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민은 무심하게 물었다.“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죠?”경민준은 웃었다.“아직 할 얘기가 더 있긴 합니다만...”염성민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인사할 기미가 전혀 없었던 연미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그를 지나쳐 자리를 떴다.염성민은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연미혜에게 시선을 거두었고 경민준이 들고 있는 두 잔의 와인을 발견하고는 물었다.“이게 뭐죠?”“특별 제작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염성민 씨도 한잔 마셔보시겠어요?”염성민이 물었다.“다른 한 잔은 임 대표를 위한 건가요?”“네.”염성민이 말하려던 찰
넥스 그룹의 리셉션은 사흘 뒤에 열렸다.그날 저녁, 하승태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주변에 임지유, 경민준, 염성민 등이 보이지 않아서였는지, 이번 리셉션은 별다른 소란 없이 차분하게 흘러갔다.그날 밤, 참석자는 많았고 연미혜와 김태훈은 쉴 틈 없이 바빴다. 그래서인지 하승태에게 특별히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리셉션 중간에 연창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하승태를 보고서야 그들은 그가 일찍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필이면, 오늘 밤은 임씨 가문 쪽에서도 리셉션이 열리는 날이었다.하승태가 이렇게 일
그럴 경우 경다솜은 경씨 가문에서 새해를 보내야 할 확률이 높았다.허미숙은 마음속으로 경다솜을 떠나보낼 수 없었지만, 동시에 연미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연미혜는 침착하게 할머니에게 말했다.“할머니, 솜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전 괜찮아요.”허미숙은 연미혜가 자신이 걱정할까 봐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다고는 걸 느꼈다.허미숙은 한숨을 쉬며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연미혜와 하여진은 함께 새해 선물을 사러 나섰다.밖은 조명으로 장식되고 친숙한 새해 노래가 곳곳에서 들리며 새해 전야의 분위기가 풍기고
김태훈은 직접 연씨 가문 본가로 가서 폭죽을 전달했다.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고자 연미혜는 하승태에게 연씨 가문 근처의 별장 주소를 알려주었다.오후 두 시쯤, 연미혜는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하승태는 다른 사람이 폭죽을 건네줄 거라 전화로 연미혜에게 알렸다.하지만 차를 주차한 후 연미혜의 눈앞에는 하승태가 서 있었다.“왔어요?”“네.”“트렁크를 열어봐.”연미혜는 트렁크를 열었고 하승태는 폭죽과 설 선물 일부를 트렁크에 옮겼다.연미혜는 선물을 보곤 잠시 말없이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선물은 필요 없을 텐데
“아빠, 지유 이모!”공항을 나와 경민준과 임지유를 본 경다솜은 아주머니의 손을 놓아주고 재빨리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가 두 사람의 품에 안겼다.차에 타자마자 경다솜은 작은 책가방을 뒤적이더니 여행 중 사왔던 장신구를 꺼내 아빠와 이모에게 내밀었다.“아빠, 지유 이모, 제가 선물 사 왔어요.”임지유는 그것을 받아 경다솜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미소 지었다.“다솜아, 고마워.”오늘 할머니는 퇴원했고 경민준과 경다솜은 저녁 식사를 위해 본가 저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공항에서 나와 임지유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에야 경민준
심여정 그들은 집에 도착해 연미혜를 보지 못했고, 모두 그녀가 경민준과 함께 공항에 간 줄 알고 있었다.현재 경민준과 경다솜 둘 다 집에 도착했지만, 연미혜 혼자 없는 것을 발견한 그들은 이 상황이 상당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하지만 아무도 그 자리에 없는 연미혜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일이 아직 안 끝났대.”경준혁은 아무 의심도 없이 다솜과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노현숙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식사 후 경다솜은 한동안 혼자 놀다가 지루함을 느꼈는지 연미혜에게 전화를 걸었다.비록 휴
경다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통화했어요.”경민준은 그녀를 껴안고 손끝으로 그녀의 이마를 문지르며 자신과 비슷한 눈썹과 눈꼬리를 바라보며 물었다.“근데 표정이 왜 안 좋아?”경다솜은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행복해요. 하지만.”엄마랑 전화 통화한 지 정말 오랜만이었고 통화한 후에도 행복한 기분은 여전했다.경민준이 물었다.“그런데?”경다솜은 머뭇거렸다.“근데 또 기분이 좀 이상해졌어요.”“뭔가 속상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경민준은 턱을 치켜들고 웃으며 말했다.“엄마도 다솜이 보고 싶을 거야. 일 끝나면
하승태가 전화를 막 끊었을 때 수연은 초롱을 들고 다시 그에게 달려와 외쳤다.“삼촌, 다솜이랑도 영상통화 하고 싶어요!”하승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영상통화를 걸자 곧 연결되었고, 화면에 다솜의 얼굴이 나타났다..“다솜아, 이것 좀 봐, 초롱이야!”영상에서 잘 보이지 않을지 걱정된 수연은 하승태에게 휴대전화를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그러고는 초롱을 흔들며 조금 멀리 달려가 예쁘게 밝혀진 초롱을 경다솜에게 자랑했다.하승태와 수연은 작은 정원에 있었고, 주변이 어스름해진 덕에 초롱의 불빛은 한층 더 설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 날 아침, 경민준은 임지유, 경다솜과 함께 일찍부터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잠시 후, 하승태와 수연도 도착했다.경다솜이 그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승태 삼촌, 안녕하세요!”“수연아, 와줘서 고마워!”수연이 경다솜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제 곧 경기 시작되잖아. 다솜아, 많이 긴장돼?”경다솜은 고개를 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긴장되긴, 당연히 긴장 안 되지!”하승태는 다른 일정이 있어 경기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수연이를 데려다주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경민준이 그의 사정을 알고 먼저 말했다.
김태훈의 부모님이 자리를 뜬 뒤, 경민준이 물었다.“사모님이랑 얘긴 잘했어?”임지유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 것 같아. 고마워.”임지유는 속으론 생각했다.‘방금 사모님 얼굴 보니까 연미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던데....’사실 세인티와 넥스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태훈이 미리 설명을 해뒀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임지유와 이야기를 나눌 때 울린 전화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화를 미리 녹음해 두고, 자리를 비켜선 후 멀리서 경민준과 임지유 쪽을 슬쩍
임지유는 며칠은 기다려야 소식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경민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김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내일 경매 행사에 참석하신대. 우리도 같이 가보자.”그 말에 임지유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좋아.”다음 날 저녁, 경매장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준은 임지유를 데리고 곧장 김태훈의 부모님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직접 임지유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김태훈의 부모는 이미 경민준과 연미혜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연미혜와 임지유 사이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지현승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염성민이 다시 물었다.“성민아, 철호 아저씨나 아버지 말고,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유명욱 교수님 연락처 아는 사람 또 없어?”“없는 것 같아.”지현승이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근데, 너 전에 임지유 씨가 유명욱 교수님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지유 씨는 교수님이 연락처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한테 직접 연락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임지유 씨가 알아서 연락하지 않았을까?”염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