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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어우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2-23 11:04:48

주차장에서 열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근식이 서 있었다. 가라고 했건만 말도 안 듣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근식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꾸만 몸을 빼려는 여자의 허리를 뒤쪽에서 밀고 있었는데, 그게 보였나 보다.

성진은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린 채 어버버 말도 못하는 근식을 지나쳐 그의 차에 여자를 태웠다.

“집이 어딥니까?”

“저기…….”

“주소.”

딱 떨어진 그의 목소리에 여자가 머뭇거리며 주소를 말했다. 시동을 걸고 불러주는 대로 네비게이션에 입력한 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룸미러로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근식이 보였다. 그 모습이 못마땅해 츱, 혀를 찼더니 여자가 움츠러들었다. 또 못마땅해졌지만 그는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녀의 집은 그 칵테일 바에서도, 그의 사무실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서도 머뭇거리는 여자를 재촉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저기…… 이제 정말…….”

“들어가는 것까지입니다.”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폼이 꽤나 불안한 모양이었다. 5층을 알리는 소리가 나자 여자는 한숨을 한 번 더 쉬고는 걸어 나갔다. 성진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두어 개의 문을 지나친 여자가 문 앞에 바짝 붙더니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띠리릭,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나자 이를 확인시키듯 성진을 돌아보았다.

“들어가세요.”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이며 손짓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한 여자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들어가다 말고 멈춰 섰다. 지켜보던 성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뭡니까?”

“아, 아니에요.”

아니라고 대답해놓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건 또 뭔지. 성진은 성큼성큼 걸어가 여자를 옆으로 슬쩍 밀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오후의 뜨거운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원룸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난장판이었다. 모든 집기류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옷가지들은 찢어진 채 흩뿌려져 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은 여자를 뒤로하고 성진은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릇도 깨진 채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의자며 테이블이며 멀쩡한 것이 없었다.

지랄발광을 하셨군.

여자의 반응을 봐선 그녀가 집에서 나온 후에 일이 벌어진 듯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여자가 없어서 뒤엎은 모양이었다.

‘벨렐레레.’

경쾌한 벨소리가 울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점점이 검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침대 위에 여자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잡으려는데 여자의 작은 손이 먼저 달려들었다. 액정을 보더니 받지 않고 벨소리를 죽여 버리는 걸 보면 그 호로개잡놈인 것 같았다.

“받아보시죠.”

“아니에요. 이제…… 들어온 거 보셨으니 그만…….”

또다시 밀어내는 여자 때문에 성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기 이런 꼴을 보고 이제 그만 가라? 그 호…… 놈이 다시 오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여자를 보며 성진은 으르렁거리듯 낮게 욕을 내뱉었다.

“내가 뭐 정의의 사도 그런 건 아니지만, 아가씨. 이 모양이 된 집구석에 언제 다시 찾아 올 지 모르는 개새끼를 냅두고 그냥 가는 쓰레기는 더더욱 아니란 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숨 밖에 안 나오는 풍경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 근식이 사무실에 도착해 주둥이를 털고 있을 터였다.

츱, 가볍게 혀를 찬 성진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근식이냐? 오늘 일 많아?”

-아닙니다요, 형님. 오늘은 정 이사 하나 있습니다, 형님. 내일은 불금이라 문 의원네 다섯이랑 강 회장네 둘, 한 이사네 둘 요렇게 있는데요, 형님.

“정 이사면…… 이번에도 골프장인가?”

-네, 형님.

성진은 잠시 고민했다.

“오늘은 늬들끼리 갔다 와야겠다.”

-네, 형님.

“보안 신경 쓰고.”

-네, 형님. 걱정하지 마십쇼!

우렁찬 대답소리가 썩 미덥지는 않았지만 수고해라 한 마디 던지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저, 그런데 형님. 아까 그 분…… 형수님 되실 분입니까?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헛웃음이 났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라 인정사정없이 종료버튼을 누르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멀쩡한 게 없어 보이지만…… 당장 급하게 쓸 만한 것만 챙기십시오.”

“네?”

“내 집으로 다시 갈 겁니다.”

“하지만…….”

