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도도화
강수진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하도원과 임서율에게 집중됐다.

성운 그룹과 재호 그룹이 라이벌 관계라는 건 이곳 행사장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지금 이 상황은 그다지 좋을 게 없었다.

여차하면 이상한 뒷말이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였으니까.

임서율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하도원 대신 답했다.

“실수로 하 대표님의 신발을 밟아버려서 사과하려던 참이었어요. 혹시 사과하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

그때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던 하도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임서율 씨가 사과하려던 차에 차 대표님이 갑자기 오셔서 사과가 끊겨 버렸죠.”

차주헌은 하도원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불편한 사람처럼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

“삼...”

“이렇게 된 거 차 대표님이 아내분 대신 사과하는 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여성분한테 사과의 말을 들으려니 영 못될 짓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도원은 차주헌의 말을 가볍게 자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임서율은 옆에서 그 말에 듣고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뻔뻔한 인간이 다 있지? 아까 나한테 그런 짓까지 해놓고 뭐? 영 못될 짓을 하는 것 같아? 하!’

한편 차주헌은 아무 말 없이 여전히 잔뜩 굳은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임서율은 오늘따라 차주헌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하도원 앞에 서니 묘하게 불안하고 또 초조해 보였다.

하도원은 침묵이 길어지자 눈썹을 꿈틀거리며 재촉했다.

“공처가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반말을 한 것도 아니고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말에서는 압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만약 예전의 임서율이었으면 지금쯤 앞으로 나서며 차주헌을 감쌌을 것이다. 언제나 자기보다는 차주헌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나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한번 보고 싶었다. 차주헌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자존심 강한 차주헌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과연 그녀를 위해 라이벌 회사의 대표에게 사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분위기가 점점 더 싸늘해져 가자 옆에 있던 강수진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하 대표님, 큰일도 아닌데 사과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기분이 나쁘셨다면 저희가 똑같은 신발로 변상해 드릴게요.”

하도원은 강수진을 힐끔 보더니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쪽은 차 대표님 애인이라도 되나 보죠?”

그의 한마디에 강수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차주헌은 그런 그녀를 자신의 뒤로 보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분은 저희 회사에 새로 입사한 강수진 씨입니다.”

하도원은 시선을 내려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하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기억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이름은 머리에 저장해두지 않는 편이라.”

강수진은 그 말에 굴욕감을 느낀 듯 눈이 빨개져서는 차주헌의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주헌아...”

차주헌은 주먹을 한번 쥐었다가 풀더니 이를 꽉 깨물며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제 아내가 잘못한 건 당연히 남편인 제가 책임을 져야죠. 말씀해 보세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도원은 옆을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세우더니 그의 손에 들린 샴페인 병을 집어 들었다.

“이거 한 병 다 마시면 없던 일로 해드리죠.”

“안 돼요!”

강수진이 재빨리 외쳤다.

“주헌이는 주량이 약해서 그렇게 많이 못 마셔요. 제가 대신 마실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샴페인을 집어 들고 마시려는데 차주헌이 화를 내며 빼앗아갔다.

“알코올 알레르기 때문에 한잔도 못 마시면서 지금 뭐 하는 거야!”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임서율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어 얼른 곁에 있는 의자를 덥석 잡았다.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한심해 미칠 것 같았다.

차주헌은 샴페인을 그대로 원샷 하기 시작했고 강수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도원은 의자에 기댄 채 두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다 차주헌이 술병을 다 비우자마자 곧바로 박수를 보내왔다.

“차 대표님 술 잘 드시네요. 약속대로 아내분 일은 없던 일로 해드리죠.”

그는 말을 마친 후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유유히 행사장을 벗어났다.

차주헌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꾹 참고 임서율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휘청이며 그녀에게 수화했다.

“하도원은 무서운 인간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근처에 있지도 마.”

임서율은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부축해주었다.

“알겠으니까 이만 집으로 가자. 너 취했어.”

차주헌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번에는 강수진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택시 타고 가. 도착하면 문자 하고.”

“응, 알겠어.”

강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행사장을 나가려다가 할 말이 남은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임서율을 바라보았다.

“주헌이 잘 부탁해요. 아마 내일 아침 일어나면 위가 아프다고 할 테니까 죽 좀 꼭 끓여주고요.”

임서율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더니 대답이 아닌 대뜸 당부의 말을 건넸다.

