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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제 장인어른 입니다.

作者: 미미안
last update 公開日: 2026-11-04 14:46:58

강건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곧바로 하상만의 팔을 놓았고, 하상만은 손목을 움켜쥔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이고, 사람 손목을 아주 부러뜨릴 작정이었네.”

강건은 잠깐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했다.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조금 전과는 목소리부터 달라져 있었다.

하상만은 손목을 문지르며 투덜거리다가 그제야 강건의 얼굴을 제대로 올려다봤다. 키부터 압도적이었다. 몸에 맞춘 검은 정장과 반듯한 셔츠, 잘 닦인 구두까지, 텔레비전에서나 볼 법한 사람이 음식물 냄새가 나는 골목 한복판에 서 있었다.

하상만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잠깐만.”

여울을 한번 보고 다시 강건을 봤다.

“혹시…….”

강건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강건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하상만의 눈이 커졌다. 입이 조금 벌어지더니 다시 한번 강건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 진짜 사위네.”

여울이 미간을 짚었다.

“아빠.”

하상만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난생처음 눈앞에서 재벌을 본 사람처럼 강건의 얼굴부터 옷, 시계까지 연신 훑더니 감탄을 흘렸다.

“이야…… 재벌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만.”

강건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어제 일이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여울이 그를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하상만의 팔을 꺾고 있던 남자가 정말 사위가 된 사람처럼 깍듯했다.

“아니, 뭐……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하상만도 급히 낡은 점퍼 앞섶을 쓸어내렸다. 조금 전까지 강건에게 욕을 퍼붓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고, 태도마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여울은 그게 더 불안했다.

“아빠, 이제 가.”

“잠깐 있어 봐.”

“뭘 또.”

하상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강건을 몇 번 힐끗거리던 시선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사위가 재벌인데 좀 섭하네.”

여울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빠.”

“장인 처음 봤으면 용돈이라도 좀 쥐여줄 줄 알았더니.”

여울의 얼굴이 굳었다.

하상만은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평소에 좀 짠가 봐. 사돈은 안 그러시드만.”

“아빠!”

여울이 소리를 높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강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하상만을 바라보다 옆에 선 여울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화가 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창피함인 듯했다.

그 얼굴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강건은 잠시 머뭇거리다 재킷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전무님.”

여울이 불길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강건은 지갑을 꺼내 안쪽에 있던 자기앞수표 세 장을 빼냈다.

백만 원권 세 장이었다.

“안 돼요.”

여울이 바로 강건의 팔을 막았다.

강건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사위가 처음 드리는 용돈이에요.”

“그래도 안 돼요.”

“여울 씨.”

목소리가 부드럽게 낮아졌다.

“가만히 있어요.”

다독이듯 한 말에 여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강건은 다시 하상만을 향해 몸을 돌려 두 손으로 수표를 내밀었다.

“장인어른.”

자신의 입에서도 조금 낯선 호칭이었다.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하상만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수표 세 장을 확인하는 순간 눈 안쪽에 노골적인 탐욕이 번졌고, 그는 사양하는 시늉조차 없이 얼른 받아 점퍼 안쪽 깊숙이 쑤셔 넣었다.

“고맙네, 사위.”

안주머니를 손으로 몇 번이나 눌러 확인한 하상만이 활짝 웃었다.

“내가 오래 사니 우리 딸 덕을 보는구만. 자주 보세.”

“네.”

“여울아.”

하상만이 딸의 어깨를 툭 쳤다.

“아빠 간다.”

여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몇 걸음 가던 하상만은 다시 강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위.”

“네.”

“우리 여울이 너무 말랐어. 좋은 것 좀 많이 맥이게.”

여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하상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딸을 향해 말했다.

“딸, 밥 잘 챙겨 먹고.”

그 말만 남긴 채 손을 한번 흔들었다.

“간다.”

