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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

Author: 선희
손님이 꽉 들어찬 고깃집에는 진한 연기가 들어찼다.

긴 웨이브 진 머리를 간단히 틀어올리고 하얀 목선을 드러낸 신연지의 모습은 청순하면서도 여성미가 넘쳤다.

그녀는 메뉴판을 보며 옆에 있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직원을 호출했다.

고연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박태준에게 말했다.

“네 마누라 너 없어도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박태준은 말없이 룸을 나섰다.

맥주가 올라오자 이경수는 벌컥벌컥 한캔을 들이켜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연지에게 말했다.

“연지 씨가 정말 실버에요? 거의 구데기가 된 고려 청자기를 복원해 낸 그 실버?”

신연지는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이 질문은 고깃집에 오기 전부터 열 번은 대답한 질문이었다.

허 원장이 이경수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적당히 마셔. 연지 씨, 이 녀석은 신경 쓸 거 없어. 편하게 먹다 가면 돼.”

신연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나왔습니다!”

직원이 큰 소리로 외치며 불판과 함께 메뉴를 테이블에 올렸다.

그때, 신연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수저를 놓고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움찔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전화는 잠시 울리다가 끊었다.

박태준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전화를 늦게 받으면 끊어버리고는 했다.

휴대폰 화면에 문자 알림이 떴다.

화면을 열어 확인해 보니 박태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나와.]

신연지는 인상을 팍 쓰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맞은편 고급 레스토랑 앞에 세워진 검은색 벤틀리를 발견했다.

한정판 차량이었기에 한눈에 박태준의 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신연지는 무시하기로 하고 수저를 들었다.

이경수는 그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있자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러는 줄 알고 큰 고기를 한점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긴장할 거 없어요. 편하게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 다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먹어요.”

신연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첫술을 뜨려는데 박태준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당신이 이쪽으로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그의 불쾌한 기분이 화면을 뚫고 전해졌다.

신연지는 급하게 고기를 한점 집어 입에 넣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원장님, 죄송해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미리 차를 불렀거든요. 기사님이 계속 재촉하셔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허 원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봐. 나도 바로 일어날 참이였어. 나이가 드니까 젊은 사람들 체력을 못 따라가겠더라고.”

신연지는 다른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핸드백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조수석 문이 열리자 신연지는 재빨리 차에 올랐다.

“빨리 출발해.”

박태준은 뭐가 불만인지 잔뜩 똥 씹은 표정을 하고서 여자의 턱을 움켜잡았다.

“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창피해?”

신연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박태준을 노려보았다.

예전에 그가 화를 낼 때면 항상 참아주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혼할 사이에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남자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는 신연지의 도톰한 입술을 노려보다가 손을 뻗어 거칠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고기 맛있었어?”

신연지는 그제야 남자가 기분이 나쁜 이유를 알아차렸다.

하, 남자란 동물은.

자기가 가지긴 싫고 남 주기엔 아깝다는 건가?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맛있었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준이 입술을 부딪혀왔다.

알싸한 담배 냄새와 알코올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박태준의 키스는 그의 성격처럼 거칠고 거침이 없었다.

신연지는 놀라 멀뚱멀뚱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결혼한지 3년이나 됐지만 거의 스킨십이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아예 달랐다.

그녀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남자의 손이 그녀의 옷섶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거친 손길로 그녀의 매끈한 허리를 더듬었다.

신연지는 지금 거부하지 않으면 차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턱에 힘을 꽉 주었다.

“하!”

남자가 거친 숨을 토해내더니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노려보더니 추궁하듯 말했다.

“지금 깨물었어?”

신연지는 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전예은 하나로 부족했나 봐? 장소 안 가리고 발정 난 걸 보면?”

박태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당당하게 반박했다.

“우린 아직 부부야. 욕구는 마누라한테 풀어야 하는 게 맞지.”

신연지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저 거만한 상판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밖에서 똑똑 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바깥에 이경수가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선탠이 잘 돼 있어서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박태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경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게 새로 생긴 애인이야?”

이경수는 명품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디 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박태준에게 그 모습은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신연지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도 전에 박태준은 시선을 고깃집 간판으로 돌리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나랑 이혼하고 새로 만났다는 남자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돼?”

그의 말투에서 진한 경멸이 느껴졌다.

“신연지, 고급 레스토랑 스테이크가 질려서 서민 음식이 궁금했어?”

신연지는 그런 박태준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흔들렸던 지난 날의 자신을 후회했다.

“그래. 박태준 씨는 돈이 넘쳐나서 뭐든 돈으로 해결하잖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고깃집 데이트를 하더라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관심해 주는 사람이라고. 뭐 문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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