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온 선생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 하씨 가문에게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고맙습니다.”온채아는 이 말이 어느 정도 위로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고 대답했다. 감사를 표한 후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식단 처방을 계속해서 적어 내려갔다.강미진은 허약하여 처음부터 보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고 먼저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야 했다.하희민은 엘리베이터 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속삭였다. “계속 적고 계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십시오.”“네.”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집중했다.하희민은 발걸음을 옮겨 거실로 나갔다. 막 거실에 도착했을 때 하선호가 강미진에게 포도 껍질을 까서 먹여주면서 하희민에게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성씨 가문 어르신이 왔어요.”하희민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더니 온 선생님이 나가자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어요.”“강제로 데려가려고 했다고?”하선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에는 꽤 잘해줬다고 들었는데?”성씨 가문이 입양아를 키웠다는 소문은 하씨 가문도 들은 바 있었다.하지만 소원희가 온채아를 학대했다는 사실은 하지훈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하지훈은 입이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씨 가문 사람들은 성씨 가문의 일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하희민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요.”“온 선생님은...”강미진은 하선호가 먹여주려는 포도를 피하며 말했다. “아마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거야.”다른 사람의 집 앞에서까지 그렇게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을 보면.사적인 자리, 외부인이 없을 때는 그 수단이 얼마나 더 악랄할지 짐작이 갔다.하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방금 경고를 했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온 선생님을 괴롭히지 못할 겁니다.”하선호도 그의 행동에 동의했다. “잘했어.”강미진이 물었다. “온 선생님은 어디 있니?”“서재에서 어머님께 드릴
성유준을 제외한 다른 젊은이에게 이렇게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은 소원희에게 정말 전례 없는 일이었다.소원희는 온채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대체 밖에 나가서 우리 성씨 가문에 대해 어떻게 떠들고 다닌 거야? 어째서 모두가 우리 성씨 가문이 너를 학대하는 줄 알게 만든 거냐고.”하희민이 말을 잘랐다. “어르신, 이렇게 티 나게 하시면서 남들이 알까 봐 겁나십니까?” 말투는 매우 공손했지만 다소 듣기 거북했다.하희민은 은근슬쩍 온채아의 앞으로 다가서서 소원희가 온채아에게 화풀이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온채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하희민을 바라보며 순간 멍해졌다.이 장면은 마치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때 성유준이 온채아 앞에 막아서서 그녀를 다시 그의 집으로 데려왔던 모습 같았다.하희민의 뒷모습은 더욱 든든한 오빠 같았다.어린 시절 온채아가 늘 부러워했던 다른 아이들의 오빠 같기도 했다.온채아는 어릴 때 늘 오빠나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실 때 덜 외로울 테니까.소원희는 화가 치밀었다.하필 하씨 가문이 경성에 와서 대체 무슨 짓이람.이제 성유준 외에도 소원희를 깔보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하나같이 둘 다 온채아를 감싸고돈다.하희민은 소원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웃으며 말했다. “약속해 주실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어르신.”성탁수가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간곡히 권했다. “일단은 잠시 숙이시고 남은 일은 차근차근 생각하시지요.”소원희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애송이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아버지께서 안에 계십니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불러 드릴 수 있습니다.”하희민은 소원희의 표정을 살피며 살짝 눈썹을 치켜떴다. “하지만 아버지도 사모님께는 아랫사람이니 이럴 바엔 제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잠깐 와 주시라고 할까요?”“어머니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할아버지도 마다하지 않으실 겁니다.”하 회장이 어떤 사람인가?군부의 거물로 윗선과도 직접
소원희가 매서운 눈빛으로 두 경호원을 훑어보았다. “뭐 하는 거야! 당장 차에 태워! 언제까지 기다릴 거야?”“예!”두 경호원은 명령에 충실했다. 차량 문을 열고 온채아를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다.“놔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온채아는 벗어나려 몸부림치면서 소원희에게 소리쳤다. “저는 오늘 하씨 가문 사모님을 치료하러 왔어요. 아직 치료가 안 끝났어요.”온채아는 강미진의 다리 치료를 빌미로 소원희가 함부로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하씨 가문 문 앞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강미진의 다리는 부상과 심리적 요인이 겹쳐 안정이 필요했다. 이런 일들로 방해받아서는 안 되었다.하지만 소원희의 태도를 보니 온채아가 속내를 내보이지 않으면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뭐라고?”소원희는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네까짓 게 감히 하씨 가문 사모님을 치료한다고? 하씨 가문이 경성으로 왔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하희민이 갑자기 걸어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언제부터 저희 하씨 가문이 경성에 오는 일을 성씨 가문에게 미리 알려야 했습니까?”하희민의 얼굴에는 늘 그러하듯 온화함이 깃들어 있었고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서는 불쾌함과 불편함이 느껴졌다.그도 그럴 것이 하씨 가문은 해성에서 그야말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데 경성에 와서 모욕을 당한 꼴이었다. 그의 어머니를 치료하러 온 의사가 도중에 강제로 끌려가게 생겼으니 말이다.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하씨 가문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소원희는 당연히 하희민을 알아보았다. 하희민은 무서운 인물이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그를 불쾌하게 만들면 그 끝이 좋지 않았다.