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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허수연
공채윤은 진도훈의 실력에 믿음이 갔기 때문에 바로 태도를 달리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신의님, 아까는 제가 무례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남편을 치료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진도훈은 고개를 끄덕인 뒤 가방 안에서 자단목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은침들이 들어 있었다.

침대 앞으로 걸어간 진도훈은 민서웅의 옷을 벗긴 뒤 손을 움직여 빠르게 민서웅에게 침을 놓았다.

진도훈은 침을 놓는 와중에 공채윤과 민아름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인간에게는 삼혼칠백이 있다고 하죠. 명혼을 잃어버리게 되면 인간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돼요. 민서웅 씨의 병은 양의학적으로 봤을 때는 뇌사 상태이지만 사실상 명혼을 잃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제가 예상하기론 아마 며칠 전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네요. 민서웅 씨의 혼백은 많이 약해져 몸을 너무 오래 떠나 있으면 사라지게 돼요. 저는 지금 침술을 통해 민서웅 씨 명혼을 다시 몸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거예요...”

잠깐 사이 진도훈은 민서웅의 몸에 침 36개를 놓았다.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마치 오랜 세월 실력을 다져 온 장인의 손길처럼 보였다.

만약 오랜 경력을 지닌 뛰어난 실력의 한의사가 옆에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진도훈의 손길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그것은 수십 년간 경험을 쌓아오지 않았다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진도훈의 침술이 어떤 침술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진도훈이 지금 선보인 침술은 바로 오래전 실전된, 죽은 자도 되살릴 수 있다고 불리는 음양36침이었기 때문이다.

공채윤과 민아름은 비록 한의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나 진도훈의 손짓을 통해 그의 의술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었기에 그의 실력에 자신감이 생겼다.

음양36침은 일반적인 침술이 아니었다. 그 탓에 진도훈은 침을 다 놓은 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다소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10분 안에 환자의 혼백이 다시 체내로 돌아올 거고 그렇게 되면 환자는 정신을 차리게 될 겁니다. 대신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침을 뽑으시면 안 돼요.”

진도훈은 손을 거두어들인 뒤 민아름에게 말했다.

“화장실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민아름은 진도훈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진도훈은 화장실로 향해 땀을 닦고 세수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도훈이 떠나자마자 옆 서재 문이 열리며 안준혁이 의료팀을 데리고 돌아왔다.

“사모님, 어떻게 치료할지 정해졌으니 지금 바로 저희가...”

안준혁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서웅의 몸에 은침이 가득 놓인 걸 보고 안색이 돌변하더니 침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공채윤이 설명했다.

“신의님께서 침을 놓아주셨어요. 제 남편이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혼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면서 이 침술로 제 남편의 혼백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했죠.”

“신의님이요? 그건 누군가요? 사모님, 그런 사기꾼의 말을 믿으시면 어떡합니까? 혼백이 몸에서 빠져나갔다니,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안준혁이 따져 물었다.

“만약 침술만으로 민 회장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저희 같은 전문의들이 왜 존재하겠습니까?”

공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분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 보였어요. 저는 그분이 상당한 실력자라고 믿어요.”

“사모님, 이성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기꾼들은 사람들을 굉장히 잘 속여요. 환자 보호자들의 신뢰를 얻어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서 미신을 믿게 하죠. 이 침들은 민 회장님의 병을 치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어요!”

안준혁의 말 몇 마디에 공채윤은 겁을 먹었다.

“그러면 어떡하죠...”

“지금 당장 침을 뽑겠습니다!”

안준혁은 그렇게 말하더니 바로 손을 뻗어 침을 뽑아버렸다.

그러나 그가 침을 하나 뽑자마자 줄곧 의식불명 상태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민서웅이 별안간 온몸을 심하게 떨면서 입에 흰 거품을 물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공채윤뿐만 아니라 안준혁까지 식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깜짝 놀란 공채윤은 민서웅의 몸을 누르면서 안준혁에게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기꾼 때문에 민 회장님 상황이 악화한 게 분명해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민서웅의 몸이 잠잠해졌다.

“큰일이에요. 심장 박동이 멈췄습니다.”

“민 회장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의사들이 외쳤다.

안준혁도 덜컥 겁이 났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 사기꾼이 민 회장님을 죽였어요!”

“헛소리하지 마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남편은 멀쩡했다고요. 안 교수님이 침을 뽑자마자 제 남편에게 이런 일이 생겼어요. 그리고 조금 전에 신의님께서는 제게 본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침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깊은 슬픔에 빠진 공채윤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안준혁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그의 뺨을 때렸다.

