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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어우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2-14 08:09:21

다시 요란하게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민서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받고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사과부터 할 테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느니, 너 없인 못 산다느니,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느니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을 게 분명했다. 헤어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매달릴 것이었다. 알았다고, 용서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남자 보는 눈을 기르라던 손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난 남자 보는 눈이 정말 거지같았던 거야.

전화는 잠깐 끊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떨어댔다. 그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끝까지 받지 않았다가는 그가 다시 가게로 찾아올지도 몰랐다.

“여……보세요.”

-민서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걱정했다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 소름이 돋아 그녀는 팔뚝을 문질렀다.

“이제 그만하자 그랬잖아. 나 이제 근태 씨 전화 받을 이유 없어.”

-민서야.

“못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다시 얘기할게. 우린 끝났어. 다시는 전화하지도 찾아오지도 말아줬으면 해.”

-사랑해, 민서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내가 왜 그랬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간절함이 뚝뚝 떨어지는 근태의 목소리에 민서는 헛웃음을 지었다.

“안다고? 내가? 아니. 난 그딴 이유 같은 거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 이제 전화하지 마. 근태 씨 번호 차단할 거야. 찾아오지도 마. 안 만나줄 거니까.”

모질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민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다.

-진짜 너 왜 그래? 미안하다고 그랬잖아. 내가 이만큼 숙이고 들어갔으면 너도 엥간히 해얄 거 아니야.

화난 기색이 묻어나는 근태의 목소리에 민서는 웃었다.

“미안하다고 하면 끝난 건가? 욕하고 때린 게 없던 게 되는 거야?”

-그건 네가…….

“술김이면, 홧김이면 때려도 되는 거야? 약 사다주고 꽃 사다주면 때려도 되는 거야?”

민서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민서야. 그러지 말고 만나서 얘기하자. 너 지금 어제 일 때문에 많이 화나서 마음에 없는 말 하는 것 같은데…….

“어제 일? 기억나기는 하니?”

-민서야.

“지겨워, 정말.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는 거야?”

-내가 지금 갈게. 만나서 얘기하자.

민서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떻게 해도 근태는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 이럴까.

"오지 마. 경찰에 신고할 거야."

신고할 거라는 말에 근태가 피식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우습겠지. 신고 할 때마다 연인끼리 가볍게 다툰 것이라는 그의 말을 더 믿어주는 경찰들이었기에.

"마지막 경고야. 앞으로 다시는 전화하지도, 찾아오지도 마. 더 할 말 없으니까 끊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든 말든 민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아, 한숨을 깊이 내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지 말랬다고 안 올 근태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가서 시간을 죽일 방법은 많았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피해 다녀야 할까 싶어 답답한 심정이었지만, 질질 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외출을 준비하는 그녀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평소 잘 다니지 않던 곳으로 가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더니 가게로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더운 날씨에 좀 걸었더니 땀이 흘러 출근 전에 가볍게 씻을 생각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룸 건물 앞에 주차되어있는 그의 차가 보였던 것이다.

민서는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으니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건물 안? 차 안? 짙은 색으로 선팅된 차 유리 때문에 근태가 차에 타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가 차를 멀리에 주차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그에게 잡혔을 거다. 식은땀이 났다.

몇 달 전 그에게 처음으로 헤어지자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맞았었다. 그의 주먹에 맞고 날아가 손바닥이 찢어지고, 그의 발길에 갈비뼈가 부러졌었다. 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계단에서 굴렀느니, 잘 돌볼 테니 입원까지는 필요없다느니, 경찰 앞에서 잘도 떠들어댔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극진하게 민서를 간호했다.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해서 나를 화나게 만드느냐, 때린 건 미안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느냐, 네가 잘 처신하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것이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녀를 탐하며 사랑한다 속삭였다.

그 때 끝냈어야하는데.

민서는 천천히 뒷걸음질로 그 곳을 벗어났다.

“민서 씨, 어디 아파? 얼굴이 영 아닌데?”

사장 정호가 민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표정을 굳혔다. 오픈 준비에 여기저기 둘러보던 민서는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프긴요. 멀쩡해요, 걱정마세요.”

“안 아픈 사람 얼굴이 아닌데?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아픈 사람 부려먹는 악덕 사장 만들지 마. 가게 문 며칠 닫는다고 안 죽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진지한 표정의 사장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건물주 아들의 여유랄까? 그는 매우 관대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얼굴에 상처나 멍이 눈에 띌 정도면 그 얼굴로 무슨 장사냐며 가게 문을 닫고 그녀를 병원으로 보냈다. 그 일로 그녀에게 어떤 불이익이 가는 일도 없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자꾸 이런 식이면 같이 일 못하죠’라는 얘기가 몇 번은 나올만한데도 그는 씩 웃으며 ‘그 핑계로 가게 문 닫고 노는 거지 뭐’라며 넘어가곤 했다.

남자 복은 없지만 사장 복은 있나보다. 그래서 민서는 더 열심히 일했다. 근태에게 맞을 때도 되도록 얼굴이나 드러나는 부분은 피하려고 애썼다. 죽을 것같이 아픈 게 아니라면 이를 악물고 웃으며 일했다. 얼굴만 비치다시피 하고 가게를 비우는, 절실하지 않은 사장이 그녀에겐 너무나 절실했다.