허름한 점퍼 아래에서 강태환에게 받은 시계가 번쩍였고, 안주머니에는 조금 전 강건에게 받은 수표가 들어 있었다.

들어올 때와 달리 하상만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여울은 그 뒷모습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아주 잠깐, 눈가가 붉어졌다.

울 정도는 아니었다. 여울은 금세 입술을 꾹 다물고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을 되돌리려는 게 보였다.

강건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여울에게 머물렀다.

여울은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돈을 받아 좋아하는 아버지가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 때문에 마음은 더 복잡해졌지만, 오늘의 가벼운 발걸음은 그와는 별개로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강태환에게 받은 천만 원짜리 시계와 강건에게 받은 삼백만 원.

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태강은 아무 접점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평생 마주칠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한 지 고작 하루 만에 아버지는 태강 회장실에 들어갔고, 회장의 시계를 찼으며, 강건을 사위라 부르며 돈까지 받아갔다.

너무 빨랐다.

계약서에 사인할 때만 해도 일 년 뒤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강건과 자신 사이만 정리하면 되는 계약이라고.

그런데 벌써 아버지가 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앞으로 또 무엇이 자신의 삶과 엉키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여울의 손끝이 서늘해졌다.

“화났습니까.”

옆에서 강건이 물었다.

여울이 그를 봤다.

“네.”

대답이 너무 빨라 강건의 입이 잠깐 다물렸다.

“돈 왜 줬어요.”

“장인어른 처음 뵀으니까요.”

“진짜 장인어른 아니잖아요.”

강건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그럼 뭡니까?”

여울이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

“쓸데없이 나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약 기간 동안은 제 장인어른입니다.”

“…….”

여울은 말을 멈췄다.

여기서 더 설명하려면 자신과 아버지 사이의 너무 많은 것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먼저 몸을 돌렸다.

“올라가요.”

강건은 몇 걸음 앞서가는 여울을 바라봤다.

조금 전 붉어졌던 눈가가 자꾸 떠올랐다.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울지 않았고,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던 여자였다.

강건은 그제야 자신이 알던 여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는 여울은 몰려도 버텼고, 단단했다.

그래서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은 아주 잠깐, 생각보다 약해 보였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몇 걸음 사이가 벌어지자 강건은 생각을 끊고 걸음을 빨리했다.

옆으로 따라붙은 강건을 여울이 흘끗 올려다봤다.

“왜요?”

“뭐가요.”

“갑자기 빨리 걸으시길래.”

강건은 앞을 봤다.

“혼자 먼저 가니까.”

여울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다시 앞을 향했다.

강건도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보폭을 조금 줄였다.

여울이 걷는 속도에 맞게.

*

같은 시각.

변석진은 재무전략본부 회의실에서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 테이블 끝에 앉은 김상민 대리가 다음 분기 수치를 설명하는 동안에도 석진의 시선은 종이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건은 다음 분기로…….”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석진의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상무님.”

석진이 고개를 들었다.

“왜.”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보고서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지금?”

“네. 바로 올라오시랍니다.”

김상민도 설명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석진은 잠깐 비서를 바라보다 보고서를 덮었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 단추를 잠그던 석진이 김상민을 돌아봤다.

“김 대리.”

“네, 상무님.”

“가지 말고 있어.”

“알겠습니다.”

석진은 그대로 회의실을 나섰다.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수가 빠르게 바뀌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호출이었지만, 바로 올라오라는 말이 묘하게 걸렸다.

잠시 뒤 짧은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회장실 앞에 서 있던 서문기가 석진을 보자 말없이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안쪽에서 강태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나.”

석진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강태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 한 장을 손끝으로 천천히 두드리던 그가 한참 뒤 고개를 들었다.

“석진아.”

“예.”

“앉아라.”

석진은 맞은편 의자를 빼며 강태환의 얼굴을 살폈다.

웃음기가 없었다.

강태환이 서류를 석진 쪽으로 천천히 밀었다.

“니가 좀 바빠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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