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은희는 하루를 조용히 보내며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돌아온 남우는 몹시 지쳐 있었다. 은희가 오늘은 소파에 앉아 있을 뿐, 어제처럼 달려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어제처럼 거짓으로 다정하게 굴지는 않았으니까.하지만 남우가 다가가자 은희가 갑자기 과도를 꺼냈다.“은희야, 위험한 짓 하지 마.” 드물게 당황한 목소리였다. 칼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지만, 은희가 반 발짝 물러나자 그 자리에 멈췄다.은희가 칼날을 목 옆에 댔다. 제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날 내보내 줘.”남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알았어. 보내 줄게.” 양손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니까 먼저 칼 내려놔. 다치지 말고.”“오지 마!” 은희가 소리치며 물러났다. 허리 뒤로 차가운 창틀이 닿았다. “내가 널 믿을 것 같아? 어제는 절대로 못 보내 준다며!”남우의 걸음이 멎었다. 어젯밤 자제력을 잃고 퍼부었던 키스가 떠올랐다. 품 안에서 떨던 은희의 모습도.은희를 다치게 할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남우의 사랑은 감옥처럼 은희를 숨 막히게 했다.“약속할게.” 남우가 주머니에서 안전 가옥 출입 카드를 꺼내 침대 옆 탁자에 올렸다. “언제든 나가도 돼.”은희가 카드를 응시했다.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다가 실수로 칼날이 살을 그었다. 작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남우가 곧장 달려들었다. 은희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쿵!소리가 들렸다.남우가 손바닥으로 칼날을 눌렀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미쳤어!” 은희가 손을 빼려 했지만 남우가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손 놔!”“못 놔.” 목소리에 울음이 묻었다. “가겠다면 같이 갈게. 그러니까 먼저 네 상처부터 보자.”은희가 눈을 떴다. 손바닥에서 흐른 피가 남우의 셔츠 소맷단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우는 아프지도 않은 사람처럼 은희의 목에 맺힌 피를 닦는 데만 집중했다.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넘어져 다쳤을 때 아
남우가 은희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눌렀다.귓불에 닿는 숨이 뜨거웠다. 억누른 목소리가 흘렀다. “내가 너무 봐줬나 보네.”은희는 남우의 눈에서 일렁이는 어두운 기색을 올려다보다 불쑥 웃었다. 다 놓아 버린 처절함이기도, 마지막 승부를 걸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그래. 네 안면 인식 정보를 훔치려고 했어. 어차피 처음부터 알았잖아. 안 그래?”남우의 동공이 좁아졌다. 은희가 거리낌없이 인정하자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졌다.“몰랐어. 네 행동이 진심인 줄 알았어.”은희가 멈칫했다. ‘아까 행동을 진심이라고 믿었다니.’‘이렇게 뻔한 연기인데도 진짜라고 생각했다니.’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남우가 몸을 틀어 은희를 다시 매트리스 깊숙이 눌렀다.잠옷 단추가 튕기는 소리에 거친 숨이 뒤섞였다. 남우의 손가락이 허리 옆에서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맨살에 닿기 직전 주먹으로 말려 들어갔다.“여기가 아파.” 남우가 고개를 숙여 은희의 입술 끝을 물었다. 이 사이로 쇠 맛이 배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가슴이 아팠다. 은희가 남긴 상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숨조차 쉬기 어렵게 했다.“아프면 놔.” 은희가 고개를 돌렸다. 남우는 턱을 잡아 억지로 되돌렸다.놓으라고... 남우에게는 없는 말이었다. 특히 은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을 수 없었다.“못 놔. 아파 죽어도 내 곁에 둘 거야.”벌을 주듯 거친 키스이었다. 이가 부딪혀 은희의 입술이 터졌다. 그러나 피 맛이 번지자 남우의 키스가 갑자기 부드럽고 길게 이어졌다.은희의 끊기는 울음이 들렸다. 남우가 눌러 삼킨 신음도 그사이에 섞였다.“왜 속였어?” 남우가 젖은 눈가를 쓸었다. “왜 날 믿어 주지 않아?”묻고 있었지만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할까?”남우가 은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몸이 저절로 떨렸다. “왜 나가고 싶은 거야?”‘왜 나가고 싶냐고?’은희가 속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새장에 갇힌 새가 되
