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나윤은 유시진이 곧 자기에게 입을 맞출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긴장으로 손끝까지 저릿저릿 떨렸다.손가락이 몇 번이나 움찔거렸지만, 끝내 지나윤은 유시진을 밀어내지 못했다.오히려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놀이공원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주변이 지나치게 고요한 탓에 지나윤 심장 뛰는 소리마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입술 위로 닿아오는 유시진 숨결이 점점 뜨거워질수록, 그만큼 두 사람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긴 속눈썹이 긴장감에 잘게 떨렸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속눈썹 끝까지 물들인 것만 같았다.마침내 유시진 뜨거운 입술이 지나윤 입술에 닿을 것만 같던 그때 정말 스치듯 지나갔다.곧이어 붉은 혀끝이 튀어나와 지나윤 입가를 살짝 핥았다.지나윤은 눈을 뜨자, 그 순간 유시진 낮고 섹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입가에 소스 묻었어.”눈앞 가까이 휘어진 눈매, 그 안에는 장난기와 능청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그제야 지나윤은 자신이 놀아났다는 걸 깨달았다.“너 진짜 저리 가!”지나윤은 얼굴을 붉힌 채 유시진을 밀어내고는 홱 돌아섰다.너무 창피했다.지나윤은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는 듯 손등으로 뺨을 눌렀다.지금 자기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엄청 빨개졌을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내가 쟤 앞에서 눈까지 감고 키스를 기다리고 있었다니...’그런데 정작 유시진은 키스할 생각조차 없어 보이자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유시진은 그런 지나윤 등을 가만히 바라보니 등까지 붉어진 것처럼 보였다.“예전엔 몰랐는데 너 원래 이렇게 쉽게 부끄러워했어?”지나윤은 홱 돌아보며 유시진을 노려봤다.“네가 몰랐던 게 한두 개였나?”“그것도 맞네.”유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그 시절 자기는 지나윤과 결혼까지 해놓고도 지나윤이 보석 업계에서 유명한 BYC 장인이라는 사실도 몰랐다.무엇보다도 지나윤이 사실 C국 LY그룹 유일한 손녀라는 사실도 몰랐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때는 지나윤이 바
“그래?”유시진 역시 웃었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씁쓸했다.길게 내려온 속눈썹 아래로 유시진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지나윤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시진 얼굴에 머물렀다.어쩔 수 없었다.유시진은 정말 잘생겼으니까.그렇게 한참 바라보다 보니 문득 지금 유시진 표정이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지우도 잠들었으니까 우리 잠깐 산책할래?”지나윤이 먼저 제안할 줄은 몰랐는지 유시진은 눈을 들어 지나윤을 바라봤다.눈빛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동시에 스쳤다.“좋아.”유시진은 바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함께 저택 밖으로 걸어 나갔다.하지만 정원 풍경은 솔직히 남녀가 분위기 있게 산책하며 이야기 나눌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너무 대놓고 놀이공원 같았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지나윤 기분은 이상하게 좋아졌다.“애들 놀이기구 보고 있으면 괜히 나까지 어려지는 기분이네.”“그러게.”유시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그리고 그대로 슉 내려왔다.정장 차림인 유시진마저 미끄럼틀 타는 모습을 보자 지나윤 역시 참지 못하고 따라 올라갔다.결국 두 사람은.원래 지우를 위해 만들어진 놀이공간을 차지한 채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놀다 보니 지나윤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왜 이렇게 애 같아?”유시진은 지나윤 앞으로 다가왔다.그리고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지나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두 사람 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보이지 않는 어떤 미묘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감싸는 듯했다.유시진은 고개를 숙인 채 지나윤 얼굴을 바라봤다.짙고 깊었던 눈빛은 점점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변해갔다.지나윤은 유시진을 바라보지 못했다.고개를 살짝 숙인 채 얌전히 유시진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하지만 사실은 두려웠다.유시진과 눈을 마주치는 게 무서웠다.그런데 시선을 피하고 있는데도 지나윤은 확실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유시진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이제는 숨길 수조차 없어진 욕망