“조심해서 가요. 그리고 회사에서도 얘기했지만 호칭에 주의해주세요. 유부남과 이상한 스캔들에 휘말리는 거, 수진 씨도 원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녀는 말을 마친 후 강수진에게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차주헌과 함께 밖으로 나가버렸다.

강수진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되로 주려다 말로 받아버렸다.

임서율은 차주헌을 부축하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다 부가티 차량에 기대있는 하도원과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하도원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차갑고 시린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임서율은 괜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얼른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마치 짐짝을 밀어 넣듯 차주헌을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차량이 하도원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임서율은 일부러 시선을 내리며 옆을 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까 행사장에서 하도원이 했던 행동은 누가 봐도 시비였다. 아무리 서로 라이벌 회사라고 해도 오늘 일은 지나쳤다.

하지만 제일 이상했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차주헌이라고 답할 것이다.

오늘 그는 평소와 달리 꼭 만나면 안 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불편해하고 또 조금 초조해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임서율은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코올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샴페인이라도 한 병을 다 마시니 소주 못지않게 냄새가 독했다.

차창을 열고 환기를 조금 시키고 나니 그제야 냄새가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후, 임서율은 비서인 이재우와 함께 차주헌을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이재우는 차주헌을 침대까지 데려다준 후 임서율을 보며 말했다.

“사모님, 그럼 저는 숙취해소제 좀 사서 오겠습니다.”

“그래요.”

임서율은 차주헌에게 물이라도 떠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차주헌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잔뜩 취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널 다시 내 곁에 데려다 놓을게. 수진아...”

임서율은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그녀는 차주헌이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또 가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게 전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차주헌이 힘들 때도 늘 곁에 있어 줬고 그가 접대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도 불평불만 한번 없이 옷을 갈아입혀 주고 위가 아플 그를 위해 약과 죽을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것 또한 그녀의 착각이었다.

차주헌을 움직이게 한 동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강수진이었다.

“나는... 나는 대체 너한테 뭐였어?”

임서율은 쌔근쌔근 잠이 든 차주헌을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30화

    차주헌은 곧바로 강수진을 다정하게 달랬다. “걱정하지 마, 서율이는 아까 바빴어. 지금 말했잖아, 조금 있다가 마신다고.” 강수진의 목소리는 금세 장난기 가득한 애교 섞인 톤으로 바뀌었다. “거짓말하지 마! 난 서율 씨가 마시는 거 못 봤어! 주헌아, 꼭 서율 씨한테 내 말 좀 전해줘. 내가 가끔 말이 서툴러서 사람들 기분 상하게 할 때가 있거든.” 임서율은 강수진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청력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강수진이 차주헌 앞에서 장난치고 싸우는 모습도 안 들었을 텐데.’ 차주헌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서율이가 너한테 화낼 리 없어. 서율이는 그렇게 쪼잔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잘 알아.” “그럼 빨리 서율 씨한테 내가 사 온 커피 마시라고 해 줘.” 강수진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귀여웠다. 차주헌은 커피를 임서율 앞으로 내밀며 그녀의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댔다. “너도 들었잖아. 진짜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야. 어린애한테 뭐라고 하겠어? 두 시간씩 줄 서서 샀대. 며칠 전에 다리도 다쳐서 안 좋은데 말이야.” 임서율은 얼굴을 찌푸렸다. 강수진이 더 끼어드는 게 싫어 살짝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말했잖아, 속이 안 좋아.” “두 시간이나 줄 서서 사 준 어린애 마음을 생각해 봐. 안 마시면 걔 속상해서 오늘 밤도 잠 못 잘 거야.” 차주헌은 커피를 든 손을 입술 근처에서 떼지 않았다. 이미 그의 태도는 분명했다. 임서율은 마치 몸 전체가 상처투성이인데 그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젠 아픔이 아니라 무감각해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꽉 다문 채 차갑게 차주헌을 곁눈질했다. 그리고 그가 든 커피를 단숨에 받아 들고는 차주헌과 강수진 앞에서 남김없이 다 마셔버렸다. “됐어?” 차주헌은 다정하게 임서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내지 마. 다음부턴 마시기 싫으면 안 가져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29화