“여기 있을 겁니까?”

성진은 보란 듯이 주변을 눈짓했다. 여자의 시선도 그를 따라 주변을 향했다.

“오후에 나와서 아침에 들어갑니다. 안 들어갈 때도 많습니다. 보셨겠지만 넓어서 크게 불편할 일 잘 없을 겁니다.”

성진은 망설이는 여자를 재촉해 짐을 싸게 했다. 깨지거나 부서진 잔해 틈에서 기특하게 살아남은 화장품과 찢어지지 않은 옷가지 몇 개를 챙기는 것까지 지켜보고는 뒤돌아서서 현관문까지 나와 기다렸다. 여자는 그 뒤로도 한참을 꿈지럭거렸다.

“멀었습니까?”

“아니요, 다 됐어요.”

목소리와 함께 쇼핑백 두 개를 든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갑시다.”

여자의 뒤로 현관문을 닫는데, 벨렐렐레 아까의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성진은 여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들었다. 액정에 뜬 이름은 ‘내 남자’였다.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쳐맞고도 내 남자인가? 말리려 손을 뻗는 여자를 무시하고 전화를 받았다. 연결되자마자 남자의 욕설이 쏟아졌다.

-이 씨발년아! 너 어디야? 어디 갔었어? 여태 누구랑 뭐 했어! 얼마나 더 쳐맞아야 정신 차릴 건데?

“이 개 호로 잡놈의 씨발 새끼야. 병신 같은 새끼가 어디 여자를 패고 이렇게 당당해? 넌 어딘데? 씨발, 뒈지고 싶지 않으면 지금 있는 곳 대.”

성진의 묵직한 욕설을 들은 상대편이 조용해졌다.

“안 들려? 불라고, 이 좆만한 새끼야!”

띠릭, 전화가 끊어졌다. 웃음이 났다. 쫄았네, 병신 새끼. 그는 잔뜩 얼어있는 여자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성큼성큼 걸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3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라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스르르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서 1층 버튼을 눌렀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여자가 보였다.

“안 갑니까?”

“저기…….”

스르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때문에 성진은 열림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러야 했다.

“하, 진짜!”

답답하게 구는 여자에 난데없이 얻어먹은 욕설, 이 모든 상황이 주는 짜증에 성진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여자가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민서는 보조석 바닥에 내려놓은 쇼핑백 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휙휙 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쳐다보기도 하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것도 한참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편했다. 남자가 말이 없어 더 불편했다. 차에 타고 난 후로 단 한 마디 없이 운전만 하고 있는 남자를 곁눈으로 힐끔 쳐다보았다.

말이 많지 않은 손님이었다. 이런저런 신변잡기적인 얘기들로 대충이나마 성향을 파악할 수 있던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칵테일 취향 외의 것은 알 수 없던 손님이었다. 명함도 남기지 않아 이름조차 모르는 손님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차에 타고 있다는 것이 불안했고, 곧 그의 집에 가게 될 거라는 게 더 불안했다.

그 굴욕적이고 비참했던 섹스 뒤에 골아떨어진 근태 옆에서 한참을 울며 떨어야 했다. 이런 취급까지 받아가며 살아야 하나, 죽어버리는 것 외에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내가 죽고 나면 이 남자는 죄책감 같은 걸 느끼기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죽을 결심을 하고 집을 나왔었다. 그 곳에서 이 남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살려준 것이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재워준 것도 고맙지 않았다. 집까지 데려다 준 것도, 난장판이 된 집을 보고 아무 말 하지 않은 것도, 자기 집으로 가자 한 것도 전혀 고맙지 않았다. 다만 근태에게 욕을 해준 것이, 그녀의 편을 들어준 것은 고마웠다. 무서웠지만 고마웠다.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고 무서운 것을 참을 수 있었다.

