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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or: 마루콩
부모님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이주는 심원후에게서 전화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거친 호흡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강이주, 지금 당장 병원으로 와서 초아한테 사과해.]

심원후의 목소리 배경에 백초아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들려왔다.

강이주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원후는 백초아가 아픈 게 마음에 걸려서 그 화를 전부 강이주에게 쏟고 있었다.

강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고함을 그대로 흘려보낸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이후로도 심원후의 전화는 끊임없이 걸려왔다. 병원에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기세였다.

강이주는 짜증이 치밀어, 결국 심원후의 번호를 차단했다.

전화기가 조용해지자 그제야 숨이 트였다.

...

부모님댁에 도착하자마자 강이주는 표정이 굳어 있는 어머니, 장숙연 여사와 눈이 마주쳤다.

강이주는 인사할 틈도 없었다.

장 여사는 곧장 강이주 앞으로 다가와 화를 억누르지 못한 채 따져 물었다.

“또 원후 기분 상하게 했지? 이주야, 엄마가 몇 번을 말해. 네 마음대로 굴지 말고 원후 잘 달래라고. 넌 다 큰 애가 왜 이렇게 철이 없니.”

“방금 원후한테 전화 왔어. 네가 전화 차단했다더라. 지금 당장 원후한테 전화해서 사과해. 빨리.”

말을 하며 장 여사는 강이주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예전의 장 여사라면, 절대 강이주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강씨 집안은 몰락하기 전까지만 해도 심씨 집안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3년 전, 강이주의 아버지 강서규의 잘못된 판단으로 강씨 집안은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이후 강서규가 가까스로 강중그룹을 지켜냈지만, 회사는 줄곧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이주와 심원후의 교제는 강중그룹에 남은 유일한 희망처럼 여겨졌다.

심명그룹의 지원이 있었기에 간신히 자본이 유입되고 숨통이 트였다.

그때부터 강이주와 심원후의 연애는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로 변해갔다.

심원후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장 여사는 언제나 강이주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라고 했다.

혹여 심명그룹이 투자를 거두기라도 하면, 강중그룹은 완전히 끝이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강이주는 중풍으로 쓰러져 병상에 누운 아버지와 울고 매달리는 어머니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접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강이주는 알았다. 아무리 자세를 낮춰도, 아무리 자신을 깎아내려도 심원후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심원후는 바로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강이주에게 상처입혔다.

“엄마, 나 심원후랑 헤어질 거예요.”

강이주는 결국 장 여사에게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동시에 장 여사가 반대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게 분명했다.

장 여사는 ‘헤어지겠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폭발했다.

“지금 무슨 소리야? 누가 헤어지래? 난 절대 반대야. 장난하지 마. 당장 원후한테 가서 사과해.”

장 여사는 강이주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내가 같이 가주마. 원후한테 가서 제대로 사과해. 그리고 원후가 널 용서하도록 만들어. 내가 뭐랬어, 쓸데없는 감정 부리지 말라 했잖아.”

“엄마!”

강이주는 장 여사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요?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심원후 마음 속에 저는 없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헤어지겠다는 말은, 사실 이전에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장 여사의 울음과 협박에, 강이주는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장 여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이주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정신 나간 소리하지 마. 원후 도움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버티겠니? 그리고 원후가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 왜 그렇게 너랑 오래 사귀었겠니?”

“어제 구청에 너 혼자 남겨둔 거? 그 정도는 이해해야지. 원후한테는 중요한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역시... 엄마도 알고 있었네.’

강이주는 마음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어머니는 강이주의 사정을 다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은 강이주에게 먼저 잘못을 인정하라고 했다.

‘난 정말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강이주는 차분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엄마, 현실 좀 봐요. 심원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백초아예요. 어제는 백초아 때문에 세 번째로 저와의 약속을 저버렸어요. 이제 저도 지쳐요.”

강이주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강이주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장 여사는 결국 또 항상 똑같은 말을 하리라는 걸.

즉, 조금만 참고 넘기라는 그 말.

과연 그랬다.

장 여사는 강이주의 말을 듣자마자 못마땅하다는 듯 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밀었다.

“야, 남자 하나 붙잡아 두지도 못하면서 누구 탓을 해? 어쨌든 나는 네가 심원후랑 헤어지는 거 절대 반대야.”

“원후 부모 쪽에서 백초아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너도 알잖아. 그 정도 상황인데도 원후 마음에서 백초아 하나 못 지우고, 결국 너랑 결혼하게 만들지도 못했으면, 네가 왜 원후를 붙잡지 못하는지부터 반성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말할수록 장 여사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지금 우리 집은 원후한테 기대서 버티고 있는데...’

‘이주는 왜 이렇게 답답한 거야. 정말 속 터지겠네.’

