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втор: 도도화
강수진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하도원과 임서율에게 집중됐다.

성운 그룹과 재호 그룹이 라이벌 관계라는 건 이곳 행사장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지금 이 상황은 그다지 좋을 게 없었다.

여차하면 이상한 뒷말이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였으니까.

임서율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하도원 대신 답했다.

“실수로 하 대표님의 신발을 밟아버려서 사과하려던 참이었어요. 혹시 사과하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

그때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던 하도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임서율 씨가 사과하려던 차에 차 대표님이 갑자기 오셔서 사과가 끊겨 버렸죠.”

차주헌은 하도원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불편한 사람처럼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

“삼...”

“이렇게 된 거 차 대표님이 아내분 대신 사과하는 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여성분한테 사과의 말을 들으려니 영 못될 짓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도원은 차주헌의 말을 가볍게 자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임서율은 옆에서 그 말에 듣고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뻔뻔한 인간이 다 있지? 아까 나한테 그런 짓까지 해놓고 뭐? 영 못될 짓을 하는 것 같아? 하!’

한편 차주헌은 아무 말 없이 여전히 잔뜩 굳은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임서율은 오늘따라 차주헌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하도원 앞에 서니 묘하게 불안하고 또 초조해 보였다.

하도원은 침묵이 길어지자 눈썹을 꿈틀거리며 재촉했다.

“공처가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반말을 한 것도 아니고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말에서는 압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만약 예전의 임서율이었으면 지금쯤 앞으로 나서며 차주헌을 감쌌을 것이다. 언제나 자기보다는 차주헌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나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한번 보고 싶었다. 차주헌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자존심 강한 차주헌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과연 그녀를 위해 라이벌 회사의 대표에게 사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분위기가 점점 더 싸늘해져 가자 옆에 있던 강수진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하 대표님, 큰일도 아닌데 사과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기분이 나쁘셨다면 저희가 똑같은 신발로 변상해 드릴게요.”

하도원은 강수진을 힐끔 보더니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쪽은 차 대표님 애인이라도 되나 보죠?”

그의 한마디에 강수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차주헌은 그런 그녀를 자신의 뒤로 보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분은 저희 회사에 새로 입사한 강수진 씨입니다.”

하도원은 시선을 내려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하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기억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이름은 머리에 저장해두지 않는 편이라.”

강수진은 그 말에 굴욕감을 느낀 듯 눈이 빨개져서는 차주헌의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주헌아...”

차주헌은 주먹을 한번 쥐었다가 풀더니 이를 꽉 깨물며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제 아내가 잘못한 건 당연히 남편인 제가 책임을 져야죠. 말씀해 보세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도원은 옆을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세우더니 그의 손에 들린 샴페인 병을 집어 들었다.

“이거 한 병 다 마시면 없던 일로 해드리죠.”

“안 돼요!”

강수진이 재빨리 외쳤다.

“주헌이는 주량이 약해서 그렇게 많이 못 마셔요. 제가 대신 마실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샴페인을 집어 들고 마시려는데 차주헌이 화를 내며 빼앗아갔다.

“알코올 알레르기 때문에 한잔도 못 마시면서 지금 뭐 하는 거야!”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임서율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어 얼른 곁에 있는 의자를 덥석 잡았다.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한심해 미칠 것 같았다.

차주헌은 샴페인을 그대로 원샷 하기 시작했고 강수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도원은 의자에 기댄 채 두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다 차주헌이 술병을 다 비우자마자 곧바로 박수를 보내왔다.

“차 대표님 술 잘 드시네요. 약속대로 아내분 일은 없던 일로 해드리죠.”

그는 말을 마친 후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유유히 행사장을 벗어났다.

차주헌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꾹 참고 임서율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휘청이며 그녀에게 수화했다.

“하도원은 무서운 인간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근처에 있지도 마.”

임서율은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부축해주었다.

“알겠으니까 이만 집으로 가자. 너 취했어.”

차주헌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번에는 강수진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택시 타고 가. 도착하면 문자 하고.”

“응, 알겠어.”

강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행사장을 나가려다가 할 말이 남은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임서율을 바라보았다.

“주헌이 잘 부탁해요. 아마 내일 아침 일어나면 위가 아프다고 할 테니까 죽 좀 꼭 끓여주고요.”

임서율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더니 대답이 아닌 대뜸 당부의 말을 건넸다.

