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그건가…’ 혜정은 티슈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딸만 둘을 키우며 살아왔기에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들의 그것에 대해 그녀는 잘 알지 못했다. 아들을 둔 엄마들은 침대 맡에서 티슈를 주워 담기 바쁘다던, 예전 친구의 우스갯소리 같은 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사위가 사춘기는 아니지만, 남자는 남자. 그 나이면, 어쩌면 가장 활발한 시기일지도 몰랐다.
그는 누가 봐도 건강했다. 군살이 없고, 허리와 어깨선이 또렷한 단단한 체형. 거기에 깔끔한 인상, 여유 있게 웃는 얼굴. 분명 예전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았을 거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처음 딸아이와 함께 찾아왔을 때, 혜정은 그가 ‘괜찮은 남자’라는 걸 직감으로 느꼈다. 자존감 있는 남자. 가정을 계산하지 않고 꾸릴 수 있는 좋은 남자. 무심하게 살가운 남자.
그런 사람에게 성욕이 없을 리 없다.
혜정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남편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남편은 대화도, 전희도 없이 그냥 들어와 허둥지둥 밀어붙이던 남자였다. 결코 섹스를 잘하진 못했지만, 늘 욕망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그녀에게 부지런하게 쏟아냈다.
혜정이 그 행위가 주는 감각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남편은 이미 힘을 거의 잃어버린 뒤였다. 남편과 자신은 늘 엇갈리듯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떨어져서 사는 것이 서로 편했고, 그래서 사이가 더 좋았다.
그리고 지금 손에 쥔 이 굳어버린 티슈 뭉치.
혜정은 그걸 버려야 할지, 덮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이게 무엇인지… 그냥 몰랐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손에 쥔 티슈를 더 꼭 움켜쥐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 질감에서 묘하게 바스락대는 마찰음이 어젯밤, 자신의 피부 위를 스치던 그 부드러운 감촉을 떠올리게 했다.
그 순간 피부가 살짝, 소름처럼 밀려올랐다. 그것이 추위 때문인지, 자신을 보고 선 사위에 대한 상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준호는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집으로 향했다. 하윤이는 기저귀를 일찍 뗀 편이었다. 하지만 한창 놀다 보면 소변 신호를 놓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예비 속옷으로 갈아입혀주겠다고 했지만, 준호는 그 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 약국, 어린이집—차로 한 바퀴를 돌아도 10분 거리. 그 짧은 거리조차 길게 느껴질 만큼, 준호는 바람을 가르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띠리리—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준호는 바삐 손잡이를 돌렸지만, 문득 며칠 전 장모님의 알몸 사건이 떠올랐다. 문 너머의 아무렇지 않음이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혹시 또…?’
이번엔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현관에는 장모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욕실 문도 열려 있었다.
“어디 가셨나…”
준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이며 하윤이 방으로 향했다. 서랍을 열어 속옷과 바지를 챙겼을 때까지도 장모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하음…”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짧은 숨소리. 준호는 고개를 홱 돌렸다.
—
장모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햇살이 드리운 거실 한가운데서 깊은 숨을 토해내며 잠든 듯했다.
오늘도 그녀는 늘 그렇듯 편한 차림이었다. 늘어진 티셔츠, 가볍게 접힌 하늘색 칠부 바지. 단지 지금은 그녀가 혼자였고, 그 공간에 준호도 함께 있었다.
가슴께에 올려진 손은 숨 쉴 때마다 살짝 들썩였고, 티셔츠는 그녀의 굴곡을 어색할 정도로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살짝 눕혀진 목 아래, 옷감 사이로 드러나는 탄력 없는 곡선.
그리고 티셔츠 아래, 단단히 억눌려 있지 않은 젖가슴은 도톰한 둔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옅게 올라온 젖꼭지까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브라를 꼭 할 필요는 없었겠지.’
준호는 처음엔 시선을 거두려 했다. 하지만 이내 한 발짝, 조금 더 다가서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고요했다. 몸을 움직일 기미도 없고, 얼굴은 깊게 잠긴 사람의 숨결을 고르고 있었다.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이 거리, 이 각도, 지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확인만 해보자.’
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손끝이 천천히 다가간다. 어깨와 가슴 사이, 티셔츠의 경계. 무심한 척, 주름을 펴주는 것처럼.
그러나 그 손끝이 살에 닿는 찰나, 그는 멈춰야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 어딘가가 하얘지는 느낌. 심장이 뛴다기보단 가슴 안이 진동하는 것 같은 고요한 떨림.
— 바스락.
손바닥이 티셔츠 천과 스치는 소리. 그는 이미 선을 넘고 있었다.
—
졸음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새벽까지 뜬눈으로 버티다 결국 약을 삼켰던 건 자포자기였을까, 아니면 체념이었을까. 혜정은 그 선택을 지금에서야 조금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집안은 다 정리했고, 청소기도 꼼꼼하게 다 돌렸고, 설거지도 말끔히 끝냈다. 이 정도면 조금은 쉬어도 되겠지.