대화 내용은 예상대로였다.채윤화는 지나윤에게 LY그룹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했다.지금 이원호는 다시 C국으로 돌아간 상태였지만 채윤화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었다.“엄마라고 부르기 싫다면 그건 괜찮아. 하지만 LY그룹은 네 할아버지가 너한테만 남겨준 거야. 그건 너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채윤화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지나윤은 그저 조용히 한숨만 내쉬었다.채윤화는 정말 자기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만약 LY그룹이 정말 이경성이 자기에게 준 보상이라면 오히려 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차라리 이경성이 자기 경영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이해됐다.지나윤은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끝내 채윤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채윤화 방에서 나온 뒤, 이번엔 또 유희봉이 서재로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오늘 왜 다들 돌아가면서 날 붙잡고 이야기하려는 거지...”지나윤은 작게 중얼거렸다.지나윤 기억 속에서 유희봉 서재는 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장소였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괜히 긴장감이 밀려왔다.유희봉은 여전했고 지나윤을 바라보는 얼굴엔 늘 자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나윤아, 앉으렴.”지나윤이 책상 맞은편에 앉았고 두 사람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유희봉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내가 무슨 이야기하려고 부른 건지 짐작 가?”지나윤은 고개를 젓자 유희봉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는 말이다. 예전에 네가 끝까지 시진이랑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말리지 않았고. 이혼하지 말라고 설득하지도 않았다.”“나중에 정말 이혼했을 때도 재결합하라고 한 적 없었지.”“네.”이번에는 지나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죽은 줄 알았던 네가 다시 돌아왔잖니.”“그래서 이번만큼은, 내가 꼭 묻고 싶더구나. 너는 시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그 질문에 지나윤은 그대로 침묵했다.지금 지나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늘 그랬듯 유시진 이야기만 나오
지우와 놀아주고 있던 유시진과 유희봉 역시 지나윤 말을 들었지만 두 사람 모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양화영 얼굴에도 금세 다시 웃음기가 돌아왔다.“알지, 알지. 우리도 다 알아. 지우가 시진이 친아들은 아니라는 거.”“근데 시진이 봐봐. 지우 얼마나 예뻐하는데. 지우도 시진이 엄청나게 좋아하잖아.”양화영 반응은 지나윤 예상 밖이었다.자기 신분이 LY그룹 상속인으로 바뀐 덕분에, 이제는 남의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쓰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나윤아.”그때 유태산이 입을 열었고 표정은 그리 딱딱하지 않았다.일부러 자기가 부담 느끼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지나윤은 알 수 있었다.“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고.”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나윤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지우를 안고 있던 유시진 역시 눈빛이 싸늘해졌다.거실 분위기가 단번에 얼어붙었고, 마치 실내 온도가 몇 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유태산 역시 그 어색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급히 헛기침했다.“아니, 다른 뜻은 아니야. 오해하지 마.”“내 말은, 지우를 낳을 수 있었다는 건 몸이 건강하다는 뜻 아니겠냐.”“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나중에 시진이랑 재결합하면 둘이 아이 하나 더 낳아도 되고.”“아버지.”유태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시진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유태산은 잠깐 유시진과 눈을 마주쳤다가 급히 말을 바꿨다.“아니, 꼭 다시 낳으라는 뜻은 아니야. 원하지 않으면 안 낳아도 되고, 그건 너희 뜻대로 하면 되는 거지.”“어쨌든 너랑 시진이 재결합만 하면, 지우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 아이가 되는 거니까.”“맞아 맞아.”양화영도 옆에서 얼른 맞장구쳤고 지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득 HF그룹 사람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자기와 유시진이 재결합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지나윤은 차를 다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지우 곁으로 가고는 한동안 아이와 함께 놀아주었다.유태산과 양
