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평소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었지만, 자정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새 손님이 들어왔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민서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아는 척을 하는 남자는 제법 낯이 익었다. 일행과 뭐라 말을 주고받으며 테이블이 아닌 바에 자리 잡고 앉았다.
“가게도 작고 바텐더도 하나뿐이고…….”
남자의 일행은 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통찮은 표정이었다.
“가게는 작아도 칵테일이 괜찮아. 바텐더 아가씨도 예쁘고 조용하니 좋기만 하구만 괜히 궁시렁거리긴.”
남자는 메뉴판을 받아들며 민서에게 슬쩍 윙크를 날렸다. 마주 웃어주는 민서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일행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메뉴를 뒤적였다.
30대 중반 정도? 흐트러지긴 했지만 둘 다 수트 차림이었고, 전작이 있었던 듯 얼굴이 약간 붉었다.
“난 러스티 네일. 너는?”
“아무거나.”
일행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덮으며 대답하자 남자는 눈을 살짱 찡그렸다.
“아무거나는 무슨. 그런 메뉴는 없거든? 이 친구는 마티니로 주세요.”
“네, 손님.”
웃는 얼굴로 메뉴판을 받아든 민서는 올드 패션드 글라스를 꺼냈다. 얼음 서너 조각을 넣고 스카치 위스키 병을 집어들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지거를 끼고, 간결하고 세련된 움직임으로 용량을 재 얼음 위로 술을 붓는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의 일행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아가씨, 쇼는 안 합니까?”
“네?”
“거 있잖아. 막 흔들고 돌리고 던졌다가 받으면서 춤도 추고.”
드란부이를 위스키와 동량으로 넣고 바스푼의 긴 손잡이를 집던 민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요새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구요. 화려하죠, 칵테일 쇼. 그런데 그런 쇼를 보여주는 바텐더들을 플레어 바텐더라고 따로 불러요.”
“아가씨는 그런 거 못하나? 하다못해 요래요래 막 흔드는 거라도 해봐요. 그렇게 얌전히 따르지만 말고.”
자꾸만 귀에 들리는 ‘아가씨’ 호칭이 거슬렸지만 민서는 웃었다.
“여기 주문하신 러스티 네일입니다. 주문하신 마티니는 보통 저어서 만드는데, 흔들어서 만들어 드릴까요, 손님? 맛이 좀 달라지긴 하지만……, 손님. 혹시 사과향 같은 과일향 좋아하시나요? 괜찮으시다면 주문하신 마티니와는 좀 다른 칵테일이긴 하지만 애플 마티니로 준비해드릴까요? 그건 흔들어 만들거든요.”
바스푼으로 잘 저어 완성된 러스티 네일을 손님 앞으로 내어놓은 민서는 얼굴 옆에서 두 손을 맞잡고 애교스럽게 흔드는 시늉을 해보였다. 남자들은 기분 좋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녀는 쉐이커에 얼음과 보드카, 애플 리큐르와 라임주스를 계량해 넣으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지켜보는 두 남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쉐이커를 결합시키고는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달그락달그락 쉐이커 안에서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어우, 아가씨 팔 힘 좋네.”
일행이 요상한 방향으로 팔을 흔들며 민서를 흉내 내며 웃자, 남자가 팔꿈치로 일행을 툭 쳤다.
“왜, 칭찬이잖아.”
칭찬이긴 하지. 그 묘한 표정과 시선을 뺀다면. 민서는 칠링으로 차가워진 칵테일 글라스에 얼음을 버리고 애플 마티니를 채워 넣었다. 얇게 썬 사과조각을 위에 띄우고는 손님 앞에 내려놓았다.
“애플 마티니 완성되었습니다, 손님.”
바 너머에서 저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티격대는 걸 일별한 민서는 사용한 기구들을 씻어 정리했다. 오늘은 유난히 보드카 베이스 칵테일이 많이 나갔네. 이것저것 정리하며 바닥을 보이는 보드카 병을 집어드는데 남자의 일행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가씨, 이거 한 잔 더 줘봐. 이 친구 것도 한 잔 더 주고.”
잔에 남은 사과 조각을 손으로 집어먹으며 남자의 일행이 눈을 찡긋거렸다. 눈빛으로 남자의 의사를 확인한 민서는 미소로 대답하고는 러스티 네일과 애플 마티니를 한 잔씩 더 만들었다. 빈 잔과 코스터를 회수하고 새 코스터와 완성된 칵테일을 내주었다.
