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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Auteur: 이야기보따리
“이게 과연 합리적인 요구인가요?”

“소예지 씨가 받아들인다면 합리적인 요구지요. 물론 거절하셔도 됩니다.”

심주원은 변함없는 태도로 조용히 답했다.

소예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이한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황당한 조건을 내걸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어떤 심리로 이런 걸 요구하는 거죠?”

혹시라도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소예지는 조심스레 물으며 심주원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듣고 싶으시다면, 고 대표의 속마음을 분석해 드릴 수 있습니다.”

소예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는요, 아마도 스스로에게 재결합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 걸 겁니다.”

“재결합이요?”

소예지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건 이생에서는 절대 없을 일이었다.

심주원은 조용히 서류를 펼쳐 그녀 앞으로 밀어놓고, 펜을 건넸다.

“소예지 씨 쪽에서 더 이상 이견이 없다면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그러면 곧 고 대표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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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68화

    소예지는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어.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아.”“중요해.”고이한은 갑자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예지야, 내가 원한 건 처음부터 당신이었어. 아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이었다고. 우리한테는 이미 하슬이가 있잖아. 그거면 충분해. 고씨 가문의 미래는 내가 책임질 거고 하슬이한테도 이 집안을 지키는 법을 가르칠 거야.”소예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건 당신 할머니의 유언만이 아니야. 당신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해. 당신은 내 옆에서 시간 낭비하면 안 돼.”고이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누가 당신한테 그게 아버지 유언이라고 했어?”소예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방재근 씨 부인이 직접 나한테 말했어. 예전에 당신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직접 들었대. 그게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고.”고이한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방재근의 아내라니.’방재근의 아내가 무슨 자격으로 고씨 집안일에 끼어든단 말인가.자신의 곁에 여자 비서를 심어 놓은 일도 아직 따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여자와의 사이까지 갈라놓으려 하고 있었다.소예지는 고이한의 눈에 떠오른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그녀는 그의 뺨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왜 그래?”고이한은 화를 억누르듯 자신의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살짝 맞댔다.“소예지,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방재근 부부가 일부러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는 건 생각 못 했어?”소예지가 순간 멈칫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나랑 당신 아버지뿐이었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고이한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당신도 이사회에서 방재근과 부딪힌 적 있잖아. 방재근 입장에서는 당신이 고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는 게 달갑지 않았을 거야.”“자기한테 불리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67화

    ‘그래서 예지가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들었던 건가?’‘그게 다시 나를 밀어낸 이유였던 건가?’그전까지만 해도 소예지는 분명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단호해지고 매정하게 돌아선 이유가... 결국 이것 때문이었던 걸까?’소씨 가문과 고씨 가문 모두 유전 질환의 가족력이 있었다.두 집안 모두 유전 질환에 대한 위험을 안고 있다는 뜻이었다.소예지는 분명 다시 아이를 갖는 모험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자신의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다시 아이를 가지려 하지 않을 테고 최현숙에게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그렇게 모질게 자신을 밀어냈던 것이다.“왜 그러니? 무슨 일 있어?”진가영은 아들의 굳은 표정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저랑 예지 사이에 풀어야 할 오해가 좀 있어요. 엄마, 다음에 다시 올게요.”고이한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그러고는 차 키를 챙겨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마당을 빠져나갔다.이 일은 반드시 소예지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다.그녀가 혼자 짐작하고 결론 내리게 둘 수는 없었다. 자신의 진짜 생각을 직접 말해 줘야 했다.그 시각 소예지는 서재에서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그때 밖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네 시였다. 딸이 하교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소예지는 의아한 마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현관 밖으로 나가자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고이한이 보였다.소예지는 뜻밖이라는 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딸 데리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일찍 왔어?”고이한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집 현관 쪽으로 이끌었다.“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소예지는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왜 이렇게 잡아끌어?”하지만 고이한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그는 소예지를 거실까지 데려간 뒤 1인용 소파에 앉혔다.그리고 두 팔로 소파 양쪽을 짚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66화

    돌아오는 길 내내 두 사람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차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늦가을 특유의 애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그때 고이한의 깊은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끼자 소예지는 저도 모르게 귓가가 뜨거워졌다.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는 척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벨모아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고이한은 얌전히 소예지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마침 회사의 신규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고 있던 참이었다.고이한이 출장 중이었던 탓에 임재석도 그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리 전화로 소예지에게 이 문제를 상의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소예지가 뜻밖에도 고이한을 직접 데리고 회의실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임재석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고이한은 임재석의 보고를 들은 뒤 사업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차근차근 분석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 핵심을 짚는 몇 가지 조언을 내놓았다.소예지는 옆에 앉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다가 어느새 펜을 들어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기 시작했다.이어 고이한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 팀원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회의는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고이한은 소예지를 집까지 데려다준 뒤 그녀의 차를 몰고 고씨 저택으로 향했다.저녁에 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였다.고씨 저택.최현숙이 세상을 떠난 뒤 집 안은 예전보다 한층 더 쓸쓸해진 듯했다.일주일 후면 진가영 모녀도 소예지가 사는 별장 단지로 이사할 예정이었다.하지만 이 오래된 저택은 그대로 남겨둘 계획이었다.마당의 꽃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진가영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돌아왔구나. 일은 순조로웠니?”“네. 순조로웠어요.”고이한은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다가 물었다.“엄마, 요 며칠 제대로 못 쉰 거 아니에요?”진가영은 한숨을 내쉬며 마당에 심어진 꽃들을 바라봤다.꽃들은 어느새 활짝 피어 있었다.“나이가 들면 잠도 줄어드는 법이지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65화

