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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어우야
last update 게시일: 2026-02-23 11:01:27

“츱, 대충들 하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야 덩치 큰 남자가 차장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엇, 형님. 벌써 나오셨습니까?”

“그러게 키 주고 가라고 그랬지? 새끼가 말도 안 쳐듣더니.”

“제이 그년이 어지간히 앵겨들어야 말이지요, 형님. 그래도 그것이 아니다, 어떻게 형님을 혼자 집에 보내 드리냐, 놓아라, 바짓가랭이 찢어진다 탁 뿌리치고 왔지요. 헤헤.”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운전석으로 향하는 근식의 뒷덜미를 잡은 성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시끄럽고. 차 키 내놓고 넌 다시 들어가.”

머뭇거리며 주머니에서 꺼내는 열쇠를 낚아챈 성진은 근식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

“그래도요, 형님 어떻게…….”

“시끄럽다 그랬지? 그만하고 꺼져.”

머뭇거리는 근식을 뒤로하고 성진은 운전석에 올랐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형님!”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근식을 본 성진이 피식 웃었다. 사내새끼들은 죄다 말끝마다 형님, 형님 거리고, 계집년들은 오빠, 오빠 거리는 게 희극적으로 느껴져서였다.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새벽의 도로에 차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사람들 같으니. 말없이 차를 몰던 그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방금 지나친 사람의 실루엣이 지나치게 눈에 익었다. 후진을 해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도로 한 복판에 서 있는 그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지나가는 다른 차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상관인가 싶어 그냥 출발하려다 츱, 가볍게 혀를 찬 성진이 차를 갓길에다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서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는 도로 위로 내려선 여자가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돌아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천천히 차도 위로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팔을 잡아채 뒤로 당겼다. 여자는 너무도 쉽게 뒤로 끌려와 성진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미쳤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씨발!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놀란 마음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성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희붐하게 밝아오는 빛 속에서 보인 여자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아…….”

성진을 알아본 건지 여자가 작게 소리를 냈다. 역시나 그 바텐더였다. 이것저것 자꾸 말을 걸어오는 다른 곳의 바텐더와는 달리 그를 조용히 내버려둘 줄 아는 바텐더. 그는 여자의 팔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훑어보았다. 얼굴뿐 아니라 편안한 복장 아래 드러난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뭡니까?”

그의 질문에 여자가 당황한 모습으로 머리를 쓸고 옷매무새를 챙겼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

“츱, 뭐가 죄송합니까?”

못마땅한 그의 목소리에 여자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노, 놀라게 해드려…….”

“시끄럽고. ……집이 어딥니까?”

시계를 들여다보며 질문을 던졌지만, 여자는 답이 없었다. 성진은 슬슬 짜증이 나려는 걸 누르며 다시 물었다.

“집이 어디냐고요.”

“……지, 집은 안돼요. 집으로 갈 수 없어요!”

도리질까지 치며 뒤로 물러나는 여자의 팔을 다시 잡았다.

“그냥 가세요. 이제 안 그럴 거예요. 신경 쓰지 마시고…….”

성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의 몰골을 보니 집에 그 때의 그 호로 잡놈의 새끼가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몰골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도 그 놈이겠지. 가게 주변을 얼씬대지 말랬더니 집으로 찾아간 모양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그의 탓이라 하지 않을 테지만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달리 갈 데가 있습니까?”

“이, 있어요. 신경 쓰지 마시고…….”

“데려다 드리죠. 거기가 어디입니까?”

여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우물거렸다.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성진은 여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갑시다.”

“아니예요. 그냥 가세요. 제가 알아서 갈 수 있어요.”

“갈 데도 없잖습니까! 방금 죽으려 했던 거잖아요! 사람을 바보로 압니까? 시끄러우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갑시다!”

그가 소리 지를 때마다 움찔거리는 것이 잡은 손을 통해 느껴졌다. 다시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말없이 쳐다보고 있자 망설이던 여자가 성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녀를 차 보조석에 태웠다. 가타부타 설명 없이 차를 출발시켰지만 여자는 어떤 항의도 물음도 없이 잠자코 앉아있었다.

