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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어우야
last update Last Updated: 2026-02-14 08:09:21

다시 요란하게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민서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받고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사과부터 할 테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느니, 너 없인 못 산다느니,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느니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을 게 분명했다. 헤어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매달릴 것이었다. 알았다고, 용서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남자 보는 눈을 기르라던 손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난 남자 보는 눈이 정말 거지같았던 거야.

전화는 잠깐 끊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떨어댔다. 그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끝까지 받지 않았다가는 그가 다시 가게로 찾아올지도 몰랐다.

“여……보세요.”

-민서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걱정했다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 소름이 돋아 그녀는 팔뚝을 문질렀다.

“이제 그만하자 그랬잖아. 나 이제 근태 씨 전화 받을 이유 없어.”

-민서야.

“못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다시 얘기할게. 우린 끝났어. 다시는 전화하지도 찾아오지도 말아줬으면 해.”

-사랑해, 민서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내가 왜 그랬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간절함이 뚝뚝 떨어지는 근태의 목소리에 민서는 헛웃음을 지었다.

“안다고? 내가? 아니. 난 그딴 이유 같은 거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 이제 전화하지 마. 근태 씨 번호 차단할 거야. 찾아오지도 마. 안 만나줄 거니까.”

모질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민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다.

-진짜 너 왜 그래? 미안하다고 그랬잖아. 내가 이만큼 숙이고 들어갔으면 너도 엥간히 해얄 거 아니야.

화난 기색이 묻어나는 근태의 목소리에 민서는 웃었다.

“미안하다고 하면 끝난 건가? 욕하고 때린 게 없던 게 되는 거야?”

-그건 네가…….

“술김이면, 홧김이면 때려도 되는 거야? 약 사다주고 꽃 사다주면 때려도 되는 거야?”

민서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민서야. 그러지 말고 만나서 얘기하자. 너 지금 어제 일 때문에 많이 화나서 마음에 없는 말 하는 것 같은데…….

“어제 일? 기억나기는 하니?”

-민서야.

“지겨워, 정말.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는 거야?”

-내가 지금 갈게. 만나서 얘기하자.

민서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떻게 해도 근태는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 이럴까.

"오지 마. 경찰에 신고할 거야."

신고할 거라는 말에 근태가 피식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우습겠지. 신고 할 때마다 연인끼리 가볍게 다툰 것이라는 그의 말을 더 믿어주는 경찰들이었기에.

"마지막 경고야. 앞으로 다시는 전화하지도, 찾아오지도 마. 더 할 말 없으니까 끊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든 말든 민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아, 한숨을 깊이 내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지 말랬다고 안 올 근태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가서 시간을 죽일 방법은 많았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피해 다녀야 할까 싶어 답답한 심정이었지만, 질질 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외출을 준비하는 그녀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평소 잘 다니지 않던 곳으로 가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더니 가게로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더운 날씨에 좀 걸었더니 땀이 흘러 출근 전에 가볍게 씻을 생각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룸 건물 앞에 주차되어있는 그의 차가 보였던 것이다.

민서는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으니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건물 안? 차 안? 짙은 색으로 선팅된 차 유리 때문에 근태가 차에 타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가 차를 멀리에 주차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그에게 잡혔을 거다. 식은땀이 났다.

몇 달 전 그에게 처음으로 헤어지자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맞았었다. 그의 주먹에 맞고 날아가 손바닥이 찢어지고, 그의 발길에 갈비뼈가 부러졌었다. 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계단에서 굴렀느니, 잘 돌볼 테니 입원까지는 필요없다느니, 경찰 앞에서 잘도 떠들어댔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극진하게 민서를 간호했다.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해서 나를 화나게 만드느냐, 때린 건 미안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느냐, 네가 잘 처신하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것이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녀를 탐하며 사랑한다 속삭였다.

그 때 끝냈어야하는데.

민서는 천천히 뒷걸음질로 그 곳을 벗어났다.

“민서 씨, 어디 아파? 얼굴이 영 아닌데?”

사장 정호가 민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표정을 굳혔다. 오픈 준비에 여기저기 둘러보던 민서는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프긴요. 멀쩡해요, 걱정마세요.”

“안 아픈 사람 얼굴이 아닌데?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아픈 사람 부려먹는 악덕 사장 만들지 마. 가게 문 며칠 닫는다고 안 죽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진지한 표정의 사장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건물주 아들의 여유랄까? 그는 매우 관대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얼굴에 상처나 멍이 눈에 띌 정도면 그 얼굴로 무슨 장사냐며 가게 문을 닫고 그녀를 병원으로 보냈다. 그 일로 그녀에게 어떤 불이익이 가는 일도 없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자꾸 이런 식이면 같이 일 못하죠’라는 얘기가 몇 번은 나올만한데도 그는 씩 웃으며 ‘그 핑계로 가게 문 닫고 노는 거지 뭐’라며 넘어가곤 했다.

