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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도도화
“너 입사 기념 선물이라고 하면 이해해 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서율이는 이런 거로 쪼잔하게 화내지 않아.”

차주헌의 말을 들은 임서율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차주헌은 그녀가 마음이 넓다는 것을 핑계로 프로젝트도 팔찌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강수진에게 바쳤다.

이쯤 되니 임서율은 문득 자신이 인생을 잘 못 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이 모두 자신이 바보라서 생긴 것 같았다.

“임서율 씨가 왜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하나 했는데 남편이 애인을 둬서 그런 거였네요.”

그때 바로 옆에서 장난기가 살짝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하지만 그때 신발이 카펫에 걸려버렸고 그녀의 몸은 중력을 따라 뒤로 넘어가 버렸다.

임서율은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을 예상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몸이 반쯤 넘어가던 그때 누군가의 단단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덥석 잡아버렸다.

임서율은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느끼며 살았다는 표정으로 하도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하도원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을 다시 거둬가 버렸다.

‘이 남자가 진짜!’

임서율은 이에 이를 꽉 깨물며 하도원의 옷깃을 확 낚아챘다. 그 행동으로 하도원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의 허리를 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도원의 가슴팍에 그대로 돌진해버린 임서율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하도원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내 품이 생각보다 따뜻한가 보죠?”

“!”

임서율은 그 말에 그제야 가슴을 퍽하고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첫인상도 그러했지만 하도원은 정말 호감이 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방금도 그가 손을 거둬들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어요. 죄송해요.”

임서율은 하도원이 괘씸해 조금 새침한 말투로 사과했다.

하지만 말을 다 내뱉고 난 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금세 다시 태도를 바꾸며 미소를 지었다.

“하 대표님도 이제 제 상황이 어떤지 보셨으니 아시겠네요. 저는 성운에서 보낸 스파이가 아니에요. 정말 진심으로 도와드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하도원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느긋한 말투로 답했다.

“임서율 씨와 차 대표가 짜고 연기하는 걸 수도 있죠.”

임서율은 생각보다 더 의심이 많은 그의 태도에 속으로 질색했다.

이 정도의 의심병이면 자기 아내가 외간 남자와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바람이라고 확정 지을 게 분명했다.

‘누가 이런 남자랑 결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불쌍하다.’

“제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죠. 그리고 그렇게 의심스러우시면 하 대표님이 직접 한번 조사해보세요.”

강수진과 차주헌이 과거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했는지는 조금만 알아봐도 나오는 얘기였다.

하도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프로젝트, 만약 재호가 뺏어오면 차 대표는 분명히 조사를 진행할 거고 그렇게 되면 임서율 씨의 행동도 금방 드러나게 될 겁니다. 또한 소식이 새어나가면 임서율 씨는 물론이고 재호도 휘말리게 되겠죠. 어쩌면...”

하도원은 말끝을 흐리더니 갑자기 앞으로 다가오며 임서율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임서율 씨가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헛소문도 돌게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장난기가 조금 어린 말투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하도원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임서율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스크가 따른다고 해도 그녀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녀에게는 엄마의 소원이 더 중요했으니까.

임서율은 단호한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 대표님은 그저 프로젝트로 얻게 되는 수익에만 집중해 주세요.”

사실 임서율이 굳이 하도원을 찾아간 건 그가 성운 그룹의 라이벌 회사 대표인 것도 있지만 더 많게는 하도원이 차주헌을 겁낼 만한 사람으로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하도원은 천천히 자세를 바로 하더니 갑자기 피식 웃으며 임서율을 불렀다.

“임서율 씨.”

“네.”

“임서율 씨 남편분이 우리 쪽을 보고 있는데.”

임서율은 그 말에 하도원의 시선을 따라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말 차주헌이 이쪽을 정확히 바라보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 흠칫했다.

차주헌은 임서율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가 그녀 옆에 서 있는 하도원을 본 순간 바로 표정을 굳혔다.

한편 차주헌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한 강수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임서율의 앞으로 다가왔다.

“서율 씨도 참석하는 줄 알았으면 저는 오지 말 걸 그랬어요. 아, 오해하지 말아요. 대표님이 함께 갈 파트너가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온 거니까.”

강수진은 서툰 수화를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말을 하다 자기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 생각했는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임서율은 그녀의 행동에 마치 스스로가 착한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계모가 된 듯했다.

차주헌은 임서율의 눈빛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쉬라니까 왜 나왔어.”

임서율은 순간 그의 말이 걱정인지 책망인지 구분이 서지 않았다.

“내가 대학교 때 디자인 했던 팔찌가 오늘 경매에 나온다길래 한번 와봤어. 너한테 연락하려고 했는데 회사일 때문에 바쁠 것 같아서. 그래서 혼자 왔어.”

강수진은 그 말에 얼른 손목을 숨기려다가 임서율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그거 내가 디자인한 팔찌 아니에요? 근데 그게 왜 강수진 씨한테 있는 거죠?”

임서율이 강수진의 손목을 낚아채는 바람에 빼도 박도할 수 없게 되었다.

하도원은 팔짱을 끼며 눈 앞에 펼쳐진 연극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고 임서율은 강수진의 손목을 잡은 채로 몇 초간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며 차주헌을 바라보았다.

“알았다. 이거 서프라이즈지? 나한테 이 팔찌 주려고 일부러 급한 일 때문에 나간다고 한 거구나.”

차주헌은 멍하니 있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들켜버렸네? 네 말대로 몰래 낙찰받아서 너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한 거야. 수진이가 차고 있었던 건 전주인이 팔찌를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것 같길래 괜찮나 한번 차보라고 한 거고.”

임서율은 예쁘게 웃으며 차주헌과 강수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수진 씨, 고마워요. 괜찮아 보이는 것 같으니까 팔찌 주세요.”

강수진은 표정이 확 어두워져서는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아주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느릿느릿 팔찌를 빼고는 임서율에게 건네주었다.

임서율은 만족한 듯 바로 손목에 차보더니 일부러 더 보란 듯이 두 사람 앞에서 손목을 흔들었다.

“어때? 잘 어울려?”

“당연하지. 딱 율이 네 거야.”

차주헌은 늘 그렇듯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 하 대표님 아니세요? 근데 왜 서율 씨랑 같이 있어요? 혹시 두 사람 서로 아는 사이에요?”

그때 강수진이 갑자기 하도원을 바라보며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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