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이불 사이 선을 넘었다고 사탕 두 알을 압수당한 아침. 그런데 공문 한 장이 모든 걸 바꿨다. 유예 조건은 하나, 멈췄던 관문을 다시 시작할 것. 남은 관문은 마흔세 개. 7관문 담당자는 하필 무장승의 전 정혼자 길례였다. 그녀가 내민 건 빈 유리병 하나, 일곱 모금의 생명수 중 첫 번째 모금을 아버지에게 직접 전하는 관문이었다. 그리고 자판기 앞에서 길례가 꺼낸 이야기. "그분이 잠꼬대로 부르던 이름이 있어요. 바리 씨의 이름은 아니었어요." 오랜 세월을 건너온 그 이름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섯 시 정각입니다. 입회인 길례, 봉인을 해제합니다."접견실 로비는 새벽빛으로 푸르스름했다. 진열장 유리 안에는 놋쇠 숟가락 하나와 낡은 사기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릇 가장자리가 이가 빠져 있었다. 맞은편 의자 열두 개에는 관측 본부 위원들이 앉았다. 얼굴을 가린 사람도, 맨얼굴인 사람도 있었다. 한 본부장은 맨 끝자리에서 찻잔을 든 채였는데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해온과 하령은 휠체어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강휘는 보이지 않았다.길례가 봉투의 밀랍을 엄지로 눌러 깼다. 안에서 꺼낸 종이를 접은 채 가슴에 안았다."피검사자 무장승 팀장, 앞으로."무장승이 진열장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정장 단추를 끝까지 채웠고 넥타이도 반듯했다. 바리는 한 걸음 뒤에 섰다. 손바닥이 서늘하게 젖어 있었다. 로비 끝 기둥 뒤에서는 덕순이 사탕 봉지를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그 옆에서 도윤이 입모양으로 '파이팅'을 만들었다가 위원 하나와 눈이 마주쳐 기둥 속으로 사라졌다. 국장은 낚시 조끼 대신 정장을 입고 와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은숙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겨 조용히 시켰다. 바리는 그 광경에 입꼬리가 잠깐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갔다. 웃을 자리가 아니었다."문제를 읽겠습니다. 이 그릇의 주인이 이름을 말하십시오. 시간은 십 분. 그릇은 만져도 됩니다."위원 한 명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로비에 초침 소리가 퍼졌다. 무장승이 유리 문을 열었다. 사기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이 빠진 가장자리를 천천히 훑었다.일 분. 이 분. 삼 분.그는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그릇을 코끝에 가져다 댔다. 식은 국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듯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바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규정이 그랬다.오 분. 육 분."...그릇이 차갑소."무장승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눈 속을 걸어왔소. 그 사람은 국이 식을까 봐 품에 안고 걸었소. 그런데도 식었소. 식어 버렸소. 내가 늦
"준비하지 말라는데, 어떻게 안 해요."바리는 이불 위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관사의 불은 반쯤 꺼져 있었다. 책상 스탠드만 노란 원을 만들어 방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 무장승이 앉아 있었다. 정장 윗도리를 벗어 의자에 걸어 놓고, 소매를 걷은 채로. 손에는 놋쇠 숟가락이 쥐여 있었다. 세 시간째 같은 자세였다."...금한 것은 사전 준비 일체요. 규정을 어길 수 없소.""그럼 지금 하시는 건 뭐예요.""...그저 쥐고 있을 뿐이오.""쥐고 있는 게 준비가 아니면 뭐예요.""...."무장승이 입을 다물었다. 숟가락을 쥔 손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바리는 그 손등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불 속에서 곰 인형을 끌어다 안았다. 인형의 가슴팍에 수놓인 '규정 준수' 글씨가 오늘따라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모르겠소."한참 만에 무장승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갈라져 있었다."얼굴도 이름도 떠오르지 않소. 눈 속에서 달려오던 뒷모습, 그릇의 무게, 손이 얼어 있던 것. 그것만 있소.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얗소. 손을 넣어 더듬어도 닿는 것이 없소.""팀장님.""틀리면 소멸 위험 등급이 상이라 하였소.""알아요.""내일 내가 틀리면 당신은 나가시오. 문 쪽으로 곧장. 나머지는 내가 감당하겠소.""안 나가요.""바리 씨.""못 나가요. 저는 팀장님 옆에 서 있을 거예요."무장승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었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조금 야위어 있었다. 앞머리 한 가닥만이 하얗게 빛났다. 그 하얀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바리의 가슴을 찔렀다."...당신은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것이오.""팀장님한테 배웠어요.""나는 그런 것을 가르친 적이 없소.""서른 장짜리 인사말 쓰는 법에서 배웠어요. 안 되는 것도 끝까지 서류로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무장승이 짧게 웃었다. 입가가 흔들렸다. 바리는 웃음을 한 박자 늦게 따라 웃으며 이불에서 일어났다. 분필선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십 센티미터. 규정
