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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깨어난 의사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5 01:05:29

도화준은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모니터의 파형은 불안정한 구간을 지나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고, 산소포화도도 위험선을 겨우 벗어났다. 

흉관에서는 여전히 붉은 액체가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수술 직후 상태를 감안하면 당장 다시 수술방으로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민영은 회복실 침대 옆에서 한참 동안 차트를 확인했다.

수술 기록, 수혈량, 흉부 손상 부위, 늑골 골절, 폐 손상, 혈압 변화. 

모든 기록은 현실적이었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손상이었고, 

사고 직후 의식 혼탁 상태에서 이상한 말을 하는 것도 설명은 가능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납득되는 것은 달랐다.

민영은 펜 끝을 멈춘 채 도화준의 얼굴을 봤다.

피를 닦아낸 얼굴은 더 낯설어 보였다. 

평소의 도화준은 사람 좋은 쪽에 가까웠다. 피곤하면 말수가 줄었고, 

긴장하면 괜히 펜을 만지작거렸고, 민영이 뭐라고 하면 대답은 짧게 하면서도 결국 그대로 했다. 

그런데 방금 눈을 떴을 때의 그는 달랐다.

서민영. 이름을 그렇게 부른 적은 없었다.

차태겸. 동료의 이름을 확인하듯 부른 적도 없었다.

‘이 몸은 약하군요.’

‘살아 있는 몸은 이렇게 시끄럽나.’

민영은 차트 위에 펜을 내려놓았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고 후 섬망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저산소 상태와 쇼크, 마취 여파, 통증, 출혈. 원인은 충분했다. 

그러니 이상한 말은 이상한 말로 두면 된다.

그렇게 정리하려는 순간, 도화준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민영은 바로 몸을 숙였다.

“화준 선생님.”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동공 반응을 확인하고, 맥박과 호흡을 봤다. 

아직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움직임은 반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영은 손을 거두지 못했다. 

손목에 닿는 피부는 여전히 차가웠다.

너무 차가웠다.

그때 회복실 커튼이 열렸다.

태겸이 들어왔다. 손에는 종이컵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이미 식었고, 다른 하나는 김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민영 앞에 따뜻한 쪽을 내밀었다.

“마셔.”

민영은 컵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안 마셔.”

“너 이러다 쓰러져.”

“안 쓰러져.”

“응급실에서 그 말 하고 쓰러진 사람만 올해 스무 명 봤다.”

민영은 결국 종이컵을 받았다. 

손끝에 따뜻함이 닿자, 조금 전 도화준의 손목에서 느꼈던 차가움이 더 선명해졌다.

태겸은 침대 위의 도화준을 내려다봤다.

“어머니는 교수님 설명 듣고 대기실에 계셔. 울다 지치신 것 같아.”

“혼자 계셔?”

“간호사 선생님이 같이 있어. 내가 조금 있다 다시 가볼게.”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겸은 잠시 말없이 도화준을 보다가 낮게 말했다.

“아까 진짜 이상했지.”

민영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멈췄다.

“뭐가.”

“너도 들었잖아.”

“사고 후 헛소리야.”

“그렇겠지.”

태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근데 눈이 이상했어.”

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준이 눈이 아니었어.”

그 말은 민영이 생각하고도 꺼내지 않았던 문장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끝에 닿았지만, 이상하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겸아.”

“응.”

“사고 후 의식 혼탁으로 이상한 말 하는 경우 많잖아.”

“많지.”

“그럼 그렇게 보면 돼.”

“너 지금 나 설득하는 거야, 너 자신 설득하는 거야?”

민영은 그를 보지 않았다.

태겸은 억지로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 일단 그렇게 보자. 근데 너는 이제 나가서 쉬어. 내가 여기 볼게.”

“나 괜찮아.”

“또 금지어 나왔네.”

“금지어 같은 거 만든 적 없어.”

“방금 만들었어. 괜찮아 금지.”

민영은 피곤하게 그를 흘겨봤다.

그때 회복실 바깥에서 간호사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민영 선생님! 응급실 쪽에 심정지 환자 들어옵니다!”

민영은 종이컵을 내려놓고 바로 일어났다. 

몸은 지쳤는데 반응은 빨랐다. 태겸도 동시에 움직였다.

