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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허수연
민아름은 진도훈을 힐끗 보더니 그가 자신을 말리지 않자 그제야 말했다.

“천안 용왕은 진료비를 받지 않고 대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것을 대가로 한대요. 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신의님께서 나서시면 저희 민씨 가문은 신의님께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입은 것이기에 앞으로 신의님께서 도움이 필요하실 때가 온다면 최선을 다해 신의님을 도와드려야 한댔어요. 그렇지 않으면...”

민서웅이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민아름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쥐어짜 내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 회장님께서 저희를 하루 만에 길바닥에 나앉게 할 거랬어요.”

“뭐라고? 오 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고?”

민서웅은 너무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민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서웅은 충격받은 얼굴로 진도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오은찬의 친구인 민서웅은 오은찬의 힘과 수단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은찬이 진도훈을 그토록 깍듯이 대하는 걸 보면 진도훈도 예사 인물은 아닐 것이다.

민서웅은 곧바로 자신의 오만함을 거두어들이고 정중하게 진도훈의 앞으로 걸어가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선생님의 규칙에 반드시 따르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필요한 순간이 오신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설령 불구덩이라고 해도 기꺼이 선생님을 위하여 뛰어들겠습니다.”

진도훈은 덤덤히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규칙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제가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은 거의 없으니까요.”

말을 마친 뒤 진도훈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민아름에게 말했다.

“배웅해 주시겠어요?”

진도훈이 떠나려고 하자 민서웅 가족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에게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그를 붙잡았다.

그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교에 능하고 처세술도 뛰어났다.

진도훈은 민서웅의 목숨을 구해주었지만 따로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만약 진도훈이 밥 한 끼도 먹지 않고 떠나버린다면 진도훈이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은찬이 절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진도훈은 의술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오은찬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그와 좋은 인연을 맺어야 했다.

진도훈은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붙잡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오늘 이혼하여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훈이 말했다.

“그러면 식사는 아름 씨와 함께하겠습니다. 민 회장님께서는 이제 막 정신을 차리셔서 몸이 많이 허약하실 겁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외출을 자제하시고 집에서 몸조리를 하세요.”

“좋아요. 그러면 아름이가 저희 가족을 대표하여 선생님과 식사하시는 게 좋겠어요. 둘 다 젊으니 말도 잘 통할 테고요.”

민서웅도 자신의 몸이 약해서 외출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기에 진도훈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는 민아름에게 진도훈을 잘 대접하라고 당부했다.

민아름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한 뒤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진도훈을 차로 안내하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알리나로 가주세요.”

“알리나로 가서 식사하는 건가요?”

진도훈은 당황했다.

알리나는 근 2년 동안 교운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 알리나에서 식사하려면 반드시 그곳의 멤버십 카드가 있어야 하고 가장 기본적인 실버 등급 멤버십 카드의 카드비용만 해도 무려 2천만 원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여해온은 사업이 점점 잘 되면서 알리나 멤버십에 가입하여 가끔 그곳에서 고객들을 대접했다.

그러나 진도훈은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신의님, 알리나는 환경이 좋은 편이에요. 혹시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갈까요?”

민아름은 진도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기에 혹시라도 그가 불만스러워할까 봐 황급히 얘기했다.

“괜찮아요. 그곳으로 가죠.”

진도훈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얘기를 꺼냈다.

“앞으로는 신의님 말고 그냥 용태규 씨 또는 용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러면 용 선생님이라고 부를게요.”

민아름은 진도훈이 본인보다 몇 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용태규 씨라고 부르기엔 조금 겁이 났다.

민아름은 알지 못했다. 용태규는 진도훈의 본명이 아니라 그의 스승님께서 지어주신 별호라는 것을 말이다.

검은색의 벤틀리는 이내 알리나에 도착했고, 그들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화려하게 꾸민 젊은 남자가 기쁜 얼굴로 빠르게 걸어왔다.

“아름이잖아?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그 남자는 차 옆으로 다가가서 미소 띤 얼굴로 민아름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곧 민아름 곁에 앉아 있는 진도훈을 보고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창문을 힘껏 두드리면서 진도훈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이 개자식, 넌 누구야? 누군데 감히 아름이 곁에 앉아 있는 건데? 당장 차에서 내려!”