"나 안 가. 못 가. 진짜 못 가."국장은 사무실 기둥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낚시 조끼를 입은 덩치 큰 몸이 기둥 폭보다 두 배는 넓어서 숨었다기보다 기둥에 매달린 모양새였다. 바리와 덕순이 한쪽 팔씩 잡았지만 국장은 발끝을 바닥에 붙이고 버텼다."국장님, 13관문이잖아요.""13관문이 하필 이거라는 게 문제야.""내용을 한 번 더 읽어 드릴까요?"덕순이 서류를 펼쳤다. 13관문의 제목은 '인연 성사 1건'. 내용은 서로 마음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한 쌍을 이어 줄 것. 담당 심사위원란에는 정자체로 '은숙'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리는 이 서류를 처음 받았을 때 한참 웃었다. 마지막 칸에는 그녀가 직접 쓴 메모가 붙어 있었다.대상자는 제가 지정합니다.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낚시터에서 기다리겠습니다."이게 사실상 청첩장이잖아요.""청첩장이 아니라 경고장이야. 내가 이 나이에, 명부 관리국장이 낚시터에서 고백이라니.""국장님이 염라대왕 모델이시라고 들었는데요.""그러니까 더더욱! 위신이 있지!""위신이 있어서 오십 년 동안 말씀을 못 하셨다는 거예요?""오십 년이라니, 사십구 년이야.""정확하게 세고 계셨네요.""세고 싶어서 센 게 아니야. 매년 사탕 포장지에 줄을 하나씩 그었더니 어느새 사십구 줄이 됐어.""그 포장지 지금 어디 있어요?""...서랍에.""가져오세요. 증거물로 제출할 거예요.""증거는 무슨 증거야!"국장이 입을 다물었다. 귀 끝이 붉어졌다. 덕순이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바리는 한숨을 쉬고 기둥에서 국장을 떼어내는 일을 포기했다. 대신 방 한구석을 돌아봤다. 무장승이 서류 뭉치를 들고 서 있었다."팀장님도 한마디 해 주세요.""...작성해 왔소.""뭘요?""고백 대사 초안이오. 서른 장.""서른 장이요?""압축하여 한 줄로 만들었소."무장승이 맨 위 종이를 국장에게 내밀었다. 국장은 안경을 올리고 받아 읽었다. 거기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좋아하오."...""...""
"감지덕지."문을 연 사자팀장이 바리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검은 갓에 검은 도포,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까지 갖춘 중년 남자였다. 책상 위에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저승사자팀 팀장 흑태수'. 바리는 인사를 하려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무장승도 같은 표정이었다."...무슨 뜻이오?""분에 넘치는 대접에 감사한다는 뜻이에요, 팀장님."덕순이 뒤에서 속삭였다. 오늘은 해설사 역할이라며 따라붙은 터였다. 손에는 사자성어 사전이 들려 있었다. 흑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 위 서류를 가리켰다."일사천리.""빨리 진행하자는 말이래요.""다다익선.""많을수록 좋다는 말이고요. 도시락은 많을수록 좋다는 뜻일 거예요.""동고동락.""같이 고생하고 같이 즐거워하자고요?"흑태수가 엄지를 척 세웠다. 바리는 한숨을 쉬고 서류를 집어 들었다. 12관문의 제목은 '야간 근무자 위로 방문'. 내용은 단순했다. 밤새 일하는 저승사자 열두 곳에 도시락을 전달할 것. 단, 전달할 때 '고맙다'는 말을 쓰지 말 것. 사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 불길하다는 오래된 금기였다."왜 고맙다는 말이 불길해요?""결자해지.""...덕순 씨?""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끝내야 한다는 뜻인데, 이 경우엔 '우리 일은 우리가 끝낸다, 남이 고마워할 일 아니다'라는 뜻으로 읽혀요.""해석이 되게 자유롭네요.""사자성어 사전이 해석을 다 안 알려 줘요."무장승이 도시락 열두 개가 담긴 보냉 가방을 어깨에 멨다. 오늘은 입에 테이프도 사탕도 없었다. 대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틀 전 실을 내준 이후로 그의 앞머리 한 가닥이 하얗게 센 채였다. 아침에 덕순이 그걸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을 때 그는 짧게 대답했다."...햇빛 탓이오.""저승에 햇빛이 어디 있어요!""...관사 창문으로 들어오는 형광등이오."아무도 믿지 않았다. 해온은 더 묻지 않고 그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무장승은 그날 아침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첫 번째 방문지는 편
