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부딪친 무릎의 통증을 자각할 틈도 없이 머리채를 잡혔다.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와 잠금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서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 깡패새끼랑 여태 같이 있다 온 거야?”
근태의 목소리도 떨리는 듯했다. 민서는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근태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이거 놔.”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없고, 한 시간이나 늦게 들어와?”
“이거 놓으라고!”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보았지만 그의 손은 너무 단단했다.
“어쩐지 그 새끼, 가게 근처에 못 오게 하더니……. 가게서 딩굴었냐? 나 피해서 그 새끼한테 가랑이 벌려줬어?”
하,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근태가 말하는 그 새끼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함부로 얘기하지 마!”
바로 손바닥이 날아왔다.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쓰러진 상태에서 맞은 따귀였다. 맞은 쪽 귀가 먹먹하고 볼 안쪽 살이 터졌는지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뭘 잘했다고 쳐 웃고 지랄이야, 더러운 년이.”
그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올라서더니 민서의 머리채를 잡은 채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온 머리가 다 뽑히는 듯한 고통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카락에 칭칭 감긴 그의 주먹에 매달려야 했다.
“좋디? 좋았어? 나 아닌 다른 새끼랑 떡쳐보니 좋았어, 이 걸레 같은 년아?”
그는 그녀를 침대 옆에 내동댕이쳤다. 술에 취한 근태도 무서웠지만, 술냄새를 풍기지 않는 근태는 더 잔인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버둥대던 민서는 무릎으로 기었다. 어서 나가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다. 큰 도움은 못될망정,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터였다. 공포에 질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뚱이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눈물이 났다.
“어딜 도망가! 그 새끼한테 대주고 나니까 나는 싫어졌나보지?”
다시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린 성태가 손바닥을 날렸다. 차진 마찰음과 함께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진 그녀를 향해 버럭버럭 악을 쓰던 근태가 침대 위에 무릎으로 올라왔다.
“헤어지자고? 누구 맘대로? 넌 내 거야.”
그가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싫다고 몸부림치는 민서의 뺨을 두어 번 후려치고는 뜻대로 잘 안 되니 남은 옷을 찢어버렸다.
드러난 맨살을 샅샅이 훑어본 근태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둥그런 가슴을 한쪽 손으로 세게 움켜쥐었다.
“그 새끼가 니 젖은 안 빨아주든? 니가 빨아주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얘기 안했어?”
“하지 마, 제발.”
가까워지는 근태의 머리통을 밀어내며 민서가 울면서 애원했다. 근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봉긋한 젖무덤을 이로 물었다. 하얀 피부 위에 선명히 남은 잇자국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는 혀를 내밀어 그 자국을 핥았다. 두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쭙쭙 소리 나게 빨아들였다.
몸서리가 쳐지게 그 모든 것들이 싫어 민서는 그의 머리를 밀어내려 애를 쓰다 뺨을 한 대 더 맞았다.
얼마나 이런 취급을 더 받아야 하는 걸까. 내가 죽으면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싸웠어도 여자 분을 이렇게 때리면 안 되죠!’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이던 근태의 어깨를 툭툭 치던 경찰관의 말이 생각났다. ‘한 번만 더 여자를 때리면 제가 사람새끼가 아니라 개새끼입니다’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찰관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던 근태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개새끼.
그녀는 두 손을 끌어올려 화끈거리다 못해 얼얼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 관자놀이를 적시고 머리카락을 적셨다.
팬티를 억지로 끌어내려 던져버린 근태가 손가락을 다리 사이로 쑤셔 넣었다. 메말라있는 그곳이 그의 손가락을 거부하듯 밀어냈다. 몇 번 더 손가락을 쑤셔대던 근태가 몸을 일으켜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조금 전까지 분노로 벌개있던 그의 얼굴이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새끼랑 잔 거 아니었어? 깨끗하네?”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 민서는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래, 네가 그럴 리가 없지. 널 이렇게 사랑하는 날 두고 다른 남자라니. 그러게 아니라고 말하지 그랬어, 민서야. 손 좀 치워봐. 아파?”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개 변태 같은 새끼. 들리지 않을 욕설을 속으로 씹으며 민서는 결국 흐느낌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근태는 그녀의 이름을 자꾸만 불렀다.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네가 그 새끼랑 같이 잤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전화도 안 받고, 출근시간도 아닌데 집에 없고, 올 때가 됐는데도 안 오니까 내가 너무 불안했어. 미안해 민서야.”
귓속을 파고드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민서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꽉 메인 목을 애써 누르며 입을 열었다.
“제발…… 가줘.”
그의 모든 행동이 멈췄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민서야. 부탁인데…… 나 화 나게 하지 마라.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니가 자꾸 날 화나게 만들고 있잖아. 내가 행시만 패스하면 넌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술집도 그만두고 신부수업 받으면서 결혼 준비만 하면 되는 거야. 그동안 내 뒷바라지 한 거, 다 보상받을 수 있다고.”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근태가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대기 시작했다.
“싫어……. 하지 마!”
비명처럼 터져 나온 거부의 말에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철썩. 근태는 벌겋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슴 위로 연거푸 손바닥을 내리쳤다.
“내가! 화나게! 만들지! 말랬지! 왜 말로 하면 못 알아 처먹고 지랄이야! 예쁘다 해주면 예쁜 짓 하라고 그랬지! 전문대 겨우 졸업하고 술집이나 다니는 년이 어디서 앙탈이야!”
