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지안의 시점.역시 몇 번을 찾아봐도 정우진이 말한 살롱 드 오키드의 이면은 나오지 않았다. 겉으로 내세운 듣기 좋은 이야기만 인터넷에 올라와 있을 뿐이었다.'뭐, 당연하겠지…….'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서지혜와 접촉할지. 그리고 어떻게 정하린을 궁지로 몰아갈지.핵심 키워드는 '살롱 드 오키드'일 것이다.아직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서지혜는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롱 드 오키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는 건 분명 떳떳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우리의 가정이 사실이라는 것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떻게 서지혜의 현재 상황을 알아낼까……."지안."이름을 불러 돌아보니 정우진이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자, 마셔. 얼굴이 너무 심각한데."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우진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서지혜 건은 일단 나한테 맡겨 줄래?"그 말을 듣고 나는 정우진을 바라봤다."방법이 있어요?"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뭐, 그렇지. 아무래도 난 이 씨 가문의 장남이니까. 형식상으로는."그 말에 나는 웃었다."그러고 보니 그랬지."내가 말하자 정우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이 씨 가문과 거의 인연을 끊은 상태지만, 그건 박은영 씨가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서야."그 말을 듣고 나는 이우재 집안 사정에 내가 깊이 관여해도 되는 건지 망설였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정우진이 말했다."말해 줄까. 나랑 이 씨 가문의 관계."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정우진은 호텔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난 이우재의 아들이야. 하지만 이우재의 지금 아내인 박은영 씨의 아들은 아니야."그 말을 듣자 곧바로 이해가 됐다."그럼 아저씨는 지금의 아내인 박은영 씨와 결혼하기 전에 전처가 있었다는 거네요?"내가 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날 낳아
강현우의 시점.그날 오후, 내게 데이터가 도착했다. 순서대로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최준수가 약품 보관실에 들어온다. 라인프로스를 두 회분 꺼내 들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약품 보관실 밖에서 기다리던 정하린에게 그것을 건네고, 두 사람은 가볍게 서로를 끌어안는다. 여기까지는 전에 봤던 영상이다. 최준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약사들이 근무하는 약제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정하린이었다. 정하린은 라인프로스를 자신의 가방에 넣고, 주위를 살피며 걷더니…… 그대로 병원 입구까지 갔다. '내가 너무 깊이 생각했던 건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정하린은 병원 입구를 나가더니 몸을 휙 돌려 병원 뒤편으로 향했다. 감시 카메라가 그녀를 간신히 포착할 수 있는 경계선까지. 그곳에서 정하린은 누군가와 접선했다. '누구지……?' 정하린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 인물에게 건넸다. 나는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대했다. 푹 눌러쓴 모자,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 그 인물은 정하린에게 받은 물건을 종이봉투에 넣었다. 종이봉투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살롱 드 오키드] 조급해진 나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했지만, 우선 정하린이 건넨 것이 라인프로스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확대된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라인프로스는 알약이다. 은색 블리스터 팩에 들어 있으며, 눈에 띄는 보라색 줄이 들어가 있다. 확대된 영상 속에서 그 보라색 줄이 분명하게 확인됐다.이로써 정하린이 성 카트리나에서 낙태약인 라인프로스를 반출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그렇다면…… 이 사람은 누구지……?'다시 그 인물을 확대했다. 푹 눌러쓴 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단서는 종이봉투뿐이었다.[살롱 드 오키드]나는 그 단어를 PC에 입력해 검색했다."에스테숍……?"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예전에 어떤 파티에서 남자들끼리 나눴던 이야기…….◇◇◇"살롱 드 오키드
강현우의 시점.병원 보안 관리동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책임자가 나와 응대해 주었다."강현우 선생님, 이번에는 무슨 일이십니까?"그가 묻자 왠지 이 사람마저 공범처럼 느껴졌다. 손에 들고 있던 메모를 건네며 말했다."이 날짜와 시간에 약품 창고 앞에 찍힌 인물의 이후 동선을 추적해 주세요."그렇게 말하자 책임자는 메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나는 그 자리에서 책임자에게 물었다."다른 사람이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고 싶다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까?"그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 대답을 듣고 나는 잠시 안도했다."그렇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하면 바로 알려 주세요."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금방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내가 묻자 책임자가 미소를 지었다."네.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오후쯤이면 데이터를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나는 맞은편에 서 있는 책임자와 악수를 나눴다."부탁드립니다."◇◇◇한지안의 시점.정하린이 이 씨 가문에 들어가, 그 가문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가주인 이우재가 직접 말하는 것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정하린 역시 처음부터 이 씨 가문을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씨 가문에 들어간 편이 정하린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더 올라갔을 테니까....우리 집의 가정부 딸이라는 위치는 강현우나 이서준의 눈에는 나처럼 대등한 존재보다도 '연약해서 지켜줘야 하는 존재'로 비쳤을 것이고, 그만큼 가치가 컸을 것이다. 정하린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했고, 실제로 나라는 존재를 제거했다.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 눈에는 가정부 딸이라는 신분은 상당히 불리했다. 보호받는다는 무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그 효력이 발휘되지 않으니까.'그래서 정하린은 내가 강현우와 결혼한 시점에 이서준과 결혼한 거구나....'
