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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운축
30분 후, 이든 별장.

정채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권나율이 잠옷 차림으로 기운 없이 침대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곁에는 장미정만 있었고, 권예준은 보이지 않았다. 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

인기척을 들은 권나율이 베개에 파묻혀 있던 창백한 얼굴을 들어 정채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꾹 참아 왔던 서러움이 그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권나율은 눈물을 흘리며 정채윤을 불렀다.

“엄마, 저 너무 아파요. 왜 제 문자에 답장을 안 한 거예요...”

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더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곧장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권나율을 품에 안고 달랬다.

정채윤은 권예준이 아마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람을 시켜 권나율을 돌려보내고, 자신은 아주 편하게 안하린과 데이트를 즐기러 갔을 거라고 추측했다.

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정채윤은 땀에 젖은 딸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부드럽게 물었다.

“약은 먹었어? 아직도 많이 아파?”

권나율은 이제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서러웠을 뿐이었다. 정채윤의 품에 파고들어 안겨 있으니 서러움도 한결 가셨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엄마가 아직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과, 엄마의 품이 정말 향기롭고 편안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안하린의 품보다도 훨씬 편안했다.

물론 안하린의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가 화낼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엄마와 사이좋게 함께 있고 싶었다.

권나율은 정채윤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약 먹었어요. 이제는 별로 안 아파요. 그냥 엄마가 끓여준 죽이 먹고 싶어요.”

정채윤은 알겠다고 한 뒤 딸을 위해 죽을 끓이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차분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권예준이 돌아온 것이었다.

권나율은 문 쪽을 바라보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정채윤은 잠시 당황했다.

권예준은 권나율의 부름에 짧게 대답했지만 정채윤은 쳐다보지도,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권예준은 다가가 권나율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아직도 아파?”

권예준이 가까이 다가오자 정채윤은 은은한 향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권예준이 고개를 숙였을 때는 셔츠 깃에 옅은 립스틱 자국이 하나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흔적이 선명한 걸 보니 아까 입맞춤을 하면서 묻은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런 은밀한 위치라니. 분명 안하린이 권예준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남긴 흔적일 것이다.

정채윤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권예준의 싸늘한 시선이 정채윤에게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놓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권예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안고 있을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채윤은 굳은 표정으로 권나율을 놓아주려 했다. 그런데 놓아주자마자 권나율이 기다렸다는 듯이 권예준에게 달려가 안겼다.

정채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침대에서 일어나 두 부녀를 바라보았다.

권나율은 고개를 들고 정채윤에게 말했다.

“엄마, 이따가 죽을 끓일 때 대추도 넣어줘요. 저 대추 먹고 싶어요.”

“그래.”

그렇게 대답한 뒤 정채윤은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권예준이 돌아왔으니 잠시 후 권나율이 잠들고 나면 이혼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

주방에 도착한 정채윤은 익숙하게 쌀을 씻고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4, 5년 동안 해 온 일이었기 때문에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죽은 30분 만에 완성되었다.

정채윤은 그릇에 죽을 담아 트레이를 올린 뒤 2층으로 가져갔다.

문 앞에 도착해 보니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때 권나율의 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미워요. 하린 이모랑 같이 있으면서 왜 저는 데려가지 않고 밥 먹고 나서 바로 저를 집으로 돌려보낸 거예요?”

정채윤의 발걸음이 멈췄다.

권예준이 딸을 달랬다.

“아빠는 일 때문에 하린 이모랑 같이 회사에 갔었어. 다음에는 꼭 나율이도 데려갈게.”

“흥.”

권나율은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권예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조금 있다가 아빠가 하린 이모를 불러서 나율이랑 같이 있게 해줄까?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아?”

권나율은 잠시 멈칫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에서 조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안하린이 오면 엄마가 안하린에게 화를 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하기로 했다.

‘짜증 나. 엄마는 왜 하린 이모한테 잘해 주지 않는 거지?’

권나율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권예준이 딸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같이 하린 이모 만나러 갈까? 그거면 되겠어?”

그 말을 듣자 권나율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정말요? 좋아요!”

“...”

정채윤은 문밖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몸이 굳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죽그릇을 들고 있었다.

뜨거운 죽의 열기가 손가락을 달구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정채윤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굳은 듯 서 있던 정채윤은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권나율은 엄마를 보자 입술을 살짝 내밀며 눈치를 살피더니 정채윤이 화를 내지 않자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엄마가 먹여줘요.”

정채윤은 덤덤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아빠한테 먹여달라고 해... 아빠가 안고 있는 편이 편할 테니까.”

권예준은 정채윤을 힐끗 바라봤다.

권나율은 조금 실망했다.

정채윤은 그동안 한 번도 권나율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특히 권나율이 아플 때면 어떤 요구든 들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래도 권나율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알겠어요.”

정채윤은 짧게 대꾸한 뒤 죽그릇을 권예준에게 건넸다. 권예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권예준 역시 정채윤을 더 바라보지 않고 그릇을 받아 권나율에게 죽을 먹였다.

권나율은 얌전히 죽을 받아먹었다. 죽을 먹고 나니 잠이 몰려왔고, 이번에는 정채윤에게 목욕을 시켜 달라고 했다.

정채윤은 거절하지 않고 딸을 씻겨 주고 머리까지 말려 주었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는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권예준의 모습이 보였다. 통화를 하는 듯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율이는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네 몸이나 잘 챙겨. 그럼 잘 자.”

마지막 말에서 끝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한때 권예준은 매일 밤 정채윤에게 그렇게 말해 주곤 했다. 하지만 결혼한 뒤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만은 아니었다.

안하린을 그토록 사랑하니, 분명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정채윤은 시선을 내려뜨린 뒤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권나율을 재우러 갔다.

권나율은 정말 피곤했던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정채윤은 조심조심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정채윤이 불을 끄고 침실에서 나올 때까지도 권예준은 여전히 안하린과 통화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할 얘기가 매우 많은 듯했다.

그건 지난 몇 년 동안 정채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결혼 2년 차에 권나율을 낳은 뒤부터 정채윤과 권예준 사이에는 딸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대화할 주제가 없었다.

그리고 권예준의 다정함이 많이 사라진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권예준은 안하린에게 한마디를 건넨 뒤 발걸음을 옮겼다. 정채윤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다가 권예준이 서재로 향하는 것을 보자 뒤따라가 입을 열었다.

“권예준, 나 할 말 있어...”

권예준은 그제야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정채윤이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그다지 인내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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