강이주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엄마, 저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장 여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날카롭게 소리쳤다.

“네가 나를 아직 엄마로 생각한다면, 엄마 말 들어. 원후랑 헤어지지 마. 난 절대 허락 안 해.”

“강이주, 똑똑히 들어. 네가 심원후랑 헤어져서 우리 강중그룹이 망하면, 나는 네 앞에서 바로 죽어버릴 거야. 귀신이 돼서도 널 절대 용서 안 해.”

장 여사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강이주를 노려보았다.

이런 말은 처음이 아니었다.

강이주가 헤어지겠다고 조금이라도 내색할 때마다 장 여사는 늘 이렇게 극단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언제나 강이주는 결국 물러섰다.

장 여사의 완강한 시선을 마주한 강이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머니의 집착 앞에서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건, 딸의 행복이 아니었다.

강중그룹의 존속이 전부였다.

강이주가 심원후와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중그룹이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본 채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이주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장 여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강이주를 끌고 현관 쪽으로 향했다.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강이주를 데리고 심원후에게 가서 사과를 시킬 생각이었다.

용서를 받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세였다.

끌려가던 강이주는 처음에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이내 힘을 빼버렸다.

더 이상 버틸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강이주는 장 여사에게 이끌려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밖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는 순간, 강이주의 마음속에서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병실 안에서는 심원후가 허리를 조금 굽힌 채, 아주 조심스럽게 백초아의 얼굴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백초아는 몸을 움츠린 채 작은 소리를 냈다.

“아파...”

“안 아파. 내가 불어줄게.”

심원후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백초아를 달랬다.

그 말에 백초아는 겨우 미소를 지었다.

심원후의 시선이 흔들리듯 움직였고, 그는 몸을 숙여 백초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백초아는 곧바로 수줍은 듯 심원후를 끌어안았다.

“원후야,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심원후는 백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바보.”

그 말이 끝나자 백초아는 몸을 기울여 심원후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 장면을... 문을 열고 들어온 장 여사가 그대로 보게 되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장 여사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고, 그 안에는 난처함과 어색함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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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38화

    강이주는 구기빈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작게 말했다. “화내지 마. 나 지금 뭘 하는지 알고 있어. 이제 화 풀면 안 돼?”구기빈이 고개를 돌려 강이주를 바라봤다. “정말 그대로 할 생각이야?”강이주가 화제를 돌리려 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딴말하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태도가 구기빈에게는 너무 뻔히 보였다.강이주는 깊게 가라앉은 눈과 마주 보며 말했다. “나도 당신이 앞으로 뭘 할 건지 하나하나 캐묻지 않았잖아. 당신이 그렇게 움직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으니까. 나도 똑같아.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오늘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두 사람 마음에 불편함이 남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강이주가 원하는 건 그런 일이 아니었다.지금은 둘이 다툴 때가 아니라 같은 편에서 밖에 있는 적을 상대해야 했다.강이주는 먼저 한발 물러선 태도로 구기빈을 바라봤다.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좀 믿어 주면 안 돼?”마지막 말에는 부탁과 애교가 조금 섞였다.그 말을 듣고 나서야 구기빈도 자신의 태도가 지나쳤음을 깨달았다. 괜히 강이주를 위축시켰을지도 몰랐다.구기빈은 자신을 달래려는 강이주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당신이 알아줬으면 좋겠어. 난 누구도 나 때문에 희생하는 걸 바라지 않아. 당신도 마찬가지야.”“나한테 우산을 씌워 주겠다고 내 여자가 비를 다 맞는 건 희생이 아니야. 나한테는 부담이고 압박이야. 동시에 내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뜻처럼 느껴져.”구기빈은 돌려 말하지 않고 속마음을 그대로 꺼냈다.강이주가 이해할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소위 말하는 자기만족식 희생은 필요하지 않았다.너무 직설적인 말에 강이주의 미소가 잠깐 굳었다.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그래도 감정에 휩쓸리기 전에 이성을 되찾았다.구기빈에게도 나름의 자존심은 있었다. 강이주가 강중그룹까지 미끼로 내세우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강이주는 고개를 저었다. “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37화