남자 복은 없지만 사장 복은 있나보다. 그래서 민서는 더 열심히 일했다. 근태에게 맞을 때도 되도록 얼굴이나 드러나는 부분은 피하려고 애썼다. 죽을 것같이 아픈 게 아니라면 이를 악물고 웃으며 일했다. 얼굴만 비치다시피 하고 가게를 비우는, 절실하지 않은 사장이 그녀에겐 너무나 절실했다.

“정말 아픈 데 없어요. 그냥………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랬나 봐요.”

사장은 영 못 미더운 얼굴이었지만 수긍했다.

“아쉽네. 오늘도 문 닫고 노는가 싶었는데.”

“그렇게 자꾸 문 닫을 궁리만 하시다가 가게 망하면 어떻게 해요. 여기 망하면 제 일자리는 사장님이 책임지고 찾아주셔야 돼요.”

농담처럼 툭 던진 말에 사장은 걱정 말라는 듯 검지를 들어 흔들었다.

“망해도 가게 문은 안 닫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오픈 준비를 하는 동안 설렁설렁 가게 안을 돌아다니던 사장은 한참 핸드폰으로 수다를 떨더니 손님이 몇 명 들어온 걸 보고는 나가버렸다. 나가기 전에 ‘오늘도 수고해’라든지, ‘말썽 부리는 사람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경찰 불러. 지난번처럼 혼자 끙끙대지 말고’라든지 ‘홍 여사 전화 오면 알지?’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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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이 사랑할 때   8

    ***“하아, 하아, 오빠 조금만 천천히.”숨넘어가는 소리로 애원하는 여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진은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과 살이 맞부딪치며 나는 ‘탁탁’ 소리의 박자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밀어붙이는 남자의 힘에 흔들리는 여자는 애타게 오빠를 부르짖었다.“오, 오빠. 잠깐, 아흑, 오빠. 오빠…….”짧은 숨소리와 함께 성진은 여자의 질 안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절정감에 몸을 움찔거리며 더 깊이 여자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내 사정이 끝나 시들해지는 성기를 여자에게서 빼내고는 몸을 일으켰다.뒤처리를 하려는 그의 손을 여자가 슬며시 잡았다.“빨아줄까?”“됐어.”아쉬운 듯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자였지만, 그는 티슈를 뽑아 축축하게 젖어있는 그의 물건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오빠, 무슨 일 있어? 요새 이상해.”“뭐가?”“스타일이 변했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자들 체위는 바꿔도 스타일은 잘 안 바뀌는데 말이야.”성기를 문지르던 손이 멈칫거렸지만, 그는 구겨진 휴지를 바닥에 던지고 벗어놓은 속옷을 집어 들며 물었다.“그래서, 싫어?”“어유, 왜 그래, 오빠. 난 오빠 밖에 없는 거 알면서. 그러니까 나 얼른 데려가 달라고.”달라붙어오는 여자를 슬쩍 밀어내며 벗어놓은 옷을 집어든 그가 피식 웃었다.“웃지만 말고. 이럴 때마다 스리슬쩍 넘어가려는 거, 모를 줄 알아?”다시 달라붙어 콧소리를 내는 여자를 떼어내고 지갑을 꺼내 수표 몇 장을 꺼내 침대 위에 던졌다. 시무룩해지는 여자의 머리를 쓱쓱 문질러 쓰다듬고는 그 곳을 빠져나왔다.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성진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스타일이 변했다는 여자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변하긴 했지. 예전에는 섹스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영 내키지가 않았다. 습관적으로 여자를 찾고 섹스를 하지만, 그 뒷 느낌이 깔끔하지가 않았다.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아무 것도 없던 집에 이제 여자가 있었다