그의 태도는 곧 하씨 가문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성탁수는 소원희가 젊은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오해십니다.”“도련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성탁수는 자신이 추측하는 바를 말했다. “혹시라도 다른 도시에서 온 명문가라면 우리가 이렇게 함부로 건드리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는 평소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었다.그러나 소원희는 늘 제멋대로였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설령 성 집사 추측이 맞다고 해도 우리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명문가가 얼마나 된다고? 경성 근처라면 해성의 하씨 가문은 우리가 쉽게 건드릴 수 없지.”“온채아 하나 때문에 우리 성씨 가문과 맞설 사람이 있겠어?”성씨 가문은 하씨 가문과 맞설 수 없다.마찬가지로 다른 가문들도 성씨 가문과 맞설 수 없다.최근에 하씨 가문이 경성에 온다는 소문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우연히 이곳에 사는 사람이 하씨 가문일 수 있겠는가.“맞는 말씀입니다.”“그런데도 온채아를 당장 끌고 가지 않고 뭐 해?”소원희는 차 안에서 온채아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또 시간을 지체하면 내가 용씨 가문에게 어떻게 설명하겠어.”성탁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용씨 가문은 성씨 가문에 비하면 세력이 약하지만 성유준에게는 뒤지지 않는다.이번에 또 약속을 어겨 그들을 화나게 한다면 소원희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온채아는 경호원들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었기에 거리가 가까웠음에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다.하지만 짐작건대 무슨 속셈을 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아마도 온채아와 주율천의 이혼 사실이 완전히 드러났을 가능성이 높았다.성탁수가 온채아에게 걸어오더니 그녀를 붙잡고 있는 두 경호원에게 손짓했다. 두 경호원은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수년 동안 온채아는 소원희의 수법을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그녀가 그린 빌라에서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온채아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차에 타지 않으려 했다. 차가운 눈빛으로 성탁수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제가 오늘 어떤 분을 치료하러 왔는지 아시면서 인사 한마디 없이 저를 끌
도우미는 멍하니 서 있다가 놀란 기색으로 방을 나섰다.딸이 실종된 이후로 강미진은 햇빛을 보지 않았는데 오늘은 스스로 햇볕을 쬐겠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무슨 일이에요?”하선호와 하희민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사모님께서 햇볕을 쬐고 계셔서요.”도우미가 말했다.“제가 가리려 했는데 사모님께서 못 하게 하셨어요.”순간 하선호와 하희민 역시 멍해졌다.하선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강미진은 의사에게 이렇게 협조적인 적이 없었다. 어제 여승운의 말을 들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약 30분이 더 지난 후에야 방문이 열렸다.하선호와 하희민은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온채아는 많은 환자와 대화해 보았기에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 “대표님, 들어가서 살펴보세요.”“종이와 펜이 있나요? 사모님께 식단을 위한 처방을 써 드려야 해서요.”“네. 이쪽으로 오시죠.”하희민은 곧바로 온채아를 데리고 아래층 서재로 향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온채아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와 펜을 집어 들고 강미진의 맥을 짚었던 결과를 신중하게 고려하며 식단 처방을 술술 써 내려갔다.강미진의 몸은 단순히 다리의 문제만이 아니었다.전반적으로도 매우 허약했고 하루빨리 일어서기 위해서는 몸 전체가 함께 움직여줘야 했다.온채아가 글을 쓰고 있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곧 도우미 한 명이 활짝 열린 방문을 노크하며 달려왔다. “도련님, 밖에 사람들이 와서 소란을 피우며 억지로 들어오려고 합니다.”평소 늘 침착하던 하희민이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듯이 물었다. “억지로 들어오려 한다고요?”하씨 가문에 억지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아무래도 보통 인물이 아닌 것 같은데요.”도우미는 온채아를 보며 말했다. “온 선생님을 찾는다고 합니다.”그 말을 듣고 글을 쓰던 온채아의 손이 잠시 멈췄다. 성씨 가문의 사람들이 이렇게 다급하게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차가운 눈빛을 숨기고 자리에
하희민이 눈썹을 살짝 올리며 온채아에게 설명했다. “어머니께서 어제 온 선생님을 보시고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온채아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사모님을 뵙고 참 친근하게 느껴졌어요.”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있었지만 재벌 귀족 특유의 거만한 태도는 없었다. 말은 많지 않아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친화력이 느껴졌다.하희민은 온채아가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여겼고 그녀를 안내하며 말했다. “어머니, 온 선생님 오셨어요.”온채아가 거실로 걸어갔다. “하 대표님, 사모님.”강미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옅게 미소 지었다. “온 선생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온채아는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할까요?”강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강미진의 동의를 얻고 온채아는 하희민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방은 몇 층인가요?”하희민이 대답했다. “2층입니다.”하선호는 강미진이 탄 휠체어를 밀며 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방에 도착하여 하선호가 강미진을 안아 침대에 눕히자 온채아가 입을 열었다. “이제 침을 놓을 건데요. 두 분은 잠시 나가 계셔 주시겠어요?”비록 다리를 치료하는 것이지만 침술은 자극해야 할 혈 자리가 복잡하여 다리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에도 침을 놓아야 했기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하지만 하씨 가문이 온채아를 완전히 믿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덧붙였다.“여성 도우미 한 분이 들어와서 간호해 주셔도 됩니다.”“괜찮아요.”강미진은 하선호와 하희민에게 눈짓했다. “두 분 다 나가세요.”해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하선호는 온채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부탁했다. “잘 부탁드립니다.”온채아는 하선호와 강미진 부부간의 애정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염려 마세요.”그들이 나가자 온채아는 바로 침을 놓지 않고 먼저 강미진의 몸을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