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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의 이혼각서
재벌가의 이혼각서
Author: 타로볼 망고

제1화

Author: 타로볼 망고
해성에서 강성으로 돌아오던 그날은 소찬미의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다.

강성으로 오기 전, 그녀는 독감에 걸려 기침이 꽤 심했다.

하지만 박성주와, 그리고 석 달이나 보지 못한 아들과 딸이 마음에 걸려 아픈 몸을 끌고 결국 강성으로 향했다.

박씨 가문은 본래 강성 토박이였다. 이후 사업이 해성 쪽으로 크게 확장되면서 거처를 해성으로 옮겼지만, 강성에 남아 있는 옛 저택만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씨 가문의 본가에 도착했을 때, 휴대전화 화면 위로 뉴스 알림 하나가 떴다.

[박 대표, 거액 쾌척, 톱배우 고원희 위해 캠프파이어 파티 열어]

소찬미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박씨 가문에서 일하는 가정부는 해성 출신이라, 그 기사를 보자마자 서둘러 말을 보탰다.

“해성 쪽 언론은 원래 과장해서 쓰잖아요. 사모님,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대표님은 오늘도 공적인 일정 때문에 바쁘신 거예요.”

소찬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성으로 돌아오기 전, 그녀는 박성주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미련을 두고 끙끙 앓는 성격은 아니었다.

다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성의 경제 명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선 그 남자는 도대체 얼마나 바쁜 걸까.

아내의 연락조차 답하지 못할 만큼.

‘그만 생각하자.’

소찬미는 외투를 벗고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 구역으로 향했다.

석 달 만에 보니, 쌍둥이는 눈에 띄게 훌쩍 자라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소꿉놀이에 한창인 남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들은 모래로 집을 만들고 그 안에 작은 인형 두 개를 각각 넣어 두었는데 누가 봐도 집 주인인 아빠와 엄마였다.

소찬미는 일부러 딸을 놀리고 싶어졌다.

“딸, 이 둘은 누구야?”

모래를 쌓던 딸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아빠랑 원희 이모.”

“아니야.”

아들이 고개를 저었다.

“내 집에 사는 사람이 이모야. 네 집에 사는 사람이 엄마고.”

“그렇지만 난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딸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소찬미는 잠시 멈칫하다가 딸의 양 갈래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엄마는 싫어?”

“좋아요. 그래도 이모가 아빠랑 더 잘 어울려요.”

아들의 말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딸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동의했다.

딸아이는 유난히 치장을 좋아하는 편이라, 못마땅한 기색으로 머리 위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엄마, 감기 걸렸잖아요. 나랑 좀 떨어져 있어요. 그리고 내 머리도 만지지 말아요. 이거 이모가 해 준 머리라, 흐트러지면 이모가 속상해할 거예요.”

소찬미는 무심코 자신의 마스크를 만졌다.

아이들은 어느새 이모에게 입힐 옷을 어떻게 만들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엄마를 상징하던 작은 인형은 구석에 내팽개쳐진 채,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순간, 가슴이 꽉 조여 왔고 입안에도 씁쓸한 맛이 번졌다.

아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모’는 곧 남편의 첫사랑이었다.

매체들 사이에서 박성주와 천생연분이라 불리는 여자.

그녀와 박성주가 비밀 결혼을 유지해 온 이 몇 해 동안, 사람들이 인정하는 박 사모님은 오히려 고원희인 듯했다.

다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과 몇 달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피를 나눈 아이들마저도 고원희를 더 좋아할 줄은.

소찬미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가정부의 재촉을 받고서야 위층으로 올라가 씻고 쉬었다.

마침 박성주의 비서가 급히 찾아왔다가 그녀를 보고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밤은 일정이 있어 돌아오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저더러 고원희 씨에게 드릴 선물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어요.”

소찬미는 담담히 대답했다.

비서가 떠난 뒤, 가슴 안쪽이 유난히 아려 왔다.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줄 선물은 기억하면서 결혼 3주년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박성주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바로 연결됐다.

“무슨 일이야?”

영상 속에는 박성주의 전용 휴식실이 비쳐 있었다.

정교하고도 호화로운 공간, 눈부신 조명 아래로 강성 특유의 화려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박성주는 수제 맞춤 정장을 입은 채, 와인잔을 들고 소파에 반쯤 몸을 기댄 모습이었다.

그에게선 상인의 날카로움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눈매와 인상은 서늘할 만큼 고결하고 담담했다. 마치 서리처럼, 눈처럼.

그는 수많은 이들이 올려다보는 존재였다. 그런 박성주를 그녀는 꼬박 여섯 해 동안 사랑해 왔다.