여자의 침묵은 성진의 아파트 현관 앞에 이를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주절주절 떠드는 취미는 없는지라, 성진도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현관문을 열기 전에 설명은 해주어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내 집이고, 아무도 없습니다. 당장 갈 데 없어보여서 데려온 거지 딴 생각하고 데려온 거 아니니까 겁먹지 맙시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를 보며 성진은 결국 한숨을 크게 내쉬고 말았다.

일찍 찾아온 아침에 밖은 제법 밝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아파트 안은 어두컴컴했다. 현관에 멀뚱히 선 여자를 뒤로하고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선 성진이 커튼을 젖히자 집 내부가 조금 밝아졌다. 제법 넓은 거실에 소파 하나 덜렁 놓인 퀭한 공간이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성진의 모습이 보였다. 괜히 움츠러드는데, 여자를 지나쳐 주방으로 간 그는 냉장고를 열어 생수병을 꺼내 그녀에게 휙 던졌다. 반사적으로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물병은 현관 바닥을 딩굴었다.

츱, 짧게 혀를 찬 성진은 다른 병을 꺼내 마셨다. 반쯤 남은 물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으려는데, 생수병과 맥주캔으로만 속을 채운 냉장고 안이 눈에 들어왔다.

츱, 신경 쓰이네. 뭐, 알아서 하겠지.

성진은 아직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쭈뼛거리고 서 있는 여자에게 못마땅한 척 한 마디 던졌다.

“신발, 벗겨드려야 합니까?”

“아니에요. 드, 들어갈게요.”

여자는 후다닥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 기니까 거기서 자요. 이불 필요합니까?”

“아니요.”

찢기고 부어오른 여자의 얼굴이 그를 향했다. 저대로 두기엔 뭔가 찝찝한데. 집에 약이나 반창고 같은 것들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봤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치고 찢어지는 경우는 많았지만, 웬만한 것들은 그냥 내버려뒀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단골 병원으로 가서 처치했기에, 집에서 뭔가 했던 기억이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방에서 티셔츠와 반바지, 필요 없다던 이불까지 들고 와 소파 위에 툭 던졌다.

“화장실은 저 쪽.”

그의 손짓에 따라 고개를 돌리는 걸 보고 성진은 ‘그럼 쉬시길.’ 짧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딸린 작은 욕실에서 대충 씻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방 밖에서 조심조심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언제부터 자기가 남의 사정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고? 맞고 사는 여자들은 많았다. 굳이 과거의 기억을 들추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리하는 계집년들 중에서도 손님한테 맞고 징징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던가. 물론 그런 손님은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 받지 않고 있지만.

죽겠다 악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빌려간 돈을 못 갚겠다며 차라리 죽이라고 대갈통을 들이밀던 놈들이 얼마던가. 목 메고 죽은 놈들도 여럿이고, 한강으로 뛰어든 놈도 몇 있었다. 일이 터질 때는 직접 죽기 직전까지 사람을 두드려 패기도 했다.

그런 주제에 안면 좀 있다고 죽으려는 사람을 주워서 집까지 데려오다니. 이 무슨 안 어울리는 짓이람.

일상의 피로감과 정사 후의 노곤함, 오랜만에 직접 운전한 데에서 오는 피로 덕분에 생각이 많았지만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후 2시가 되자 핸드폰 알람이 울었다. 손으로 몇 번 더듬어 핸드폰을 뒤집어 알람을 끈 성진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숨을 두어 번 내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기운을 떨칠 틈도 없이 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하려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생각 없이 나왔다가 평소와 달리 환한 거실이 눈부셔서 당황한 것이다. 늘 쳐놓았던 암막커튼이 왜…….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 채 커튼을 치러 움직이다 다시 멈췄다. 소파 위에 얇은 이불을 덮고 웅크려 누운 여자가 보였다. 아, 짧게 소리를 낸 그가 조용히 뒤돌아 방으로 돌아갔다.

