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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이런 로또를 다 맞네.

Autor: 미미안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1-04 14:46:27

주변의 고개가 하나둘 더 돌아왔다.

여울의 얼굴이 굳었다.

“아빠.”

“야, 사위는 어디 있어? 강 전무가 진짜 내 사위 맞….”

여울이 하상만의 팔을 낚아챘다.

“나와.”

“야, 야. 왜 이래.”

“나오라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로비를 빠져나가 건물 옆길을 돌고, 다시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태강 본사의 반듯한 외벽이 사라지자 풍경이 단숨에 바뀌었다.

식당 뒤편으로 검은 음식물쓰레기통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젖은 종이박스와 빈 술 상자가 벽을 따라 높게 쌓여 있었다. 환풍구에서는 뜨거운 연기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으며, 오래된 기름 냄새와 오물 냄새가 축축한 골목 안에 뒤섞여 있었다.

여울은 사람 없는 곳까지 거의 숨도 쉬지 않고 걸었다.

그제야 하상만의 팔을 놓았다.

“여긴 왜 왔어.”

“뭐?”

“회사에 왜 왔냐고.”

하상만이 오히려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너 결혼한 걸 아빠한테 왜 말 안 했어?”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내가 어디서 나오는 길인 줄 알아?”

여울의 표정이 멈췄다.

“……어디서.”

하상만이 괜히 어깨를 한번 폈다.

“니네 회장 만나고 오는 길이야.”

여울의 입술이 벌어졌다.

“뭐?”

“어제 연락 왔더라. 아침 일찍 보자고.”

“하…….”

여울이 이마를 짚었다가 곧바로 손을 내렸다.

“아빠 미쳤어?”

“뭐가.”

“거길 어디라고 가! 나한테 먼저 말을 했어야지.”

“말할 새가 없었다니까? 어제 연락 왔는데 뭘 어떻게 해.”

여울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무튼.”

억지로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얘기했는데?”

하상만은 기다렸다는 듯 소매를 걷었다.

“이거 주더라.”

여울의 시선이 손목에 꽂혔다.

처음 보는 시계였다.

“……그게 뭐야.”

“뭐긴, 시계지.”

“누가 줬냐고.”

“니 시아버지.”

여울의 얼굴이 굳었다.

“그걸 왜 받아?”

“준다는데 왜 안 받아.”

하상만은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거 천만 원도 넘는다더라.”

“…….”

“야, 내가 로또도 이런 로또를 맞네.”

여울의 눈빛이 확 변했다.

“뭐?”

“로또.”

“아빠.”

목소리가 낮아졌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뭔 생각.”

“나 전무님이랑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하상만의 미간이 좁혀졌다.

“혼인신고도 했다며.”

“사정이 있어서 한 거야. 그러니까 아빠는 그냥 좀 가만히 있어.”

여울이 한 걸음 가까이 갔다.

“그리고 다시는 회장님 만나지 마.”

“하.”

“진짜야. 전화 와도 받지 마. 여기 찾아오지도 말고.”

“왜에.”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너 부끄러워서 그러냐?”

하상만이 느물거리게 웃었다.

“애비 꼴이 이래서?”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럼 사위 인사나 시켜.”

“됐어.”

여울이 잘라 말했다.

“다 사정이 있으니까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마. 다시는 회사 오지도 말고, 회장님도 절대 만나지 마.”

“…….”

“알겠어?”

하상만은 그런 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그럼 백만 원만 줘봐.”

여울의 얼굴이 멈췄다.

“……뭐?”

하상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빠 밥 사 먹을 돈도 없어.”

여울의 시선이 천천히 그의 손목으로 내려갔다.

천만 원이 넘는다는 시계가 낡은 재킷 소매 아래에서 번들거렸다.

“지난번에 이백 줬잖아.”

하상만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거 벌써 다 썼어?”

“사람 살다 보면 돈 들어갈 데가 있지.”

“한 달도 안 됐어.”

여울은 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또 갔어?”