공채윤은 안준혁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걸 보아냈다.

안준혁은 뺨을 부여잡았다. 그는 놀라기도, 화가 나기도 했지만 찍소리 하지 못했다. 민씨 가문은 엄청난 재벌이었기에 그로서는 감히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진도훈과 민아름은 서둘러 침실로 향했다.

침실 안 상황을 본 진도훈은 이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침을 뽑은 겁니까?”

“저 사람이요!”

공채윤이 안준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준혁은 민서웅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뽑은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민 회장님을 죽인 건 저 청년입니다. 제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교운시 사람들 모두 잘 알고 있어요. 민 회장님은 제 환자인데 저 청년이 제 허락도 없이 민 회장님에게 함부로 침을 놓았고 그 탓에 민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겁니다. 그러니 제 잘못이 아니에요!”

“환자는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당신은 의사로서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지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전가하려고만 하네요.”

진도훈은 안준혁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안준혁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민 회장님은 이미 심장이 멈췄는데 어떻게 구한다는 말이죠? 민 회장님은 원래 뇌사 상태였는데 지금은 심장까지 멎었어요. 심폐소생술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큰소리치지 말아요!”

“실력이 없으면 옆으로 비키세요.”

진도훈은 그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안준혁을 옆으로 밀어낸 뒤 침대 옆으로 걸어가 안준혁이 뽑은 침을 다시 제자리에 놓은 후 두 손가락으로 민서웅의 몸을 여러 군데 눌렀다.

“기사회생!”

마지막 순간, 진도훈은 민서웅의 심장 쪽을 누르며 말했다.

다음 순간, 모두가 놀랐다.

멎었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하면서 민서웅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심장이 다시 뛰고 있어요!”

“세상에!”

“대체 어떻게 한 걸까요?”

공채윤과 민아름, 그리고 안준혁의 의료팀도 전부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라워했다.

안준혁 또한 입이 떡 벌어져서 혼잣말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진도훈은 고개를 돌려 안준혁을 바라보면서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안준혁은 마음을 가라앉힌 뒤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민 회장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 뭐 어떤가요? 민 회장님은 뇌사 상태였고 저희에게는 민 회장님을 살릴 방법이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 때문에 민 회장님은 앞으로 평생 깨어나실 수 없게 됐어요. 그러니 당신은 여전히 민 회장님을 해친 장본인이에요!”

진도훈은 코웃음을 쳤다. 그 순간, 진도훈의 눈에 혼백 하나가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것은 바로 민서웅의 명혼이었다. 그러나 진도훈 이외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진도훈은 손을 뻗어 민서웅의 이마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회혼.”

다음 순간, 민서웅이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여보!”

“아빠!”

공채윤과 민아름은 화색을 드러내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의사들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마치 신을 바라보듯 진도훈을 바라봤다.

안준혁은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 뻔뻔하게 말했다.

“민 회장님, 제게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리셨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지금 안준혁의 머릿속에는 민서웅을 살린 공로를 가로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민씨 가문에서는 민서웅이 의식을 되찾게 한다면 그에게 16억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지금 뻔뻔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썩 물러나세요!”

민아름은 예전부터 안준혁이 아니꼬웠다. 그런데 그가 뻔뻔하게 남의 공을 가로채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그의 뺨을 때렸다.

힘도, 각도도 공채윤과 아주 똑같았다.

안준혁을 따라왔던 의사들은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부끄러워했다.

그들은 명망 높고 존경받던 안준혁이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몰랐다.

안준혁은 수치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다른 의사들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황급히 떠났다.

이때 민서웅은 완전히 의식을 되찾았다.

진도훈은 그에게 놓았던 침 36개를 차례대로 뽑았고, 공채윤과 민아름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민서웅이 의식불명이었던 이틀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민서웅은 진도훈을 바라보며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은 제 은인입니다. 잠시 뒤 제가 감사의 의미로 선생님께서 섭섭하지 않게끔 치료비를 충분히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인데도 민서웅에게서는 상위자로서의 우월감이 느껴졌다. 그는 진도훈에게 돈을 두둑이 챙겨주면 감사하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진도훈은 그 말을 듣더니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은침을 다 뽑은 뒤 침 케이스 안에 은침을 넣고, 침 케이스를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옆에 있던 민아름이 다급히 말했다.

“아빠, 신의님께서는 환자를 치료하신 뒤 치료비를 받지 않으신다고 해요. 그건 오 회장님께서 제게 특별히 당부하셨던 일이에요.”

