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7년을 사랑했고, 5년을 약혼녀로 기다렸다. 하지만 한여원과 백시헌 사이에는 언제나 세 사람이 있었다. 여원과 시헌, 그리고 오세린. 다섯 번이나 미뤄진 결혼. 마침내 날짜가 잡혔지만 웨딩홀도, 드레스도, 신혼집도 모두 세린이 골랐다. 여원이 상처받을 때마다 시헌은 말했다. “세린이는 가족 같은 애야. 네가 이해해.” 그녀가 울면 시헌은 세린을 달랬고, 여원이 떠나려 하면 철없는 투정이라며 웃어넘겼다. 결국 여원은 7년의 사랑을 끝냈다. “백시헌, 우리 헤어져.” 그는 비웃었다. 그녀가 자신 없이 살 수 없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여원이 정말 떠난 순간, 다정했던 남자는 미쳐 버렸다. “내가 널 놓아준다고 한 적 있어?” 그제야 여원은 알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Ver mais“오빠, 뒤에 지퍼 좀 올려 줘. 혼자서는 손이 안 닿아.”
한여원은 신부 대기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반쯤 열린 문 너머로 하얀 웨딩드레스가 보였다. 거울 앞에 선 오세린은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넘긴 채 등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뒤에 선 백시헌은 드레스 지퍼를 올리느라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가만있어. 자꾸 움직이니까 안 올라가잖아.”
“오빠 손이 차가워서 그렇지. 아, 간지러워.”
세린이 웃으며 몸을 비틀자 시헌은 그녀의 허리를 조금 더 단단히 붙잡았다. 지퍼를 끝까지 올린 뒤에도 손을 바로 떼지 않고, 어깨에 걸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됐어. 이제 돌아봐.”
세린이 거울 앞에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풍성한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었고, 허리선을 따라 박힌 작은 진주들이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다.
여원은 그 진주들을 알아봤다.
지난달 드레스 숍에서 자신이 직접 골랐던 웨딩드레스였다. 수십 벌을 입어 본 끝에 선택한 옷이었고, 시헌에게 사진을 보냈을 때도 그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시헌은 세린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오빠, 나 어때?”
세린이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예쁘네. 잘 어울려.”
“정말?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 좋다.”
시헌은 세린의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웃었다.
“넌 원래 이런 거 잘 어울리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원의 손에서 서류 봉투가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봉투에서 계약서 몇 장이 빠져나오자, 그제야 두 사람이 문 쪽을 돌아봤다.
“여원아? 언제 왔어?”
시헌의 목소리에는 반가움보다 뜻밖이라는 기색이 먼저 묻어났다.
세린은 거울에 비친 여원을 발견하자 환하게 웃었다.
“언니! 나 이 드레스 어때? 너무 예쁘지 않아?”
여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시헌의 손이 여전히 세린의 허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시헌아, 손 좀 떼.”
시헌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그제야 세린의 허리에서 손을 거두었다.
“드레스 지퍼 올려 준 건데 왜?”
“직원분들도 계시잖아.”
“다들 바빠서 내가 도와준 거야. 그게 뭐가 문제야?”
여원은 두 사람 뒤에 놓인 이동식 옷걸이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직원이 입혀 주다 만 듯한 드레스 커버와 장갑이 걸려 있었다.
“내가 입기로 한 드레스를 세린이가 입고 있는 것도 문제고, 네가 직접 지퍼를 올려 주는 것도 문제야.”
세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언니, 미안해. 내가 너무 예뻐서 한 번 입어 보고 싶다고 했어. 오빠는 그냥 도와준 거야.”
그녀는 드레스의 허리 부분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화낼 줄 알았으면 안 입었을 텐데.”
시헌이 곧바로 세린의 어깨를 감쌌다.
“네가 왜 미안해해. 한 번 입어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여원은 시헌을 바라봤다.
“그 드레스는 내가 결혼식 날 처음 입으려고 했던 거야.”
“그래서 지금 못 입게 됐어?”
“시헌아.”
“여원아,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세린이가 일부러 널 기분 나쁘게 하려고 입은 것도 아니잖아.”
세린은 고개를 숙인 채 드레스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시헌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다가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세린은 기다렸다는 듯 눈물을 글썽였다.
“오빠, 나 때문에 두 사람 싸우지 마.”