    “고마워요.”소예지는 꽃을 건넨 학생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자 학생은 부끄러운 듯 귀 끝까지 붉어졌다. 그래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미리 준비해 온 질문을 꺼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고이한은 사람들 뒤쪽에 조용히 서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도 꽃다발 하나가 들려 있었다.하얀 리시안셔스와 연보랏빛 아이리스가 어우러진 꽃다발이었다. 맑고 우아한 분위기가 어딘지 소예지와 닮아 있었다.고이한은 소예지가 젊은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남학생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얼굴까지 붉히고 있었다.소예지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차분하게 질문에 답했다.그러다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는 순간 우연히 뜨겁고 깊은 시선과 마주쳤다.그녀가 순간 멈칫했다.‘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양정화도 뒤늦게 고이한을 발견하고 웃으며 인사했다.“고 대표. 왔어?”“양 교수님.”고이한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그리고 들고 있던 꽃다발을 소예지에게 내밀었다.“강연 정말 훌륭했어.”소예지는 그가 와 있는 줄도 몰랐다.뜻밖이라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고마워.”그다음 순간 소예지가 들고 있던 노트북 가방까지 자연스럽게 고이한의 손으로 넘어갔다.마치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익숙한 동작이었다.그 모습을 본 양정화는 질문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학생 몇 명을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다.소예지와 고이한은 나란히 주차장으로 향했다.“차 가져왔어?”고이한이 물었다.“응.”“그럼 내가 운전할게. 당신은 좀 쉬어.”고이한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듯 바라봤다.두 시간이 넘도록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며 강연을 진행했으니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지쳤을 터였다.실제로 소예지도 꽤 피곤한 상태였다.그래서 굳이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잠시 후 소예지가 먼저 물었다.“출장은 잘 다녀왔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64화

    하지만 분노가 가라앉고 나자 눈앞에는 다시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어머니의 병원비에 앞으로 들어갈 요양원 비용까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그러다 문득 얼마 전 언론에 공개된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소예지와 고이한이 연회장을 나오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사진 속 소예지는 마치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보물처럼 고이한의 품에 안겨 있었고 고이한은 자신의 정장 재킷으로 그녀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그 모습을 떠올리자 심유빈은 뼈아픈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이 결국 웃음거리로 남았다는 사실이었다.가장 빛나던 청춘을 바쳐 한 남자의 가정을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돈도 명예도 모두 잃었고 결국 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떠나야 했다.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다.요즘 심유빈이 가장 후회하는 일은 가장 좋은 시기에 하종호와 결혼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때의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고이한에게만 매달렸다. 그가 자신에게 눈길 한 번만 줘도 하루 종일 행복해할 정도였다.고이한의 곁을 맴돌며 소예지를 괴롭게 만드는 데서 느끼는 우월감도 즐겼다.하지만 그때는 몰랐다.고이한의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예지밖에 없었다는 것을.두 사람이 이혼한 지 3년이 지났어도 고이한은 심유빈에게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오히려 그녀의 존재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소예지는 더욱 눈부신 삶을 살게 됐다.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고 주변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녀에게 관심과 호감을 보이는 사람도 끊이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고이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예지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분명 소예지는 여러 번 그를 밀어냈을 것이다.그런데도 고이한은 끈질기게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면 고이한이 얼마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소예지에게 매달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럼에도 심유빈은 여전히 소예지가 원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던 모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63화

    심유빈은 습관처럼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를 바라봤다.예전 같았으면 그녀의 매력에 웬만한 남자는 첫눈에 시선을 빼앗겼을 것이다.물론 고이한은 예외였지만.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젊은 의사는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누군가 들어온 기척에 고개를 살짝 돌려 심유빈을 한 번 바라보긴 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다.심유빈이 그의 옆에 서자 의사는 무언가 묘한 냄새라도 맡은 듯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 모습을 본 순간 심유빈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온몸이 굳어 버렸다.급하게 나오느라 오늘 향수를 뿌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설마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은 건가?’평소에도 자신이 느낄 정도였으니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그 냄새는 심유빈 자신조차 견디기 힘들 때가 있었다.하물며 이렇게 밀폐된 공간이라면 의사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의사는 다음 층에서 내렸다.심유빈의 얼굴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그 순간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짓밟힌 기분이었다.‘나랑 같이 있는 게 싫어서 일부러 내린 거야?’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자 가슴이 답답해졌다.차라리 대놓고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눈빛을 보였다면 나았을지도 몰랐다. 아무 말 없이 자신과 거리를 두는 그 무심한 행동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심유빈은 한동안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그녀는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나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거울 앞에 선 심유빈은 한동안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깊게 꺼진 눈가는 거뭇했다. 한때 촉촉하고 매끄러웠던 피부에서도 예전의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지?’한때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피아노계의 여신이었다.사교계의 중심에 서 있었고 수많은 남자가 앞다퉈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종호 같은 남자조차 그녀에게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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