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고아라는 원래 속에 담아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그런데 고진수가 다정하게 달래자 오히려 서러움이 더 북받쳐 올랐다.“너는 나윤이가 나보다 더 예쁘고 더 여자답다고 생각하는 거지?”“아라야, 왜 그런 생각을 해?”“놀이공원 입구에서 너랑 나윤이가 안고 있는 거 봤어. 귀신의 집에서는 손도 잡고 있었고.”고아라는 결국 본 대로 털어놓았다.고진수의 눈빛에 한순간 싸늘한 비웃음이 스쳤지만, 고아라는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아라야, 오해야. 그때 나윤이가 저혈당이라고 해서, 내가 잠깐 부축만 해 준 거야. 네 친구니까... 그리고 귀신의 집에서는...”고진수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흐렸다.“나는 나만 귀신을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나윤 씨도 사실 무섭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손잡아 준 거야.”“아라야, 나윤 씨가 너의 가장 친한 친구라면, 그런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해.”고진수는 고아라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이 일 때문에 너랑 나윤 씨가 사이가 틀어지는 건 싫어. 그러면 내가 너무 죄책감 들 것 같아서...”“그러니까 절대 나윤 씨한테 따지지 마. 그냥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 나 믿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너니까.”“응...”고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불꽃놀이가 시작됐다.하늘 가득 번지는 불꽃과 눈부신 조명,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 주변 풍경은 마치 동화처럼 아름다웠다.이 놀이공원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순간도 바로 이 밤의 불꽃놀이였고, 고아라 역시 그 순간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도 지금의 고아라는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나윤이와 고진수가 안고 있던 모습, 손을 잡고 있던 장면이 맴돌았다.애초에 이번 네 사람의 만남도 나윤이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만남이었던 걸까?’‘혹시 나윤이가 진수에게 접근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자리를 만든 건 아닐까?’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고아라는 온몸이 굳어 버렸다.이런 식으로 나윤이를 의심하면 안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나윤 씨, 어디 있어요?”고진수는 지나윤을 부르며 손을 더듬어 이리저리 움직였다.방이 크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몸에 닿았고, 그 사람이 돌아서는 순간, 희미한 빛 속에서 피로 얼룩진 귀신 얼굴이 드러났다.이에 고진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고진수 씨?”지나윤은 우연히 스위치를 건드렸고, 손을 뻗어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귀신 얼굴은 사라졌고 두 사람은 서로를 확인했다.“지나윤 씨.”고진수는 매우 놀란 듯 달려와 지나윤을 꽉 끌어안았다.귀신의 집에 들어오기 전, 고진수가 겁이 많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라 지나윤은 이 행동을 단순히 놀라서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였다.지나윤은 고진수를 밀어내며 말했다.“다 가짜예요. 홀로그램 같은 거잖아요. 성인인데 너무 겁먹지 마요.”“미안해요. 제가 좀 겁이 많아서요.”고진수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여전히 지나윤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저기, 지나윤 씨...”고진수는 지나윤의 손을 붙잡았다.“다리에 힘이 좀 풀렸는데 저 좀 잡아 주실 수 있을까요?”지나윤은 거절하려다가 멈췄다.고진수의 상태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정말 놀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지나윤은 한숨을 삼키며 결국 남자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그때, 바깥에서 고아라와 백이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특히 고아라의 목소리는 크게 울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듯 가까웠다.지나윤은 희미한 빛을 의지해 벽을 더듬으며 출구를 찾고 있었다.그 순간, 문이 스스로 열리며 방 안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그리고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고아라였다.“나윤아, 괜찮아?”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아라는 멈췄다.지나윤과 고진수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고진수는 고아라를 보자마자 곧바로 지나윤의 손을 놓았다.곧 지나윤에게서 등을 돌린 채, 얼굴에는 분명한 거부감과 동시에 고아라를 향한 미안함과 당황함이 스쳤다.지
고아라의 시선에서 보면, 지나윤이 먼저 고진수의 품으로 파고든 것처럼 보였다.마치 스스로 안겨 들어간 것처럼.경적이 울리지 않았더라면, 고아라는 그대로 도로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고아라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이미 지나윤과 고진수가 떨어진 뒤였다.“아라야...”지나윤이 먼저 말을 걸었지만, 고아라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선은 곧장 고진수에게 향했다.고진수의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고 시선도 미묘하게 피하고 있었다.이미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의 남자친구가 가까이 있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그런데 지금의 반응은 방금 본 장면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확신을 더 해 주는 느낌이었다.백이천은 잠깐 회사에 들렀다가 온 탓에 가장 늦게 도착했다.“미안해, 좀 늦었지?”말을 꺼내자마자 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아라야,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 내가 늦어서 그래?”백이천이 고아라 앞에 다가갔다.고아라의 모습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예전에는 네 사람이 함께 나가면 고아라가 가장 들떠 있었고 말도 제일 많았다.“아니야.”고아라는 짧게 답하고는 지나윤을 힐끗 쳐다보고는 곧장 고진수의 팔을 끼었다.“들어가자.”고아라와 고진수가 앞서 걸었고 지나윤과 백이천이 뒤따랐다.백이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라 왜 저러지? 좀 화난 것 같은데?”“나도 모르겠어.”지나윤은 고개를 저었다.“아라가 오자마자 저런 표정이었어.”백이천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네 사람은 앞뒤로 나뉘어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갔다.어색했던 분위기는 놀이기구를 하나둘 타면서 조금씩 풀렸고, 고아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던 걸 내려놓은 듯 보였다.지나윤과 백이천은 자연스럽게 고진수를 관찰했다.고진수는 고아라를 잘 챙겼고, 태도도 매너 있고 배려심이 있었다.시간이 흐르자 모두 조금씩 지쳐 갔다.자극적인 놀이기구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것을 찾고 싶어졌다.“나윤아, 우리 귀신의 집 갈래?”