“안 싸워.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시헌은 엄지손가락으로 세린의 눈가를 쓸어 주었다.
여원은 그 손길을 바라보며 가방 끈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시헌 앞에서 울었던 날들이 떠올랐지만, 그가 저렇게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 준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울지 말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울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으니 감정을 추스르라는 말을.
“세린아, 드레스 갈아입어 줘.”
여원이 말했다.
세린은 시헌의 셔츠를 붙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바로 갈아입을게.”
그러나 시헌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여원을 향해 돌아섰다.
“사과부터 해.”
여원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
“세린이 민망하게 만들었잖아. 직원들까지 다 보고 있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 했어?”
여원은 텅 빈 웃음을 흘렸다.
“내 드레스를 입은 사람한테 벗어 달라고 한 게 사과할 일이야?”
“말투가 문제라는 거야. 너는 왜 항상 세린이 앞에서만 그렇게 날이 서?”
그는 세린의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일곱 해 만난 사이를 이런 걸로 끝내겠다는 거야?”“이런 일들이 일곱 해 동안 쌓였어.”시헌은 한동안 여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너 지금 나 겁주려고 이러는 거지?”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내가 세린이랑 연락 끊고 네 비위 맞춰 주길 바라는 거잖아.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것 같아?”그는 반지 상자를 손끝으로 밀어 여원 쪽으로 돌려놓았다.“반지 다시 껴. 유치하게 굴지 말고.”여원은 상자를 집지 않았다.시헌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한여원.”그가 낮게 이름을 불렀다.“내가 지금 좋게 말할 때 그만해.”여원은 그의 눈을 바라봤다.“나도 좋게 말하고 있어.”“너 지금 나한테 이별 통보하는 거야?”“응.”시헌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허락할 것 같아?”여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별하는 데 네 허락이 필요해?”그 말에 시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그는 식탁 위 반지 상자를 집어 들더니 여원의 손을 붙잡았다.“손 줘.”여원은 손을 빼려 했지만 시헌이 놓아주지 않았다.“반지 끼라고.”“놓아.”“네가 지금 감정적으로 이러는 거잖아. 며칠 지나면 후회할 일 만들지 마.”시헌은 반지를 꺼내 여원의 손가락에 끼우려 했다. 여원이 손을 움켜쥐자 그는 더 세게 붙잡았고, 그 순간 그녀의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아프니까 놓으라고.”그제야 시헌의 손이 멈췄다.여원은 손을 빼내 반지를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끝내자, 시헌아.”그녀는 떨리는 손을 식탁 아래로 내렸다.“나는 이제 네 약혼녀로 살고 싶지 않아.”시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원을 바라봤다.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에는 오세린의 이름이 떠 있었다.시헌은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여원은 그 손을 바라봤다.이별을 통보받은 순간에도 그는 세린의 전화를 먼저 확인하고 있었다.“받아.”여원이 말했다.시헌이 고개를 들었다.“뭐?”“세린이 전화잖아. 받아야지.”시헌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다시
여원은 그를 바라봤다.“지금 나한테 나가라고 했어?”“싸울 거면 나가라는 거야.”그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이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분위기 망치지 말고.”여원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봤다.집 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헌은 자신에게 나가라고 말했다.세린은 익숙하게 주방 서랍을 열어 칼을 꺼냈다. 어느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손놀림이었다.“오빠, 양파는 내가 썰게.”“손 다치니까 내가 해.”시헌은 세린의 손에서 칼을 받아 들고 그녀를 자기 옆으로 물렸다. 세린은 그의 팔에 몸을 기댄 채 냉장고 안을 들여다봤다.여원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둘이 참 잘 어울린다.”시헌이 고개를 들었다.“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그냥 보이는 대로 말한 거야.”세린은 황급히 시헌에게서 떨어졌다.“언니, 그런 뜻 아니야. 우리는 그냥…….”“알아.”여원은 세린의 말을 끊었다.“가족 같은 사이라는 거.”그 말을 들은 시헌은 오히려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면서 왜 그래?”여원은 더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집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현관으로 향했다.시헌은 붙잡지 않았다.“문 잘 닫고 가.”그 말이 마지막이었다.***여원은 그날 밤 약혼반지를 빼 보았다.오랫동안 끼고 있던 반지라 손가락에 희미한 자국이 남았다. 그녀는 반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보다가 작은 상자에 넣었다.일곱 해의 연애와 다섯 해의 약혼이 반지 하나로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었고, 그동안 포기한 것도 많았다.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시헌이 세린에게서 손을 떼기를 기다려야 할까.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주기를 기다려야 할까.아니면 신혼집에 자신의 실내화 하나 놓일 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려야 할까.여원은 반지 상자를 닫았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시헌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저녁 일곱 시. 우리 집으로 와. 꼭 할 말이