“츱, 성가시네.”

혼자 사는 집에서 속옷 따위를 챙겨 입는 습관 같은 걸 들인 적이 없는 그였다. 때문에 잠들기 전 씻고 벗은 채로 잠들었기에, 현재 그는 알몸이었다. 여자가 깨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여자를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싫다던 그녀를 강제로 데려온 게 그였지 않나. 옷장을 뒤적여 속옷과 셔츠를 꺼내 입고 바지도 입었다.

다시 나간 거실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엉망이던 얼굴에서 그나마 핏자국이 없었다. 붓기도 제법 가라앉은 듯했다. 그가 갈아입으라고 건넸던 옷은 그대로 소파 귀퉁이에 얌전히 개어져 있었다.

혹시라도 깨울까 싶어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서둘러 수신거절을 누르고 살피는데, 천천히 눈을 뜨는 여자가 보였다. 흐릿한 눈빛이었지만 몇 번 깜빡이더니 또렷해졌다. 시선이 마주쳤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성진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왜?”

-언제 나오십니까요, 형님? 집 앞입니다.

여자가 눈을 몇 번 더 깜빡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고 옷차림을 확인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얼굴을 쓸어내리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알아서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어제 가실 때도 혼자 운전해 가셨지 말입니다요, 형님. 어떻게 제가 또 형님께 운전하시라고 그러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내려오십쇼, 형님.

“츱, 가라고.”

짧게 혀 차는 소리에 전화기 너머 근식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앞의 여자가 움찔거리더니 덮고 있던 이불을 주섬주섬 개는 모습도 보였다. 일타이피. 피식 웃음이 났다.

-예, 형님. 이따 뵙겠습니다.

대꾸 없이 핸드폰을 내렸더니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제…… 아니 오늘 감사했습니다. 신세는 조만간 갚을 게요. 그럼…….”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강아지 같았다.

“어떻게 가려고?”

“네?”

“여기 닥산동입니다. 어제 거기까지 걸어가긴 무리일 텐데요.”

“아…….”

곤란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여자를 지나쳐 화장실로 향하며 성진은 아까부터 하려던 말을 꺼냈다.

“기다려요.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씻고 나왔더니 여자는 기를 쓰고 성진을 말리려 들었다. 차비만 빌려주면 나중에 갚겠다며 여기서 더 신세를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차 키를 들고 신발을 신었다.

“뭐합니까?”

성진의 재촉에 여자는 마지못한 듯 그를 따라 나왔다.

“도와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성진은 슬슬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뭐하러 오지랖을 부려서 이런 귀찮음을 자초했는지! 그렇다고 여자 말대로 그냥 보냈다가는 뒤가 찜찜해서 내내 신경이 쓰일 터였다. 적어도 그 빌어 쳐먹을 호로잡놈의 새끼가 집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들여보내야 할 게 아닌가.

“그 새끼한테도 그렇게 똑 부러지게 거절하지 그러셨습니까.”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비난하는 말투가 튀어나왔다. 여자는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제 좀 조용히 가겠군. 그의 입가에 미미하게 웃음이 서렸다.

어우야

작가입니다. 남주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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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이 사랑할 때   33