“치료비를 받지 않는다고? 왜?”

민서웅은 당황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민서웅처럼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는 재벌이라면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들에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진도훈에게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민서웅은 그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셈이다.

신세를 갚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에 민서웅은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민아름이 말했다.

“오 회장님께서 얘기하시길 신의님께서는 환자를 치료하실 때 규칙이 하나 있대요.”

“무슨 규칙? 말해 봐.”

민서웅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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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이건 저희 젊은이들 일이니까 저희 선택을 존중해주세요. 제발 간섭하지 마세요!”여해온은 화가 단단히 난 상태라 서혜영에게 대들었다.“젊은이들 일? 나도 한때 젊은이였어. 내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 결혼이라는 건 인생의 중대사야. 이혼도 마찬가지고. 너희 둘은 연애하다가 결혼한 거잖아. 나는 도훈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옆에서 다 지켜봤어. 해온이 너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해. 도훈이가 얼마나 큰 복덩이인데. 이혼하면 도훈이만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후회하는 건 네가 될 거야!”서혜영은 비록 나이가 꽤 많지만 기세가 넘쳤기에 여해온을 한바탕 호되게 혼쭐냈다.여해온은 화를 내며 말했다.“그만하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니까 할머니는 간섭하지 마세요. 전 이미 이혼하기로 마음먹었어요!”“그래. 이젠 내 말도 안 듣는다 이거지? 아주 머리가 커졌네!”서혜영도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게졌다. 그녀는 순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할머니!”여해온과 진도훈은 동시에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진도훈은 팔을 뻗어 서혜영을 안은 뒤 손으로 서혜영의 등을 몇 번 두드렸고 그 덕분에 서혜영은 겨우 숨을 돌리고 눈을 뜰 수 있었다.“할머니, 괜찮으세요?”여해온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정신을 차린 서혜영은 화가 난 얼굴로 여해온에게 말했다.“아니, 안 괜찮아. 내가 아주 너 때문에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아. 내가 화병으로 죽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도훈이랑 이혼해! 당장!”“안 할게요. 할머니, 그러니까 화 푸세요.”여해온은 서혜영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꾸었다.“진짜?”서혜영은 의심스러운 듯 물었고 여해온은 진도훈을 힐끗 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안 할게요.”“그래. 이혼 안 하면 여전히 내 착한 손녀지.”서혜영이 흐뭇하게 웃었다.그러나 진도훈은 여해온이 이미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 이혼해달라면서?   제25화

    “이 노인네 죽고 싶어? 그렇게 길을 막 건너면 어떡해...”택시 기사는 단단히 화가 나서 차에서 내린 뒤 노인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도훈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겁을 먹어서 입을 다물었다.이때 진도훈이 택시 보닛에서 서서히 손을 뗐다.택시 기사는 보닛에 사람 손 모양으로 깊은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빨리 달렸습니다.”택시 기사는 이내 그들에게 사과했다. 혹시라도 진도훈이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운 듯 말이다.“꺼져요!”진도훈은 그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노인은 진도훈을 발견한 뒤 급하게 그에게 다가가느라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걸었다. 그래도 다행히 진도훈이 보호해 준 탓에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만약 노인이 횡단보도를 걸었고 택시 기사가 노인을 차로 쳤다면 진도훈은 절대 택시 기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택시 기사는 죄를 사면받은 사람처럼 곧바로 차를 타고 물러난 뒤 모퉁이를 돌아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할머니, 괜찮으세요?”진도훈은 몸을 돌려 노인을 부축하여 길가로 향했다. 그는 걱정스럽게 물으며 티 나지 않게 체내의 영력을 노인에게 전달하여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도와주었다.“괜찮아, 괜찮아. 아까는 놀랐는데 도훈이 네가 옆에 있으니 괜찮아졌어.”노인은 웃으면서 진도훈의 손을 잡고 친근하게 물었다.“도훈아, 여긴 어쩐 일이야? 할머니 보러 온 거야?”그 노인은 다름 아닌 여해온의 할머니 서혜영이었다.여해온과 결혼한 뒤로 여씨 가문에서 진도훈에게 가장 잘해준 사람이 바로 서혜영이었다.서혜영은 진도훈을 자신의 친손자처럼 대했고, 안명화 등 사람들이 진도훈을 나무랄 때면 진도훈의 편을 들며 그렇게 까칠하게 굴지 말라고 혼냈었다.서혜영의 자애로운 미소를 보자 진도훈은 그녀에게 여해온과 이혼신고를 하러 왔다고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지금 당장 그가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레 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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