“나윤이 왔구나. 얼른 이리 와서 앉아.”양화영은 평소와 달리 지나윤에게 유난히 살갑게 굴었다.그 모습이 오히려 지나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졌다.유태산 역시 양화영처럼 티 나게 굴진 않았지만, 지나윤을 대하는 얼굴에는 분명 미소가 떠 있었다.이에 지나윤은 속으로 의아했다.원래라면 유태산은 자기를 몹시 싫어해야 정상이었다.유태산 도움으로 가짜 죽음을 꾸며 유시진이 완전히 자기를 잊게 만들기로 분명 약속했었다.그런데 결과는 유시진은 지나윤을 잊지 못했을뿐더러 W섬에서 다시 재회하기까지 했다.결국 유태산이 세웠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된 셈이었다.사실 이건 지나윤 잘못이 아니라 전부 우연이었다.하지만 지나윤이 아는 유태산이라면 분명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릴 사람이었다.일부러 유시진 앞에 나타난 거라고, 일부러 관계를 끊지 못하고 질질 이어간 거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지나윤은 소파에 앉았다.유태산과 양화영에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그때 강수정 아주머니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가져왔다.“작은 사모님, 차 드세요.”지나윤은 순간 멈칫했고 정말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었다.하지만 지나윤과 유시진은 이미 오래전에 이혼했기에 자기도 더 이상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신분이 아니었다.지나윤 표정에서 의문을 읽은 듯했지만 강수정 아주머니는 호칭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지나윤 역시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괜히 강수정 아주머니가 실수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유태산과 양화영은 먼저 지나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유시진은 대화에 끼지 않고 유희봉과 함께 거실 놀이 공간에서 지우와 놀아주고 있었다.세 사람은 정신없이 즐거워 보였다.지나윤은 건성으로 유태산, 양화영과 대화를 이어가다가 점점 깨달았다.왜 두 사람이 갑자기 자기에게 이렇게 친절해졌는지를.이제 자기 신분은 단순한 지나윤이 아니라 이채영이기도 했다.비록 LY그룹이 이안영 때문에 크게 흔들리긴 했지만, 망해가는 기업도
지나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그때, 저택 대문이 열렸다.“엄마!”지우가 뒤뚱거리며 뛰어나왔다.제일 먼저 자기 마중을 나온 사람이 지우일 줄은 지나윤도 몰라 급히 달려갔다.지우는 이제 한 살이 조금 넘었다.걸을 수는 있었지만 아직 걸음이 불안정했다.지나윤은 한눈에 오랫동안 엄마를 못 본 지우가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통통한 짧은 다리는 거의 날아갈 듯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지나윤은 지우가 넘어질까 봐 얼른 달려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엄마...”지우 눈망울은 금세 붉어졌다.울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남자아이라 씩씩하게 참으려는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지나윤은 그런 지우 모습이 너무 귀여워 빵빵한 볼에 바로 입을 맞췄다.오랜만에 엄마에게 뽀뽀를 받은 지우는 너무 신난 나머지 지나윤 품 안에서 팔다리를 마구 흔들었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지나윤에게 뽀뽀를 받은 뒤, 지우는 계속 외쳤다.“아빠! 빠빠빠! 빠빠빠!”‘빠’ 소리가 너무 많아서, 지나윤은 지우가 발음이 서툰 건지 아니면 진짜 아빠를 찾는 건지 순간 헷갈렸다.“아빠는 지금 여기 없는데?”지나윤 말이 끝나자마자 지우는 바로 불만을 터뜨렸다.지우가 지나윤 품 안에서 이렇게까지 가만히 못 있는 건 처음이었다.“아빠! 아빠!”작은 두 손은 분명 유시진 쪽을 향하고 있었다.“내가 안을게.”유시진은 지나윤 품에서 지우를 받아갔다.사실 지나윤은 선뜻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지우가 점점 더 유시진에게 의지하게 되는 게 싫었다.하지만 지우가 너무 심하게 보채는 바람에 결국 지나윤은 아이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유시진은 지우를 안은 뒤 반대쪽 볼에도 입을 맞췄다.그제야 지우는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예쁜 얼굴에 웃음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고 눈빛에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가득했다.마치 엄마 아빠 둘 다 자기한테 뽀뽀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지나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또 다른 사람이 저택 안에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