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그 대범한 만용이 어디서 나왔는지, 준호는 아직도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훑고 손끝은 뻣뻣해질 정도로 얼어 있었다.
이럴 때면 지환은 어김없이 냄새를 맡았다.
“얌마. 뭔데? 무슨 죄지었어?”
“죄는 무슨…”
준호는 이죽거리며 다가오는 지환을 밀어냈다. 하지만 지환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마에 써 있어, 그냥. ‘나 죄지었어요’라고.”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하… 씨. 아니라고. 하윤이 걱정돼서 그렇지. 소변을 잘 가리던 애가 요즘…”
지환은 킥 하고 웃었다.
“야. 아빠가 20살에 선배 등에 토하는 놈인데 뭘. 4살짜리가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
“하윤이면 진짜 잘 큰 거야. 내 친구 애는 초등학생인데도 아직 실례한다더라.”
그때, 폰이 울렸다.
[장모님]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설마… 설마, 깨어 계셨던 건가?’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열었다.
[장모님] 하윤이 내가 하원시킬게. 친구랑 편하게 좀 놀다와도 되. 애는 내가 재울테니까.
“……휴우.”
심장이 겨우, 한 박자 느리게 떨어졌다.
“뭔데?”
지환이 어깨너머로 힐끔 폰을 들여다봤다.
“요즘 장모님하고 소통이 잦네?”
“하! 씨—!!! 절루 가, 진짜!!! 좀!!!”
지환은 낄낄거리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잘됐다. 한 잔 하자.”
생각해보면, 지환과 마지막으로 술잔을 기울인 것도 꽤 오래 전이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평소같은 얼굴로 장모님을 다시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준호는 혜정에게 짧은 답장을 보냈다.
[네, 감사합니다.]
단 한 문장.
그것도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한 것이었다. 낮의 일이 떠올라 도저히 살가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는 지환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콜.”
지환의 눈빛이 예의 그 장난기 어린 미소로 반짝였다.
—
“하… 씨…”
준호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그럼 그렇지…’
지환은 언제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다. 눈앞의 현주는 낯설지 않은 표정으로 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태연하게.
준호는 눈으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시선을 들어 지환을 노려봤지만 그는 이미 낄낄거리며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오빠, 그렇게 불편하게 안 쳐다봐도 돼.”
현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잔을 혼자 들어 단숨에 비운 뒤,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덧붙였다.
“지환이 오빠가 전부터 술한잔 산다고 했던 약속 오늘 지킨다고 해서 나온 거야. 뭐, 내가 딱히 해준 것도 없기는 하지만.”
잔을 탁, 내려놓으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덧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접대를 안 해도 되는 거야? 한 잔 따라줘 봐.”
준호는 말없이 병을 지환에게 밀었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강 선생님.”
지환이 어깨를 슬쩍 굽히며 잔을 따른다.
— 쪼르르륵.
현주는 눈만 웃으며 받아든 잔을 들이켰다.
“알면 됐어.”
— 툭.
던지듯 짧은 대답 뒤에 따르는 가볍고 건조한 웃음.
준호는 조용히 그 둘을 바라봤다. 대학 시절, 현주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남자들 사이에서 떠들던 무리들 사이에 지환도 끼어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같은 술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
‘이게, 나이 들어간다는 거야? 아니면 아직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거야?’
“그러고 보니,”
현주가 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빠, 와이프 미국 갔다며?”
준호는 지환을 흘깃 노려봤다. 지환은 두 손바닥을 위로 보이며 시치미를 뗐다.
‘말 안했을 리가 없지…’
“…뭐, 그렇게 됐어.”
준호는 회 한 점을 집으며 툭 내뱉었다.
“장모님이랑 같이 산다면서?”
이번엔 잔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훅 들어오는 말. 준호는 잠시 멍해졌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지환을 째려봤다. 지환은 고개를 숙인 채 술만 홀짝이고 있다.
“아… 어쩌다 보니 뭐, 그렇게 됐지.”
“오빠도 참. 굴곡 없이 살 것 같더니…”
현주는 그 말 끝에 무슨 의도인지 모를 미소를 더했다. 준호는 고개를 살짝 숙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지환이 분위기를 띄우듯 소리쳤다.
“야! 우리 둘에 비하면 쟤 인생은 굴곡도 아니지 뭘!!”
그러곤 자연스럽게 현주의 어깨에 팔을 걸치려 했다.
— 툭!
현주의 손이 그 팔을 내쳤다.
“내가 왜? 내가 뭐!? 오빠랑 같은 라인에 세우지마.”
쏘아붙이는 그녀의 눈빛에 지환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준호는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혼자 조용히 마시는 게 나을뻔 했어.’
불쑥 떠오르는 낮의 장면. 소파에 누운 장모의 얼굴, 들린 티셔츠 끝자락. 손끝의 감촉. 서늘했던 심장.
‘장모님은 다 알고 계신 걸까.’
입에 쓴맛이 돌아 무언가를 우겨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준호는 소주병을 들었다. 잔에 따르려다 말고 맥주컵에 콸콸콸 부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멈췄다.
“…쟤 왜 저래?”
—
지하철 막차. 곳곳에서 서둘러 귀가하는 발걸음들. 비틀거리며 앉아 있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적어도 취한 게 자기 혼자만은 아니란 사실에, 준호는 괜히 안도했다.
지하철 창밖 풍경이 낯익은 어둠 속을 스쳐 지나가며 준호는 아까 술자리의 부산함을 떠올렸다. 현주, 지환, 그리고 흘러나온 오래전 대학 시절 이야기들.
술이 돌자 말은 많아지고 웃음도 커졌다. 어색하던 현주와의 분위기도 조금은 누그러져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준호는 젓가락을 두 사람 쪽으로 번갈아 겨누며 말했다.
