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빠 덕분에 나노기술에 대한 자료를 먼저 살펴봐서 대비할 수 있었어요.” 하연이 미리 자료를 보지 않았다면, 정말 구완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회의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오빠, 그럼 우리 이 프로젝트를 계속 TY그룹과 협업하는 거예요?” 상혁은 손을 뻗어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눈빛이 마치 사랑하는 보물을 보는 듯 부드러웠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협업은 협업이고 사적인 원한은 사적인 원한이죠! 공과 사는 분리해야 해요.” 그러자 상혁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협업이 가능할지는 TY그룹의 성의를 한번 보자. 그건 그렇고 하연이 네게 한 가지 할 얘기가 있어.” 하연이 눈을 들어 상혁을 올려다보았다. 하연의 눈은 마치 바닥이 보이는 연못처럼 맑았고 그 눈을 바라보는 상혁은 자신의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할 말은 해야 지!’ “네가 앞으로 날 부르는 호칭을 바꿔주면 좋겠어!” 하연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고 이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상혁이 계속 말했다. “앞으로 나를 그냥 상혁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말도 편하게 놓고.” 하연의 눈빛이 빛나며 의아해했다. “상혁?” 상혁은 하연이 부르는 호칭에 만족했다. “응, 그렇게.” 하연은 잘 적응이 안 됐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지만 오빠라는 호칭과 말투가 이미 습관화되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어서 한순간에 바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적응이 안 돼.” “그럼 천천히 적응하려고 해 봐. 언젠가 습관이 될 거야.” 그러자 상혁은 후련한 듯 표정이 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상혁이 먼저 하연의 손을 잡았다. 하연은 상혁의 손이 매우 크고 따뜻하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 서준의 것과 달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상혁은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렇게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던 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옆에 있던
“아무리 최 사장님이라 해도 분명 대표님 일에는 신경 쓰실 거예요.”예전의 하연이라면 분명 서준의 일에 질투하고 화도 내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뀐 것만 같았다.서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모두 숨긴 채 말했다.“가자, 구 실장.”서준은 이미 발걸음을 내디뎠다....DS 그룹으로 돌아온 하연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불청객을 맞게 되었다. 이미 DS 그룹과 TY 그룹의 합작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호현욱은 기쁜 마음에 하연의 사무실로 달려와 시비를 걸었다.“최 사장님, 며칠 못 본 사이에 많이 초췌해지신 것 같네요. 그동안 일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 봐요.”호현욱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하연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호 이사님은 정말 한가하신가 보네요. 저한테 따로 찾아와서 할 말이 고작 그거였다니.”호현욱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 책상 앞으로 다가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젊은이들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문제에요! 계약은 하루 이틀에 해결할 만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TY 그룹과의 합작이 무산되어 아쉽긴 하네요.”하연은 하던 일을 멈추더니 서류를 닫은 후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호현욱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호 이사님은 정말 소식이 빠르시네요. 하지만 기뻐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호현욱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최 사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가 약속한 시간은 1년이니 벌써부터 걱정하긴 너무 이른 것 같네요. 전 그저 최 사장님과 DS 그룹이 걱정되었던 것이니 제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셨으면 좋겠네요.”“30%의 업적은 그리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안 좋은 일을 겪을 수도 있죠. 전 그저 최 사장님께 건의를 한 것뿐입니다.”호현욱은 여전히 하연을 얕보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슈트를 정리하며 계속 말했다.“젊은 분들은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더 중요하죠. 이번 일로 저희 최 사장님이
정기태는 계약서를 하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그럼요, 이것 보세요.”하연은 TY 그룹이 이렇게 성의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일단은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 하죠. 구체적인 계약 사항은 다음 회의에 정하는 걸로 합시다.”“네, 사장님.”계약이 성사되자 하연은 그제야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려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서류를 보았다.일에만 몰두하던 하연은 누군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예나는 눈앞의 하연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일에 이렇게까지 몰두할 줄은 몰랐네.’예나는 사무실 책상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책상을 두드렸지만 하연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정 비서님, 커피 한 잔 타오세요.”예나는 말문이 막혔다. 하연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자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예나야, 네가 왜 여기 있어?”예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나 말고 누군 줄 알았어?”하연은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나의 팔을 붙잡았다.“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난 정 비서님인 줄 알았지.”예나는 두 손을 벌린 채 말했다.“전화했는데 아무도 안 받아서 온 거야.”