한지안의 시점.서지혜가 정하린을 전담하고 있다....이걸로 두 사람은 연결되었다.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직접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하지만 저 정하린이 누군가의 아래에 들어가는 일만큼은 절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정도로 그녀의 오만함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으니까.5년 전 나를 향했던 악의. 그 악의의 농도는 엄청났다. 내가 직접 그 악의를 온몸으로 받아냈기에,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악의에 물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현우 역시 나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쏟아냈다.무슨 말이었더라.... 패배자인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두 사람은 사이가 좋나요?"정우진이 묻자 이우재가 잠시 생각하는 듯 말했다."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사용인과 고용주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그렇게 말하며 이우재가 웃었다."가끔은 둘 사이에 뭔가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특별한 관계...."언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데요?"정우진이 재차 묻자 이우재가 팔짱을 꼈다."알다시피 우리 집은 현우의 집이나 지안이네처럼 많은 사용인을 두고 있지는 않아. 지안이와 현우가 헤어졌을 당시에도 하린이에게는 전담 사용인이 따로 있었어. 하린이가 원해서 말이지. 그런데도 하린이는 현우 쪽에서 서지혜를 데려와 우리 집에서 고용하겠다고 했어."이우재가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인력은 충분했어. 우리 집은 강 씨 가문이나 지안이네처럼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거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람이 충분한데도 추가로 고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하지만 서지혜만큼은 예외였지."그러더니 이우재가 목소리를 낮췄다."게다가 서지혜를 고용하는 일은 집사람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어."이우재의 아내 박은영. 그녀 역시 이서준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를 비난했던 사람 중 하
한지안의 시점.서지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지금 이 씨 가문에 있었다.나와 강현우가 이혼했던 5년 전 그날. 서지혜는 강현우의 집에서 이 씨 가문으로 옮겨 갔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우진아, 잘 지냈나."눈앞에는 이 씨 가문의 현 가주인 이우재가 있었다. 장소는 호텔 라운지. 정우진이 이우재를 불러낸 것이었다."죄송해요, 아버지. 이렇게 불러내서."정우진이 그렇게 말하자 이우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네가 이 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내 책임이 있으니까."정우진은 이우재에게 연락해 아침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나는 정우진을 따라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다."지안이도 오랜만이구나."나도 당연히 이우재를 만난 적이 있었다."오랜만에 뵈어요. 아저씨."마지막으로 만난 게 몇 년 전이었을까. 나는 이서준의 담당 의사로서 그의 죽음을 마주한 뒤, 이우재의 집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 이후 처음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였을 때 나를 탓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당시 이서준과 결혼해 있던 정하린과, 이우재의 아내이자 이서준의 어머니인 박은영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앞의 이우재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그래서 둘이 함께 나를 부른 걸 보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이우재가 묻자 나와 정우진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네.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정우진이 말했다."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침을 먹으면서 셋이 이야기하자."◇◇◇호텔 레스토랑, 분리된 공간에서 셋이 이야기를 나눴다."그래서 뭘 묻고 싶은 거지?"이우재가 물었다."아버지는 서지혜를 아십니까?"정우진이 물었다."아, 서지혜... 알고 있지."그 대답을 듣고 나와 정우진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예상대로였다."서지혜가 왜?"그가 묻자 내가 말했다."서지혜는 예전에 저와 강현우가 결혼해 있을 때, 저희 부부가 살던 아파트를 드나들던 사용인이
한지안의 시점.내가 떠올린 것은 서지혜가 나에게 유난히 차갑게 대했다는 사실이었다.그 당시 나는 강현우와 결혼한 뒤에도 응급의학과 의사로 계속 일하고 있었다. 이서준의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나와 강현우는 둘이서 아파트에 살았고, 서로 근무 시간이 다르면 자연스럽게 엇갈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건 우리가 의사가 되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고 있던 일이었다.그래도 결혼하면 여자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나는 사랑스럽지 않은 여자처럼 비쳤을 것이다. 그리고 서지혜 역시 그런 부류의 여자였다. 그 당시에는 너무 바빠 흘려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꽤 심한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강 씨 가문에 시집오셨는데, 굳이 일까지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그 말을 서지혜에게 직접 들은 적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나를 배려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깔보는 말이었다면?이서준이 죽은 뒤 나는 일을 그만두고, 강현우가 돌아올 집을 지키기로 했다. 그런 와중에도 서지혜는 변함없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드나들며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다.그리고."서지혜는 항상 정하린을 마치 한 씨 가문의 아가씨처럼 대했어."나는 그 사실을 떠올렸다.그래. 그랬다.그리고 서지혜는 처음부터 나와 강현우가 결혼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정하린과 서지혜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설령 서지혜가 이 일에 관련되어 있었다고 해도, 결국 지안에게 낙태약을 먹이는 실행 역할 정도였겠지."정우진이 말했다."그렇겠죠. 정하린이 직접 손을 더럽힐 만큼 바보일 리는 없으니까."그래.나와 강현우가 살던 그 아파트를 드나들던 하인은 서지혜뿐이었다. 그리고 정하린과 마찬가지로 강현우 역시 직접 나에게 손을 댈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을 것이다.둘 중 한 사람일까. 아니면 공범일까.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