다시 눈동자를 굴려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30대 중반 쯤 되었을까? 정면을 주시하며 운전만 하는 남자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곱게 생긴 얼굴이었다. 다만,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눈썹 위에서 눈꼬리쪽으로 이어지는 흉터가 강한 인상을 풍겼다. 눈매도 좀 날카로워 보이나? 민서는 남자를 힐끔거리던 것을 그만두고 무릎 위로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남자가 근태에게 주먹을 날리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큰 키와 넓은 어깨가 주는 위압감, 권태로운 듯하면서도 날카롭던 눈빛, 커다란 덩치임에도 놀랄 정도의 민첩한 움직임. 그 때 이 남자가 뭐라고 했더라. ‘남자 보는 눈 좀 길러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하주차장.

남자는 차에서 따라 내리는 민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서는 순간 흠칫거렸다.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뭐지? 악수하자는 건가? 손을 잡으려는 건가? 그럴 만큼 가까운 사이거나 호감을 나누는 사이도 아닌데 왜 갑자기? 그녀는 얼떨결에 오른손을 내밀었다. 바짝 긴장해 있는 손을 흘깃 내려다본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가져갔다. 아, 두 개니까 하나 들어준다는 거였구나. 괜히 놀랐네. 민서는 앞서 걷는 남자 뒤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따라 걸었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라던가 ‘가방 하나 주세요’라고 한 마디 말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어지간히도 말이 없는 남자였다. 입술을 비죽이던 민서가 왼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오른손으로 옮겨 들었다. 그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왜 하필 저걸 들고 간 거야!

난장판이 된 원룸 안에서 멀쩡한 옷들을 발굴하듯 먼저 챙기고 나서 뒤집어진 속옷 서랍을 챙겼었다. 해서 남자가 들고 있는 종이가방 제일 위쪽엔 검은색 레이스 브래지어가 얌전히 올라가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가방 속에는 잡다한 것들 뿐. 손잡이 끈을 묶어서 여며놓긴 했지만, 남자가 들여다보기만 하더라도 그 정체를 알아채는 데 어려움이 없을 터였다. 어으, 내가 진짜 못 살아. 남들한테 보여선 안 되는 모습만 골라서 보이고 있네, 정말.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벌써 저만치 가버린 남자 뒤로 종종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우야

작가입니다. 이제 둘이 같이 삽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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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goodnovel comment avatar
고구마
와 완전 잼나 빨리빨리 써주세요..
goodnovel comment avatar
ᅳᅳ
츤데레?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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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이 사랑할 때   63

    현식은 굳은 표정으로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눈앞에 엉망이 된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몹시 껄끄러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 조폭 같지 않게 생겨먹었던 조폭이 ‘내 여자’라 했었다. 겉으로 봐서는 제 아들인 근태가 그리 집착할만한 점도, 성진이 애지중지할만한 매력도 없어보였다. 그렇다는 건, 저 속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근태의 일을 매번 봐주던 경찰 간부가 성진의 구속 소식을 알려준 후, 그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불안함에 잠도 설쳤었다. 매번 성진의 곁에서 무게를 잡던 덩치 큰 험악한 놈이 당장이라도 들이닥쳐서 그를 협박할 것 같기도 했고, 뉴스에 이런 것이 떴다면서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근태의 폭력사건 기사를 내밀 것 같기도 했다. 그에게 좋은 제안을 했던 당대표의 번호가 핸드폰에 뜨면 몸이 굳어서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이렇게 불안함에 떨 바에는 차라리 성진을 찾아가서 협상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민서가 찾아와 준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할 얘기가 있다고 했지? 해보게.”민서는 속으로 천천히 다섯을 세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말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입을 열었다.“먼저 사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현식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네깟 게 뭔데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하냐고, 내 아들과의 일은 그녀석과 해결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근태와의 일은 유감이네. 변호사를 통해 들었겠지만 충분하게 보상하지.”“유감…….”민서의 표정을 보니, 그의 사과가 마음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식은 내키지 않았지만 말을 더했다.“어쨌거나 미안하게 생각하네. 아가씨 상태를 보니 우리 근태가 좀 심했어.”진심이 담겼다고 느껴지는 사과는 아니었지만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잘못을 인