“아가씨가 여기 사장이야? 직원도 안 두고 혼자 일하는 거야?”
“제가 직원입니다, 손님.”
웃으며 대답하는 민서를 빤히 쳐다보던 일행이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아가씨 여기서 한 달에 얼마 벌어?”
“그건 영업비밀인데요, 손님.”
농담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향해 남자의 표정이 은밀해졌다.
“얼마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자라지 않아? 투잡 뛰어볼 생각 없어?”
민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남자의 시선과 태도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손님 앞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바텐더는 손님과 갈등을 빚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전에 일하던 바에서는 매니저가 있어 추근대거나 시비를 걸어오는 손님을 상대해주었다. 이런 손님을 대할 때면 새삼스럽게 자리를 비운 사장이 원망스러워졌다.
“글쎄요, 손님. 저는 딱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남자가 일행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야, 너 취했냐? 왜 이래?”
“외로워서 그런다, 외로워서.”
“제수씨 알면 큰일 날 소리!”
“시끄럽고, 생각 있으면 전화해요. 왜, 여자들 그럴 때 있잖아. 갖고 싶은 게 생겼는데 사려니 부담스럽고 그럴 때.”
“야!”
남자가 발끈했지만, 그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민서에게 건넸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명함을 받아 따로 빼어놓은 보드카 병 옆에 내려놓았다.
그 후로도 두 남자는 계속해서 칵테일을 추가해 마셨다. 일행의 은근한 추파도 계속되었다. 젊은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 몇 달 전까지 만나던 스물아홉 아가씨가 있었는데, 지난주에 결혼을 해서 보내줬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인데, 자기랑 만날 생각은 없는가.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 편이다. 유명 탤런트와 닮았다는 소리 자주 듣는데, 진짜 그런가?
다른 손님들은 다 떠나고 그 둘만 남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줬으면 좋겠는데……. 민서는 흘깃 시계를 보았다. 2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일행이 시계 쪽을 보고는 씩 웃었다.
“아가씨, 끝날 시간 됐지? 저기 앞에서 술 한 잔 할래? 이 자식 보내고 둘이서.”
민서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도저히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남자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자식 왜 그래? 괜히 데려왔나 보다. 야, 너 일어나. 미안합니다, 바텐더 아가씨. 원래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술버릇이 고약해졌네요.”
남자는 황급히 계산을 마치고, 놓으라고 버럭거리는 친구를 질질 끌고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민서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드카 병 옆에 내려놓았던 그 남자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잠시간 노려보던 민서는 펜을 들어 명함 뒷면에 몇 글자 적었다.
‘개진상.’
흥, 가볍게 콧방귀를 뀐 민서는 바 위에 놓인 빈 잔들과 코스터를 정리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이었다. 뒷정리 정도는 다음날 조금 일찍 와서 해도 되지만, 그녀는 꼼꼼하게 마감을 했다. 낮에 집 앞에서 보았던 근태의 차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다.
가게 문을 잠그고 나왔을 때가 새벽 3시. 민서는 무거운 걸음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그 때가 언젠데. 행정고시를 준비하려면 1분 1초도 아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던 근태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상 집 앞 골목을 나서려니 발걸음이 멈췄다. 고개를 내밀어 원룸 건물앞 주차장을 훑었다. 없지? 없을 거야. 없어야 맞는 거지. 과연 그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좀 거리가 있는 주차공간까지 둘러본 뒤에야 민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피해 다녀야 하는 걸까.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가 배로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렸다. 습관적으로 현관문 앞에 바짝 붙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었다. 그동안 갇혀있던 안의 공기가 왈칵 밀려왔다. 익숙한 냄새와 분위기가 주는 안도감에 눈이 절로 감겼다.
턱.
갑작스런 마찰음에 번쩍 눈을 뜬 민서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그녀는 문 안쪽으로 확 밀려 넘어졌다.
작가입니다. 우리 여주 고생이 많습니다. 여주야. 내가 많이 애낀다. 최고로 애낀다. 행복하게 해주께......