“내가 갈게. 너 여기 있어.”

“같이 가.”

“화준이는?”

민영은 도화준을 보았다.

모니터는 안정적이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간호사 선생님한테 바로 콜 달라고 해.”

“민영아.”

“심정지 환자야.”

그 말 하나로 충분했다.

둘은 곧장 응급실로 뛰었다.

응급실은 다시 뒤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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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4. 돌아오겠다는 말이 지닌 무게

    태겸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보고 입술을 굳혔다. 그는 환자 이송팀을 따라가야 했지만, 잠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영이 도진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그것이 태겸을 불안하게 했다.수술방 앞에서 보호자 설명을 마친 뒤, 민영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박성재의 아내는 젖은 케이크 상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챙겨준 것이라고 했다. 상자 옆면은 찌그러졌고, 리본은 피와 빗물로 젖어 있었다. 아내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품에 안았다.“오늘… 딸 생일이라서요.”그녀는 울면서 말했다.“퇴근길에 사 온다고 했는데…”민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응급실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었다. 사람은 늘 평범한 일을 하다가 죽음에 닿는다. 케이크를 사러 가다가, 퇴근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죽음은 특별한 장면에서만 오지 않는다.그래서 더 잔인하다.“수술 들어갔습니다.”민영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상태가 많이 위중해요. 출혈이 컸고, 응급실에서 심장이 한 번 멈췄습니다. 그래도 지금 다시 뛰고 있고, 수술팀이 계속 보고 있습니다.”아내는 케이크 상자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살 수 있나요?”민영은 그 질문 앞에서 늘 같은 무게를 느꼈다.확실히 말할 수 없는 것.그래도 말해야 하는 것.“지금은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어요.”그녀는 거짓말하지 않았다.“저희도 놓지 않을 겁니다.”아내는 무너져 울었다.민영은 잠시 그녀 곁에 있었다. 할 말은 많지 않았다. 대신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도왔고, 물을 가져다주었고, 연락할 가족이 있는지 물었다. 설명이 끝나도 보호자를 바로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은 민영이 자신도 모르게 지켜온 습관이었다.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새벽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도진은 회복실에 있어야 했다.그러나 그는 응급실 한쪽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이번엔 간호사와 함께 있었다. 적어도 혼자 움직이지는 않았다. 민영은 다가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3. 지금은 살아 있다는 문장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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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2. 따님의 생일이라는 마지막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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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1. 트라우마 콜

    민영은 돌아오지 않았다.도진은 당직실 의자에 앉은 채 복도 쪽을 보고 있었다. 민영이 남기고 간 컵라면은 불어 있었다. 뚜껑은 반쯤 열려 있었고, 국물 위로 식은 기름이 얇게 떠 있었다. 조금 전 그녀가 웃으며 “다녀올게요”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방 안에는 아주 작은 온기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형광등 아래 오래 방치된 음식 냄새와 식은 공기만 남아 있었다.복도 끝에서 들렸던 웃음소리는 사라졌다.그러나 도진은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누군가 이 병원의 바깥쪽을 손끝으로 긁고 있다.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듯한 기척. 도진은 그 불쾌한 감각을 따라가려다 멈췄다.약속했다.혼자 움직이지 않겠다고.그 말이 이렇게 몸을 묶을 줄은 몰랐다. 저승에서의 명령과는 달랐다. 명령은 지키거나 어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약속은 이상하게 사람의 얼굴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민영이 손목을 잡고 “이번엔 진짜 안 돼요”라고 말하던 얼굴. 태겸이 “너 또 움직이면 진짜 묶어버린다”고 하던 목소리.도진은 문밖으로 시선을 두었다.응급실 쪽 소음이 평소보다 거칠었다.침대 바퀴 소리, 간호사들의 뛰는 발소리, 보호자의 울음, 누군가 낮게 욕을 삼키는 소리. 그 사이에서 민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렷하고 빠르게, 그러나 흔들리지 않게.“압박 준비해요. 기도 먼저 봐요.”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 손잡이를 잡았다.민영은 살아 있었다.다녀오겠다고 했으니 돌아올 것이다.그렇게 생각한 순간, 응급실 전체를 찢는 호출음이 울렸다.트라우마 콜. 트라우마 콜. 응급센터 외상구역 준비 바랍니다.도진은 눈을 들었다.트라우마.도화준의 기억이 그 단어를 열었다. 대형 외상. 교통사고, 추락, 압궤 손상, 다발성 출혈. 한 생명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무너지는 순간. 응급실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가 다시 멈췄다.민영은 돌아오지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0. 다녀올게요라는 말이 주는 돌아옴의 무게