“나를 혼자 두고 간 게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세린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시헌의 표정이 굳었다.“너 정말 변했다.”그는 여원의 어깨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보다가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케이크 상자를 발견했다. 반쯤 먹다 남은 케이크 옆에는 짧게 타다 꺼진 초가 있었다.잠시 그의 시선이 멈췄다.그러나 시헌은 케이크에 대해 묻지 않았다.“세린이한테 오늘 중으로 사과해. 그럼 나도 어제 일은 더 얘기 안 할게.”여원은 그를 바라봤다.“네가 내 생일을 망쳐 놓고, 나더러 세린이한테 사과하라고?”“망쳤다는 말 좀 그만해.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시헌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네가 이렇게 나오면 결혼하고도 힘들어. 내 주변 사람들까지 다 네 눈치 보게 할 거야?”여원은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오늘은 가 줘.”시헌이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나 쫓아내는 거야?”“응. 나 혼자 있고 싶어.”그는 여원이 문을 열어 주자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세린이한테 사과하기 전까지는 나도 연락 안 해.”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시헌은 그녀가 붙잡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문턱 앞에서 잠시 기다렸지만, 여원이 고개를 들지 않자 거칠게 몸을 돌렸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여원은 식탁으로 돌아가 케이크 상자를 덮었다.***사흘 뒤, 여원은 신혼집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출입카드는 여전히 세린에게 있었지만, 시헌에게서 받은 공동 계약 관련 서류가 있었기에 관리사무소에 방문 절차를 문의할 수 있었다. 필요한 확인을 마친 뒤 안내받은 방법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여원은 현관에서부터 낯선 향기를 맡았다.달콤한 꽃향기가 거실 전체에 퍼져 있었다.현관 신발장에는 분홍색 실내화가 놓여 있었고, 거실 소파에는 세린이 평소 가지고 다니던 담요와 비슷한 연보라색 담요가 접혀 있었다.여원은 거실 한가운데 멈춰 섰다.자신이 고른 아이보리색 커튼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짙은 회색 커튼이 달려 있었고
“무슨 일인데?”“세린이가 지금 상태가 안 좋아.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가는 중이야.”여원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세린이 정말 아픈 것이라면 병원에 가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시헌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다급함이 가득하면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취소하는 데 대한 미안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어느 병원이야? 나도 갈게.”“오지 마. 세린이가 너 보면 더 불안해할 것 같아.”그때 전화기 너머로 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 나 때문에 언니 생일 망치면 어떡해…….”시헌은 곧바로 목소리를 낮췄다.“그런 생각 하지 마. 지금은 네 몸이 먼저야.”여원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시헌아, 오늘 내 생일이야.”“알아. 그런데 생일은 내년에도 있잖아. 지금 세린이가 이렇게 힘든데 네 생일만 챙길 수는 없잖아.”그 말에 여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시헌은 그녀의 침묵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나중에 연락할게.”통화가 끊겼다.여원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레스토랑 유리창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쳤고, 맞은편에는 시헌을 위해 비워 둔 의자가 놓여 있었다.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손님, 동행분은 조금 더 기다리실까요?”여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주문할게요.”그녀는 두 사람이 함께 먹으려고 골라 두었던 코스 대신 가장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을 때는 이미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그대로 자리를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생일 저녁을 또다시 혼자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시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세린이 진정됐어. 이제 괜찮아.]여원은 그 문장을 읽고 답장을 쓰지 않았다.잠시 뒤 세린의 SNS 알림이 떴다.병원 침대 위에 놓인 손 두 개가 찍힌 사진이었다. 한 손에는 수액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고, 그 위로 시헌의 손이 포개져 있었다.사진 아래에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오늘도 오빠가 옆에 있어 줬다.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사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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