    “흣.”민서는 성진의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걸까. 그의 입술을 받아 물고 빨았다. 원하는 대로 혀를 내주었고 그가 주는 타액을 받아 마셨다. 진하게 풍기는 술냄새마저 달콤했다.그의 팔이 허리를 감아 당겼다. 서로의 하반신이 바짝 밀착했다. 단단했고 뜨거웠다. 민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의 눈빛, 손짓, 몸짓 하나하나에서 자신을 향한 열망을 느꼈다면 착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맞닿은 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선명하지 않은가.입안으로 파고든 성진의 혀를 휘감고 빨았다. 그가 입을 더 크게 벌리고 턱을 삼키기라도 할 듯 덤벼들었다. 신발장에 눌린 등이 아플 정도로 그가 온 몸으로 그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주고 싶었다. 그가 이토록 열망하는 자신을 그에게 온전히 내주고 싶었다. 비루한 몸뚱이 따위, 그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어 없어졌을 거였다.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다.“하읏!”민서는 목을 젖혔다. 성진의 입술이 그녀의 턱을 물었다. 뜨거워진 민서의 몸이 아래로 진득하게 젖어갔다. 그의 혀가 민서의 턱 선을 타고 내려가 목을 핥았다. 그녀는 쓰다듬고 있던 성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두려웠다. 그때처럼 다시 과호흡이 올 것 같았다. 그 때 괴로웠던 것도 두려웠지만, 자신의 잘못도 아닌 것에 자책하던 성진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가 사과하는 것이 싫었다. 사과하고 키스를 멈춰버리는 것이 싫었다.머리카락을 잡힌 성진이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의도를 지레짐작하고는 그녀에게서 몸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민서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끌어당겨 그의 입술을 핥았다.“키스…… 더 해주세요.”민서는 덮쳐오는 성진의 입술 사이로 제가 먼저 혀를 밀어 넣었다. 그의 입안을 더듬고 휘저었다. 그가 앓는 소리를 내며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숨이 섞이고 혀가 섞였다. 욕심껏 탐닉하고 기꺼이 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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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진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원체 그의 체력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민서가 매일 서투르게나마 상처를 소독해주었고, 단백질 위주의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수발은 근식의 몫이었다. 사무실과 병원, 성진의 아파트를 오가며 각종 약들과 보양식을 갖다 바쳤다.“빨리 나으십쇼, 형님. 혼자 하려니 죽겠습니다.”“엄살은. 내가 발 빼고 너 혼자 해도 되겠는데?”“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아시죠? 황 회장이 형님을 얼마나 찾는지 말씀드렸잖습니까. 양 전무 같은 경우에는 형님 없이는 못 맡기겠다고, 형님 복귀하면 연락 달라고 합디다.”“츱, 까탈스런 영감탱이들.”근식이 입혀주는 수트 재킷 단추를 여미며 성진이 혀를 찼다.“황 회장님이 급하신 모양이더라고요, 형님.”“그 양반이 급하거나 말거나.”시계를 차고 지갑을 챙긴 성진이 방을 나와 현관으로 걸어가는 동안 근식이 소지품을 챙겨와 그 뒤를 따랐다.“그래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형님. 황 회장님이 그래도 제일 큰 고객인데 말입니다, 형님.”“시끄러워.”“그러지 마시고, 형수님한테 가기 전에 잠깐 아주 잠깐만 황 회장님 얼굴 보고 갑시다, 네?”계속해서 졸라대는 근식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그 태도에 성진은 걸음을 멈추고 근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뭐냐?”“뭐가요?”“그 영감이 뭐라 그래? 또 지랄맞게 굴어?”근식의 눈동자가 슬며시 옆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성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그런 거 없었습니다. 워낙 그 양반 성격이 불같아서 그러지요. 일처리 느린 거 못 견뎌하시는 분이잖습니까.”“지금 간다고 연락해.”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마디 뱉은 채 걸음을 옮기는 성진의 뒤에서 근식이 쾌재를 불렀다. 성진이 직접 움직인다고 하니 일이 쉬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성진은 이상할 정도로 나이 많은 고객들에게 잘 먹혔다. 지금은 저렇게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틱틱거리지만, 막상 고객 앞에서는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할 것이었다. 깍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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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진이 자세한 설명을 피하는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한 민서는 그가 자신을 보면서 웃자 흠칫 놀랐다.아니, 왜 웃고 그러세요. 그쪽이 깡패라는 것만으로도 불법적인 일 한다는 걸 다 설명하신 거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말 옮기는 일 같은 거 안 하니까 그만 쳐다보세요.어색해진 민서가 바쁜 척 손을 놀렸다.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아직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나 힐끔힐끔 성진을 확인했다.“큰일이다, 민서 씨. 저 사람, 민서 씨한테 관심있나봐.”카페 사장이 민서 쪽으로 상체를 바짝 기울인 채 속삭였다. 그런 거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그냥 깡패 아니라 되게 위험한 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혼자 있을 때 저런 손님 들어오면 무섭잖아.”“위험한 손님 아니에요. 오히려 진상 손님을 두 번이나 쫓아내주셨어요.”민서도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카페 사장이 ‘그래?’ 하며 놀라더니 성진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성진은 두 사람을 지켜보다 미간을 좁혔다. 두 여자가 서로 속닥거리다가 자신을 보며 웃는 모양이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빨리 마시고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여자는 민서에게 또 뭐라 속삭이고는 까르르 웃었다.“그러지 마세요, 손님. 전 당분간 누굴 만나거나 할 생각이 없어요.”“어머, 왜?”“그냥…….”여자가 손을 뻗어 민서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속삭였다. 가만히 듣던 민서의 표정이 난처한 기색으로 바뀌었다.마음에 안 들어.그는 다시 블랙 러시안을 들이켰다. 독한 알콜이 목구멍을 태울 듯 덥히고 넘어갔다.“그럼 나 섹스 온 더 비치 말고 다른 거 추천해줘요.”여자가 빨대로 남은 칵테일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얼음만 남은 빈 잔을 내밀었다. 민서는 잔과 코스터를 수거하고는 메뉴판을 꺼냈다.“이거랑 이것처럼 이름이 섹스 온 더 비치같이 좀 선정적이다 하는 칵테일이 보통은 달콤해서 마시기 좋아요.”“그러다 훅 가고?”여자가 민서에게 윙크를 날렸고, 민서는 손가락 총을 쏘았다.“그렇죠.”“흐응, 궁금하네.”