“어딜.”

“도박장.”

하상만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아빠.”

“안 갔어.”

“나 보고 말해.”

“아, 안 갔다니까!”

“그럼 이백을 어디다 썼는데!”

목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렸다.

하상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사람이 밥도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살다 보면 돈 나가는 거지. 애비가 딸내미한테 장부까지 써서 보여줘야 돼?”

“술?”

여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또 마셨어?”

“술 한잔 마신 것도 죄냐?”

“다시는 안 간다고 약속했잖아.”

“뭘.”

“도박.”

하상만이 입을 다물었다.

“술도 줄이고 다시 일한다고 했잖아. 택시 다시 한다며.”

“몸이 안 좋아서 좀 쉬는 거야.”

“벌써 몇 달째야?”

“하여울.”

“언제까지 이럴 건데!”

여울의 목소리가 끝에서 조금 흔들렸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했다.

급한 것만 막으면 다시 운전하겠다고 했고, 도박장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이백만 원을 보낸 게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또였다.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했고, 언제나 다시 시작됐다.

여울은 숨을 한번 깊게 삼켰다.

그러다 그의 손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볼수록 화가 났다.

“이거 줘.”

“뭐?”

여울이 하상만의 손목을 잡았다.

“시계.”

“야.”

“내가 회장님한테 돌려드릴 거야.”

하상만이 황급히 팔을 뒤로 뺐다.

“미쳤어?”

“내놔.”

“이건 나한테 준 거야.”

“아빠한테 아무 이유 없이 천만 원짜리 시계를 왜 주겠어.”

“사돈이니까 줬다잖아!”

“그러니까 그게 싫다고!”

여울이 다시 손을 뻗었다.

하상만이 손목을 몸 뒤로 숨겼다.

“너는 왜 사람이 호의를 이렇게 꼬아서 받아들여? 회장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

“좋은 분인지 아빠가 뭘 알아.”

“직접 만나봤으니까 알지.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더라.”

여울의 표정이 굳었다.

“절대 하지 마.”

“뭘?”

“돈 없는 거, 빚 있는 거, 힘든 거. 아무것도 말하지 마.”

“내가 내 사돈한테 말도 못 하냐?”

“하지 마.”

여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발.”

하상만이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시계를 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울이 다시 손목을 잡았다.

“이거 줘.”

“싫다니까.”

“아빠.”

“내 거야!”

“내놔!”

여울의 손이 시계 버클에 닿았다.

하상만이 팔을 잡아당겼고 여울은 놓지 않았다.

“야, 놔!”

“회장님한테 돌려줄 거야.”

“싫어!”

“아빠!”

두 사람의 몸이 엉켰다.

하상만이 결국 팔을 세게 뿌리쳤다.

여울의 몸이 옆으로 크게 휘청했다.

등이 쌓아둔 술 상자에 부딪히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빠르게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상만의 팔이 뒤로 꺾였다.

“악!”

몸이 그대로 벽 가까이 밀렸다.

“뭐야, 이 새끼가!”

하상만이 몸을 비틀었지만 잡힌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 놓으시죠.”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여울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전무님?”

강건이었다.

그는 하상만의 손목을 단단히 잡은 채 여울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놔! 이거 안 놔?”

하상만이 소리를 질렀다.

강건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여자한테 손부터 쓰신 건 그쪽입니다.”

“무슨 상관이야! 남의 집 일에 네가 뭔데 끼어들어!”

“전무님.”

여울이 급하게 강건의 팔을 잡았다.

“놔주세요.”

강건이 돌아봤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으니까 놔주세요.”

“방금 이 사람이…”

“알아요.”

여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놔주세요.”

강건의 미간이 좁혀졌다.

“왜요.”

여울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가능하다면 아예 소개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더 숨길 수도 없었다.

여울이 낮게 말했다.

“……아빠예요.”

강건의 표정이 그대로 멈췄다.

“네?”

“제 아빠요.”

하상만의 팔을 붙잡고 있던 강건의 손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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