을 안은 채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힌 뒤 부드럽게 달랬다.“맑음아, 이제 푹 자. 엄마가 옆에 있을게.”조금 전 맑음은 영은이 시킨 대로 얌전히 있었다. 남우에게 다른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아이가 말을 잘 들은 덕분에 은희가 빠져나갈 마지막 기회도 막을 수 있었다.‘고은희, 네 딸이 정말 네 구세주이긴 하네.’‘그런데 지금은 내 말을 훨씬 잘 듣잖아.’‘그러니까 거기서 천천히 무너져 봐.’맑음이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영은은 어린이용 핸드폰을 열어 은희의 결백을 증명할 영상을 삭제했다.이어 기기 초기화까지 진행해 쉽게 원래 자료를 되살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영은은 집 안 보안 영상이 저장되는 관리실로 가서 자기 행동이 드러날
“맑음이한테 어떤 방법이 있는데?”맑음은 주머니에서 어린이용 핸드폰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전에 은희 이모가 곡 만드는 거 봤는데 진짜 멋있었거든. 그래서 몰래 영상 찍어 놨어. 이거 보면 은희 이모가 남의 거 안 베낀 거 증명할 수 있지?”영은은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평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던 아이가 이런 자료를 남겨 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래도 곧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웃음을 만들었다.“우리 맑음이 진짜 똑똑하네! 핸드폰 엄마 줘 봐. 엄마가 이 중요한 영상 은희 이모한테 잘 전해 줄게. 이모도 엄청 좋아할 거야.”맑음은 엄마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핸드폰을 그대로 내밀었다.영은은 핸드폰을 받아 든 뒤에야 속으로 안도했다.이 기기가 절대로 은희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됐다.여기서 끝낼 생각도 없었다. 영은은 이 기회를 이용해 맑음의 건강을 다시 악화시킬 생각이었다.맑음이 아프면 남우의 관심은 딸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은희 문제에 매달릴 여유도 줄어들 것이다.동시에 핸드폰 속 증거까지 없앨 수 있었다. 영은에게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처리할 기회였다.영은은 곧 맑음의 방으로 들어가 서랍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약을 꺼냈다.예전부터 맑음에게 먹일 목적으로 준비한 약이었다. 복용량을 늘리면 아이의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고 영은은 믿고 있었다.영은은 준비한 약을 손본 뒤 맑음이 좋아하는 단맛이 나도록 약에 시럽을 섞었다.맑음에게 약을 먹이려던 바로 그때 남우가 집으로 돌아왔다.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영은은 놀라 약병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남우가 예상보다 빨리 퇴원할 줄은 전혀 몰랐다.더구나 하필 지금 돌아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당황한 영은은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준비한 약을 맑음에게 먹였다.맑음은 약을 삼키자마자 작은 얼굴을 찌푸리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영은은 맑음을 안아 들고 억지로 웃은 뒤 남우에게 말했다.“일찍 퇴원하면서 왜 연락도
하지만 일은 은희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벌어졌다.은희는 경연을 앞두고 악보와 관련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고은희 씨 맞으십니까? 송화 선생님 보좌하는 사람입니다. 송화 선생님이 갑자기 지병이 악화돼서 응급으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래서 내일 경연에는 도저히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지병이 갑자기 악화됐다고?’‘하필 다른 때도 아니고 지금?’누가 봐도 은희를 겨냥한 움직임처럼 느껴졌다.손에 들고 있던 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희는 냉랭하게 되물었다.“참 절묘한 때에 지병이 도졌네요.”비꼬는 뜻이 뚜렷했지만 상대는 반응하지 않고 준비한 듯한 말만 이어 갔다.[저희도 최대한 빨리 송화 선생님의 결백을 밝히고 싶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으셨는데 방금 갑자기 쓰러지셨어요.]‘자기가 문제를 만들었으면서 자기 결백을 밝히겠다고?’은희에게는 경연에서 들킬까 두려워 일부러 만든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더 말싸움할 가치도 없어 대꾸도 하지 않고 금방 전화를 끊었다.곧바로 핸드폰 화면에 알림이 연달아 떴다. 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이 쏟아지고 있었다.[충격! 고은희, 송화를 고의로 자극해 지병 악화? 경연 불참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 확산!][표절 논란도 끝나지 않았는데 또 문제... 경연 피하려 송화까지 쓰러뜨렸나?]악의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이 화면 위로 끊임없이 지나갔다.기사와 게시물에는 송화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는 모습이 흐릿하게 찍힌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댓글 창은 더 심했다. 사람들은 확인되지 않은 말을 따라 하며 은희를 몰아세웠고, 차마 읽기 힘든 비난까지 퍼부었다.은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옆으로 던졌다.“이건 완전히 사실을 뒤집어 놓은 거잖아!”...소식이
“맞습니다. 애초에 이런 사람과 손잡는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본 겁니다!”“회사에 끼친 손해부터 배상하고 나가요. 여기서 우리 시간 더 뺏지 말고요!”“...”주주들은 은희가 어떤 설명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때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며 이섭이 들어왔다.회사에서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긴급회의를 열었다는 말을 듣는 즉시, 주주들이 은희를 몰아세우고 있으리라 짐작했다.“주주 여러분,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하겠습니다. 고 대표님은 절대 표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곡 작업 이후 다른 곡 작업도 제가 계속 함께했습니다. 고 대표님처럼 실력 있는 작곡가는 남의 곡을 베낄 이유가 없습니다.”하지만 실제로 표절이 맞는지 아닌지는 주주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이섭도 그 점은 알고 있었다.