“뚫을 수 있어요? 3년 전 사건 기록을 찾아야 해요.”미셸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일단 끊어요. 문자로 이야기해요.]통화를 마치자 미셸이 건물의 3차원 투시도를 보내왔다. 움직이는 붉은 점 열일곱 개가 복도를 순찰하고 있었다. 따로 멈춰 있는 푸른 점 두 개에는 저격 위치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이들은 새벽 3시에 교대해요.] 데이터 전송 진행 표시와 함께 미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출구가 전부 안면 인식이에요. 먼저 하남우 사진을 확보해야 해요.]은희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남우는 오늘 밤 돌아올 예정이었다. 욕실에 혼자 선 은희가 찬물을 틀어 두 손에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물방울이 목을 타고 옷깃 안으로 흘렀다. 차가움에 몸이 떨렸다.“경계를 풀게 해야 해.”은희는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입가의 굳은 기색이 없어질 때까지 반복했다.잠옷 단추 두 개를 풀었다가 너무 티가 나는 것 같아 그만뒀다. 결국 머리카락만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흩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남우가 돌아왔다.“아직 안 잤어?” 목소리는 피곤하고 잠겨 있었다.“너 기다렸어.”제 목소리가 부드럽게 나오는 게 들렸다. “상처는 아직 아파?”남우가 확연히 놀랐다. 코트를 벗던 손이 멈췄다. 이전과 전혀 다른 태도였다. 뜻밖의 다정함에 남우도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었다.“괜찮아.” 한잔 마시려는 듯 술장으로 갔다. “갑자기 왜...”“생각을 정리했어.” 은희가 맨발로 카펫을 밟으며 다가갔다. 차가운 손가락이 잔을 쥔 남우의 손등에 닿았다. “네 말이 맞아. 밖은 너무 위험해.”얼굴을 들자 조명 아래서 속눈썹이 떨렸다. “너에게까지 내 문제에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남우가 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으로 은희의 눈 밑에 옅게 드리운 다크서클을 쓸었다.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묻는 말이 아니었다. 은희는 그대로 남우의 품에 기대었다. 뺨에 가슴 쪽 셔츠 단추의 서늘함이 닿았다
“네가 무슨 권리로?”은희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뚫을 듯 파고들었다. “이런 번듯한 새장에 가두면 파이어헌트가 우리 가족한테 한 짓이 없어지기라도 해?”문 앞으로 달려가 주먹으로 철문을 두드렸다. “3년 전 감시 영상 기록을 찾아야 해. 파이어헌트가 학살에 가담한 증거를 찾을 거라고!”은희에게 등을 돌린 남우가 문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금속이 휠 듯한 힘이었다.“안 돼.”쉰 목소리였다. “‘가짜 강은유’ 쪽 사람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어. 여기서 반 발짝만 나가도 넌 표적이 돼.”“그래서 날 네 장기 말로 쓰겠다는 거야?” 은희가 차게 웃었다. “속여서 믿게 하고, 이제는 보호한다는 핑계로 가둬? 하남우, 넌 노레드랑 다를 게 없어!”그 말이 정확히 남우의 가슴을 찔렀다. 거칠게 몸을 돌리자 뒤에 있던 꽃병이 부딪혀 크게 흔들렸다.붉어진 은희의 눈가가 보였다. 의료 캡슐에서 피가 밴 붕대를 갈아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은희는 저렇게 조금씩 떨었다.“난 널 속이지 않았어.”남우가 가까이 다가갔다. 둘 사이에는 주먹 하나 들어갈 거리만 남았다. “파이어헌트 일은 내가 알아볼게. 대신 넌 여기 있어.”은희가 고개를 들어 남우를 보았다.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져 있었다.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보낸 사람 같았다.“나도 조사하게 해 줘.”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파이어헌트 암호화 문서를 해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그만해!”남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상처받은 은희의 표정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도저히 이곳에 두고 갈 수 없을 것 같았다.“사흘 뒤에 데리러 올게.”“그동안 누구한테도 연락하려고 하지 마. 창가 쪽으로도 가지 말고. 또...”말을 멈춘 남우가 목울대를 삼켰다. “날 미워하지 마.”하지만 곧 한숨을 쉬었다. 미워해도 상관없었다.쾅!은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은희는 창가로 달려가 남우의 검은 차가 빗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거짓