하연은 그제야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여러 개의 부재중 전화를 보자 하연은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미안해!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놔서 전화 온 줄 몰랐어.”이를 본 예나는 더 이상 하연을 탓하지 않았다.“됐어, 이 일벌레야! 도대체 얼마나 바쁘길래 그동안 가게에 한번 와보지도 않았던 거야!”하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미안해, 예나야...”하연의 초췌한 안색을 본 예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됐어, 이만 용서해 줄게. 요즘 피부가 왜 이렇게 나빠진 거야? 나랑 같이 미용실에 가지 않을래?”하연은 이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최근에 피부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아 피부가 나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 피부 관리 좀 해야겠어.”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예나와 함께 부근
“참, 듣자니 며느리분께서 옷 가게를 열었다던데 옷 디자인들이 매우 참신해서 장사가 엄청 잘 된다면서요.”“사모님, 며느리한테 옷 구경하러 갈 테니 손님들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해 주시면 안 돼요?”...이수애는 여자들의 말을 듣자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전에 그녀는 줄곧 하연을 무시하며 하연에게 지나친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아들과 이혼하게 만들었다.그런데 하서의 진짜 신분이 세계 최고 부자의 손녀라니.이수애는 전에 했던 행동들이 미친 듯이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연에게 분명 잘해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사모님, 말씀 좀 하시지요? 된다면 제가 친구들을 더 불러 며느리분의 장사를 돌봐드릴게요.”이수애는 가볍게 기침하며 난처한 표정을 숨겼다.“전 애들 일에 참견하지 않기로 했거든요...”“아이고, 그래도 사모님의 며느리신데 말만 한마디 하시면 뭐든 동의하지 않겠어요?”“며느리는 그래도 어머니의 체면은 세워주겠죠, 안 그래요? 설마 며느리조차 어려워하시는 거예요?”여자들은 모두 이수애의 자존심을 짓밟으려고 안달이 났다. 만약 이 여자들과 사이가 틀어진다면 앞으로 이수애는 친구조차 없게 될 것이다.이수애는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의 말은 들어야죠. 가게에 가보고 싶다는 거죠? 제가 시간을 마련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죠.”“사모님, 며느리분이 꽤나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고 들었는데 절 위해 옷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이수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물론이죠, 직접 디자인하라고 제가 말해놓을 게요.”“역시 사모님이에요. 그렇다면 며느리와 사이가 엄청 좋으신가 봐요?”이에 이수애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줄곧 친구들 앞에서 하연을 욕했었는데 지금 하연이 없는 틈을 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럼요, 저랑 며느리는 항상 사이가 좋았어요. 제가 늘 친딸처럼 아꼈었거든요.”이 말을 듣자 예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정말 파렴치한 인간이야. 예전에 너한테 그
“하연 씨도 여기 계셨네요?”그중 한 여자가 하연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저희는 하연 씨의 시어머니와 함께 관리받으러 왔거든요. 방금 하연 씨의 가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요.”하연은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여자는 허씨 가문의 사모님이다.“사모님께서 저희 가게에 와주시는 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수애 씨는 이제 더 이상 제 시어머니가 아닌 데다가 저희 사이가 그렇게 좋진 않습니다.”하연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이 말은 이수애의 체면을 잃게 만들었다. 그녀가 방금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다.여자는 하연의 말에 곧 사과하며 말했다.“참, 제가 깜빡했었네요. 하연 씨, 실례를 범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여자는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연이가 훨씬 어렸지만 여자는 줄곧 하연의 앞에서 예의를 갖추었다.나머지 여자들도 하연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이수애와의 관계를 내팽개쳤다.“하연 씨, 저희도 한씨네 사모님과 우연히 만난 거예요. 절대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앞으로 저희는 절대 한씨네 사모님과 가까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한씨네 사모님이 줄곧 하연 씨를 괴롭혀 왔으니 이건 업보일 뿐입니다.”...이수애는 화가 치밀어 올라 여자들을 노려보았다.“하연 씨, 저희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몇몇 부인들은 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이때 하연이가 그녀들을 불러 세웠다.“잠깐만요.”여자들은 서로 쳐다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하연 씨, 또 무슨 일 있나요?”하연은 어두운 안색을 보인 이수애를 보자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 이건 모두 눈앞의 여자들 덕분이다.하연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사모님들이 제 가게의 옷을 좋아하신다면 언제든지 찾아주셔도 됩니다. 오시면 제가 따로 할인을 해드릴게요.”“정말요?”여자들은 모두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자기들에게 주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연은 긍정적인 대
“하연아.”이수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예전의 일들은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서준이는 아무 잘못 없어. 서준이는 아직도 널 마음에 품고 있을 거야. 혹시 우리 서준이랑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어? 이번엔 내가 절대 두 사람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게!”“정말 뻔뻔하시네요.”예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말했다.“전 세계의 남자가 모두 죽었다고 해도 저희 하연이는 당신 아들과 안 만날 겁니다. 그러니 다신 이런 말씀 꺼내지 마세요.”하연은 이 말을 듣자 몰래 예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사모님, 오늘 하신 말씀은 우스갯소리로 넘어갈게요. 그러니 다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세요.”