“강 대표님, 지금 주주들께서 너무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드러난 정황이 이렇잖아요.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우리도 딱히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결국 이섭이 나선 덕분에 은희는 당장 손해배상까지 해야 하는 상황만은 겨우 피했다.그러나 계약 해지까지는 막지 못했다.주주들은 은희에게 앞으로 일주일 안에 결백을 증명할 자료를 찾아오라고 했다. 찾지 못하면 그때는 계약상 배상 책임도 함께 묻겠다는 조건이었다.원래부터 감정이 불안정했던 은희는 가슴이 꽉 막히는 듯했다.일주일 안에 증거를 찾지 못하면 ‘표절 작곡가’라는 낙인뿐만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배상금까지 떠안게 된다.은희는 곡을 쓸 때 작업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는 습관이 없었다. 이제 와서 당시의 자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디지털 작곡 프로그램보다는 종이 오선지에 직접 써 내려가는 편이라 작성 시각을 확인할 기록도 남지 않았다.현재로서는 표절 의혹을 제기한 상대를 직접 찾는 방법밖에 없었다.하지만 은희가 여러 사람에게 부탁해도 그 사람과는 연락조차 닿을 수 없었다.남우 역시 병원에 누워 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소식을 들은 뒤 인맥을 움직여 은희
며칠 뒤 영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저장되지 않은 발신 번호였다.전화받자 음성을 변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영은 씨, 고은희를 없애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리죠.]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했다.영은의 머릿속에는 곧바로 그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돕겠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누구예요? 왜 저를 도와주겠다는 거죠?”상대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제가 누군지는 신경 쓰지 말아요. 은희가 쓴 악보가 표절이라는 증거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 은희를 표절 작곡가라고 믿게 만들 정도로요.]가만히 있는데 이런 기회가 저절로 손에 굴러들어 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영은은 거의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좋아요. 가능하면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 주세요.”은희는 영은에게 너무나 거슬리는 존재였다. 중요한 순간마다 걸림돌이 되어 결국 영은의 계획을 망쳤다.다만 은희를 싫어하는 사람이 영은 한 명만은 아닌 모양이었다.전화를 끊은 영은은 얼굴에 나타난 만족스러운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가 조작된 증거를 보내왔다. 준비가 치밀해,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은희가 다른 사람의 곡을 베꼈다고 믿기 충분했다.먼저 연락해 온 것부터 이미 상대가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영은은 여러 경로로 은희의 표절을 의심하는 자료를 퍼뜨렸다. 일부 온라인 매체와 계정에는 돈까지 써 가며 기사를 내게 했다.자료가 공개되자 여론은 빠르게 들끓었다.은희의 표절 의혹은 짧은 시간 안에 큰 논란으로 번졌다.강씨 집안이 운영하는 회사 강양그룹도 은희와 협업 관계에 있었고, 그 여파는 곧바로 주가에 반영됐다. 그룹의 주가가 빠르게 떨어졌다.이 정도 상황이면 회사로서는 은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계약을 끊으려 할 가능성이 컸다.강양그룹 쪽 주주들도 더는 가만있지 않았다. 긴급회의를 열어 은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했다.이번
영상에는 은희가 남우의 등을 마사지하고, 쓰러진 남우를 부축해 병원으로 옮기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은희가 이 영상을 남우에게 보내기만 하면 됐다.그러면 영은은 적어도 남우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예전의 은희였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며 기뻐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은희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됐어요. 이제 상관없어요. 어차피 하남우랑 저는 이혼할 거예요. 이런 일까지 일일이 따질 필요 없어요.”은희는 알지 못했다. 남우가 오랫동안 영은에게 빚진 마음을 품고 특별히 대해 온 가장 큰 이유가, 과거 자신을 구한 사람이 영은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수년 전 남우가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영은은 우연히 은희가 남우를 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은희는 남우를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도 계속 곁에서 돌봤다. 은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영은은 남우가 은희에게 준 비취 펜던트를 훔쳤고, 처음에는 비싼 값에 팔 생각이었다.그러다 병상에 누운 남자가 하진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영은에게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그래서 영은은 거짓말을 꾸며 자신이 남우를 구했다고 믿게 속였다.그 뒤로 남우는 줄곧 영은을 남다르게 대했다.정작 은희는 그런 과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상이 남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이섭은 은희가 정말 더는 이 일에 관여할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억지로 설득하지 않았다.“영상은 제가 계속 보관하겠습니다. 필요해지면 언제든 말씀하세요.”이섭은 더 권하지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그날 이후 이섭은 과거 은희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을 추적하던 중, 몇몇 단서가 서서히 강씨 집안 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하지만 아직 은희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더 확실하게 진실을 확인한 뒤 알려 주려 했다.지금은 의심에 불과했다. 섣불리 말해 은희와의 협력 관계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은희가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