  • 조폭이 사랑할 때   62

    ***민서는 택시에서 내려 커다란 대문 앞에 섰다. 등 뒤에서 택시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그 택시를 멈춰 세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공연히 벌집을 들쑤시는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할 수 있다, 한민서. 내가 해야 해.”스스로를 다독인 그녀가 손을 내밀어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응답이 없어 한 번 더 눌렀다.-누구세요?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인터폰에 얼굴을 좀 더 가까이 가져갔다.“김근태 씨 댁인가요?”-그런데 누구세요?“김근태 씨에 대해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요.”인터폰 너머에서 잠시 부산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사님, 얼른 문 열어줘요. 우리 근태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하지만 사모님.-근태 소식 안다잖아요!전자음이 들리며 대문이 열렸다.-어서 들어와요.“감사합니다.”민서는 들어가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안에 넓은 정원을 잠시 둘러보았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예쁜 정원이었다. 근태가 부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자동네로 유명한 곳에 이 정도 규모의 저택에서 살 정도라는 건 몰랐었다. 주눅이 들면서 다시 후회라는 감정이 솔솔 피어올라왔다.저 멀리서 현관문이 열리고 중년 여자가 그녀를 마중 나왔다. 효숙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정원의 반도 가로지르지 못한 민서를 보고 안달을 냈다. 기다리지 못하고 민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민서의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표정이 굳어졌다. 젊은 여자애 얼굴이 얼룩덜룩 엉망이었다. 그녀의 아들이 무슨 일로 유치장에 수감되었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효숙이었기에 민서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근태의 행방을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반가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불편함과 껄끄러움이 생겨났다.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민서는 효숙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조폭이 사랑할 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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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이 사랑할 때   59

    현식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효숙이 마중을 나왔다. 며칠 동안 시커멓게 죽은 낯빛으로 사람이 들어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태도가 바뀐 것이었다. 역시 그 깡패새끼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는 가방을 받아드는 효숙을 노려보았다.“왜요.”가방을 받아주었음에도 꼼짝 않고 서 있는 남편을 향해 효숙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경찰 쪽에 힘을 써 줄 사람이 남편 밖에 없었기에 그의 비위를 맞춰주러 나온 마중이었다. 절대로 남편을 향한 원망이 누그러진 게 아니었기에 목소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당신, 경찰서에 갔었어?”“어떻게 알았어요?”“경찰서에…….”현식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 누르느라 잠깐 말을 멈췄다.“근태 실종 신고 했어?”“네. 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도대체 누구 허락을 받고? 왜 쓸 데 없는 짓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느냐고!”일을 벌려놓고 당당한 효숙의 태도에 근식은 폭발했다. 손가락질을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효숙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뒤이어 그녀에게도 분노가 들끓었다.“쓸 데 없는 짓? 쓸 데 없는 지잇? 지금 우리 근태 실종신고 한 게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한 거예요, 당신?”“쓸 데 없는 짓이지, 그럼? 왜 물어보지도 않고 일을 만드냐고!”효숙이 현식의 가방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우리 아들이 사라졌어요! 연락도 안 돼서 불안해하는 나한테 당신, 뭐라 그랬어요? 조용히 반성하면서 공부나 하라고 대전 사찰에 보냈다면서요? 없대요! 대전 그 어느 사찰에도 우리 근태가 없었대요! 그래서 했어요, 실종 신고. 애 아빠라는 사람이 안 찾아주니까 경찰한테 찾아달라고 하려고요!”“내가 보냈댔잖아! 좀 잠잠해지면 어련히 알아서 잘 데리고 올까! 여편네가 겁도 없이 어딜 나서?”“그러게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던가! 당신이 먼저 날 불안하게 만들었잖아요! 나라고 뭐, 좋아서 경찰한테까지 찾아간 줄 알아요?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잘못을 빌기는커녕 되레 따지기 시작하는 효숙의