이수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하연이가 이렇게 대답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연의 모습은 예전과 너무 달랐다.이수애는 매우 기분이 불쾌했다. 그녀는 몰래 손을 가방에 넣은 후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이다.“최하연, 넌 정말 우리 서준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 거야?”이수애는 포기하지 않고 한마디 물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하연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난 3년간, 하연이가 서준을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서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절대로 한순간에 식어버릴 마음이 아니었다.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예전에는 서준을 떠올리면 늘 감정 기복이 심했다. 서준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연의 심장은 여전히 서준을 떠올리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을 떠올리면 그냥 낯선 사람을 떠올 리 듯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사모님, 사람은 모두 변하는 법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 절대 제 선택에 회하지 않습니다.”하연은 매우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서준 씨는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들이겠지만 저한
“아들 넌 엄마 편이어야 해! 아들... 여보세요? 엄마 말 듣고 있어?”전화는 이수애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끊겨버렸다. 화가 잔뜩 난 이수애는 곧바로 핸드폰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최하연, 이 여우 년!”이수애는 화가 난 마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수애는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사모님...”바로 이때 임서희가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수애는 낯선 얼굴에 입꼬리를 움직이며 물었다.“누구시죠?”“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최하연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하연을 언급하자 이수애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차갑게 물었다.“최하연 그 여우 년과 아는 사이에요?”그러자 임서희가 말했다.“사모님께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전 사모님과 차라도 한잔하며 최하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임서희가 수상해 보였지만 이수애는 하연을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좋아요, 어디로 갈까요?”임서희는 장소를 고른 뒤 이수애를 데리고 떠났다....미용실에서 나온 하연은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이전에 하연은 서준을 위해 늘 참고 양보했었지만 이번엔 자기만을 위해 당당하게 나섰다.회사로 돌아온 하연은 계속 바삐 일하다가 퇴근시간이 되여서야 손에 든 서류를 모두 확인하였다.“정 비서님, 이 자료들을 각 부서에 나누어 주세요. 내일 아침 회의에 사용할 자료들입니다.”하연은 지시를 내린 후에야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오늘 또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최근 하연은 줄곧 야근을 했기에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정기태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입을 열었다.“사장님, 회사 일은 이만 내려놓으시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괜찮아요, 마저 처리하고 돌아가도 늦지 않아요.”정기태는 결국 하연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은 서류들을 보관하였다.하연이가 모든 일을
“그래요? 또 뭐라고 하셨는데요?”하연의 이런 태도는 서준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전의 하연은 줄곧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엄청 차가운 모습이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진짜 하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하연아, 내가 DS 그룹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 지금 네 실적을 높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네가 필요하다면 HT 그룹은 얼마든지 널 도와줄 수 있어.”서준은 분명 하연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괜찮아요.”하연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다른 일 없으시다면 이만 비켜주시죠.”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하연에게 물었다.“넌 지게 될지라도 내 도움은 절대 안 받겠다는 거야?”‘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지게 되다뇨? 전 절대로 지지 않을 겁니다. 한서준 씨, 저흰 이미 이혼한 사이고 HT 그룹과 DS 그룹은 경쟁 관계이니 굳이 절 도와주려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넌 아직도 고집이 엄청 세네.”하연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엑셀을 힘껏 밟았다. 서준은 깜짝 놀랐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본 하연의 차가운 얼굴은 엄청나게 낯설었다.“최하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준이가 입을 열었다.“비키세요.”서준이가 비켜주지 않자 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서준의 람보르기니를 들이박았다. 쾅-커다란 충돌 소리와 함께 서준의 몸은 세게 흔들렸고 람보르기니에는 깊은 자국이 생겼다.“최하연, 너 정말 미쳤어?”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연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하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한 번만 더 제 차를 막으신다면 더 세게 박을 겁니다.”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린 후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섰다.이건 분명 도발이다.서준은 화가 난 마음에 핸들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최하연, 정말 독한 여자야.”백미러를 통해 점점 사라지는 서준을 보자 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조차도 왜 그렇게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것인지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