    임서율은 문서를 넘기던 손을 무의식적으로 살짝 움츠렸다. 강수진은 다급하게 해명했다. “서율 씨, 오해하지 마세요. 지금 서율 씨의 신분이 좀 특별해서 그래요. 주헌이가 서율 씨를 직접 챙기면 가족이라서 봐준다는 소문이 돌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임서율은 비웃듯 시선을 거두었다. ‘나를 챙기면 욕먹고 강수진을 챙기면 괜찮다는 말인가.’ 그녀는 생각을 접고 말했다. “그래요, 가요. 다 정리하면 이메일로 보내 줄게요.” 강수진은 금세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며 웃었다. “서율 씨, 역시 최고예요! 주헌이랑 같이 커피 사 올게요.”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깡총깡총 뛰어나갔다. 임서율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발도 참 빠르네.’ 임서율이 정리를 끝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 차주헌에게서는 단 한 통의 연락도 없었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 정리라도 해야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차주헌이 준 반지를 팔고 그가 예전에 준 명품들도 모두 중고 거래 앱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은 그녀에게 단지 금전적 가치일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옷 몇 벌은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대학 시절에 함께 찍은 사진을 한 번 바라봤다. 자신은 사진 맨 앞에 서 있고 그는 뒤에서 깊은 애정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모습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살아있는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의 눈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위선뿐이었다. 차주헌은 돌아와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임서율의 캐리어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바로 변했다. 그는 곧장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임서율은 컴퓨터로 차주헌이 준 물건들을 판매했고 상대가 돈을 송금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는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아 위로하듯 그녀의 팔을 살며시 쥐었다. 낮의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짐을 싸는 이유가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28화

    임서율은 가볍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앞으로 내가 떠나든 말든 너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해. 더 이상 무모하게 굴지 말고 상사 앞에서 대들거나 싸우지 말고.” 양지우 같은 성격을 싫어하는 상사도 많겠지만 임서율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팀에는 강수진 같은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었다. 양지우는 눈가가 붉어졌다. “알겠어. 아니면 그냥 재호 그룹으로 이직해. 강수진 들어오고부터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뒤숭숭해졌어.” 임서율은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 일단 짐 정리하고 나가서 내 연락 기다려. 지금은 차 대표님이 화가 많이 나 있어서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꺼내기 어려워.” 게다가 언제 강수진이 또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양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후가 되자 인사팀에서 공지가 나왔다. 총괄팀장 자리는 강수진이 대신하게 되었다. 임서율은 맡고 있던 프로젝트 인수인계를 준비하던 중, 휴대폰 진동을 느꼈다. 차주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서율아, 오늘 네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했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이야.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이해해 줘.] 임서율은 이 메시지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이해해 달라니? 왜 항상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거지? 왜 강수진이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고? 왜 온갖 부당함을 내가 다 감내해야 하지? 난 대체 무슨 죄야?’ 예전의 차주헌은 이렇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한 상사가 계속 부려 먹고 고객 접대 술자리도 자주 강요하고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녀가 뒤집어쓰곤 했다. 심지어 그녀의 귀가 안 들린다고 그녀에게 험한 소리도 했었다. 그땐 차주헌의 회사 내 입지가 불안해서 그냥 참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그 말을 듣고는 상사와 크게 싸웠다. 상사는 대주주 쪽 사람이었고 차주헌 입지가 아직 불안한 상태라 내내 그녀를 핍박하며 비아냥댔다. 하지만 그날 차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27화

    “이렇게 많은 회사 사람 앞에서 신입 동료를 비방하고 질투하다니, 이번 일 그냥 넘어가면 제가 어떻게 직원들을 설득합니까?” 차주헌의 태도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 뚜렷한 이목구비가 오히려 사람을 멀리하게 만드는 냉정함을 풍겼다. 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차 대표님,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본인이 사직서를 제출하면 회사에서 한 달 치 급여를 보상해 줄 것입니다.” 차주헌은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그제야 양지우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저 임서율을 위해 몇 마디 변명했을 뿐인데 차주헌이 자길 해고하려 한다니 전혀 예상 못 했다. 임서율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차주헌의 냉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 대표님, 그렇게 심각할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양지우 씨는 저를 위해서 한 말입니다.” 차주헌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양지우 씨가 감히 제 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굴었다면 그건 당신의 직무 유기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처벌을 받았으니 이번 일은 여기서 끝냅니다. 만약 다시 양지우 씨를 두둔하려 한다면 그 책임도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그는 이미 경고했다. 더 이상 양지우를 감싸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 불똥이 그녀에게도 튈 거라고. 임서율은 씁쓸하게 웃었다. 7년을 함께 살면서도 아직도 그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그는 임서율이 친구를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몰랐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말했다. “차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양지우 씨가 그렇게 함부로 굴었던 것도 제 책임입니다. 해고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오아시스 프로젝트도 못 따냈고 성운 그룹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때 강수진이 임서율 앞으로 다가와서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임 팀장님, 죄송해요. 이제야 알았어요. 사실 팀장님은 제 능력을 못마땅해했다는걸. 하지만 저도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팀장님이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26화