“조심해서 가요. 그리고 회사에서도 얘기했지만 호칭에 주의해주세요. 유부남과 이상한 스캔들에 휘말리는 거, 수진 씨도 원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녀는 말을 마친 후 강수진에게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차주헌과 함께 밖으로 나가버렸다.

강수진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되로 주려다 말로 받아버렸다.

임서율은 차주헌을 부축하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다 부가티 차량에 기대있는 하도원과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하도원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차갑고 시린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임서율은 괜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얼른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마치 짐짝을 밀어 넣듯 차주헌을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차량이 하도원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임서율은 일부러 시선을 내리며 옆을 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까 행사장에서 하도원이 했던 행동은 누가 봐도 시비였다. 아무리 서로 라이벌 회사라고 해도 오늘 일은 지나쳤다.

하지만 제일 이상했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차주헌이라고 답할 것이다.

오늘 그는 평소와 달리 꼭 만나면 안 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불편해하고 또 조금 초조해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임서율은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코올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샴페인이라도 한 병을 다 마시니 소주 못지않게 냄새가 독했다.

차창을 열고 환기를 조금 시키고 나니 그제야 냄새가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후, 임서율은 비서인 이재우와 함께 차주헌을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이재우는 차주헌을 침대까지 데려다준 후 임서율을 보며 말했다.

“사모님, 그럼 저는 숙취해소제 좀 사서 오겠습니다.”

“그래요.”

임서율은 차주헌에게 물이라도 떠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차주헌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잔뜩 취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널 다시 내 곁에 데려다 놓을게. 수진아...”

임서율은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그녀는 차주헌이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또 가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게 전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차주헌이 힘들 때도 늘 곁에 있어 줬고 그가 접대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도 불평불만 한번 없이 옷을 갈아입혀 주고 위가 아플 그를 위해 약과 죽을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것 또한 그녀의 착각이었다.

차주헌을 움직이게 한 동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강수진이었다.

“나는... 나는 대체 너한테 뭐였어?”

임서율은 쌔근쌔근 잠이 든 차주헌을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97화

    그동안 해성에는 거의 오지 않았었고 결혼한 뒤로는 온 신경이 차주헌과 일에 쏠려 있어 정작 자신의 삶은 온데간데없어졌다.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을 때 생각나는 사람은 오직 양지우뿐이었다.하지만 양지우의 사정을 생각하면 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양지우는 집안일에 치여 사느라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결국 같이 술 마셔 줄 수 있는 사람은 하도윤밖에 없었다.하도윤은 머쓱한 듯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임서율 씨가 이렇게 용감한 줄은 몰랐네요.”“그냥 술 한잔하는 거잖아요. 무슨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아니고.”그때 비서가 물 두 병을 들고 걸어왔다.하도윤은 물을 받아 들고는 차 문을 열며 말했다.“먼저 들어가.”비서가 물었다.“대표님, 어디 가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됐어. 끝나면 내가 전화할게.”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비서가 떠난 후 하도윤은 임서율에게 물을 건넸다.“이 시간쯤 되면 비서 아내는 출근해야 해서 집으로 돌아가 애 봐야 해요.”임서율은 속으로 조금 놀랐다. 하도윤이 이런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나? 하지만 생각해 보니 하도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사실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좋다고 하기에는 지난번 분명히 한종서가 그녀를 괴롭히는 걸 보고 말릴 수도 있었는데 그냥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런데 오늘은 또 이렇게 도와주고 있다.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늘 중간 어딘가를 맴도는 것 같아 그녀는 참 판단하기 어려웠다. 임서율은 궁금해져 물었다.“그럼 평소에도 이 시간쯤 되면 비서를 먼저 보내요?”“가끔요. 내가 급한 일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함께 해요.”그는 운전석 문을 열고 타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앞자리로 와요.”임서율은 이상하게 느껴져 물었다.“왜요? 여기가 편해요.”“공기랑 말하는 거 싫거든요. 게다가 내가 고개 돌리면서 운전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하도윤의 말에 머릿속에 위험한 장면이 떠올렸다. 운전하다가 정신이라도 팔리면 한순간에 목숨이 날아가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96화