“정말 아픈 데 없어요. 그냥………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랬나 봐요.”

사장은 영 못 미더운 얼굴이었지만 수긍했다.

“아쉽네. 오늘도 문 닫고 노는가 싶었는데.”

“그렇게 자꾸 문 닫을 궁리만 하시다가 가게 망하면 어떻게 해요. 여기 망하면 제 일자리는 사장님이 책임지고 찾아주셔야 돼요.”

농담처럼 툭 던진 말에 사장은 걱정 말라는 듯 검지를 들어 흔들었다.

“망해도 가게 문은 안 닫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오픈 준비를 하는 동안 설렁설렁 가게 안을 돌아다니던 사장은 한참 핸드폰으로 수다를 떨더니 손님이 몇 명 들어온 걸 보고는 나가버렸다. 나가기 전에 ‘오늘도 수고해’라든지, ‘말썽 부리는 사람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경찰 불러. 지난번처럼 혼자 끙끙대지 말고’라든지 ‘홍 여사 전화 오면 알지?’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서.

어우야

작가입니다. 저 사장도 제가 좀 애낍니다. 완죤 부럽다는..... 나도 저렇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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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식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소 탐탁지 않던 막내아들이 사고를 쳐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변호사를 붙이고 인맥을 동원해 법원 쪽에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을만한 위인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빌어먹을 자식 같으니!”어쩌면 이렇게 시기를 제대로 골라 사고를 쳐 대는지 알 수 없었다. 차기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제 1야당의 당대표가 은근한 제안을 해 온 참이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기회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는데, 못난 아들놈 덕분에 손을 뻗어보지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지 형들 반에 반만이라도 따라가 주면 내가!”버럭 소리를 지른 현식이 입술을 곱씹었다. 전처 자식들은 머리가 좋고 성정이 유순해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었다. 그 속에 뭐가 들었든 간에, 겉으로는 그에게 반발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근태는 그의 속을 썩였다.“애미가 문제야, 그 애미에 그 아들이라고.”그 아들도 아들이지만 지금 만나러 가는 강성진이라는 사람도 꺼림직했다. 그 야당의 당대표와 줄을 이어준 M그룹 양 회장을 소개해 준 조직폭력배였다. 두 번 만나 낯을 익히고 의중을 살핀 후에 양 회장과 직접 연결해주고선 뒤로 빠진 인물이라 현식은 성진을 잘 몰랐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바로 재계 쪽 커넥션이 양 회장 말고도 다수라서 정치권에서도 제법 이름을 알아준다고 했다. 그런 성진이 먼저 연락을 해 만나자고 했다.“젠장!”통화할 때의 목소리를 떠올려보면 확실히 불쾌했다. 정중하면서도 고압적인 느낌을 주는 말투. 이전의 태도와는 느낌이 달랐다.“이놈이나 저놈이나 하나같이…….”약속장소인 룸살롱 앞에 차를 멈추니 남자 한 명이 달려나왔다. 현식은 그에게 차키를 넘기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입구 양 옆으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이 떡하고 버티고 선 게 보였다. 전에 왔을 때는 못 보던 광경이었다.“김현식 씨 되십니까?”“그렇소만.”“들어가십시오.”내려가는 계단 중간중간에도 남자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현식은 입

  • 조폭이 사랑할 때   43

    경찰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납치 감금 강간의 현행범으로 체포된 근태의 피해자 진술이었으므로,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설명하기만 했다.“그런데…… 함께 온 사람과는 무슨 관계이십니까?”“네?”“동거인입니다.”관계를 묻는 질문에 당황한 민서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성진이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을 낚아챘다. 경찰의 시선이 민서에게서 성진으로 갔다가 다시 민서로 향했다.“이번 일이 혹시 강성진 씨와 관련이 있습니까?”민서가 근태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옆에서 들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이고 있던 성진이 경찰의 질문에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아주 사악하게 웃었다.“아뇨. 강성진 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김근태는 제 전 남자친구였고, 작년부터 몇 번이나 폭력을 써서…… 경찰에도 여러 번 신고했었어요. 기록이 남아 있을 거예요. 강성진 씨는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입니다. 관련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그 새끼가 저랑 관련 있는 새끼였다면, 여태까지 멀쩡할 리가 없을 거라는 거 잘 알잖습니까, 곽 경사님.”민서의 대답에 이어진 성진의 말에 경찰이 성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성진도 지지 않고 불량한 자세로 경찰을 노려보며 위압감을 풍겼다.“네놈이 무슨 보물단지처럼 이 분을 안고 들어올 때부터 심상치 않다 생각하긴 했지.”“피해잡니다. 부상이 심하고요. 불편한 몸으로도 이렇게 조사에 협조하는 걸 감사히 여기시죠.”“협조를 네가 하냐? 한민서 씨가 하지.”“그 한민서 씨를 모셔온 건 저죠.”민서가 한 말을 꼬박꼬박 타이핑하던 경찰이었는데, 성진과 신경전을 벌이면서부터 그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험악한 표정으로 성진을 노려보는 것이 그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이번 일, 정말 너와 상관없는 일 맞아?”“제발 저와 관련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곽 경사님.”성진의 낮은 목소리에 담긴 늬앙스를 읽은 경찰이 혀를 쯧 차고는 민서를 보았다. 추가적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을 했고,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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