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재는 아이들이 도아영을 이렇게까지 거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아영은 서럽게 울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다 내 탓이야... 내가 잘못했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나를 몰랐으니...”
강현재는 허인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아영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네 탓이 아니야. 너도 어쩔 수 없었잖아.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우선 위층에 올라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
도아영의 차림새는 지금 무척 초라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강현재는 도아영이 너무나 약해 보이자 직접 그녀를 부축하며 객실로 향했다.
두 사람은 허인하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 그녀의 옆을 지나쳐갔다.
허인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자신을 다독였다.
‘도아영은 그저 아이들이 그리워서 너무 보고 싶어 온걸 거야. 그리고 현재 씨는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상황을 수습하려 하는 것뿐이고.’
허인하는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들아, 이제 가자. 씻고 자야지.”
“네, 엄마!”
아이들은 허인하를 졸졸 따라갔다.
객실 안.
도아영은 간단히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들 이제 곧 자겠지?”
강현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시간이 꽤 늦었으니까.”
오늘이 재상장 기념 연회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도아영은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내려놓으며 붉어진 눈시울로 말했다.
“내가 아이들을 씻겨줘도 될까? 그러면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었어.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
그녀의 눈에는 아이들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강현재가 어찌 한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들은 감정이 틀어져 헤어진 것이 아니라 운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것이었기에 강현재는 도아영이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어쨌든 두 아이는 도아영이 고생해서 낳은 자식들이니까.
그래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이들 침실 쪽.
“이연아, 이준아?”
강현재가 방문을 두드렸다.
허인하가 문을 열었는데 두 손은 아직 젖어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강현재가 말했다.
“아영이가 아이들과 같이 목욕하면서 친해지고 싶어 해.”
터무니없는 부탁은 아니었다.
허인하는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이연이는 오른쪽에 있는 욕실을 써요.”
남녀가 구별될 나이고 아이들이 벌써 여섯 살이나 되었으니 당연히 따로 씻어야 했다.
도아영은 서둘러 오른쪽 욕실로 향했고 문을 열자마자 조심스럽게 비위를 맞추려 했다.
“이연아? 엄마야!”
갑자기 낯선 여자가 나타나 엄마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이연이는 냉큼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당신 도움 따위 필요 없어요.”
도아영은 딸의 차가운 반응에 다시금 눈물을 글썽였다.
강현재는 욕실 문을 등진 채로 말했다.
“이연아,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도아영은 얼른 강현재를 말렸다.
“됐어. 아이들이 나를 아직 몰라서 경계심이 심한 건 당연해. 난 괜찮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체념이 묻어났다. 강현재는 그런 그녀를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친엄마가 친자식에게 다가갈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그는 목욕 장난감 오리를 강이준에게 주려던 허인하를 보며 대뜸 말했다.
“당신은 평소에 애들을 이렇게 가르친 거야?”
느닷없이 비난을 받은 허인하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내가 뭘 어떻게 가르쳤다는 거야?”
“아영이는 아이들 친엄마야. 비록 낯선 사람일지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니야?”
강현재는 아이들이 도아영에게 저렇게 쌀쌀맞게 대하는 것은 허인하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허인하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며 해명했다.
“아이들이 낯설어해서 그러는데 나라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됐어.”
강현재는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서 아영이 도와서 이연이 씻겨줘.”
말을 마친 강현재는 아들 강이준의 욕실로 성큼성큼 가 버렸다.
허인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강이연의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아영은 혼자 샤워젤을 손에 짠 후 강이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연아, 엄마가 샤워젤 발라줄까?”
강이연은 그녀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방금 엄마가 아빠에게 혼나는 것을 들었기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인하는 자신 때문에 억지로 참는 딸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친모녀의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목욕은 금세 끝났고 도아영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작은 유리병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연아, 이 딸기 향 바디로션 발라줄까?”
강이연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고맙지만 괜찮아요. 바디로션은 엄마가 발라줬으면 좋겠어요.”
허인하는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할게요.”
도아영은 딸이 자신을 이렇게 거부하는 모습에 속이 상했지만 애써 괜찮은 척 말했다.
“그럼 그러세요.”
그런데 허인하가 도아영의 손에 들린 바디로션 병을 잡으려는 순간, 도아영은 짐짓 손을 미끄러뜨렸고 유리병은 바닥에 떨어져 두 조각으로 깨져 버렸다.
강이연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발을 헛디뎠고 마침 유리 조각이 있던 자리를 밟아 하얀 발에서 피가 솟았다.
“엄마! 피나요!”
강이연은 울음을 터뜨렸다.
허인하는 순간 당황했지만 재빨리 아이를 안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아영 역시 허둥지둥 따라가며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강현재도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왔고 딸의 발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보았다.
허인하는 능숙한 손길로 구급상자를 가져와 딸의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강현재가 물었다.
도아영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사모님, 제 존재가 불만스러우시더라도 제 아이의 건강을 담보로 화풀이하시면 안 되죠. 저 유리 조각이 얼마나 위험한데... 아까 유리병을 뺏지만 않으셨어도...”
허인하는 손길을 멈칫했고 면봉이 하마터면 아이의 상처를 찌를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아이의 상처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유리 조각이 깊게 박히진 않았고 겉에 살짝 스친 정도였다.
그 말에 강현재는 허인하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해. 애꿎은 아이한테 화풀이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야?”
허인하는 억울함에 고개를 들었다.
“난 유리병을 뺏으려 한 적도 없고 화를 낸 적도 없어.”
도아영은 자책하며 말했다.
“됐어. 현재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괜히 아이들이랑 가까워지겠다고 아이들을 씻기려고 한 거잖아. 나만 아니었으면 우리 딸이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강현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왜 네 잘못이야? 넌 아이의 친엄마잖아. 세상 그 누구든 아이를 해칠 수 있어도, 너만은 절대 그럴 리 없잖아.”
허인하의 손에 들려 있던 면봉이 뚝 부러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니까 강현재는 모든 게 나의 질투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갑자기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엄마, 속상해하지 말아요.”
강이연이 갑자기 허인하를 끌어안았다.
“이연이는 정말 하나도 안 아파요.”
허인하는 따뜻한 감동을 느끼며 애써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었다.
“그래, 엄마는 괜찮아.”
그러자 강현재는 강이연에게 못마땅한 듯 말했다.
“친엄마가 저렇게 슬퍼하고 있는데 위로해 줄 생각은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도아영은 강현재의 셔츠 소매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애를 너무 나무라지 마. 아직 어린아이인데 뭘 알겠어?”
결국 아이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건 다 허인하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라는 의미였다.
강현재는 분노에 휩싸여 허인하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내일부터 아이들은 당신이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돼. 아영이에게 맡기도록 해.”
‘뭐라고?’
허인하는 딸의 상처를 다 치료하고 일어섰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강이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엄마는 병을 뺏으려고 한 적 없어요. 저 아줌마가 엄마가 채 잡기도 전에 갑자기 손을 놔 버렸어요! 일부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