    구호민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강중그룹에 큰일이 생기면 강이주를 아끼는 구기빈이 해외 병상에 누운 척한 채 강중그룹이 무너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강이주를 미끼로 구기빈을 끌어내려는 수였다.주선하가 강이주를 바라봤다. “전할 말은 다 전했어요. 대표님도 조심해요. 저는 이제 갈게요.”주선하가 돌아서려 하자 강이주가 붙잡았다. “그냥 여기 내 곁에 있는 건 어때요? 지금 주선하 씨 혼자 나가게 두기는 좀 불안해요.”구희라는 떠나기 전 강이주에게 주선하를 맡겼고 반드시 안전하게 지켜 달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여기서 내보낸 직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이주는 친구인 구희라를 볼 면목이 없었다.주선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대표님 말대로 할게요. 제가 먼저 구호민 회장 앞에 찾아가 잡혀 주는 일은 안 해요. 그쪽 사람들이 저를 잡지도 못할 거고요.”“대표님도 할 일이 많잖아요. 방해하지 않을게요. 저도 선을 넘는 행동은 안 할 테니까 믿어 주세요. 약속할게요.”강이주가 못 믿을까 봐 주선하는 손까지 들어 약속했다.강이주는 위아래로 주선하를 살폈다. 장난치는 기색 없이 진지해 보이자 마지못해 말했다. “좋아요. 대신 매일 한 번은 나한테 연락해요. 혹시 내가 먼저 연락해도 확인하면 꼭 답하고요.”주선하가 정말 안전한지 확인할 방법은 있어야 했다.주선하는 흔쾌히 동의했다. 직접 연락처를 알려 주고 강이주와 연락처도 교환했다.그렇게 필요한 일을 모두 마친 뒤에야 병실을 나갔다.주선하가 떠나자 구기빈이 화장실에서 나왔다.방금 전 대화도 전부 들은 모양이었다.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구기빈은 애초부터 구호민이 자신이 중상을 입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쉽게 믿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대역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그런데도 구호민의 의심은 예상보다 집요했다.강이주까지 이용해 자신을 떠보려 하고 있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 조용히 불렀다. “여보.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36화

    주선하가 격하게 분노하는 이유를 강이주는 충분히 이해했다.그래서 아무 말 없이 주선하가 스스로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렸다.주선하도 방금 강이주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한 표정으로 먼저 사과했다. “대표님, 미안해요. 대표님한테 화내려던 게 아니에요. 그냥 제가 너무 무능한 것 같아서 저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좋아하는 여자 하나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으니 자신도 한심하게 느껴질 만했다.강이주는 그런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대신 차분하게 주선하를 설득했다. “주선하 씨가 지금 그 집으로 가는 건 스스로 덫에 들어가는 거예요. 구호민 회장은 오히려 선하 씨가 찾아오길 바랄걸요? 선하 씨를 잡아 두고 희라를 협박하는 데 쓸 사람이에요.”실제로 구호민은 이미 비슷한 짓을 여러 번 해 왔다.구희라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오랜 친구인 강이주가 모를 리 없었다.구희라가 주선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혼인신고까지 하고 어떻게든 보호하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구희라는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게 되면 혼자 마음을 삭이며 참고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다만 구씨 집안의 사정과 구호민의 반응까지 생각해 상대를 먼저 지키려 했을 뿐이다.주선하는 주먹을 꽉 쥐더니 벽을 세게 내리쳤다. “그럼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살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비참한 적은 없어요.”지금 구호민이 눈앞에 있었다면 당장 달려들어 한 대라도 때렸을 것이다.평소에는 능청스럽게 구희라에게 들이대는 것처럼 보여도 주선하는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구희라를 진심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구희라가 좋아하는 모습이라면 무엇이든 보여 주고 싶었다.구희라에게 혼인신고를 하자는 말을 들은 전날 밤에는 설레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주선하는 처음부터 구희라와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 혼인신고는 평생을 약속한 일이었고 이혼할 생각도 없었다.죽는 한이 있어도 이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강이주는 피가 배어 나오는 주선하의 주먹을 보고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35화

    강이주도 알고 싶었다. 다만 자신이 알았을 때는 이미 혼인신고까지 끝난 뒤였고, 막으려 해도 늦은 상황이었다.구기빈이 다시 물었다. “그 남자는 누구야?”“희라 옆에서 일하던 비서야. 주선하라고, 곧 졸업하는 대학생인데 희라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강이주는 숨기지 않고 주선하의 신분을 사실대로 설명했다.‘주 씨?’구기빈의 머릿속에 곧바로 한 집안이 떠올랐다.‘하지만...’그 집안에서 주선하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구기빈은 금세 떠오른 생각을 지웠다. 바로 그때 병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이주와 구기빈이 서로를 바라봤다.“누구세요?” 강이주가 천천히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대표님, 저예요. 주선하예요.”강이주는 구기빈을 힐끗 바라봤다.구기빈은 재빨리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다.강이주가 문을 열었다가 주선하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얼굴에는 맞은 흔적이 있었고 옷도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누군가와 크게 몸싸움을 벌인 게 분명했다.주선하는 어두운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희라 누나가 대표님을 찾아가라고 했어요. 안에 들어가도 돼요?”구희라가 보냈다는 말을 들은 강이주는 옆으로 비켜 주선하를 병실 안으로 들였다.주선하를 살핀 강이주가 말했다. “간호사 불러서 상처부터 치료해 달라고 할게요.”“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선하는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거칠게 닦았다. 씁쓸한 표정으로 강이주를 바라봤다. “구호민 회장이 희라 누나한테 맞선을 보라고 했어요. 누나가 저랑 혼인신고한 서류를 내밀었더니 사람을 보내서 저를 잡아 오고, 둘이 이혼하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하고 부딪치다가 싸움이 났고요.”주선하의 상처는 전부 구호민이 보낸 사람들과 싸우며 생긴 것이었다.강이주는 놀랐다. 정말 구기빈의 말대로 구호민은 곧바로 구희라의 결혼 문제부터 건드렸다.아마 구희라는 이런 결과를 예상했기에 주선하를 데리고 혼인신고까지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34화