    마치 임서율의 말을 믿기 힘들다는 듯 하도윤은 눈썹을 찌푸렸다.“정말이에요?”임서율은 마치 믿어 주지 않을까 봐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에요. 그런데 아까 하 대표님께서 내 말을 끊었잖아요.”그 말에 하도윤은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닫고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아.”자기 착각에 대해 전혀 당황하거나 민망해하지 않았다.임서율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이 남자는 민망하다는 감정 자체가 없나 봐.’만약 자기였으면... 임서열의 머릿속은 이미 상황이 그려졌다. 만약 자신이 그런 착각을 했다면 아마 땅속에라도 숨고 싶었을 것이다.그때 하도윤이 고개를 숙여 연고 뚜껑을 열더니 임서율의 손바닥을 잡아끌었다.임서율은 눈을 내리깔고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할게요.”“쓸데없이 부끄러워하긴. 귀찮게 하지 마요.”하도윤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잘생긴 얼굴에 짜증 섞인 기색이 스쳤다.임서율은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뭐든 깔끔하게 처리하는 성격이라 계속 머뭇거리거나 우물쭈물하다가 좋은 말을 듣지 못할 것 같았다.임서율은 떠나기 전까지 하도윤을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 순순히 손을 내밀어 약을 발라 달라고 했다.임서율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하도윤이 약을 바르는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성격으로 어떻게...임서율은 아마도 아까 남자들에게 크게 놀라 정신이 혼미해져 하도윤이 괜히 괜찮아 보였던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은 말없이 차 안에 적막만 감돌았고 임서율은 점점 불편해졌다.그녀는 아까 하도윤과 마주친 일을 떠올리며 그에게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떻게 그런 데에 있었어요?”하도윤은 순간 멈칫하며 말했다.“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원래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가기로 했는데 서율 씨 때문에 망쳤어요.”그는 부드럽게 면봉으로 상처 부위를 조심스레 문질렀다. 그녀는 오히려 따갑다기보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하도윤의 일을 방해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95화

    차주헌이 아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하도윤은 도대체 어떻게 안 걸까?하도윤은 다리를 꼬고 몸을 느긋하게 기대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찍어 본 거예요.”임서율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빨리 말해 줘요. 나비 문신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문신은 그녀가 대학 시절 유행을 따라 한 것이었고 반에 많은 여자 친구들도 했었다. 원래 백합꽃 문신을 하고 싶었지만 반 친구 대부분이 백합을 선택한 탓에 결국 그녀는 나비를 택했다.하도윤은 팔짱을 끼고 좌석에 기대어 웃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군가에게 집요하게 캐묻는 건 그녀 스타일이 아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도윤이 말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캐묻고 싶지 않았다.차가 교차로 근처에 다다랐을 때 하도윤이 물었다.“데려다줄까요?”임서율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주헌을 생각하자 눈빛마저 서늘해졌다.손에 꼭 쥐고 깨진 화면의 휴대폰을 통화 기록을 확인했지만 그의 전화는커녕 문자 한 통도 없었다. 아까 그렇게 다급하게 말했는데 친구라도 한 번쯤은 다시 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맺히자 임서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 참았다.“네.”하도윤은 비서에게 차를 약국 앞으로 세우게 하고 상처를 소독할 약을 사 오게 했다. 비서의 약 봉투를 받고 그는 옆에 있는 마트를 가리켰다.“생수 두 병 사 와. 하나는 상온으로.”“네.”비서가 다시 나가자 하도윤은 약 봉투를 열어 연고를 꺼냈다.임서율은 아직도 떨고 있었는데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애써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도윤은 그녀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그 순간, 임서율은 차가운 몸이 따스함에 감싸이는 듯했다. 그녀가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하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중에 깨끗하게 손빨래해서 돌려줘요.”마지막 몇 글자에 살짝 힘이 실려 있었다. 임서율은 웃음이 나왔지만 그 웃음은 어딘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94화

    임서율은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움켜쥔 채 뒷걸음질 치며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지만 온몸이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다가오지 마!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신고? 그럼 해보든가. 네 신고가 빠를까 아니면 우리가 빠를까?”임서율은 휴대폰을 꼭 쥔 채 앞에 있던 남자를 밀쳐 내고 황급히 도망쳤고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저 지금... 아악!”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등을 발로 차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손바닥의 상처가 바닥과 심하게 스쳐 그녀는 고통스러워 숨을 들이켰고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찌릿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갑자기 누군가가 머리채를 잡아당겨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아!”임서율은 고통스러워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야구 모자를 쓴 남자는 목적을 이룬 듯한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담배 냄새가 배어 있는 거친 손바닥으로 임서율의 희고 투명한 얼굴을 툭툭 쳤다.“뭐 하러 도망쳐? 네 가냘픈 몸으로 우리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그는 턱짓으로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신호를 보냈다.“골목 안으로 데려가.”임서율의 양팔은 두 남자에게 붙잡혀 어두운 골목으로 끌려갔다. 그녀가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을 쳐다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곳은 마치 거대한 심연 같았고 두려움은 덩굴처럼 얽혀 숨조차 쉬기 힘들어 큰 소리로 거리에 외쳤다.“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그녀의 절망에 찬 목소리는 밤거리에 울려 퍼졌지만 남자들과 맞설 수 없어 아무리 필사적으로 외쳐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임서율의 마음은 마치 깊은 골짜기로 떨어진 듯이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다.남자들이 그녀의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끝없는 밤 속의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임서율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렀다.그때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93화