현식은 굳은 표정으로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눈앞에 엉망이 된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몹시 껄끄러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 조폭 같지 않게 생겨먹었던 조폭이 ‘내 여자’라 했었다. 겉으로 봐서는 제 아들인 근태가 그리 집착할만한 점도, 성진이 애지중지할만한 매력도 없어보였다. 그렇다는 건, 저 속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근태의 일을 매번 봐주던 경찰 간부가 성진의 구속 소식을 알려준 후, 그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불안함에 잠도 설쳤었다. 매번 성진의 곁에서 무게를 잡던 덩치 큰 험악한 놈이 당장이라도 들이닥쳐서 그를 협박할 것 같기도 했고, 뉴스에 이런 것이 떴다면서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근태의 폭력사건 기사를 내밀 것 같기도 했다. 그에게 좋은 제안을 했던 당대표의 번호가 핸드폰에 뜨면 몸이 굳어서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이렇게 불안함에 떨 바에는 차라리 성진을 찾아가서 협상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민서가 찾아와 준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할 얘기가 있다고 했지? 해보게.”민서는 속으로 천천히 다섯을 세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말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입을 열었다.“먼저 사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현식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네깟 게 뭔데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하냐고, 내 아들과의 일은 그녀석과 해결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근태와의 일은 유감이네. 변호사를 통해 들었겠지만 충분하게 보상하지.”“유감…….”민서의 표정을 보니, 그의 사과가 마음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식은 내키지 않았지만 말을 더했다.“어쨌거나 미안하게 생각하네. 아가씨 상태를 보니 우리 근태가 좀 심했어.”진심이 담겼다고 느껴지는 사과는 아니었지만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잘못을 인
***민서는 택시에서 내려 커다란 대문 앞에 섰다. 등 뒤에서 택시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그 택시를 멈춰 세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공연히 벌집을 들쑤시는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할 수 있다, 한민서. 내가 해야 해.”스스로를 다독인 그녀가 손을 내밀어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응답이 없어 한 번 더 눌렀다.-누구세요?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인터폰에 얼굴을 좀 더 가까이 가져갔다.“김근태 씨 댁인가요?”-그런데 누구세요?“김근태 씨에 대해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요.”인터폰 너머에서 잠시 부산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사님, 얼른 문 열어줘요. 우리 근태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하지만 사모님.-근태 소식 안다잖아요!전자음이 들리며 대문이 열렸다.-어서 들어와요.“감사합니다.”민서는 들어가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안에 넓은 정원을 잠시 둘러보았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예쁜 정원이었다. 근태가 부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자동네로 유명한 곳에 이 정도 규모의 저택에서 살 정도라는 건 몰랐었다. 주눅이 들면서 다시 후회라는 감정이 솔솔 피어올라왔다.저 멀리서 현관문이 열리고 중년 여자가 그녀를 마중 나왔다. 효숙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정원의 반도 가로지르지 못한 민서를 보고 안달을 냈다. 기다리지 못하고 민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민서의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표정이 굳어졌다. 젊은 여자애 얼굴이 얼룩덜룩 엉망이었다. 그녀의 아들이 무슨 일로 유치장에 수감되었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효숙이었기에 민서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근태의 행방을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반가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불편함과 껄끄러움이 생겨났다.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민서는 효숙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먼저 근태가 행방불명이라는 소식부터 전했다. 성진이 근태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생략했다. 폭행사건의 피해자인 민서에게 성진의 폭력적인 면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그녀였다. 공연히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근식은 그저 근태를 찾는 그의 모친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민서와 경찰조사를 받을 때 함께 있었던 성진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잡혔다고만 했다. 곽 경사를 향한 점잖은 욕설이 다소 섞인 설명이었다.민서는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구속이라니. 