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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Author: 주광
“고예진!”

예진이 걸음을 멈추고, 민혁과 함께 뒤를 돌아봤다.

아린의 입가엔 비웃음 섞인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축하해. 드디어 원하던 대로 윤제 오빠랑 이혼했네.”

예진은 단번에 알아챘다. 아린이 지금 노골적으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걸.

“그러게. 나도 축하해야겠네. 내가 부윤제 손을 놓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으니 말이야.”

아린의 웃음이 더 깊어졌다.

“아니, 넌 착각하는 거야. 난 처음부터 네가 윤제 오빠 손을 놓길 기다릴 필요도 없었어. 윤제 오빠 마음엔 항상 내가 있었거든.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 결혼 사이에 걸림돌로 남았겠어?”

예진이 입을 열려던 찰나, 민혁이 먼저 끼어들었다.

“허, 상간녀 주제에 참 당당하네? 남의 결혼에 끼어든 걸 자랑이라도 하나 봐?”

아린이 코웃음을 치며 쏘아붙였다.

“당신이 뭘 알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제3자지. 난 윤제 오빠랑 어릴 때부터 함께한 죽마고우야. 오빠 옆엔 원래부터 내가 있어야 했어.”

민혁도 똑같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난 몰라. 왜냐면 남의 가정에 끼어든 적이 없거든.”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아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참 신기하네. 쓰레기를 줍고도 그렇게 우쭐할 수 있다니. 머리에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아, 근데 생각해 보니 부윤제가 당신을 고른 건... 역시 ‘끼리끼리’였어. 둘이 참 잘 어울리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아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숨이 거칠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민혁은 그런 아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선을 예진으로 돌렸다.

“예진 씨, 이건 제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네요. 왜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 쓰레기랑 고물상의 러브스토리를 방해하고 있었어요? 진작에 이혼해서 둘이 서로 합치게 했어야죠.”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네요. 이건 제 잘못이네요.”

민혁이 예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뭐, 잘못을 인정했으니 됐어요. 이제라도 합치게 도왔으니 늦지 않은 거죠.”

그리고는 일부러 코를 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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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진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윤제는 그 뒷모습에 이를 악물었다.‘역시... 나와 이안이는 이제 완전히 뒷전이구나.’“고예진! 나... 아린이랑 곧 결혼해. 당신 정말...”윤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진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의 말을 끊었다.“그럼 진심으로 축하해야겠네. 드디어 첫사랑을 아내로 맞이하게 됐으니, 이제 인생에 후회는 없겠지.”“이안이도 좋아하는 새엄마 얻게 됐고. 결혼식은 내가 분위기 망칠까 봐 안 갈게. 여기서 미리 축하할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길 .”예진은 더 이상 미련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남겨진 윤제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그는 예진이 차에 올라 민혁과 함께 떠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가슴 속이 텅 빈 듯 허무함이 밀려왔다.‘죽을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는데, 허공만 친 기분이야...’윤제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예진의 마지막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예진은 흔들림 하나 없이 냉정하게 축복의 말을 던졌다.그 순간, 윤제의 심장은 이유 모를 분노로 치밀어 올랐다.길가의 쓰레기통을 세게 발로 걷어 차고서야 겨우 화를 삼켰다.잠시 후, 윤제도 차에 올라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민혁은 차를 세우고 예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예진은 그제야 민혁의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 있는 걸 눈치챘다.“손은 안 아파요? 왜 그렇게 실실 웃어요?”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몰라도 돼요.”‘오늘은 덕 본 게 많지.’민혁의 웃음에는 그런 여유가 배어 있었다.집에 도착하자 예진은 제일 먼저 국을 올려놓고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한 시간 남짓 지나자, 네 가지 반찬과 국으로 된 저녁이 완성됐다.예진은 특별히 이연과 나정을 불러 함께 먹자고 했다.나정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붕대를 감은 민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늘 낮, 핸드폰 뉴스에서 현장을 이미 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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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커튼이 열리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린이 윤제의 시야에 들어왔다.윤제는 순간 멍하니 굳었다. 아린의 드레스 자태가 눈부셨기 때문이 아니었다.그 장면이... 오래전 다른 기억을 강하게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예진이었다.그때도 예진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윤제를 바라봤다.결혼을 앞둔 신부의 얼굴.그날, 윤제는 진심으로 숨이 멎을 만큼 놀라웠다.그 순간부터 그는 고집처럼 믿게 되었다.즉, 흰색은 예진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고집. 윤제가 멍해 있는 걸 눈치챈 아린의 미간이 살짝 흔들렸다.그러나 옆에서 직원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신부님, 정말 축복받으셨네요. 신랑님 눈빛만 봐도 사랑이 가득한 게 느껴져요.”아린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이 떠올린 여자... 분명... 고예진이겠지.’그러나 아린은 영리했다.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고, 대신 천천히 윤제 앞으로 다가갔다.“오빠, 이 드레스 어때? 잘 어울려?”윤제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잘 어울려. 아주 예쁘다.”아린은 부드럽게 웃었다.“이 드레스 말고도 두 벌이 더 있어. 그것도 입어볼까 해.”윤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했다.“나 회사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 나머지 두 벌은 네가 직접 고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해. 그냥 카드 긁으면 돼. 넌 뭐든 잘 어울리니까.”겉으론 다정해 보이는 대답이었지만, 사실상 아린과 함께할 시간조차 내주지 않으려는 태도였다.아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여전히 웃으며 윤제가 건넨 카드를 받았다.그렇게 윤제를 배웅하는 눈빛은 부드러웠다.하지만 윤제가 돌아서 나가자마자, 아린의 입가에서 웃음기는 단번에 사라졌다.그리고 손에 쥔 카드를 힘껏 움켜쥔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벌써 절반은 성공했어. 이제 남은 건 끝까지 가져가는 것뿐이야.’‘부씨 집안의 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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