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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05: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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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가 희미한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가장 먼저 본 얼굴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안드레아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클레어와 헌터의 결혼기념일을 위해 입었던 바로 그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딸의 곁을 단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 보기만 해도 분명했다. 

"레어, 아가." 안드레아는 초조하게 딸에게 몸을 기울여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안도의 눈물이 왼쪽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녀는 클레어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곧바로 어깨 너머를 향해 외쳤다. "도미닉, 클레어가 깨어났어요!" 

그녀는 다시 딸을 바라보았다. 눈가의 머리카락을 치워 주며 미소 지었다. "지금은 좀 어때, 자기?" 

그녀는 부어오른 입술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클레어는 그저 어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자 자신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억상실증을 앓는 사람에게 기억이 천천히 돌아오듯, 모든 일이 서서히 머릿속으로 되살아났다. 

뜨겁고 생생한 고통이 가슴에 자리 잡았다. 클레어는 남편이 결혼기념일 파티를 열기로 했던 호텔 밖에 자신을 버려두고 떠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2년 동안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여자와 함께 그녀를 떠났다. 

클레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모님의 집에 있는 자신의 침실이었다. 붉게 칠해진 벽은 그녀의 혈관 속을 뛰는 피를 닮아 있었다. 

그녀가 이불을 걷어내려던 순간, 아버지와 콜, 오빠 스콧, 그리고 시부모님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클레어." 아버지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내 사랑, 네가 깨어난 걸 보니 정말 너무 안심이 된다. 넌 정말 내 심장을 멎게 할 뻔했어."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의 턱을 쓰다듬었다. "공주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 

그 말에 그녀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다. 

"넌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것도 나한텐 처음부터 이기적인 개자식 이상으로 보인 적 없는 놈 때문에!"

도미닉은 맥킨타이어 부부와 헌터의 부모가 같은 방에 있는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딸은 마음이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클레어의 이마에 여러 번 입을 맞췄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걱정했다. 클레어는 그의 공주였다. 그녀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며 4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딸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 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클레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은 너무나 아팠다.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뛰고 있었다. 

헌터가 자라와 함께 떠나는 장면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클레어는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정신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워 비틀거렸다. 

"레어, 너 지금 뭐..." 도미닉은 클레어가 고개를 들자 숨이 턱 막혀 말을 멈췄다. 

"아빠, 보내 주세요. 헌터와 이야기해야 해요." 

"또 그 소리냐!" 도미닉은 거의 소리쳤다. "왜 자꾸 그 개자식 이름만 되뇌는 거야? 그가 그런 짓을 하고도 넌 그를 쓸모없는 비닐 포장지 버리듯 인생에서 내던져야 해. 그럴 가치도 없는 놈이야. 난 널 못 가게 할 거다." 

헌터의 가족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모욕을 심하게 당했지만, 그럴 만한 일을 했다고 느꼈기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클레어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자신을 끔찍이 아껴 주던 남편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무심하고 냉정한 인간으로 변했는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벽을 짚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리는 힘이 풀려 있었고 몸은 고통으로 무감각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힘겹게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 가도 그 사람은 없어, 레어." 아버지의 말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클레어는 눈물 맺힌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도미닉은 그녀에게 다가와 한숨을 쉬었다. "전 여자친구와 함께 떠난 남자가 집으로 돌아오겠니. 아마 호텔 방 하나에서 씨..." 그는 눈물이 눈을 태우듯 차오르자 말을 삼켰다. 

“그냥 돌아오렴, 클레어.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좋은 남편을 찾아줄게. 정말 맹세한다.” 

클레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빠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집에는 죽은 듯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한때 그녀의 웃음소리와 신음으로 활기차게 가득했던 집은 이제 어둡고 집다운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마치 새로 파낸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시체처럼 느껴졌다. 걸어 다니는 시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녁에 떠났을 때 그대로였다. 클레어는 거실로 힘겹게 걸어 들어갔고, 그곳에는 가정부 테아가 있었다.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쉰 살의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클레어를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맥킨타이어 부인." 테아는 그녀가 거의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달려왔다. 

클레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그녀는 손을 대기 직전에 그대로 멈춰 섰다. 

"헌터가 집에 돌아왔나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가정부는 발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부인." 

클레어는 그녀를 물러가게 한 뒤 소파에 앉았다. 새벽 네 시 십 분이었다. 공기는 차가워져 있었다. 어깨와 팔이 드러난 채였기에 얼음이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듯했지만, 몸을 덥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 2년간의 관계를 되돌아보았다. 

그 2년 동안 헌터는 그녀에게 무심하고 차가웠다. 결혼 첫날 밤이 되어서야 그녀는 그에게 이 결혼이 편의를 위한 결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키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와 고통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무심하고 냉담하게 굴며 직접 그녀를 벌주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어 둔 채 그 문만 바라보며 기다렸다.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남편을 애타게 기다렸다. 

해가 수평선 위로 첫 햇살을 비추기 시작할 무렵, 도착한 자동차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거실은 천천히 빛으로 밝아졌다. 발소리가 들리자 클레어는 등을 곧게 세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계속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헌터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자 가슴이 떨렸다. 그는 지쳐 보였다. 마치 아내가 죽기라도 한 사람처럼 비탄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든 것은 아내를 잃은 슬픔이 아니었다.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며 그녀를 버려두고 떠난 행동이야말로 그가 그녀를 한 번도 아끼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헌터가 그녀를 알아차리자 클레어의 신경은 아드레날린으로 곤두섰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오늘 그의 눈빛에는 그녀와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그렇게 실망시킨 남편이라면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그녀의 양심이 비웃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힘없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그의 앞에 다다랐을 때 거의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헌터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균형을 잡으려고 그의 어깨를 붙잡은 클레어의 손은 그의 뜨거운 몸에 닿자 열기를 느꼈다. 

그녀를 똑바로 세워 준 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입술의 상처를 본 순간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말을 하자 심하게 베인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흘렀다. 

"자라는 어때?" 그녀가 묻자 그는 시선을 돌렸다. 

헌터의 반응에 클레어는 비웃듯 웃었다. 

"내가 그 여자 안부를 물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 남편을 빼앗아 간 여자한테 왜?" 헌터는 이를 악물며 턱을 굳게 다물었다. 

"클레어, 자라를 이 일에 끌어들이지 마. 내가 떠난 건 그녀 잘못이 아니야." 그는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지만 클레어는 손바닥을 들어 그를 막았다.

2년 만에 돌아온 그 여자를 그가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의 가슴은 고통으로 떨렸다. 반면 지난 2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켜 온 여자, 그의 아내는 상심으로 무너지고 있는데도 그는 그것은 보지 못했다. 

"오늘은 내 말을 들어, 헌터. 그냥 내 말을 들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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