  • 조폭이 사랑할 때   7

    주차장에서 열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근식이 서 있었다. 가라고 했건만 말도 안 듣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근식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꾸만 몸을 빼려는 여자의 허리를 뒤쪽에서 밀고 있었는데, 그게 보였나 보다.성진은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린 채 어버버 말도 못하는 근식을 지나쳐 그의 차에 여자를 태웠다.“집이 어딥니까?”“저기…….”“주소.”딱 떨어진 그의 목소리에 여자가 머뭇거리며 주소를 말했다. 시동을 걸고 불러주는 대로 네비게이션에 입력한 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룸미러로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근식이 보였다. 그 모습이 못마땅해 츱, 혀를 찼더니 여자가 움츠러들었다. 또 못마땅해졌지만 그는 액셀레이터를 밟았다.그녀의 집은 그 칵테일 바에서도, 그의 사무실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서도 머뭇거리는 여자를 재촉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저기…… 이제 정말…….”“들어가는 것까지입니다.”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폼이 꽤나 불안한 모양이었다. 5층을 알리는 소리가 나자 여자는 한숨을 한 번 더 쉬고는 걸어 나갔다. 성진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두어 개의 문을 지나친 여자가 문 앞에 바짝 붙더니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띠리릭,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나자 이를 확인시키듯 성진을 돌아보았다.“들어가세요.”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이며 손짓했다.“정말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고개를 숙여 인사한 여자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들어가다 말고 멈춰 섰다. 지켜보던 성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뭡니까?”“아, 아니에요.”아니라고 대답해놓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건 또 뭔지. 성진은 성큼성큼 걸어가 여자를 옆으로 슬쩍 밀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오후의 뜨거운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원룸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난장판이었다. 모든 집기류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옷가지들은 찢어진 채 흩뿌려져 있었다.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스르르 자리에

  • 조폭이 사랑할 때   6

    “츱, 대충들 하지.”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야 덩치 큰 남자가 차장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엇, 형님. 벌써 나오셨습니까?”“그러게 키 주고 가라고 그랬지? 새끼가 말도 안 쳐듣더니.”“제이 그년이 어지간히 앵겨들어야 말이지요, 형님. 그래도 그것이 아니다, 어떻게 형님을 혼자 집에 보내 드리냐, 놓아라, 바짓가랭이 찢어진다 탁 뿌리치고 왔지요. 헤헤.”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운전석으로 향하는 근식의 뒷덜미를 잡은 성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시끄럽고. 차 키 내놓고 넌 다시 들어가.”머뭇거리며 주머니에서 꺼내는 열쇠를 낚아챈 성진은 근식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그래도요, 형님 어떻게…….”“시끄럽다 그랬지? 그만하고 꺼져.”머뭇거리는 근식을 뒤로하고 성진은 운전석에 올랐다.“그럼 들어가십시오, 형님!”90도로 고개를 숙이는 근식을 본 성진이 피식 웃었다. 사내새끼들은 죄다 말끝마다 형님, 형님 거리고, 계집년들은 오빠, 오빠 거리는 게 희극적으로 느껴져서였다.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주차장을 빠져나왔다.새벽의 도로에 차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사람들 같으니. 말없이 차를 몰던 그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방금 지나친 사람의 실루엣이 지나치게 눈에 익었다. 후진을 해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도로 한 복판에 서 있는 그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지나가는 다른 차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무슨 상관인가 싶어 그냥 출발하려다 츱, 가볍게 혀를 찬 성진이 차를 갓길에다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서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는 도로 위로 내려선 여자가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돌아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천천히 차도 위로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팔을 잡아채 뒤로 당겼다. 여자는 너무도 쉽게 뒤로 끌려와 성진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미쳤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씨발!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놀란 마음

  • 조폭이 사랑할 때   5

    부딪친 무릎의 통증을 자각할 틈도 없이 머리채를 잡혔다.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와 잠금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서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그 깡패새끼랑 여태 같이 있다 온 거야?”근태의 목소리도 떨리는 듯했다. 민서는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근태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이거 놔.”“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없고, 한 시간이나 늦게 들어와?”“이거 놓으라고!”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보았지만 그의 손은 너무 단단했다.“어쩐지 그 새끼, 가게 근처에 못 오게 하더니……. 가게서 딩굴었냐? 나 피해서 그 새끼한테 가랑이 벌려줬어?”하,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근태가 말하는 그 새끼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함부로 얘기하지 마!”바로 손바닥이 날아왔다.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쓰러진 상태에서 맞은 따귀였다. 맞은 쪽 귀가 먹먹하고 볼 안쪽 살이 터졌는지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뭘 잘했다고 쳐 웃고 지랄이야, 더러운 년이.”그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올라서더니 민서의 머리채를 잡은 채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온 머리가 다 뽑히는 듯한 고통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카락에 칭칭 감긴 그의 주먹에 매달려야 했다.“좋디? 좋았어? 나 아닌 다른 새끼랑 떡쳐보니 좋았어, 이 걸레 같은 년아?”그는 그녀를 침대 옆에 내동댕이쳤다. 술에 취한 근태도 무서웠지만, 술냄새를 풍기지 않는 근태는 더 잔인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버둥대던 민서는 무릎으로 기었다. 어서 나가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큰 도움은 못될망정,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터였다. 공포에 질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뚱이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눈물이 났다.“어딜 도망가! 그 새끼한테 대주고 나니까 나는 싫어졌나보지?”다시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린 성태가 손바닥을 날렸다. 차진 마찰음과 함께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진 그녀를 향해 버럭버럭