    임서율의 얼굴은 잔잔한 물결처럼 평온했다. 마치 자기가 직위를 잃는 게 전혀 큰일 아닌 것처럼 한 점의 찡그림조차 없었다.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가장 큰 슬픔은 마음이 완전히 죽는 것이라는 걸. 그 고통은 무감각과도 같았다. 차주헌이 이렇게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강수진이 그에게 자신이 재호 그룹으로 간 건 이직하려는 거라고 말했을 때 그가 그대로 믿어버린 것도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그때, 양지우는 참다못해 임서율 대신 나섰다. “차 대표님, 제가 임 팀장님이 재호 그룹으로 간 건 정말 개인적 일 때문이라는 걸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직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양지우는 강수진을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 말하다니.’ 양지우의 성격은 직설적이었다. 강수진이 온 이후로 임서율이 계속해서 불이익을 당하는 걸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수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강수진 씨, 임 팀장님이 이직하려 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나요? 게다가 평소에 기본적인 데이터나 문서조차 제대로 못 하면서 어떻게 계약을 따낸다는 거죠? 그런 사람이 총괄이라니, 이런 얘기가 퍼지면 성운 그룹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될지...” “양지우!” 임서율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꾸짖으며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그만둬, 그만 말해.” 하지만 오늘따라 양지우는 반항하는 기운이 가득했다. “왜요, 말을 못 하겠어요? 평소에 데이터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낙하산으로 들어온 강수진 씨, 누가 강수진 씨를 회사로 끌어들였는지 저도 참 궁금하네요.” 주변 동료들은 양지우의 말에 속삭임을 멈추지 않았다. “양지우 씨, 미쳤나 봐. 차 대표님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감히 강수진 씨를 공개적으로 의심하다니.” “맞아. 강수진 씨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뒤에 누군가가 있잖아. 그게 혹시 차 대표라면 말 다 한 거지.” “임 팀장님이 해임된 상황에서 양지우 씨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25화

    임서율은 원래 어떤 일이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유 없이 뒤집어씌워지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수진 씨, 제 일정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가 재호 그룹에서 나온 시간이 오후 3시 10분이었고 정운 그룹과의 약속 시간은 3시 30분이었어요. 회사에서 약속 장소까지 택시로 10분 거리죠. 즉, 저에겐 딱 10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강수진 씨는 현장에서 적어도 20분은 기다렸을 겁니다.” 강수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임서율이 시간을 그렇게 정확히 계산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내가 기다린 시간까지 알고 있는 거지?’ 임서율은 그런 그녀의 당황함을 놓치지 않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운 그룹 대표님께서 오후에 화상 회의가 있다고 아침에 미리 연락을 주셨어요. 회의 때문에 10분 정도 늦는다고요. 그 메시지는 저만 받은 게 아니고요.” 강수진은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눈망울에 살짝 물기를 머금고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임 팀장님, 미안해요. 전 그냥 팀장님이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 도와드리려 했던 건데. 팀장님이 제가 공을 가로채려 했다고 오해하신 줄은 몰랐어요. 그럴 생각 진짜 아니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원래 팀장님 거예요. 회계도, 수당도 다 팀장님 이름으로 처리하게 대표님한테 얘기할게요.” 그녀의 말은 부드럽고 순한 말투였지만 모든 책임을 임서율에게 돌려버리는 말이었다. 그녀는 ‘공을 가로챈 게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공을 자신이 가져왔다는 걸 모두에게 각인시켰고 동시에 임서율이 괜히 예민하게 굴고 있다고 암시했다. 그 순간, 사무실 곳곳에서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와, 임 팀장님 좀 너무하네. 강수진 씨는 도와주려고 한 건데, 그걸 그렇게 몰아붙이나?” “그러니까, 자기가 뭐 시간 계산 잘한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사실 재호 그룹으로 이직하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