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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골치 아픈 계집애

Author: 노에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2 17:03:13

“아주 충실하게 옆에 있을게요.”

문이 닫혔다. 강태준은 복도에 한참 서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열아홉짜리 계집애 하나가.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울거나. 살려달라고 빌거나. 집에 보내달라고 난리를 쳤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윤서아는 달랐다. 납치를 부탁했고.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도 않았고.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

태준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려다 멈췄다. 이내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형님.”

뒤에서 부하가 다가왔다.

“말해.”

“저 애… 정말 데리고 계실 겁니까?”

태준이 그를 바라봤다.

“내가 버리라고 했나?”

“아닙니다.”

“그럼.”

부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조사해 볼까요?”

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윤서아 말입니다.”

잠시 침묵. 태준은 낮게 대답했다.

“해.”

“어디까지—”

“전부.”

태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학교, 가족, 주변 사람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한테 왜 왔는지도.”

다음 날 아침. 서아는 평소처럼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어제 일이 떠올랐다.

납치. 강태준. 그리고 자신의 선택.

서아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옷장에는 새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하지만 손대지 않았다.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었다. 새 옷을 받는 순간부터 빚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에 있던 남자가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어디 가십니까?”

“주방이요.”

“왜요?”

“밥 하려고요.”

“……밥을요?”

“네.”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아는 그를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은 호텔처럼 넓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재료가 가득했다. 서아는 한참 안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사람 몇 명 먹어요?”

뒤따라온 남자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열 명 정도?”

“그럼 이걸로 충분하겠네요.”

서아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손놀림이 능숙했다. 계란을 깨고. 채소를 썰고. 국을 끓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부하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진짜 요리하네.”

“그러니까.”

“형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나?”

서아가 칼을 내려놓았다.

“들려요.”

두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잘 보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서아가 말했다.

“제가 여기서 밥값은 해야 하니까.”

그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밥값 하랬지?”

서아가 돌아봤다. 강태준이었다. 검은 셔츠 차림.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서아는 다시 칼을 들었다.

“제가요.”

“누가 시켰어?”

“아무도요.”

“그런데 왜 하지?”

서아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

“공짜로 사는 거 싫어서요.”

태준이 그녀를 한참 바라봤다.

“여기 있는 동안 네가 먹는 건 내가 부담해.”

“싫어요.”

“왜.”

“나중에 갚아야 할 것 같아서.”

태준의 눈썹이 올라갔다.

“갚을 생각은 있나 보네.”

“빚지는 거 싫어해요.”

“네 아버지는 빚 때문에 도망갔는데.”

서아의 손이 멈췄다. 잠깐. 정말 잠깐.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곧 다시 칼을 움직였다.

“그래서 더 싫어요.”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가 만든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태준은 앉았다. 한 숟가락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맛은 있네.”

서아는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다행이네요.”

“칭찬인데.”

“알아요.”

“좋아하지 않나?”

“좋아해도 티 안 내요.”

태준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피곤한 성격이군.”

“아저씨도요.”

주변의 부하들이 동시에 굳었다. 태준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윤서아.”

“네.”

“내가 만만해 보여?”

“아니요.”

“그런데 자꾸 말을 함부로 하네.”

서아는 태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저씨가 저한테 원하는 건 얌전히 있으라는 거잖아요.”

“그래.”

“그럼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요.”

태준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먹어.”

“네.”

“네가 만든 거니까 네가 먼저 먹어.”

서아가 한 숟가락 먹었다. 잠시 후.

“맛있네요.”

“…….”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태준은 식사를 이어갔다.

며칠이 지났다. 서아는 저택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아침에는 밥을 했고. 낮에는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서아는 한 번도 탈출하려 하지 않았다. 감시하던 남자도 의아해했다.

“도망갈 생각 없어요?”

서아가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왜요?”

“납치됐잖아요.”

“제가 부탁한 건데요.”

“…….”

“그리고 여기서 도망가면 어디로 가요?”

그 말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서아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갈 데가 없어요.”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처럼.

그날 밤. 태준의 사무실. 부하가 조사 자료를 내려놓았다.

“윤서아 관련해서 알아봤습니다.”

태준이 서류를 펼쳤다.

“말해.”

“어머니는 9년 전에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도박 중독.”

다음 장.

“사채, 불법 도박장 출입 기록이 많습니다. 빚도 상당하고요.”

태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성적은 상위권입니다.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친구.”

“거의 없습니다.”

태준의 손이 멈췄다.

“그런데 한 명 있습니다.”

“누구.”

“한도윤.”

사진 한 장이 서류 위에 놓였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 밝게 웃고 있었다.

“전교 1등이고 집안도 상당합니다. 윤서아에게 꽤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모양입니다.”

태준은 사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계속.”

“이상한 건 없습니다.”

“그럼 됐어.”

태준은 서류를 덮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아였다. 태준이 전화를 받았다.

“왜.”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말해.”

“내일 학교 가도 돼요?”

태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안 돼.”

“왜요?”

“네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는 저 못 찾아요.”

“그걸 어떻게 알아.”

“알아요.”

“근거는?”

서아가 잠시 침묵했다.

“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저를 찾고.”

“그래.”

“돈이 생기면 저를 버려요.”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지금은 저를 찾을 이유가 없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너무 담담해서. 태준은 낮게 물었다.

“학교에 왜 가고 싶은데.”

“한도윤 때문이에요.”

처음으로. 태준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누구?”

“같은 반 애요.”

“왜.”

“저한테 초콜릿을 줬거든요.”

태준은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아주 차갑게 말했다.

“그딴 이유로 학교를 가겠다고?”

“네.”

“안 돼.”

“왜요?”

“내가 싫으니까.”

서아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아저씨가 이유를 만들어 주세요.” 

“무슨 뜻이지?”

“제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한 이유.”

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아가 말했다.

 

“제가 계속 여기 있어야 할 이유를요.”

통화가 끊겼다. 태준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골치 아픈 계집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밤. 그는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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