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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어우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2-14 08:10:56

평소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었지만, 자정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새 손님이 들어왔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민서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아는 척을 하는 남자는 제법 낯이 익었다. 일행과 뭐라 말을 주고받으며 테이블이 아닌 바에 자리 잡고 앉았다.

“가게도 작고 바텐더도 하나뿐이고…….”

남자의 일행은 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통찮은 표정이었다.

“가게는 작아도 칵테일이 괜찮아. 바텐더 아가씨도 예쁘고 조용하니 좋기만 하구만 괜히 궁시렁거리긴.”

남자는 메뉴판을 받아들며 민서에게 슬쩍 윙크를 날렸다. 마주 웃어주는 민서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일행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메뉴를 뒤적였다.

30대 중반 정도? 흐트러지긴 했지만 둘 다 수트 차림이었고, 전작이 있었던 듯 얼굴이 약간 붉었다.

“난 러스티 네일. 너는?”

“아무거나.”

일행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덮으며 대답하자 남자는 눈을 살짱 찡그렸다.

“아무거나는 무슨. 그런 메뉴는 없거든? 이 친구는 마티니로 주세요.”

“네, 손님.”

웃는 얼굴로 메뉴판을 받아든 민서는 올드 패션드 글라스를 꺼냈다. 얼음 서너 조각을 넣고 스카치 위스키 병을 집어들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지거를 끼고, 간결하고 세련된 움직임으로 용량을 재 얼음 위로 술을 붓는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의 일행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아가씨, 쇼는 안 합니까?”

“네?”

“거 있잖아. 막 흔들고 돌리고 던졌다가 받으면서 춤도 추고.”

드란부이를 위스키와 동량으로 넣고 바스푼의 긴 손잡이를 집던 민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요새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구요. 화려하죠, 칵테일 쇼. 그런데 그런 쇼를 보여주는 바텐더들을 플레어 바텐더라고 따로 불러요.”

“아가씨는 그런 거 못하나? 하다못해 요래요래 막 흔드는 거라도 해봐요. 그렇게 얌전히 따르지만 말고.”

자꾸만 귀에 들리는 ‘아가씨’ 호칭이 거슬렸지만 민서는 웃었다.

“여기 주문하신 러스티 네일입니다. 주문하신 마티니는 보통 저어서 만드는데, 흔들어서 만들어 드릴까요, 손님? 맛이 좀 달라지긴 하지만……, 손님. 혹시 사과향 같은 과일향 좋아하시나요? 괜찮으시다면 주문하신 마티니와는 좀 다른 칵테일이긴 하지만 애플 마티니로 준비해드릴까요? 그건 흔들어 만들거든요.”

바스푼으로 잘 저어 완성된 러스티 네일을 손님 앞으로 내어놓은 민서는 얼굴 옆에서 두 손을 맞잡고 애교스럽게 흔드는 시늉을 해보였다. 남자들은 기분 좋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녀는 쉐이커에 얼음과 보드카, 애플 리큐르와 라임주스를 계량해 넣으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지켜보는 두 남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쉐이커를 결합시키고는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달그락달그락 쉐이커 안에서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어우, 아가씨 팔 힘 좋네.”

일행이 요상한 방향으로 팔을 흔들며 민서를 흉내 내며 웃자, 남자가 팔꿈치로 일행을 툭 쳤다.

“왜, 칭찬이잖아.”

칭찬이긴 하지. 그 묘한 표정과 시선을 뺀다면. 민서는 칠링으로 차가워진 칵테일 글라스에 얼음을 버리고 애플 마티니를 채워 넣었다. 얇게 썬 사과조각을 위에 띄우고는 손님 앞에 내려놓았다.

“애플 마티니 완성되었습니다, 손님.”

바 너머에서 저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티격대는 걸 일별한 민서는 사용한 기구들을 씻어 정리했다. 오늘은 유난히 보드카 베이스 칵테일이 많이 나갔네. 이것저것 정리하며 바닥을 보이는 보드카 병을 집어드는데 남자의 일행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가씨, 이거 한 잔 더 줘봐. 이 친구 것도 한 잔 더 주고.”

잔에 남은 사과 조각을 손으로 집어먹으며 남자의 일행이 눈을 찡긋거렸다. 눈빛으로 남자의 의사를 확인한 민서는 미소로 대답하고는 러스티 네일과 애플 마티니를 한 잔씩 더 만들었다. 빈 잔과 코스터를 회수하고 새 코스터와 완성된 칵테일을 내주었다.

“아가씨가 여기 사장이야? 직원도 안 두고 혼자 일하는 거야?”

“제가 직원입니다, 손님.”

웃으며 대답하는 민서를 빤히 쳐다보던 일행이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아가씨 여기서 한 달에 얼마 벌어?”

“그건 영업비밀인데요, 손님.”

농담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향해 남자의 표정이 은밀해졌다.

“얼마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자라지 않아? 투잡 뛰어볼 생각 없어?”

민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남자의 시선과 태도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손님 앞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바텐더는 손님과 갈등을 빚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전에 일하던 바에서는 매니저가 있어 추근대거나 시비를 걸어오는 손님을 상대해주었다. 이런 손님을 대할 때면 새삼스럽게 자리를 비운 사장이 원망스러워졌다.

