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 말을 들은 강이주는 구기빈이 직접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생각하자, 강이주는 그대로 물었다.“나한테 투자하려는 거예요?”구기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이주를 바라봤다.“못 할 것도 없죠. 필요하면 배진호를 찾아가면 돼요.”그 말에 강이주의 젓가락질이 잠시 멈췄다.가슴 한쪽에 낯선 감정이 스쳤다.‘이 사람은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하지?’강이주는 금세 마음을 가다듬었다.“지금은 괜찮아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구기빈은 강이주가 그 말을 하면서 무척 자신 있어 보인다는 걸 느꼈다.강이주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구기빈은 더 권하지 않았다.다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그 말만으로도 강이주는 진심으로 고마웠다.식사를 마치고 강이주와 구기빈이 나가려던 때였다.두 사람은 성난 얼굴로 다가오는 심원후와 정면으로 마주쳤다.좋았던 기분은 심원후의 등장과 함께 깔끔하게 사라졌다.강이주는 이제 이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했다.심원후는 구기빈 옆에 나란히 선 강이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강이주, 진짜 구기빈하고 만나는 거야?”술집에서부터 심원후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때 강이주는 구기빈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그런데 지금 두 사람이 같이 앉아 밥까지 먹었다.‘이래도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야?’오늘 ‘사랑채’에 식사하러 온 심원후의 지인이 문틈 사이로 강이주와 구기빈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사진까지 찍어 심원후에게 보내 주지 않았다면 심원후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심원후는 지금 강이주와 구기빈의 모습 하나하나가 거슬렸다.‘둘이 벌써 내 뒤에서 만나고 있었던 거 아니야?’그 생각에 심원후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심원후의 분노와 달리, 강이주는 차분했다.강이주는 입꼬리를 올리며 받아쳤다.“우리 이미 헤어졌어. 내가 누구랑 있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강이주
룸 안에서는 구기빈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강이주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구기빈이 직원에게 음식을 내오라고 눈짓했다.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본 강이주는 살짝 놀랐다.구기빈이 주문한 메뉴는 전부 강이주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일은 잘 처리됐어요?”구기빈이 먼저 물었다.사실 구기빈은 아침부터 강이주와 웨딩숍에 가고 싶었다.전에 강이주에게 보낸 웨딩드레스 사진들에 답이 없자, 구기빈은 강이주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일부러 유명 디자이너 몇 명까지 불러 둔 상태였다.하지만 강이주는 회사에 가서 처리할 일이 있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구기빈은 더 캐묻지 않았다.식사를 하면서 강이주가 대답했다.“처리는 됐어요. 다만 심씨 집안 쪽에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구기빈이 강이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심씨 집안에서 김태용을 보석으로 빼냈어요.”김태용은 경찰에 넘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려났다.강이주가 ‘사랑채’로 오는 길에, 심씨 집안의 변호사가 김태용을 빼낸 것이다.김태용은 곧바로 유용했던 공금을 채워 넣었다.그 일은 강이주도 오는 길에 임설에게 전화를 받아 이미 알고 있었다.강이주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예상했어요. 내가 원하는 건 김태용이 강중그룹에서 나가는 거였어요.”그 말을 들은 구기빈은 강이주를 똑바로 바라봤다.“김태용이 나갔으니,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강이주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회사를 전면적으로 조사할 거예요. 사람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하고요.”김태용은 강중그룹에 3년이나 있었다.회사 안에 심어 놓은 김태용의 사람과 심명그룹 쪽 눈이 적지 않을 게 분명했다.강이주가 원하는 대로 회사에 돌아가 경영을 맡으려면, 심명그룹이 남겨 둔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내야 했다.임설의 손에는 이미 명단이 있었다.임설은 강중그룹에 들어온 지난 석 달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김태용의 신뢰를 얻는 한편, 다른 한쪽으로는 몰래 회사 내부를 파악해야
김태용은 평소 심씨 집안과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그래서 외부에서는 오래전 김태용을 후원했던 사람이 김태용보다 몇 살 위의 심순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알고 있었군요.”김태용은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그 일을 굳이 숨기고 다닌 건 아니었다.하지만 강이주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김태용은 오히려 궁금했다.강이주가 언제부터 자신이 심순남 쪽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원래 김태용은 강이주를 연애밖에 모르는, 골 빈 여자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김태용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강이주는 사람을 조용히 김태용의 곁에 심어 둘 생각까지 했다.임설은 명문대 출신에 업무 능력도 뛰어났다.그 실력은 김태용도 인정하고 있었다.심순남이 맡긴 일을 마치고 강중그룹이 완전히 거덜나는 날이 오면, 김태용은 임설을 설득해서 계속 자기 곁에 두려고 했다.그런데 임설은 처음부터 강이주의 사람이었다.강이주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채 김태용을 바라봤다.그 시선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설 씨를 강중그룹에 들여보냈고요. 김 대표님이 공금을 유용한 증거를 모으게 했습니다.”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강이주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김태용의 약점을 잡을 수 없었다.오늘 회사에 온 것도 임설이 이미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임설에 대한 일은 강이주 혼자만 알고 있었다.장숙연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괜히 미리 새어 나가면 모든 계획이 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김태용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감정을 추스른 뒤에는 오히려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그는 강이주의 눈을 마주헸다.“준비를 다 해 놓고 저를 찾아오신 거군요. 그렇다면 저도 더 할 말은 없습니다.”“승자는 모든 걸 가져가고, 패자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이죠. 이주 아가씨, 이번엔 이주 아가씨가 이겼습니다.”김태용은 오랜 시간 업계에서 버텨 온 사람이었다.그런 김태용에게도 이제 변명할 말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표님, 대표님도 몸이 좋지 않아서 쉬고 싶다고 하셨으니, 저희가 더 붙잡는 것도 도리가 아니겠죠.”강이주는 미소를 띤 채 부드럽게 말했다.