"팀장님은 지시하신 적이 없습니다. 전부 제 판단입니다."서하령은 가위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처형대에 목을 내미는 사람 같은 자세였다. 병실 안은 귤 향이 가득했는데, 그 향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기묘하게 만들었다. 침대 위의 강휘는 눈을 감은 채였다.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내렸다. 자는 것인지 자는 척인지 알 수 없었다."내 어머니의 실을 자른 이유를 말해 보시오."무장승의 목소리가 낮고 평평했다. 억누른 분노가 말끝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하령이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균형을 되돌리기 위해서입니다.""균형.""바리 씨의 금빛 실이 굵어질수록 다른 실이 가늘어집니다. 해온 관측자님이 그 실을 이십 년간 붙잡고 계셨기 때문에 피해가 지연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관측자님의 실을 끊으면 바리 씨의 실도 약해집니다. 균형이 돌아옵니다.""그걸 믿으시오?""믿습니다.""증거는 있소?""제가 증거입니다."하령이 가위를 침대 협탁에 내려놓았다. 달그락 소리가 났다. 그녀는 코트 소매를 걷었다. 손목 안쪽에 검은 점 같은 흉터가 세 개 박혀 있었다."열네 살 때 제 부모님이 이유 없이 갈라서셨습니다. 서로 미워하지도 않았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한 분이 짐을 쌌고, 한 분이 말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아무도 몰랐어요.""...""본부에 들어와서 알았습니다. 그 시기 우리 동네에 굵은 실 하나가 생겨 있었다는 걸요. 누군가의 인연이 너무 굵어서 주변의 실이 눌려 풀려 버린 거예요."바리가 숨을 멈췄다. 심의회에서 강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두 사람이 서로를 떠나고 있을 것이라던.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이 사람의 이야기였다."자르면 부모님이 돌아오나요?"바리가 조용히 물었다. 하령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아니요. 끊어진 실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그럼 해온 님의 실을 끊어서 얻는 건 뭐예요?""앞으로 풀릴 실을 막는 것입니다.""미래의 누군가 때문에, 지금 있는 사람의 손가락을 가루로 만
"범인은 가위를 든 사람입니다!"덕순이 칠판을 탁 치며 외쳤다.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사냥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었다. 입에는 사탕 막대가 파이프처럼 물려 있었다. 총무팀 회의실 벽에는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고, 종이 한복판에 '가위 사건'이라는 글씨가 붉은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그 주위로 붉은 털실이 압정에서 압정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덕순 씨,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요.""수사의 기본은 사실 확인이에요, 바리 언니.""그리고 털실은 왜 이렇게 많아요.""실이 사건의 핵심이니까요!"바리는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았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이었다. 옥상으로 달려갔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난간에 은빛 실 한 가닥이 걸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해온은 한 본부장의 부축을 받아 의무동으로 옮겨졌다. 일곱 가닥 중 두 가닥이 끊겼고, 남은 다섯 가닥은 아직 버티고 있다고 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은 흩어진 채였다.무장승은 말없이 창가에 서 있었다. 정장 소매 안에서 놋쇠 숟가락의 윤곽이 눌려 보였다. 어젯밤부터 그는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자, 용의자 소환입니다! 불러 주세요, 도윤 씨!"도윤이 문을 열었다. 네 사람이 줄지어 들어왔다. 민 주임, 마옥분, 천 실장, 그리고 낚시 조끼 차림의 국장이었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덕순이 사탕 막대를 이로 딱 소리 나게 깨물었다."여러분은 어젯밤 열한 시부터 열두 시 사이 어디에 계셨습니까?""저는 검증실에서 종이 치우고 있었어요."민 주임이 먼저 손을 들었다. 눈 밑이 푸르스름했다."가위를 쓰시죠?""저는 가위 안 써요. 커터칼 써요. 왼손잡이라 가위가 불편해서.""오, 알리바이 성립입니다. 마 팀장님은요?""저는 주방에서 내일 국거리를 손질했어요.""가위로요?""국자로요.""국자로 어떻게 손질을...""그건 제 방식이에요."마옥분이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덕순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천 실장은 헤드셋을 쓴 채 가만히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