화가 난 민아름은 차에서 내린 뒤 남자를 향해 호통을 쳤다.

“성태영, 무례하게 굴지 마. 이분은 내 손님이셔!”

“손님은 무슨, 옷 보니까 완전 싸구려만 입었네. 지금 나랑 장난해?”

성태영은 진도훈을 살펴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민아름의 신분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손님은 모두 대단한 지위를 가진 이들일 것이다. 진도훈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일 리가 없었다.

성태영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진도훈을 잡아 차에서 끌어 내리려고 했다.

민아름은 식겁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성태영은 교운시의 재벌 2세로 그의 할아버지가 창립한 세곤 그룹은 교운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을 정도였고 민씨 가문이 운영하는 천우 그룹과 수준이 엇비슷했다.

게다가 성태영의 아버지 성호철은 민서웅과 대학교 동기라 아주 절친한 사이였고, 둘은 민아름과 성태영이 어렸을 때 두 사람을 결혼시킬 거라고 자주 농담도 주고받았었다.

물론 그 뒤로 두 사람은 그 일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지만 성태영은 그 일을 줄곧 기억하고 있었고 계속 민아름에게 구애하며 그녀가 자신의 약혼녀인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진도훈이 민아름의 차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흥분해서 다짜고짜 진도훈에게 화를 낸 것이다.

“성태영, 너 미쳤어? 선생님을 건드리지 마!”

민아름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성태영을 향해 소리쳤으나 성태영은 이미 진도훈의 옷깃을 잡았다.

“이 자식, 당장 내려와!”

성태영의 얼굴이 분노로 벌게졌다.

그러나 그가 온 힘을 다해 진도훈을 잡아당겼음에도 진도훈은 꼼짝하지 않았다.

“놔요.”

진도훈이 싸늘한 눈빛으로 성태영을 바라보면서 덤덤히 말했다.

“감히 그런 눈빛으로 날 봐? 오늘 네 엄마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패줄게!”

성태영은 금수저라 어렸을 때부터 모든 이들이 그를 깍듯이 대했었고 집안 어른들도 그를 크게 혼내지 않았었다.

이때 성태영은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고 진도훈이 사회 밑바닥에 있는 평범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 그의 태도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성태영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이성을 잃고 진도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진도훈은 차갑게 코웃음을 친 뒤 성태영의 손을 잡아 손목을 부러뜨리고 나서 그를 살짝 밀었다. 성태영은 울며불며 난리를 치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차 문을 열고 천천히 차에서 내린 진도훈은 민아름을 힐끗 보면서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미친놈을 친구로 둔 겁니까?”

민아름은 진도훈의 싸움 실력에 깜짝 놀랐고 동시에 그의 태도에 겁이 나서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민아름 씨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가까이 두는 건 민아름 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진도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 뒤 성태영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알리나 쪽으로 걸어갔다.

민아름은 성태영을 힐끗 보더니 화가 난 얼굴로 코웃음을 치고는 빠르게 진도훈을 따라갔다.

성태영은 손목이 부러져서 민아름이 자신을 걱정해 줄 줄 알았는데 그의 예상과 달리 민아름은 그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떠났다.

“빌어먹을 년, 네 소꿉친구는 나인데 나를 버려두고 가? 저 망할 개자식도 마찬가지야. 감히 내 손목을 부러뜨리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성태영은 음험한 표정으로 진도훈과 민아름의 뒷모습에 대고 원망스레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멀쩡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선생님, 이쪽으로 가시죠.”

민아름은 진도훈을 뒤따라가다가 손을 뻗어 진도훈을 예스러운 인테리어에 안에 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강과 대나무가 있는 알리나로 안내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레스토랑의 한구석에서 누군가 진도훈을 알아보았다.

“엄마, 저기 좀 봐요. 저거 형부 맞죠? 형부 처음 보는 여자랑 같이 있는데요?”

그 여자는 여해온과 조금 닮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도훈을 가리키며 옆에 있던 중년 여성에게 말했다.

고개를 돌린 중년 여성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이어 화가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도훈 이 자식, 감히 바람을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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