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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Author: 락희
온채아는 잠이 쏟아져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 대충 샤워를 한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유준이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두어 걸음 내디딘 온채아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클랙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뒤돌아보니 뒷좌석 창문 너머로 성유준의 화가 가득한 냉랭한 얼굴이 보였다.

오똑한 콧날과 깊게 파인 싸늘한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괴리감을 주었다.

온채아는 술기운이 조금 가신 듯했다.

“대표님, 저한테 볼일 있으세요?”

목에 두른 짙은 붉은색 머플러는 살짝 아래로 늘어져 가녀린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희미하게 비친 가로등 불빛은 맑고 투명한 온채아의 얼굴을 더욱 극대화했다.

평소 출근할 때처럼 대충 묶은 검은 머리는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흩어져 마치 젖은 비단처럼 고급스러운 느낌은 주었다.

늘 그렇듯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성유준과 대화할 때만큼은 불만이 가득 섞여 있었다.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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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제813화

    온채아는 그의 말을 듣고 마음속의 불안감이 서서히 가셨다.그녀는 고개를 기울여 턱을 그의 어깨에 기대고 낮게 물었다.“도연 언니가 앞으로 결혼에 대해 완전히 실망해 버리면 어떡하지?”“그럴 일 없어.”성유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다만 하도연의 결혼에 대한 기대치는 애초에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온채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정말?”성유준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응. 그냥 시간이 조금 필요한 거야.”월강 레지던스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구씨 집안 본가의 공기는 바깥에 내리는 겨울비보다 더 음울했다.구진택은 저녁 무렵에야 급히 돌아왔다.그는 짙은 회색 개량한복을 입고 오래 사용한 자단목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물 한 모금 마실 겨를도 없이 거실 중앙의 의자에 앉았다.구강우는 옆에 서서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구정훈은 구진택의 오른편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공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이따금 거실 중앙에 무릎 꿇고 있는 구민호에게 향했지만,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구민호는 꼿꼿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었고, 등은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반듯했다.아래층으로 불려 내려온 뒤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매와 표정에는 차가운 기색이 역력했다.구진택은 찻잔을 손에 들고 뚜껑으로 찻잎을 가볍게 걷어 냈다. 하지만 마시지는 않고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묵직한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말해 봐.”구진택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화를 내지 않아도 사람을 짓누르는 위압감이 있었다.“너와 도연이, 대체 무슨 사이냐?”구민호는 고개를 들고 평온하게 구진택의 시선을 마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저와 도연 누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요.”구진택 앞에서는 하도연을 부르는 호칭도 바꿨다.“아무 일도 없다고?”구진택은 차갑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세게 두드렸다.“내가 늙어서 눈이 먼 줄 아느냐? 밖에 떠도는 사진들을 내가 알아보지

  •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제812화

    하도연은 뒷좌석에 기대어 고개를 숙였다.“괜찮아. 곧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까.”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치 이미 벌어진 일을 말하듯 확신에 차 있었다.서진은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그 뜻을 알아차렸다.하용건의 성격상 전화로 하도연을 거칠게 나무란 이유 중에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가 가장 아끼는 손녀의 정치적 앞날과도 직결돼 있었기 때문이다.하도연은 단지 그의 손녀일 뿐만 아니라, 현재 하씨 가문을 이끌어갈 가장 적합한 후계자였다.하희민과 하지훈이 명예와 이익을 좇아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결국 하도연의 뒷받침이 필요했고, 그 남매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 줘야 하씨 가문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되돌아보면, 하용건이 가장 먼저 책임을 물을 대상은 절대 친손녀가 아니었다.막아야 할 입들은 할아버지가 가장 빠른 속도로 하나씩 틀어막을 터였다.“그러네요.”서진은 대답하다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작은 아가씨도 기사를 봤을 수 있는데, 전화 한번 해 보실래요?”뉴스가 빠르게 묻혔지만, 온채아는 임신 중이었고 만약 뉴스를 본다면 걱정할 수도 있었다.하도연은 잠깐 망설였다.“조금 있다 경성 도착하면 바로 월강 레지던스에 들렀다가...”온채아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직접 얼굴을 보여 주는 편이 더 안심될지도 몰랐다.그런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휴대폰이 진동했다.발신자는 온채아였다.하도연은 조금 의외라는 듯했지만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도연 언니.”수화기 너머에서 온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인터넷에 올라온 일에 관해 들었어요. 언니, 괜찮으세요?”하도연은 좌석에 기대었다. 어째서인지 계속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마음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금 풀렸다.“괜찮아.”“절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그 사진들 누가 봐도 일부러 각도 잡아서 찍은 거예요. 저는 한눈에 알아봤어요.”온채아는 말을 하다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그냥 언니가 좀 걱정돼서요. 언니, 처리

  •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제811화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하용건은 잠시 고민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정훈이와 이혼하는 건 일단 미뤄라. 이혼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다만 지금은 시기가 안 좋아. 정훈이한테 부탁해서 우선 이 여론부터 잠재워. 상황이 좀 지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원래라면 별일도 아니야. 하지만 마음먹고 흠을 잡으려는 놈들 입에 들어가면 약점이 되는 법이지. 도연아, 네가 지금 이 위치에 서기까지 쉽지 않았다는 걸 알 텐데, 내 뜻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하도연은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할아버지.”정말 자신이 지금 자리에서 흔들릴까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평생 쌓아 온 할아버지의 명성에 자신이 흠집을 낼까 두려운 걸까.하지만 하도연은 묻지 않고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돌아서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언제 나왔는지 모를 구정훈과 마주쳤다.구정훈은 그녀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적당한 걱정과 염려가 담겨 있었다.“도연아.”그가 앞으로 다가왔다.“할아버지께서 많이 화나셨어?”하도연은 그를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구정훈은 이유 없이 등골이 서늘해졌다.“별일 아니야.”그녀는 곧장 결정을 말했다.“갑자기 일이 생겨서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이혼 절차는 다음에 다시 마무리하자.”구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늘 그렇듯 온화하고 점잖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사진 건은 내가 너랑 민호 대신 설명할게. 걱정하지 마. 너희 둘 다 그런 마음이 있을 리 없다는 거 알아. 이런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네가 피해 보게 두지도 않을 거야.”그는 진심을 말하는 것처럼 표정도, 목소리도 더없이 성실했다.하도연은 그를 잠시 가만히 바라봤다. 감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부탁할게.”그 말을 마치고 하도연은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서