    강이주가 연기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김에 구기빈도 같은 층의 다른 병실에서 지내기로 했다.목요일 아침,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병실에 숨어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오전 11시쯤 구기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구기빈은 낮게 한마디만 답했다.“할아버지랑 할머니만 잘 지켜봐 줘.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구기빈은 다시 강이주 곁에 앉았다.강이주도 더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됐어?”오늘 RG그룹 이사회와 관련된 전화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다만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못했다.구기빈이 설명했다. “아버지가 정말 희도를 내 자리에 앉히겠다고 추천했어. 이사회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고, 할아버지 측 사람이 연락해서 할아버지가 직접 회의장에 오셨어. 결국 거부권을 행사하셨고.”원래 구호민은 절반이 넘는 이사들을 설득해 찬성을 받아 둔 상태였다.그런데 약속했던 이사들이 정작 회의가 시작되자 갑자기 입장을 바꿔 반대했다.구호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화를 내기도 전에 구계배가 회의장에 나타나 바로 거부권을 행사했다.구계배는 구호민이 계속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지금 구호민이 가진 권한까지 거둬들이겠다고 경고했다.부자는 여러 사람 앞에서 크게 충돌했다.구계배도 상당히 화가 났는지 좋지 않은 안색으로 회사를 떠났다.주치의가 곧바로 본가로 가 구계배의 상태를 살폈다.다행히 크게 탈이 난 건 아니고 화가 치민 정도였다.강이주는 구계배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조용히 안도했다.그래도 걱정은 남아 있었다. “이번 일이 막혔다고 다른 일을 꾸미는 건 아닐까?”구호민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구기빈은 안심하라는 듯 강이주를 바라봤다. “당분간은 조용할 거야.”구기빈을 완전히 처리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 구호민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게다가 이번 일에 구호민이 직접 들인 힘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구희도를 시험하고 키워 보려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533화

    어쩌면 구계배의 반응을 떠보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이유가 무엇이든 구기빈은 굳이 막을 생각이 없었다.권력에 취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구호민이 노리는 건 결국 더 많은 실질적 이익이었다.구기빈은 어릴 때부터 구호민의 본성을 똑똑히 봐 왔다.지금 구씨 집안의 지위와 영향력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그런데도 구호민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어 했다.그래서 구기빈이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고 집안과 배경, 능력까지 걸맞은 여자를 아내로 맞길 바랐다.심지어 구호민은 구기빈이 제2의 자신이 되어 훗날의 아내를 유만정처럼 길들이기를 바랐다.그렇게 아내의 집안까지 집어삼켜 더 많은 이익을 얻고 구씨 집안의 사업 영역을 넓히려 했다.구씨 집안의 사업 규모가 끝없이 커져 가장 강력한 기업 제국이 되기를 원했다.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식들의 결혼도 철저히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어야 했다.그런 구호민의 통제를 벗어난 구기빈이 몰락한 집안의 여자 강이주를 선택해 구씨 집안의 안주인 자리에 앉히려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는 배신이었다.몇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도 구기빈은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거세게 반항하며 여자 하나 때문에 아버지에게 끝까지 맞섰다.그전까지 구기빈은 구호민이 가장 성공적으로 길러 냈다고 자부하던 작품이었다.자신의 냉혹함과 잔인함, 끝없이 커지는 야망까지 완벽하게 물려받았다고 믿었다.그런데 그 모든 것이 강이주 때문에 망가졌다고 생각했다.가장 아끼던 작품이 실패작이 되었다면 구호민은 차라리 완전히 부숴 버릴 사람이었다.구기빈은 구호민의 뒤틀린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이 못 가지면 남도 가질 수 없게 부숴 버려야 분이 풀리는 인간이었다.친아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여보?” 강이주는 구기빈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지고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번지는 걸 알아차렸다.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구기빈이 눈을 들어 강이주를 바라봤다. 그 눈에 스친 사나운 살기와 적의에 강이주는 흠칫했다.그 눈빛만 보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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