  • 조폭이 사랑할 때   28

    구석자리에 숨어서 애정행각을 벌이던 커플이 나가고 민서가 테이블을 치우고 돌아오는데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손님이 없으니 일찍 문 닫고 집에 가자고 하려던 성진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만을 표했다.“어서오세요.”여자는 민서의 인사에 환하게 웃으며 아는 척을 한 후 성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원래 이 시간에 오면 손님이 없었는데, 오늘은 손님이 두 분이나 계시네요?”“다른 손님이 없을 때 주로 오셔서 그래요. 오늘도 같은 걸로 드릴까요?”“네. 섹스 온 더 비치로 주세요.”자주 오는 손님인지, 여자와 민서는 살갑게 안부를 주고받았다.“가게 문 닫고 나서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날이 있어요. 술 한 잔이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사람들 바글바글한데서 혼자 청승 떨기 싫은 그런 날이요. 그런 날엔 여기서 칵테일 한 잔 마시는 게 최고더라고요. 그리고 이왕 마시는 거 맛있는 걸로 마셔야죠.”“원래 혼술하러 오시는 분이 많아요. 조용히 한두 잔씩 드시고 가시고요.”허리케인 글라스에 얼음을 담으며 여자의 넋두리 같은 말에 민서가 웃었다. 쉐이커에도 얼음을 담는 민서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성진 쪽으로 여자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동네에선 못 보던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아, 네.”“근처에 사시나요? 이렇게 근사하게 생기신 분인데 제 기억엔 없어서요.”“아니요.”“댁이 어디신데요?”“……닥산동입니다.”“어머, 멀리도 오셨네요? 근처에 볼일이라도 있으셨나봐요.”“……직장이 근처라.”“어머어머, 무슨 일 하시는데요?”보드카에 이어 오렌지 주스를 쉐이커에 붓던 민서가 눈을 들어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혼자서 칵테일 마시러 오는 손님들 중에 가장 빨리 친해진, 붙임성 좋은 카페 사장이었다. 말 수 적은 성진이 귀찮아하는 것이 민서에게는 너무나 잘 보이는데, 손님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깡패입니다.”카페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민서는 ‘쿡’ 짧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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