  • 조폭이 사랑할 때   4

    평소보다 손님이 적은 편이었지만, 자정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새 손님이 들어왔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민서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아는 척을 하는 남자는 제법 낯이 익었다. 일행과 뭐라 말을 주고받으며 테이블이 아닌 바에 자리 잡고 앉았다.“가게도 작고 바텐더도 하나뿐이고…….”남자의 일행은 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통찮은 표정이었다.“가게는 작아도 칵테일이 괜찮아. 바텐더 아가씨도 예쁘고 조용하니 좋기만 하구만 괜히 궁시렁거리긴.”남자는 메뉴판을 받아들며 민서에게 슬쩍 윙크를 날렸다. 마주 웃어주는 민서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일행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메뉴를 뒤적였다.30대 중반 정도? 흐트러지긴 했지만 둘 다 수트 차림이었고, 전작이 있었던 듯 얼굴이 약간 붉었다.“난 러스티 네일. 너는?”“아무거나.”일행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덮으며 대답하자 남자는 눈을 살짱 찡그렸다.“아무거나는 무슨. 그런 메뉴는 없거든? 이 친구는 마티니로 주세요.”“네, 손님.”웃는 얼굴로 메뉴판을 받아든 민서는 올드 패션드 글라스를 꺼냈다. 얼음 서너 조각을 넣고 스카치 위스키 병을 집어들었다.검지와 중지 사이에 지거를 끼고, 간결하고 세련된 움직임으로 용량을 재 얼음 위로 술을 붓는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의 일행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아가씨, 쇼는 안 합니까?”“네?”“거 있잖아. 막 흔들고 돌리고 던졌다가 받으면서 춤도 추고.”드란부이를 위스키와 동량으로 넣고 바스푼의 긴 손잡이를 집던 민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요새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구요. 화려하죠, 칵테일 쇼. 그런데 그런 쇼를 보여주는 바텐더들을 플레어 바텐더라고 따로 불러요.”“아가씨는 그런 거 못하나? 하다못해 요래요래 막 흔드는 거라도 해봐요. 그렇게 얌전히 따르지만 말고.”자꾸만 귀에 들리는 ‘아가씨’ 호칭이 거슬렸지만 민서는 웃었다.“여기 주문하신 러스티 네일입니다. 주문하신 마티니는 보통 저어서 만드는데, 흔들어서 만들어 드릴까요, 손

  • 조폭이 사랑할 때   3

    다시 요란하게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민서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받고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사과부터 할 테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느니, 너 없인 못 산다느니,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느니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을 게 분명했다. 헤어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매달릴 것이었다. 알았다고, 용서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었다.어떻게 이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남자 보는 눈을 기르라던 손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난 남자 보는 눈이 정말 거지같았던 거야.전화는 잠깐 끊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떨어댔다. 그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끝까지 받지 않았다가는 그가 다시 가게로 찾아올지도 몰랐다.“여……보세요.”-민서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걱정했다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 소름이 돋아 그녀는 팔뚝을 문질렀다.“이제 그만하자 그랬잖아. 나 이제 근태 씨 전화 받을 이유 없어.”-민서야.“못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다시 얘기할게. 우린 끝났어. 다시는 전화하지도 찾아오지도 말아줬으면 해.”-사랑해, 민서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내가 왜 그랬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간절함이 뚝뚝 떨어지는 근태의 목소리에 민서는 헛웃음을 지었다.“안다고? 내가? 아니. 난 그딴 이유 같은 거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 이제 전화하지 마. 근태 씨 번호 차단할 거야. 찾아오지도 마. 안 만나줄 거니까.”모질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민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다.-진짜 너 왜 그래? 미안하다고 그랬잖아. 내가 이만큼 숙이고 들어갔으면 너도 엥간히 해얄 거 아니야.화난 기색이 묻어나는 근태의 목소리에 민서는 웃었다.“미안하다고 하면 끝난 건가? 욕하고 때린 게 없던 게 되는 거야?”-그건 네가…….“술김이면, 홧김이면 때려도 되는 거야? 약 사다주고 꽃 사다주면 때려도 되는 거야?”민서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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