“글쎄요, 손님. 저는 딱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남자가 일행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야, 너 취했냐? 왜 이래?”

“외로워서 그런다, 외로워서.”

“제수씨 알면 큰일 날 소리!”

“시끄럽고, 생각 있으면 전화해요. 왜, 여자들 그럴 때 있잖아. 갖고 싶은 게 생겼는데 사려니 부담스럽고 그럴 때.”

“야!”

남자가 발끈했지만, 그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민서에게 건넸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명함을 받아 따로 빼어놓은 보드카 병 옆에 내려놓았다.

그 후로도 두 남자는 계속해서 칵테일을 추가해 마셨다. 일행의 은근한 추파도 계속되었다. 젊은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 몇 달 전까지 만나던 스물아홉 아가씨가 있었는데, 지난주에 결혼을 해서 보내줬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인데, 자기랑 만날 생각은 없는가.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 편이다. 유명 탤런트와 닮았다는 소리 자주 듣는데, 진짜 그런가?

다른 손님들은 다 떠나고 그 둘만 남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줬으면 좋겠는데……. 민서는 흘깃 시계를 보았다. 2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일행이 시계 쪽을 보고는 씩 웃었다.

“아가씨, 끝날 시간 됐지? 저기 앞에서 술 한 잔 할래? 이 자식 보내고 둘이서.”

민서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도저히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남자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자식 왜 그래? 괜히 데려왔나 보다. 야, 너 일어나. 미안합니다, 바텐더 아가씨. 원래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술버릇이 고약해졌네요.”

남자는 황급히 계산을 마치고, 놓으라고 버럭거리는 친구를 질질 끌고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민서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드카 병 옆에 내려놓았던 그 남자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잠시간 노려보던 민서는 펜을 들어 명함 뒷면에 몇 글자 적었다.

‘개진상.’

흥, 가볍게 콧방귀를 뀐 민서는 바 위에 놓인 빈 잔들과 코스터를 정리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이었다. 뒷정리 정도는 다음날 조금 일찍 와서 해도 되지만, 그녀는 꼼꼼하게 마감을 했다. 낮에 집 앞에서 보았던 근태의 차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다.

가게 문을 잠그고 나왔을 때가 새벽 3시. 민서는 무거운 걸음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그 때가 언젠데. 행정고시를 준비하려면 1분 1초도 아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던 근태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상 집 앞 골목을 나서려니 발걸음이 멈췄다. 고개를 내밀어 원룸 건물앞 주차장을 훑었다. 없지? 없을 거야. 없어야 맞는 거지. 과연 그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좀 거리가 있는 주차공간까지 둘러본 뒤에야 민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피해 다녀야 하는 걸까.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가 배로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렸다. 습관적으로 현관문 앞에 바짝 붙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었다. 그동안 갇혀있던 안의 공기가 왈칵 밀려왔다. 익숙한 냄새와 분위기가 주는 안도감에 눈이 절로 감겼다.

턱.

갑작스런 마찰음에 번쩍 눈을 뜬 민서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그녀는 문 안쪽으로 확 밀려 넘어졌다.

어우야

작가입니다. 우리 여주 고생이 많습니다. 여주야. 내가 많이 애낀다. 최고로 애낀다. 행복하게 해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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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이 사랑할 때   27

    민서가 성진과 심상치 않은 사이임을 넌지시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민서를 포기하지 못한 듯, 시덥잖은 농담을 계속해서 던졌다. 민서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걸 본 남자의 일행이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내가 뭐 큰 걸 바라는 건 아니란 말이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이거든. 가끔 특식도 먹고 말이야. 맛없는 것도 가끔 먹어 줘야, 아! 원래 먹던 게 맛있는 거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단 말이지.”“그런가요? 전 맛없는 건 굳이 찾아먹지 않는 편이라서요.”“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먹어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요?”능글맞게 웃는 남자에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어 한숨을 내쉬는데, 옆에서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던 성진이 참지 못하고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이봐.”“어린놈이 말이 짧네.”앉아있는 성진을 아래위로 훑은 남자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툭 내뱉은 말에 성진의 뒤에 서 있던 동혁이 발끈했다. 성진이 손을 들어 동혁을 말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파리한 안색으로 앉아있는 성진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는 성진의 생김새도 남자의 생각에 힘을 보냈다.하지만 정면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성진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오른쪽 눈썹 위에서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칼자국이었다. 조금이라도 옆으로 비껴 지났다면 실명했을지도 모를 위험한 흉터였다. 그리고 구부정하게 앉아있을 때는 몰랐던 성진의 넓은 어깨와 큰 키에 위압감을 느꼈다.“그쪽도 예절이 썩 훌륭하지 않더라고.”남자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낭패였다. 작고 여리여리한 민서가 사귀는 남자래야 대단할 게 없다 생각했다. 자신이 민서에게 추근덕거릴 때 옆에서 조용히 지켜만 보기에 배알도 없는 놈인 줄 알았다. 덩치 큰 놈이 형님이라 깍듯하게 칭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옆얼굴이 곱상해 만만한 상대라는 오판을 하고 말았다.“아니…… 그게 아니라…….”성진이 남자에게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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