    사장님은 궁금한 듯 물었다.“아가씨, 요즘 무슨 일 있었어요? 남자 친구랑 싸웠죠?”임서율은 이를 악물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이 문신이 이렇게 큰 상처가 될 줄은 몰랐어요.”만약 그녀가 이 나비 문신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나비 문신은 그녀의 운명이자 그녀의 재앙이었다. 사장님은 이 문신이 정말로 임서율에게 큰 문제를 안겨 줬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래도 괜찮아요. 문신을 지우면 인생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임서율은 온몸이 굳어 손등에 핏줄이 일어났고 이마에서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떨어졌다. 그녀는 힘들게 말했다.“네, 제 인생은 곧 다시 시작될 거예요.”두세 시간이 지난 뒤 임서율은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했다. 사장님은 그녀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입술에는 핏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사장님은 그녀에게 물 한 컵을 건넸다.“아가씨, 진짜 대단하네요. 용기 있어요.”임서율은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으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사장님, 감사해요.”“괜찮아요. 요 며칠 물 닿지 않게 조심하고 푹 쉬세요.”계산하고 타투숍을 나서니 어느새 밤은 깊어졌다. 그녀는 한참을 걸은 후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내가 뭐랬어. 저 여자 대답 안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넌 꼭 들이대더라.”“맞아. 저 여자 경찰 부를 뻔했잖아.”“이 밤에 길가에 서 있길래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난 당연히 몸 파는 줄 알았지.”“야, 봐 봐. 저기 예쁜 여자 있어. 진짜 예뻐.”임서율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이미 갔어!”“어서 따라가.”아무리 빨리 걸어도 임서율은 그 남자들을 따돌릴 수 없었고 순식간에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당황한 임서율은 습관적으로 차주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바로 연결되었고 차주헌이 받았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다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92화

    이혜정은 임서율이 식사에 초대됐다는 말을 듣자 경계심이 가득한 눈매로 그녀를 바라봤다.“어떤 친구? 설마 하도원이야?”가방을 들던 임서율의 손은 멈칫했지만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겼다.이혜정의 얼굴은 순식간에 분노가 번졌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임서율, 거기 서!”하지만 임서율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집을 나섰다.평소 우아하고 기품 있던 이혜정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온몸을 떨면서 손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가리켰다.“이... 이게 버릇없게!”장희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사모님, 잊으셨어요? 아가씨께서 입 모양은 읽을 수 있어도 소리는 들을 수 없어요.”그제야 이혜정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보면 볼수록 화가 나. 도대체 누구를 믿고 저렇게 당당한 건지. 예전엔 임씨 가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집의 친딸도 아니잖아.”그러고는 곧장 강수진을 달래기 시작했다.“걱정 마. 임서율이 널 어떻게 하지 못해. 임서율이 예전에 주헌이 때문에 청력을 잃었기 때문에 주헌이가 조금 미련이 남았을 뿐이야. 결국 중요한 건 네 뱃속에 있는 아이야.”강수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난 괜찮아요. 그냥 주헌이 곁에서 아이 잘 낳고 싶을 뿐이에요. 서율 씨랑 다툴 생각 없어요.”이혜정은 흐뭇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넌 정말 속 깊은 아이구나.”임서율은 차씨 가문의 저택을 나서자 문득 눈에 익은 차 한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분명 하도원의 차는 아닌 듯했다. 그가 괜히 차씨 가문에 올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마침 그녀가 부른 차도 도착했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기사에게 타투샵으로 가라고 했다.그녀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장님은 막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다. 며칠 뒤면 그녀는 이곳을 떠나야 하고 그사이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아직 좀 남아 있었기에 더 이상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갑에서 몇 장의 지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