그토록 구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던 근태는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었는데, 성진이 구속되었다고 하니, 편파적인 공권력에 화가 났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성진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그…… 김근태는 괜찮은 걸까요?”의외의 질문에 근식이 미간에 힘을 주었다. 형님이 경찰에 잡혀갔는데 김근태를 걱정하는 건가? 그 개차반 씨발놈을? 하지만 이어지는 민서의 중얼거림에 그의 표정이 편안해졌다.“안 괜찮았으면 좋겠네요. 죽어버린 거였으면 좋겠어. 성진 씨가 감옥에 있는데…… 그 개새끼가 편안하게 있는 건 말이 안 돼.”걱정하지 말라고, 그 개새끼는 우리 형님이 아주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 없앴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근식 씨. 제가…… 뭘 해야 할까요?”“네?”“제가 어떻게 해야 성진 씨를 도울 수 있을까요?”민서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근식은 웃었다.“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면회도 몇 번 가 주시면 좋고요.”“그런 거 말고요.”“실력 좋은 변호사님이 형님 사건 맡아주실 겁니다. 그 개새끼가 재판 받는 게 무서워 도망간 걸 가지고 그 개좆만도 못한 경찰 새끼가 건수 잡았다 싶어 엮은 겁니다. 증거도 없으니 곧 풀려나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하지만…… 처음이라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근식은 웃었다.“변호사님한테 얘기 해 놓겠습니다. 변호사 접견은 수시로 가
***“야, 한영호.”성진과 통화를 마친 근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영호를 불렀다.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용호가 고개만 돌려 근식을 쳐다보았다.“왜?”“형님이 김현식 국장이랑 통화할 때 누구 전화로 했냐?”“내꺼.”“강원도 갈 때 네 차도 끌고 갔었나?”“형님 차에 얹혀 가느라 안 가져갔었지.”막힘없는 용호의 대답에 근식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머릿속이 정리가 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형님 구속되셨다. 압수수색 나온다고 하니까 너는 당분간 시온으로 출퇴근하는 걸로 하자. 핸드폰은 바꿔야 할 것 같다. 압수 목록에 네 이름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거니까. 너는 그 날 형님이랑 애들 데리고 밤낚시 간 거다.”심드렁한 표정으로 누워있던 용호가 근식의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씨발 것들. 핸드폰 바꾼 지 얼마 안됐는데.”“증거 될만한 건 없지?”“우리 물고기님들께서 부지런히 그 새끼 뜯어먹어주셨다면 없지. 그 새끼 달아오던 때도 흔적 안 남기려고 별 지랄을 다 떨었는데 증거가 있겠냐?”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긴 용호가 사무실 출입문을 열다 말고 근식을 돌아보았다. 그는 빨리 안 가고 뭐하냐는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는 근식을 향해 손가락 키스를 날렸다.“고생해, 자기.”“씨발 새끼가, 저 병 또 도졌네.”질색하는 근식을 향해 신나게 웃어준 용호가 갔다. 근식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몸서리를 쳤다. 가장 큰 건더기를 처리했으니 잔잔바리들을 처리할 차례였다. 그는 강릉까지 근태를 실어간 동생들을 불러 잡도리했다. 그들은 성진이 근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직접 눈으로 지켜봤던지라 기강이 바짝 서 있는 상태였다. CCTV를 잘 피한 건 물론이고 서울을 벗어나는 과정도 여러 단계를 거쳐 조심해 꼬리가 잡힐 일이 없다고 장담했다. 혹시라도 흔적이 남아 걸리게 되더라도 조직에 피해가 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근식은 다 같이 술이나 한 잔씩 하라며 지갑에서 오만원권 너댓 장을 꺼
현식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효숙이 마중을 나왔다. 며칠 동안 시커멓게 죽은 낯빛으로 사람이 들어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태도가 바뀐 것이었다. 역시 그 깡패새끼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는 가방을 받아드는 효숙을 노려보았다.“왜요.”가방을 받아주었음에도 꼼짝 않고 서 있는 남편을 향해 효숙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경찰 쪽에 힘을 써 줄 사람이 남편 밖에 없었기에 그의 비위를 맞춰주러 나온 마중이었다. 절대로 남편을 향한 원망이 누그러진 게 아니었기에 목소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당신, 경찰서에 갔었어?”“어떻게 알았어요?”“경찰서에…….”현식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 누르느라 잠깐 말을 멈췄다.“근태 실종 신고 했어?”“네. 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도대체 누구 허락을 받고? 왜 쓸 데 없는 짓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느냐고!”일을 벌려놓고 당당한 효숙의 태도에 근식은 폭발했다. 손가락질을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효숙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뒤이어 그녀에게도 분노가 들끓었다.“쓸 데 없는 짓? 쓸 데 없는 지잇? 지금 우리 근태 실종신고 한 게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한 거예요, 당신?”“쓸 데 없는 짓이지, 그럼? 왜 물어보지도 않고 일을 만드냐고!”효숙이 현식의 가방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우리 아들이 사라졌어요! 연락도 안 돼서 불안해하는 나한테 당신, 뭐라 그랬어요? 조용히 반성하면서 공부나 하라고 대전 사찰에 보냈다면서요? 없대요! 대전 그 어느 사찰에도 우리 근태가 없었대요! 그래서 했어요, 실종 신고. 애 아빠라는 사람이 안 찾아주니까 경찰한테 찾아달라고 하려고요!”“내가 보냈댔잖아! 좀 잠잠해지면 어련히 알아서 잘 데리고 올까! 여편네가 겁도 없이 어딜 나서?”“그러게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던가! 당신이 먼저 날 불안하게 만들었잖아요! 나라고 뭐, 좋아서 경찰한테까지 찾아간 줄 알아요?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잘못을 빌기는커녕 되레 따지기 시작하는 효숙의