소찬미는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오래 못 봤잖아요. 오늘 밤은...”

“성주 씨...”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전화 너머로 부드럽고 애교 섞인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고원희였다.

곧이어 영상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끊기기 직전, 박성주는 담담하게 몇 글자만 남겼다.

“돌아가서 얘기해.”

소찬미는 휴대폰을 꽉 쥐고 차분한 얼굴로 창밖의 강성을 바라보았다.

고층 빌딩들 사이로 차들이 끊임없이 오갔고 불빛은 비단처럼 흘렀는데 사람을 현혹할 만큼 눈부셨다.

그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서, 남편 박성주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쥔 채 강성의 판도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유독 그녀, 자신의 아내만은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았다.

여섯 해였다. 그는 그녀에게 변함없이 차가웠다.

그녀에게 머무는 온화한 시선 아래에는 언제나 무관심이 깔려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줄곧 그의 마음을 녹이려 애써 왔다.

‘이젠 지쳤어.’

소찬미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박성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미안. 결혼 3주년 축하해.]

곧이어 한 줄이 더 도착했다.

[이건 보상이야.]

잠시 뒤, 열 자릿수 금액이 찍힌 은행 입금 알림이 화면에 떴다.

메시지를 스크롤하니 마침, 고원희의 SNS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에서 8개월을 들여 맞춘, 평생 한 번뿐인 맞춤 다이아몬드 반지. 성주 씨, 고마워요.]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백옥 같은 손가락 위에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부시게 빛났다.

고탑 아래, 장밋빛 드레스 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치스럽고도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소찬미는 문득, 자신이 박성주와 결혼하기 전의 그날을 떠올렸다.

고요하고 고풍스러운 본가.

그는 회랑 아래를 걸으며, 잔잔한 눈빛으로 그녀의 허황한 바람을 아무렇지 않게 꿰뚫어 보았다.

그가 말했다.

“당신과 결혼은 할 거야. 하지만, 그뿐이야.”

예전의 그녀는 ‘전 많은 돈이 아니라, 많은 사랑을 원해요’ 라는 말이 괜히 감상적인 투정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녀가 여섯 해 동안 품어온 소원도 결국은 박성주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을 그녀는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소찬미는 마음속에 차오른 수많은 감정을 꾹 눌러 담고 홀로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층 작은 정원에서 딸의 천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한 불만이 섞인 말투였다.

“엄마는 왜 돌아온 거야? 오늘은 원희 이모가 우리 데리고 음악회 가서 곰 인형 춤추는 거 보기로 했는데, 이제 못 가잖아... 에휴, 엄마가 아예 안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맞아. 아빠도 분명 이모를 더 좋아할 거야. 삼촌이 그러던데, 아빠는 이모랑 결혼을 못 해서 엄마랑 결혼한 거래. 엄마도 예쁘긴 하지만 그래도 난 이모가 더 좋아.”

아들은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그 말은 귀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결혼을 못 해서?’

그녀는 충격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고 무감각하던 마음이 이내 허공에 떠 있는 듯 멍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두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들을 낳을 때 그녀는 난산으로 대출혈을 겪으며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두 아이는 몸이 약했고 소찬미는 밤낮없이 돌보느라 결국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다 강성 쪽에 큰 문제가 생겼다.

집안 어르신의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된 것이다. 박성주는 강성으로 돌아가 자리를 지켰고 아이들 역시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 뒤로 몇 해 동안, 그녀는 두 도시를 오가며 지냈지만 아이들은 점점 그녀와 멀어져 갔다.

소찬미는 어느덧 방에 돌아와 있었다.

아이들은 곧 개인 수업이 있었고 가정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소찬미는 바쁜 와중에도 다시 한번 박성주와 약속을 잡으려 했다.

그녀는 이 집안의 안주인이었다. 아이들의 일도, 고원희의 일도 물어볼 자격과 이유가 충분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단 한마디였다.

“중요한 일이 있어. 내일 밤에 다시 이야기해.”

소찬미는 가슴에 고인 이 씁쓸함을 도무지 말로 풀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을 나섰고, 정신없이 걷다 보니 처음 박성주와 인연을 맺었던 그 사찰에 다다랐다.

강성의 사찰은 규모가 아주 작은 곳이었다.

막 발을 들이자, 장엄하고 고요한 불전 앞에서 아이의 맑고 순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모, 정말로 소원이 이뤄져요?”

“물론이지.”

소찬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원희와 박성주가 각각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네 사람은 마치 한 가족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불탑 앞에 나란히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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