유현진 변호사가 떠난 뒤, 병실은 숨 막힐 듯 고요해졌고 장우영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몇 번이나 훔쳐야 했다.유시진이 과거 채연서에게 보였던 집요할 정도의 태도를 떠올리면, 부부 관계가 이미 파탄났다는 증거로는 충분했다.다만 A시에서 이혼 소송을 진행한다면, 지나윤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였다.그래서 장우영은 유시진이 지금까지 이혼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 그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지나윤이 C국에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이 경우라면 결과는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차라리 이혼 협의서에 서명하는 편이 유시진에게도, HF그룹에도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장우영은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유시진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사실은 서명하라고 말하고 싶었다.소송까지 가봤자 결국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다고.하지만 그 말만큼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유시진은 오랜 침묵 끝에, 이혼 협의서를 천천히 덮었다.“장 비서.”불린 장우영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말씀하세요.”“지나윤이 어떻게 유현진 변호사랑 연결됐는지 알아봐.”“네.”장우영이 병실을 나가고 나자, 공간에는 다시 유시진 혼자만 남았다.유시진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지나윤이 공개적으로 이혼을 요구했다는 소식에 대한 온라인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대부분의 여론은 지나윤 편에 서 있었다.그동안 채연서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밀접하게 비쳤고, 채연서의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여론은 자연스럽게 유시진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게 되었다.사람들은 거의 확신하듯, 유시진이 결혼 생활 중 외도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원한다면 유시진은 충분히 이 여론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채연서가 몇 번이나 지나윤을 함정에 빠뜨리고, 온라인 공격 속에 몰아넣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이것에 비하면 지금 자신에
고아라는 고진수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여, 여긴 진수 씨 사무실이잖아요. 이러면 안 돼요.”“뭐가 안 된다는 거예요?”고진수는 고아라를 놓고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갔다.“진수 씨...”“자기라고 불러, 그리고 말도 놓고.”“자, 자기야...”고아라의 얼굴이 금세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고진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고, 남자는 고아라를 자신의 의자 위로 밀어 눕혔다....병원.지난번 유시진이 했던 말을 들은 이후로, 이안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이는 유시진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나쁜 소식도 있었다.그것은 바로 지나윤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며칠 동안이나 지나윤은 직접 병문안을 오기는커녕,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유시진은 오늘 인터넷에서 온통 도배된 실시간 검색어를 보게 되었다.[HF그룹 안주인 지나윤, 유시진에게 공식적으로 이혼 요구.]전부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었고, 누가 돈을 주고 퍼뜨린 것이 분명했다.유시진은 병상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대표님...”들어온 사람은 장우영이였다.유시진은 장우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남자의 뒤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그 남자를 보자 어딘가 낯이 익었다.“대표님, 안녕하세요.”상대는 공손하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현진 변호사님?”유시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눈빛에는 차가운 거부감이 스쳐 지나갔다.“대표님께서 저를 알아보실 줄은 몰랐어요. 영광이에요.”유현진이 명함을 내밀자 장우영이 대신 받았다.“C국에서 이름난 변호사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죠?”유시진은 겉으로는 묻는 척했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그러자 유현진은 공손하게 답했다.“저는 제 의뢰인을 대신해 대표님을 찾아왔어요.”유현진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 봉투를 내밀었고, 그것 역시 장우영이 대신 받았다.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장우영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그는 서류를 유시진