“야, 둘이 그렇게 외로우면 그냥 한번 만나보던가.”
말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 오빠, 존나 못해. 싫어.”
지환이 벌컥.
“야!!! 없는 말을 지어내냐? 해본 적도 없으면서!?”
현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꼭 찍어먹어봐야 아나? 딱 보면 계산기 나오지. 오빠같은 남자는…”
말끝에 손가락을 까딱이며 장난스럽게 휘저었다.
그 분위기를 보니, 예전에 들었던 ‘현주와 남학생들’ 소문은 결국 허세 섞인 농담이었구나 싶었다.
—
‘그럼 그렇지…’
지환은 질 수 없다는 듯 준호를 가리켰다.
“그럼! 얘는?”
준호는 어색하게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현주의 눈이 위로 슬쩍 치켜올라 준호와 마주쳤다. 짧은 눈맞춤, 그리고 재빨리 피하는 시선.
“유부남은 안 건드려요.”
현주가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한참 어린 남자가 좋아. 오빠들은 실격이지, 이미.”
준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 시절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그녀. 하지만 세월이 덧씌운 선들을 피해가진 못했다. 그 순간 며칠 전 약국에서 현주가 집어갔던 콘돔이 떠올랐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어린 남자.”
준호는 그 단어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
지하철이 다음 역에 멈춰섰다. 이제 내릴 만한 사람은 거의 다 내린 기차칸에서, 준호의 시선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휴대폰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때때로 알고리즘은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남편의 충격적인 불륜 상대?]
썸네일 속 자극적인 문구, 영상의 캡처 사진이 스크롤을 내리게 만들었다. 내용은 흔한 가십거리였다.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추적하다가,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장모였다는 이야기.
익명의 제보, 과장된 편집. 진위는 알 수 없었지만 조회수는 이미 수십만을 넘기고 있었다.
‘설마…’
그저 싸구려 상상력으로 찍어낸 자극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준호는 천천히 화면을 꺼내렸다. 그리고 머릿속을 더듬듯, 손끝의 기억을 불러낸다.
오늘 낮, 소파 위에 누워 있던 장모의 몸. 젊음의 탄력은 사라졌지만 그 부드러움은 오히려 더 생생하게 전해졌다.
티셔츠 너머, 분명히 살아 있던 온기와 형태가. 다희의 젖가슴과 닮은 듯 다른 감촉. 그건 시간이 만든 것이었다. 희고 부드러운 뱃살은 햇살에 닿은 적 없는 피부처럼 그늘 아래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준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제발…’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손끝까지 퍼진 감각을 지우진 못했다. 그의 눈앞엔 꺼진 화면 속 자신의 잔상이 아직도 어른거리고 있었다.
—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장모님은 이미 주무실 시간이었다. 준호는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실에는 불빛 하나만이 외롭게 남아 있었다. 신발 벗는 소리, 중문을 미는 소리마저 쓸데없이 크게 들려 그는 모든 동작에 숨을 죽였다.
‘장모님이 켜두신 건가…’
늦게 들어올 사위 위해 불을 켜둔 것 같았다. 준호는 조용히 다가가 거실의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딸깍, 조도 하나 낮아졌을 뿐인데 집 안이 훨씬 더 적막해졌다.
준호는 아이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부드러운 숨소리. 작고 리듬감 있는 숨결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맴돌고 있었다. 이불이 배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는 살짝 끌어올려 아이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작은 손가락이 이불 끝을 움켜쥐고 움직였다.
다시 나와 조심스럽게 장모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틈은 닫혀 있었고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약을 드셨다면… 지금쯤 잠드셨겠지.’
그제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입안에서 술기운이 퍼졌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며 안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흐음…”
조용한 적막을 가르는 그 한숨이,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숨소리였다. 방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준호는 화들짝 놀라 멈춰 섰다.
꺼버린 거실 불빛 속, 어둠이 눈에 익숙해진 순간—거실 소파의 한쪽. 그곳에, 장모 혜정이 낮의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단추를 풀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어두운 공간 속,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기다린’ 기색이 느껴졌다. 새로운 가장의 귀가를 기다리다 그대로 잠든 것일까. 준호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깨워야 하나…’
하지만 손끝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깨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앞서서일까. 망설이다 조심스레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어머님…”
대답은 없다. 몸도, 숨소리도 조용했다.
준호는 결국 그녀를 안아 옮기기로 했다. 무릎 뒤로 손을 넣고 등을 받치며 몸을 끌어안는 순간—샴푸향이 불쑥 코끝을 스쳤다. 그 안에는 다희를 떠올리게 하는 살내음이 섞여 있었다.
“흐음!”
몸을 들어올리려는 찰나, 혜정이 움직인다.
“어머… 왔어? 뭐야…”
잠결에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혜정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안 일어나셔서요. 그냥 방에 옮겨드릴게요.”
이미 품 안에 들어와 있는 그녀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준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 몇 걸음—혜정은 가만히, 준호의 목선을 올려다봤다. 어디선가 낯익은 감촉. 낮에, 소파 위에서 느껴졌던 그 손길과 분명 닮아 있었다.
‘그때… 사위가 맞았나… 왜…’
질문이 떠오르기도 전에 방 앞에 도착했다.
“장모가 무거웠을 텐데… 고맙네… 기다린 보람이 있네. 이렇게 안겨도 보고.”
혜정은 어색한 기류를 걷어내려는 듯, 농담처럼 툭 던졌다.
“가벼우신데요. 뭘… 그럼… 주무세요.”
준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혜정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벽시계로 눈길을 올렸다. 바늘은 자정을 한참 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