혜정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눈꺼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 살랑이는 가을 바람이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들었고, 몸 어딘가에는 아직 수면제의 잔여감이 남아 있었다.
한밤중이 아니라 그런지 잠은 언제나처럼 깊지 않았다. 마치 꿈처럼—실핏줄처럼 얇고, 휘발성 있는 감각. 그래도 예전처럼 불쾌하거나 숨 막히는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고도 편안했다.
아득한 곳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여는 소리? 발소리? 가볍게 스치는 공기? 의식이 살짝 흔들렸지만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그저 떠 있는 느낌.
그리고 피부 위로 닿는 듯한 손끝. 티셔츠 너머로 스며든 그 감촉이 서늘한 공기를 밀어냈다.
‘또… 이불을 덮어주려나.’
지난번처럼. 다정하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운 손길.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덮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감촉이었다. 티셔츠가 천천히 말려 올라가는 느낌에 온몸의 털이 조금씩 곤두섰다. 그 위로 닿는 온기.
따뜻했다.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그 손길은 겨울 초입의 바람처럼 부드러웠고, 어딘가 애틋했다.
그 손등을 내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몸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손길이 사라질 즈음 의식도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문이 닫히는 듯한—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참의 정적이 이어진 후에야 혜정은 천천히 눈을 떴다.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고, 창밖의 햇살은 조금 더 기울어 있었다.
“……꿈인가.”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티셔츠는 제자리에 있었고, 아무 흔적도 없었다. 모든 게 몽롱한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몸 어딘가엔 아직 그 따뜻한 감촉이 작은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잠결에 꿈을 꿨나.’
혜정은 눈을 감은 채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
준호는 문을 닫자마자 쫓기듯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미쳤지.”
숨이 가빴다. 심장은 갈비뼈를 밀어낼 듯 뛰었고, 손바닥엔 아직 그 감촉의 여운이 지워지지 않은 듯 남아 있었다. 소파 위, 깊이 잠든 장모의 티셔츠 너머로 보인 곡선. 왜 그걸 다시 확인하려고 했을까. 왜 손을 올렸고, 왜 천을 들어올렸을까.
차 문을 닫는 순간 준호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때리며 숨을 삼켰다.
“이 미친놈아…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단순히 훔쳐보는 문제가 아니었다. 손을 뻗어 장모의 속살을 만졌다. 수면제 때문이니까 괜찮다, 그런 어줍잖은 변명은 아무 의미 없었다.
장모님이 그 상황에서 눈을 떴다면? 그 자리에서 뺨을 맞고 이 집에서 쫓겨났을 것이며, 아내에게 발각됐다면, 아니 신고를 당했다면?
뉴스에서 읽은 ‘장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로 구속된 사위’ 그 끔찍한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준호는 운전대 앞에 앉았지만 한참 시동을 걸 수 없었다. 땀이 식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에라이… 미친놈아…”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넘은 선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준호는 손바닥을 슬쩍 바라본다. 거기엔 아무 흔적도 없었지만 피부 깊은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감촉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
사위는 오늘 늦는다고 했다. 혜정은 그러라고, 편하게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사회생활하는 남자인데 밖에서 술도 못 마시고 늘 저녁밥상에나 홀짝이는 건 안됐지. 그런 마음이 들어 혜정은 준호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하윤이 내가 하원시킬게. 친구랑 편하게 좀 놀다와도 되. 애는 내가 재울테니까.]
신경 써서 보낸 메시지에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사위] 네, 감사합니다.
딱 한 줄. 하지만 이상하게 혜정은 그 수긍이 마음속에 길게 남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 이 집에서 이 가족 안에서 아직 쓸모가 있다는 감각. 나이가 들면서 꼭 붙들고 싶은 감정이기도 했다.
“하윤아, 오늘 어린이집에서는 무슨 일 없었어?”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혜정이 물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낮의 일을 떠올리려는 듯 조금 굴러간다. 생각하는 척하던 눈빛은 정말 기억이 안 나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음, 몰라.”
딸아이들과는 달랐다. 그 애들은 묻지 않아도 선생님의 귀걸이 색깔까지 떠들어댔었다. 남자아이는 물어도 결국 돌아오는 말이 ‘몰라요.’ 그리고 그 정도 대답조차도 돌려받기가 어려웠다.
혜정은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으로 밥풀을 눌렀다. 그때, 툭, 무심하게 떨어진 아이의 한마디.
“나 쉬했어. 바지에.”
“응?”
혜정은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그 정도는 그럴 수도 있지. 선생님이 하윤이 씻겨주셨어?”
하윤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왔었어.”
그 순간 혜정의 손이 멈췄다. 숟가락 위의 밥풀이 잠깐 흔들렸다.
“…아빠가?”
하윤이는 대답 대신 다시 밥을 떠넣는다. 그 말 한마디에 혜정은 잠결에 느꼈던 그 감촉을 다시 떠올렸다. 피부 위를 살며시 스쳐가던 손끝, 티셔츠 너머로 전해졌던 기묘하게 부드러운 온기.
‘설마. 그게… 진짜였던 건가.’
그 순간 심장이 살짝 서늘해지며 무언가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