잠시 말을 멈춘 강이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지난 3년 동안 심명그룹을 위해 애써 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급여는 계약서 기준에 맞춰 재무팀에서 정산하도록 하겠습니다.”강이주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김태용 앞에 내밀었다.“또 이 카드에 5천만 원을 넣어 뒀습니다. 저와 어머니의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세요.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비밀번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강이주의 뜻은 분명했다.김태용이 먼저 꺼낸 말을 그대로 받아, 강중그룹에서 스스로 물러날 길을 열어 준 것이다.김태용 자신이 장숙연을 압박하려고 아무렇지 않게 꺼낸 핑계가 이렇게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김태용은 말문이 막혔다.강이주의 결정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내가 친 덫에 내가 걸린 꼴이잖아.’스스로 불러온 상황이라 더 답답했다.김태용은 속으로 이미 강이주를 죽일 듯이 욕하고 있었다.김태용은 시선을 장숙연에게 돌렸다.“사모님, 이것도 사모님 뜻이십니까?”장숙연은 이번만큼은 강이주와 같은 편에 서 있었다.장숙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주 말대로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이제 이주도 다 컸으니, 회사도 이주가 책임져야겠지요. 이주가 맡는 게 맞아요.”그 말을 들은 김태용이 코웃음을 쳤다.“저는 두 분이 결국 토사구팽하는 걸로만 생각됩니다. 사모님, 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제가 이 회사에 쏟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이제 와서 이렇게 저를 내보내시겠다니,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김태용은 그대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두 분은 저를 해임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김태용은 아예 버티기로 마음먹은 듯했다.‘내가 안 나가면 어쩔 건데. 설마 사람을 불러서 끌어내기라도 하겠어?’하지만 강이주는 김태용이 이렇게 나올 걸 이미 예상했다는 듯 차분했다.강이주는 김태용
예전 같으면 이럴 리가 없었다.장숙연이라면 김태용이 사직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곧바로 달래며 붙잡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장숙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태용은 어중간한 위치에 갇힌 사람처럼 난처해졌다.물러서기도 더 밀고 나가기도 애매했다.하지만 강이주는 앞선 이야기를 더 이어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강이주는 다시 계약서들을 집어 들고 차분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다행히 이 계약서들은 아직 서명하기 전이었다.장숙연이 먼저 동의해야 김태용이 최종 서명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김태용은 신중한 사람이었다.장숙연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나중에 강이주가 따지더라도 모든 책임을 장숙연에게 돌릴 수 있었다.“이 계약은...”김태용이 장숙연을 바라보며 말을 꺼내려고 했다.하지만 강이주가 망설임 없이 잘랐다.“서명하지 않겠습니다. 회사는 요즘 심씨 집안과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심씨 집안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업은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지 않을 겁니다.”강이주는 김태용 앞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김태용의 표정이 난처하게 굳어졌다.“심명그룹과 선을 긋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동안 심명그룹이 저희를 많이 도와준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이주 아가씨, 감정 문제 때문에 두 회사 협력에 영향을 주는 건 전혀 필요 없는 일입니다. 밖에 알려지면 저희 쪽이 은혜를 모른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김태용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두 사람에게 그 선택의 후폭풍을 상기시켰다.그 말을 듣자 강이주가 웃었다.“김 대표님이 그 말씀을 꺼내셨으니, 저도 회사 입장을 제대로 짚어야겠네요.”김태용은 뜻밖이라는 듯 강이주를 바라봤다.강이주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심명그룹이 회사에 투자한 이후로, 강중그룹은 프로젝트마다 수익의 35퍼센트를 남겼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연말에도 별도로 상당한 수익 배분이 있었고요.”“김 대표님이 회사를 관리해 오셨으니, 매년 강중그룹에서 심명그룹으로 얼마가 넘어갔는지는 저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김
강이주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낸 김태용을 바라봤다.‘내가 아직 뭘 제대로 말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강이주의 시선이 김태용과 마주쳤다.“저는 아직 별다른 얘기도 안 했습니다. 김 대표님은 원래 사람하고 대화할 때 이렇게 성급하십니까?”말속에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김태용은 강이주의 말을 못 들은 사람처럼 굴었다.김태용은 고개를 돌려 장숙연을 바라봤다.“사모님도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사모님께서 처음 저를 찾아오셨을 때 회사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사모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동안 제가 회사에 큰 공은 없었어도 고생은 했다고 생각합니다.”김태용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제가 회사를 얼마나 잘 이끌었다고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모님께서 맡기신 일은 최대한 제대로 해 내려고 했습니다.”“제 양심에 비춰 봐도, 사모님께서 제게 주신 신뢰를 배신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 말에 이르자, 김태용의 감정은 눈에 띄게 격해져 있었다.장숙연은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강이주만 바라봤다.회사로 오는 길에 강이주는 장숙연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특히 김태용이 무슨 말을 하든 최대한 반응하지 말라고.장숙연은 강이주가 뭘 하려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그래도 강이주의 부탁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내가 도와주지는 못해도, 이주 발목을 잡으면 안 돼.’김태용은 자신이 이 정도까지 말했으니, 장숙연이 당연히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예전에는 김태용이 무슨 말을 하든 장숙연은 거의 다 받아들였다.이를테면 예전에 장숙연이 강이주가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오게 하고 싶다면서, 김태용에게 잘 이끌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때 김태용은 겉으로는 알겠다고 답했다.하지만 말을 돌려 장숙연을 설득했다.지금 강중그룹은 심명그룹을 의지하고 있으니 단기간에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회사 일은 자신이 관리하고 있으니 장숙연은 걱정할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