    죽음의 냄새 때문은 아니다. 민영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오래 버텨 닳은 사람의 피로, 소독약, 커피, 그리고 살아 있는 환자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이상한 온기.그는 그 온기가 낯설어서 보고 있었다.“확인하게 됩니다.”“뭘요?”“민영 선생님이 무너지지 않았는지.”민영은 숨을 멈췄다.그 말은 너무 조용했다. 꾸미거나 떠보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저 안 무너져요.”“그건 모릅니다.”“왜요?”“무너지는 사람들도 대부분 직전까지 괜찮다고 합니다.”민영은 대답하지 못했다.그 말은 이상하게 정확했다.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그랬다. 괜찮다고 말하다가 무너진다. 버틸 수 있다고 말하다가 주저앉는다. 자신도 여러 번 그랬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그 순간을 그렇게 똑바로 보지 않았을 뿐.도진은 그녀가 말이 없자 낮게 덧붙였다.“아까 태겸이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민영은 그제야 아주 작게 웃었다.“태겸이는 원래 잔소리가 많아요.”“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맞아요.”민영은 시선을 내렸다.“오래 같이 일했으니까요.”도진은 그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오래.’그 단어는 인간에게 무게가 있다.도진은 문득 자신에게는 그런 오래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저승에서 보낸 시간은 길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쌓은 오래는 아니었다. 그는 지나가는 죽음을 봤고, 끝난 시간을 데려갔고,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을 스쳐 지나갔다. 머문 적은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멈춰 서 있었다.민영 앞에서.“화준 선생님.”민영이 조용히 불렀다.“네.”“진짜로 잠이 안 와요?”도진은 잠시 침묵했다.“잠드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민영의 눈빛이 흔들렸다.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도진의 얼굴은 너무 진지했다. 사고 후 불면, 불안, 통증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의 결이 달랐다.잠을 못 자는 사람이 아니라, 잠이라는 행위를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 같았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29. 살아 있으려고 애쓰는 소리

    “너 말 잘한다.”“뭐가.”“죄책감은 나중에 와도 늦지 않다는 거.”민영은 잠시 멈췄다.“그냥… 지금 무너지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너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야.”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태겸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화준이 사고, 네 탓 아니야.”“그 얘기 또 하려고?”“할 때 됐으니까.”“나 진짜 괜찮아.”“그 금지어 들으면 나 이제 혈압 오른다.”민영은 아주 작게 웃었다.“그럼 혈압 재봐.”“장난치지 말고.”태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민영은 그제야 그를 제대로 봤다.태겸은 평소처럼 농담을 섞고 있었지만, 눈은 진지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이런 식으로 봤다. 너무 오래 버티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손이 떨리는지, 웃는 척하는지.그 시선은 익숙했다.그래서 때로는 더 피하고 싶었다.“알아.”민영은 조용히 말했다.“내 탓 아닌 거 알아.”“아는 얼굴이 아닌데.”“그래도 알아.”태겸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먹어.”“나 애 아니야.”“애보다 말을 안 들으니까.”민영은 초콜릿을 받아 들고 피곤하게 웃었다.그 순간 회복실 쪽에서 도진이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민영은 웃음을 거두었다. 도진은 멀리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질투 같은 건 아니었다. 아직 그에게 그런 감정이 있을 리 없다.그런데도 그의 시선이 묘하게 걸렸다.태겸도 그걸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또 보고 있네.”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도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그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초콜릿, 짧은 농담, 걱정 섞인 말투를 보고 있었다. 인간의 관계는 복잡했다. 민영과 태겸은 서로를 오래 알고 있었다. 그 안에는 편함도 있고, 걱정도 있고, 말하지 않는 감정도 있어 보였다.도진은 그것을 불편하다고 해야 할지, 낯설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다만 가슴 안쪽이 조금 조용하지 않았다.밤이 다시 내려앉았다.사실 병원 안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희미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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