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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몸은 약하군요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5 01:03:25

한참 뒤, 수술방 문 위의 불이 꺼졌다.

민영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화준은 눈을 뜨지 않았다.

수술은 끝났지만, 완전히 안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중환자실로 올라가기 전 회복실에서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 

흉관은 유지됐고, 수혈도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교수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태겸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면서도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였다.

민영은 회복실 밖에서 도화준을 바라봤다.

그는 창백했다. 평소보다 훨씬 말라 보였다. 

산소마스크와 라인들, 흉관, 

모니터 선들이 그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응급실에서 늘 남의 몸에 붙이던 것들이 이제 그에게 붙어 있었다.

태겸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어머니 오시는 중이래.”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교수님이 하실 거고, 내가 옆에 있을게.”

“응.”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회복실 안에서 모니터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삐. 삐. 삐.

그 소리가 이렇게 고마운 적이 있었나 싶었다.

민영은 유리창 너머 도화준의 손을 보았다. 

수술포 아래로 드러난 손끝. 피가 닦여 나간 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손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라기엔 너무 하얗고 차가워 보였다.

민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까 응급실에서 도화준의 손끝이 움직였을 때, 아주 짧게 닿았던 감각이 떠올랐다.

차가웠다.

사고 환자라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출혈, 쇼크, 저체온. 설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왜 그 차가움이 단순한 체온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질까.

“민영아.”

태겸이 불렀다.

“응.”

“너 진짜 좀 쉬어. 얼굴이 환자보다 안 좋아.”

민영은 희미하게 웃었다.

“말이 심하다.”

“사실이야.”

“화준 선생님 깨어나는 것만 보고.”

“그 말 할 줄 알았다.”

태겸은 더 말리지 않았다.

민영은 유리창 너머를 계속 봤다.

도화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복실 조명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민영은 처음엔 눈이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모니터 선들이 한순간 가볍게 떨렸고, 도화준의 손끝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민영은 숨을 멈췄다.

“태겸아.”

“왜.”

“손.”

태겸도 유리창 안을 봤다.

도화준의 손끝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이번에는 응급실 때보다 조금 더 길었다.

민영은 본능적으로 회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태겸이 뒤따랐다.

“화준 선생님.”

민영은 침대 옆에 섰다.

“제 말 들려요?”

도화준은 천천히 눈을 움직였다.

천장, 모니터, 수액, 산소마스크, 태겸, 그리고 민영.

그 시선이 민영에게 닿는 순간, 그녀는 다시 그 낯선 감각을 느꼈다.

분명 도화준의 눈이었다.

그런데 도화준이 아니었다.

피로하고 어수룩하고 늘 한 박자 늦게 웃던 그 남자의 눈이 아니라, 

너무 멀리서 사람을 보는 듯한 눈. 

살아 있는 인간들을 처음 관찰하는 듯한 차분함.

민영은 말끝을 조금 늦췄다.

“화준 선생님, 여기는 한서대학병원이에요. 사고가 났고, 수술은 잘 됐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겸이 가까이 와서 말했다.

“야, 도화준. 나 보여?”

도화준의 눈이 태겸에게 향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

“…보인다.”

태겸의 얼굴이 풀렸다.

“그래. 살아 있네, 이 자식.”

민영은 다시 물었다.

“통증 있어요?”

도화준은 민영을 보았다.

“통증.”

마치 그 단어를 처음 확인하는 사람처럼 낮게 되뇌었다.

“아플 거예요. 많이 다쳤어요.”

그는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더니 말했다.

“이 몸은… 약하군요.”

회복실 안이 조용해졌다.

태겸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민영은 도화준을 바라봤다.

산소마스크 아래에서 그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더 작게 들렸다.

“살아 있는 몸은… 이렇게 시끄럽나.”

민영의 등줄기를 따라 알 수 없는 한기가 흘렀다.

‘환자의 헛소리다.’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도화준의 눈은 너무 또렷했다.

그는 주변을 보고 있었다. 단순히 깨어난 환자가 아니라, 

자신이 들어온 세계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민영은 조심스럽게 그의 손목을 짚었다.

맥박은 빨랐다.

살아 있었다.

그런데 피부는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

민영의 손끝이 아주 살짝 움찔했다.

도화준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은 듯 그녀를 바라봤다.

“서민영.”

민영은 숨을 멈췄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낯설었다. 

병원에서 늘 부르던 ‘민영 선생님’이 아니라, 마치 이름 자체를 확인하는 목소리였다.

태겸이 바로 말했다.

“야. 너 왜 갑자기 이름을 그렇게 불러?”

도화준은 태겸을 보았다.

그 시선은 아주 짧게 태겸을 훑었다.

“차태겸.”

태겸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진짜. 머리도 다쳤나.”

민영은 도화준의 동공을 다시 확인했다. 

의식은 흐린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선명했다. 

말은 느렸지만, 단어 선택이 이상했다. 

사고 후 혼란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화준 선생님.”

민영은 최대한 부드럽게 불렀다.

“지금은 말 많이 하면 안 돼요. 쉬어야 돼요.”

도화준은 그녀를 보았다.

한참 동안. 그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물러서, 

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조금 거두려 했다. 

그때 그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붙잡으려는 힘은 아니었다. 

다만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너무 약한 움직임.

민영은 움직임을 멈췄다.

도화준은 낮게 말했다.

“당신이…”

그의 목소리가 산소마스크 안에서 흐려졌다.

“이 사람을 붙잡았군.”

민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겸이 낮게 불렀다.

“화준아.”

도화준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모니터는 다시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삐. 삐. 삐.

그는 잠든 듯 보였다.

그러나 민영은 한동안 그의 손목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너무 차가운 맥박이 손끝 아래에서 뛰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아니. 살아 있는 척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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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30. 다녀올게요라는 말이 주는 돌아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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