  •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제810화

    하도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서진을 바라봤다.“무슨 일인데?”서진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자극적인 뉴스 하나가 떠 있었다.[하씨 가문의 이혼 내막. 하도연, 시동생 구민호와 수상한 관계.]기사 내용은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고 사진까지 여러 장 첨부돼 있었다.한 장은 하도연과 구민호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뒷모습이었다. 사진 구도 때문에 두 사람은 유난히 다정해 보였다.또 한 장은 지난번 금용 그룹에서 하도연이 넘어질 뻔했을 때 구민호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하도연은 사진들을 빠르게 훑어보았고, 그녀의 눈빛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옆에 서 있던 구정훈의 눈에도 아주 잠깐, 알아차리기 힘든 파문이 스쳤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와 의문이 적당히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이 사진들은 뭐야? 어디서 나온 거지?”하도연은 그를 보지 않고 서진에게 고개를 돌렸다.“언제 터진 거야?”“한 시간 전입니다.”서진이 목소리를 낮췄다.“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작은 매체에서 처음 올렸는데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벌써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고요.”“알았어.”하도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지시했다.“당장 사람 보내서 내려.”말을 마친 그녀는 접수 창구에 앉아 서류를 제출하기 시작했다.구정훈이 움직이지 않자 그녀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주민등록증이랑 가족관계 증명서.”구정훈은 잠깐 멈칫했다.“이 여론부터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혼 서류는 언제든 준비할 수 있잖아. 이게 네 할아버지 귀에 들어가면...”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도연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벨 소리는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졌다.하도연이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문자 알림도 몇 개 연이어 떠올랐다.하희민이 보낸 문자였다.[누나, 내가 사람 시켜서 처리 중이야.]하지훈의 문자도 도착했다.[누나, 시간 좀 줘. 이 자식 내가 무조건 찾아낼게.]...하도연은 전부 확인하지 않은 채 한쪽

  •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제809화

    문자를 보내자 하도연의 답장은 구정훈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왔다. 다만 아주 짧았다.[그래.]더 이상의 질문도, 설명도 없었다.구정훈은 그 문자를 바라보다 문득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어쩌면 그들의 결혼은 진작부터 어긋나 있었는지도 몰랐다.신혼 때조차 그는 아내인 하도연에게서 그다지 따뜻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대부분은 마치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는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엎어 놓고 다시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아주 오래전, 두 사람이 아직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하씨 가문 본가에서 우연히 하도연을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그날 그녀는 연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낮게 묶은 채, 외국어책을 들고 마당에 앉아 있었다.그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바라보고는 살짝 웃었다.아주 짧은 미소였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런데 이제, 한때 자신을 향해 웃어 주던 그 소녀는 그에게 눈길 하나 더 주는 것조차 싫어했다....다음 날, 경성.하도연은 간결하고 깔끔한 캐주얼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머리는 여전히 낮게 뒤로 묶여 있었다.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강미진은 거실에서 건강 서적을 읽고 있었다.하도연이 또 해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강미진은 책을 옆으로 치우며 물었다. “정훈이가 마음 정리한 거야?”“네.”하도연은 가정부가 건넨 따뜻한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10시로 약속했어요.”강미진은 아무런 파동도 없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다 가슴 한구석이 괜히 시큰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럼 일찍 다녀와.”“네.”하도연은 서두르지 않고 강미진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며칠째 흐린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보슬비까지 내렸다.서진은 이미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연이 나오자 서진은 뒷좌석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구 대표님

  •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제808화

    구씨 집안과 하씨 가문의 인연은 구진택이 어렵게 이어 온 것이었다.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그 어르신이 알게 되는 순간 구정훈에게 좋은 결말이 있을 리 없었다.지금은 마침 구진택이 안수안과 함께 처가에 가서 임종을 앞둔 처남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본가에서 구정훈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구강우 한 명뿐이 아니었을 것이다.구정훈은 차가운 바닥 타일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뺨에는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평소와 달리 초라해 보였다.구강우는 그런 아들을 보며 치솟는 울화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거세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결국 다시 손을 대지는 않았다.“됐어. 내가 한 말만 똑똑히 기억해.”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민호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구민호는 냉담한 표정으로 눈앞의 상황을 못 본 사람처럼 지나쳐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거기 서.”구정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고, 억눌린 분노가 묻어났다.“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구민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시선에는 희미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뭐가 일부러라는 건데?”“하필 이때 돌아와서 내가 망신당하는 꼴 구경하려고 한 거잖아.”구정훈은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래 꿇고 있던 탓에 무릎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배다른 동생을 뚫어지게 응시했다.“내 이 꼴을 보니까 만족스러워?”구민호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도 없었다.“형이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뭐가?”“내가 오늘 집에 왔든 안 왔든, 형이 여기 무릎 꿇고 있었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어.”구민호는 짙은 남색 코트를 벗어 뒤에 있던 가정부에게 건네는 대신 한쪽 팔에 걸친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형이 선택한 길이야. 그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지 마.”구정훈의 목줄기에 핏대가 섰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느라 애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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