근식은 아직 성진에게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형수님. 우리 지영이가 칵테일을 한 번도 못 마셔봐서 그런데요. 예전에 그 커피 맛 나는 칵테일 한 번 만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근식이 던졌고.“어머! 커피 맛 나는 칵테일이요? 그런 게 있어요? 궁금해요, 언니! 아니, 힘드신데 무리하지 마세요.”“아니에요, 지영 씨. 힘들지 않고 어렵지도 않아요. 재료만 있으면…… 여기 주류 코너가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있어요, 주류 코너! 제가 알아요!”지영이 덥석 물었다. 그녀는 다시 민서의 팔짱을 끼고 조잘조잘 떠들면서 걸어갔다.“제가 또 한 커피 하거든요. 언니도 전에 제 커피 맛있다고 하셨죠? 그게 또 기술이 있어야 하거든요.”멀어지는 지영의 목소리를 배경삼아 근식이 말을 꺼냈다.“신경 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형님. 그 여자가 시온에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명함? 늬들 명함 함부로 뿌리고 다녀?”“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애초에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없고요. 얍실이 말로는 그 여자가 아들 방에서 찾았다고 했답니다.”“귀찮게 됐네. 실종신고 한 경찰서가 어디래?”“그것까지는 안 물어봤지만, 뻔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개주둥이 곽 경사가 냄새 맡고 덤벼들지 않겠습니까?”근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성진이 피식 웃었다.“건수 잡았다고 신나있겠군.”“직접적인 증거 같은 건 못 찾을 겁니다. 경찰서 앞에서 달아 올 때도 신경 많이 썼고요, 작업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그 새끼가 언제는 증거 가지고 덤비든? 지 꼴리는 대로 잡아들여 족치는 종자인데.”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성진은 느긋한 표정이었다.“따로 생각해 두신 게 있습니까? 별로 걱정 안 되시는 거 같은데요.”“글쎄. 힘 써 줄 사람이 있을 듯도 해서.”성진이 말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주류 코너에 도착해버렸다. 근식은 생각을 멈췄다. 지영이 여러 병의 술을 들고 오는 게 보였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기 때문이었다.“형수님. 생각해보니까
***“하아, 하아, 오빠 조금만 천천히.”숨넘어가는 소리로 애원하는 여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진은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과 살이 맞부딪치며 나는 ‘탁탁’ 소리의 박자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밀어붙이는 남자의 힘에 흔들리는 여자는 애타게 오빠를 부르짖었다.“오, 오빠. 잠깐, 아흑, 오빠. 오빠…….”짧은 숨소리와 함께 성진은 여자의 질 안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절정감에 몸을 움찔거리며 더 깊이 여자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내 사정이 끝나 시들해지는 성
다시 요란하게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민서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받고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사과부터 할 테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느니, 너 없인 못 산다느니,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느니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을 게 분명했다. 헤어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매달릴 것이었다. 알았다고, 용서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었다.어떻게 이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남자 보는 눈을 기르라던 손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난 남자 보는 눈이 정말 거지같았던 거야.전화는 잠깐 끊어지는
손님이 있는 곳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자꾸만 손을 뿌리치는 근태를 가게 밖으로 끌어내려 애를 썼다.“이 년이 진짜!”자꾸만 출입구 쪽으로 자신을 밀어내는 민서의 얼굴을 향해 근태가 손을 휘둘렀고, ‘짝’ 소리와 함께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민서는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뺨을 한 손으로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계속해서 근태의 등을 출입구 쪽으로 밀어냈다. 한두 번 맞아보는 것도 아닌데 새삼 충격 받을 일이겠는가. 다만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맞았다는 것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자신의 일터에서
달그락.글라스의 투명한 얼음 위에 보드카가 흘러내리며 작은 소리가 났다. 2온스. 양을 확인한 민서는 보드카 병을 내려놓고 깔루아를 집어 들었다. 보드카 양의 절반 정도 부어진 검은 커피 리큐어가 투명한 보드카와 잠시 층을 이루는가 싶더니 떨어지며 녹아내렸다. 보통 블랙러시안을 만들 때에는 한두 번 저어주는 법이지만, 이 손님은 늘 젓지 않은 블랙러시안을 주문했기에, 그녀는 그 상태 그대로 잔을 밀어 손님 앞으로 가져다 주었다.“주문하신 블랙러시안입니다.”보드카에 섞여가는 깔루아를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가 눈을 들어 그녀를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