“여보세요, 나윤아?”고아라는 목소리를 낮추며 전화받았고 말투에는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지금 고진수와 분위기가 막 좋았는데, 지나윤의 전화가 타이밍 좋지 않게 걸려 와 둘만의 시간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전화기 너머에서 지나윤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아라야, 무슨 일이야? 지금 통화하기가 불편해?]“나...”“누구 전화야?”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나윤은 고진수의 목소리를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에 고아라 곁에 있을 남자는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진수 씨, 옆에 있어?]지나윤이 자연스럽게 물었다.“아, 응...”[그럼 잘됐네.]“잘됐다고?”지나윤의 말에 고아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진수 씨한테 이번 주말에 시간 되는지 물어봐. 우리 넷이 같이 만나면 좋을 것 같아서.]“넷이?”고아라는 눈을 깜빡였다.[응, 나랑 이천이, 너랑 진수 씨. 요즘 별빛 놀이공원 다시 개장했거든. 사람 많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지나윤의 목소리는 고아라 옆에 서 있던 고진수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어갔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나윤아, 근데...”고아라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너 아직 유시진 대표랑 이혼 안 했잖아. 그 상태에서 이천이랑 이렇게 당당하게 다녀도 괜찮아?”고아라는 속으로는 지나윤이 백이천을 선택하길 바랐다.백이천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지나윤을 좋아해 왔고, 지금까지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게다가 외모도 뛰어나고 인기까지 많은 사람이었기에, 고아라는 오히려 백이천이 안쓰럽게 느껴졌다.최근에는 해외파 박사인 백이천에게 ‘불륜남’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조짐도 있었기 때문에, 고아라는 괜히 오해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그리고 설령 백이천이 아니더라도 지나윤이 비난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또한 예전에 겪었던 온라인 공격이 떠올랐다.확실한 증거도 없이 사진 한 장만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지나윤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고아라는 그 생각만으로도
고도겸의 눈에 비친 채연서는 자업자득에 불과했다.지나윤은 연설에서 매우 정중하게 고도겸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사실 고도겸이 한 일은 거의 없었다.이번 구상은 전부 지나윤이 떠올린 것이었다.처음 채연서가 고도겸을 유혹했을 때, 남자는 그 일을 그대로 지나윤에게 털어놓았다.혼자 판단하지 않았고, 지나윤의 생각을 먼저 듣고 싶었다.이에 지나윤은 채연서를 역으로 이용해 LD주얼리 패션위크에서의 ‘주얼리 마술 쇼’를 완성하자고 제안했다.그렇게 하면 채연서의 모든 수는 자신들이 짠 판에서 움직이는 말에 불과할 것이고, 채연서는 자신
채연서는 전태지의 아내인 장지민을 잘 알고 있었다.과거 지나윤이 전태지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터졌을 때, 장지민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직접 지나윤을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이후 전태지는 갇혔고, 장지민 역시 이혼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여파는 집안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고, 그 영향으로 장지민이 운영하던 사업 역시 급격히 힘들어졌다.그랬기에 장지민이 지나윤을 증오하는 감정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예상대로 채연서가 살짝 불을 지피자, 장지민은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칵테일 잔을 집어 들고 성큼
런웨이가 끝난 뒤, LD주얼리 패션위크의 관례에 따라 모든 참가 디자이너와 귀빈들은 제1파티장으로 이동해 만찬에 참석하게 되었다.그러나 채연서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직접 주최 측에 문의하고 나서야, 담당자는 그제야 깜빡 잊었다며 초대장을 건넸다.손에 초대장을 쥔 채연서의 얼굴에는 아무리 정교한 화장을 하고 있어도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가려지지 않았다.‘이게 대체 무슨 취급이지?’만찬에 참석할 자격조차 남의 실수와 보상으로 얻어야 하는 신세라니.이번 LD주얼리 패션위크를 위해 일부러 값비싼 오트쿠튀르 드레스만 세
LD주얼리 패션위크에서는 주최 측이 디자이너들을 위해 전문 모델 스타일링 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다.그래서 디자이너가 백스테이지에서 모델 한 명 한 명의 착장을 직접 챙길 필요도 없었고, 자기 작품이 잘못 착용될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지나윤은 지금 관객석에 앉아 있었고 그 옆자리에는 고도겸이 앉아 있었다.이번에 지나윤은 고도겸 한 사람만 데리고 왔다.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작업실 직원들을 전부 데려올 수는 없었다.또한 고도겸을 데려온 이유는 단순했다.남자라 힘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움이 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