은희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는 남우의 숨이 거칠었다.“미워해도 돼. 무서워해도 상관없어.” 한마디 한마디를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하지만 내 곁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은희의 입술이 붉게 부어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남우를 보았다. “너 미쳤어.”“그래, 미쳤어.” 남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널 만난 날부터.”은희는 소리 없이 울었다. 남우의 키스가 싫은 게 아니었다. 은희는 남우를 좋아했다. 그래서 가슴이 더 견딜 수 없이 아팠다.“진실은 내가 밝혀낼게.” 남우가 은희를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동안 넌 아무 데도 가지 마.”실제로 은희는 어디에도 갈 생각이 없었다. 레이븐에 남아 있을 작정이었다.은희가 입술을 닦으며 냉소했다. “네가 무슨 권리로 내 자유를 막아?”“지금 널 죽이려는 사람이 있으니까.” 남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가짜 강은유’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겠어? 네가 무너지길 바라는 거야. 그 틈에 손을 쓰려고.”그 말을 듣자 은희도 조금 진정됐다. 맞았다. ‘가짜 강은유’의 갑작스러운 친절은 수상했다.“네 보호는 필요 없어.” 은희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내 몸은 내가 지켜.”제 가족을 모두 해쳤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제 와서 보호하겠다니. 은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남우가 짧게 헛웃음을 흘리더니 젖은 셔츠를 벌렸다. 은희가 숨을 들이켰다. 단단한 상체가 흉터로 가득했다. 가장 최근에 생긴 자상은 아직 다 아물지도 않았다.“이거 보여?” 남우가 흉터를 가리켰다. “지난 한 달 동안, 널 위해서 이 모든 고통을 감수했어. 그런 내가 어떻게 널 해쳐.”은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랬다. 남우는 은희를 위해 레이븐의 최종 훈련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혼재된 상태였다.그건 지금의 남우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는 증거일 뿐이었다. 과거에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이제...” 남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네 발로 따라올래
마음을 정한 남우는 은희를 찾아가 설명하려 했다.하지만 은희의 문 앞에 선 지 벌써 여섯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자주 문을 두드렸으나 은희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방해가 될까 봐 한참씩 기다렸다가 한 번 두드렸다. 그래도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은희야.” 목소리가 심하게 쉬어 있었다. “나에게 설명할 기회는 줘.”문 안은 죽은 듯 고요했다.남우가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빗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듣고 있는 거 다 알아.” 차가운 문에 이마를 댔다. “맹세할게. 파이어헌트가 정말 네 가족을 해쳤다면, 내 손으로 조직을 없애 버리겠어.”안에서 작은 흐느낌이 들렸다. 곧이어 컵 깨지는 소리가 났다.남우의 가슴이 아팠다. 주먹을 꽉 쥐었다. “사흘만 줘. 기억을 전부 되찾을게. 내 잘못이라면...”목에 무언가 걸린 듯했다. “평생 너에게 속죄할게.”문이 갑자기 조금 열렸다. 은희의 눈은 붉게 부어 있었고, 입술에는 스스로 깨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속죄?” 은희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 우리 부모님이 살아 돌아와?”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남우가 은희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 은희는 거칠게 몸을 피했다. 그 행동이 남우의 가슴을 찔렀다. 남우는 그대로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갔다.“뭐 하는 거야!” 은희가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가!”남우가 등 뒤로 문을 잠갔다. 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표범처럼 은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날 봐.” 한 걸음씩 다가갔다. “내가 널 해칠 거라고 정말 믿어? 같이 보낸 시간도, 널 향한 내 마음도 전부 가짜였다고 생각해?”은희는 소파 끝까지 밀려났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가슴이 거칠게 들썩였다. 남우를 보고 싶지 않았다.“모르겠어.” 은희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정말 파이어헌트 수장이면, 나한테 접근한 것도 그저...”“그저 뭐?” 남우가 손목을 낚아채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