  • 조폭이 사랑할 때   58

    근식은 아직 성진에게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형수님. 우리 지영이가 칵테일을 한 번도 못 마셔봐서 그런데요. 예전에 그 커피 맛 나는 칵테일 한 번 만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근식이 던졌고.“어머! 커피 맛 나는 칵테일이요? 그런 게 있어요? 궁금해요, 언니! 아니, 힘드신데 무리하지 마세요.”“아니에요, 지영 씨. 힘들지 않고 어렵지도 않아요. 재료만 있으면…… 여기 주류 코너가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있어요, 주류 코너! 제가 알아요!”지영이 덥석 물었다. 그녀는 다시 민서의 팔짱을 끼고 조잘조잘 떠들면서 걸어갔다.“제가 또 한 커피 하거든요. 언니도 전에 제 커피 맛있다고 하셨죠? 그게 또 기술이 있어야 하거든요.”멀어지는 지영의 목소리를 배경삼아 근식이 말을 꺼냈다.“신경 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형님. 그 여자가 시온에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명함? 늬들 명함 함부로 뿌리고 다녀?”“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애초에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없고요. 얍실이 말로는 그 여자가 아들 방에서 찾았다고 했답니다.”“귀찮게 됐네. 실종신고 한 경찰서가 어디래?”“그것까지는 안 물어봤지만, 뻔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개주둥이 곽 경사가 냄새 맡고 덤벼들지 않겠습니까?”근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성진이 피식 웃었다.“건수 잡았다고 신나있겠군.”“직접적인 증거 같은 건 못 찾을 겁니다. 경찰서 앞에서 달아 올 때도 신경 많이 썼고요, 작업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그 새끼가 언제는 증거 가지고 덤비든? 지 꼴리는 대로 잡아들여 족치는 종자인데.”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성진은 느긋한 표정이었다.“따로 생각해 두신 게 있습니까? 별로 걱정 안 되시는 거 같은데요.”“글쎄. 힘 써 줄 사람이 있을 듯도 해서.”성진이 말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주류 코너에 도착해버렸다. 근식은 생각을 멈췄다. 지영이 여러 병의 술을 들고 오는 게 보였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기 때문이었다.“형수님. 생각해보니까

  • 조폭이 사랑할 때   6

    “츱, 대충들 하지.”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야 덩치 큰 남자가 차장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엇, 형님. 벌써 나오셨습니까?”“그러게 키 주고 가라고 그랬지? 새끼가 말도 안 쳐듣더니.”“제이 그년이 어지간히 앵겨들어야 말이지요, 형님. 그래도 그것이 아니다, 어떻게 형님을 혼자 집에 보내 드리냐, 놓아라, 바짓가랭이 찢어진다 탁 뿌리치고 왔지요. 헤헤.”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운전석으로 향하는 근식의 뒷덜미를 잡은 성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시끄럽고. 차 키 내놓고 넌 다시 들어가.”머뭇거리며 주머니

  • 조폭이 사랑할 때   5

    부딪친 무릎의 통증을 자각할 틈도 없이 머리채를 잡혔다.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와 잠금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서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그 깡패새끼랑 여태 같이 있다 온 거야?”근태의 목소리도 떨리는 듯했다. 민서는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근태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이거 놔.”“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없고, 한 시간이나 늦게 들어와?”“이거 놓으라고!”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보았지만 그의 손은 너무 단단했다.“어쩐지 그 새끼, 가게 근처에 못 오게 하더니……. 가게서 딩굴었냐?

  • 조폭이 사랑할 때   4

    평소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었지만, 자정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새 손님이 들어왔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민서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아는 척을 하는 남자는 제법 낯이 익었다. 일행과 뭐라 말을 주고받으며 테이블이 아닌 바에 자리 잡고 앉았다.“가게도 작고 바텐더도 하나뿐이고…….”남자의 일행은 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통찮은 표정이었다.“가게는 작아도 칵테일이 괜찮아. 바텐더 아가씨도 예쁘고 조용하니 좋기만 하구만 괜히 궁시렁거리긴.”남자는 메뉴판을 받아들며 민서에게 슬쩍 윙크를 날렸다. 마주 웃어주는 민서의 얼

  • 조폭이 사랑할 때   3

    다시 요란하게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민서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받고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사과부터 할 테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느니, 너 없인 못 산다느니,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느니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을 게 분명했다. 헤어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매달릴 것이었다. 알았다고, 용서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었다.어떻게 이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남자 보는 눈을 기르라던 손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난 남자 보는 눈이 정말 거지같았던 거야.전화는 잠깐 끊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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