얻어맞은 가슴을 끌어안고 몸을 움츠린 민서를 보며 근태는 바지 벨트를 풀었다. 주섬주섬 바지춤을 뒤적여 시커먼 성기를 꺼내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침대 위의 민서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더니 그녀의 맨 엉덩이를 잡고 위로 곧추세웠다. 반항할 기력도 없는 민서의 안으로 무자비하게 파고든 그가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기 없이 퍽퍽한 그곳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성기를 꺼내고 그 자리에 침을 듬뿍 바른 손가락을 비벼댔다. 같은 행동을 몇 번 더 반복한 그가 만족한 듯 성기를 삽입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은 채 이를 악물고 눈물만 흘리는 민서가 어떤지는 살필 생각도 없이 성기를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속살 맛에 심취한 채 연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민서의 맨 엉덩이를 내리쳤다. 찰싹, 차진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속살이 움찔거렸다. 오오, 신음소리가 좀 더 커지는가 싶었는데 다시 찰싹, 찰싹 근태는 피스톤질에 속도를 더하며 여자의 엉덩이를 몇 번 더 후려쳤다.
엉덩이를 부르르 떨며 그녀 안으로 몸을 깊이 밀어 넣던 근태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민서는 그 상태 그대로 꼼짝도 하지 못하다 천천히 다리를 펴고 엎드렸다. 다리 사이로 그의 배설물이 흘러내려 시트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이미 축축히 젖은 시트로 눈물이 자꾸만 스며들었다.
***
“아악, 오빠! 나 죽어, 더 깊이, 더 깊이!”
성진은 뱀처럼 몸을 휘감아오는 여자의 허리를 움켜쥐고 몸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여자의 손톱이 등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절정에 다다른 듯, 여자의 말랑말랑한 속살이 그의 것을 빨아들이듯 수축해왔다.
“으윽.”
잔뜩 고조된 성감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절정을 맞이했다. 한참을 불끈거리며 정액을 토해낸 성기를 여자의 몸에서 빼내며, 성진은 손을 뻗어 티슈를 집어들었다.
“아아, 오빠. 최고였어요.”
침대 위에 사지를 뻗고 누워있던 여자가 발딱 몸을 일으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오늘 자고 가면 안돼요, 오빠? 더 해달라고 안 그럴게.”
콧소리 섞인 애교에 남자가 픽 웃었다. 그놈의 오빠 소리.
많아 봐야 20대 초반의 어린 얼굴을 한 여자가 그의 볼에 쪽하고 입을 맞추며 유혹해 왔지만, 남자는 여자의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서운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고 앉은 여자를 등지고 선 성진은 지갑을 열어 수표 몇 장을 꺼내 침대 옆 스탠드 위에 올려놓았다. 남자가 뭘 하나 눈으로 쫒던 여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빠! 나 오빠한테 돈 받으려고 한 거 아니라 그랬잖아! 오빠한텐 돈 안 받는다고!”
“알아.”
“진짜 속상하게 그러지 마.”
“알았어.”
지갑을 여미던 남자가 잠시 망설이다 수표 한 장을 더 꺼내 그 위에 올려놓고는 셔츠를 집어들어 팔을 꿰었다.
“오빠!”
“안다고. 이건 그 돈 아니라 너한테 주는 용돈. 말을 예쁘게 해서 좀 더 준 거야.”
침대 위에 퍼질러 앉아 입술을 삐죽이던 여자가 몸을 일으켜 성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셔츠 단추를 꿰는 남자의 손을 잡아내리고 대신 단추를 하나하나 잠갔다.
“이제 그만 나 데려가면 안돼? 나 정말로 이 짓 그만하고 오빠 마누라 하고 싶단 말야.”
“봐서.”
미적지근한 그의 대답에 여자는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성진을 흘겨봤다.
“뭐야, 몸 파는 년은 싫다 이거야? 뭔 대답이 그래?”
성진은 잠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몸 파는 년이면 나는 사람 패는 놈이야. 그런 생각 한 적 없으니까 그만 하자.”
여자는 발돋음을 해서 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춘 후, 계속해서 아양을 떨며 졸라댔다. 별다른 대꾸 없이 계속 옷을 입는 성진에게 항복한 듯, 여자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좋아. 그럼 딴 년한테 안 간다는 약속만 해줘, 오빠.”
“딴 년?”
“오피중에 오빠 노리는 년들 많다는 거 알잖아. 응? 오빠, 다른 년들한테 안 간다고 약속해주라.”
칭얼거리는 여자에게 건성으로 알았다는 대답을 해 준 성진은 오피스텔을 나왔다.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차에 등을 기대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비어버린 담배갑을 들여다보다 움켜쥐어 구겨버리고는 담뱃불을 붙이고 연기를 하늘로 뿜었다. 먹빛 하늘이 어슴프레 밝아오는 것이 보였다.
작가입니다. ........ 도망.......
“자, 잠깐만요.”민서가 몸을 빼보려 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손등에 가로막혔다. 손등에 비벼지는 입술 감촉에 어색해하는데, 그가 그녀의 손등을 핥았다. 스스로 틀어막은 입에서 놀란 비명소리가 눌려 나왔다.“보지 마라, 동혁아.”룸미러로 뒷좌석을 힐끔거리던 동혁이 근식의 낮은 경고에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네, 형님.”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몸도 마음도 뜨거운 20대 초반의 남성에게는 다소 무리가 있는 주문이었다. 그가 존경해마지않는 큰형님의 애정행각이었다. 성진의 취한 모습도 처음 보지만 여자와 스킨십하는 것도 처음 보는 동혁이었다. 그는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솔직히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큰형님의 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의 형수님이었다. 룸미러의 각도로 볼 수 있는 건 성진의 뒤통수와 민서의 머리 위쪽 정도였다. 하지만 거칠어진 성진의 숨소리와 민서가 놀라는 소리, 성진이 작게 속삭이며 민서에게 애원하는 목소리는 너무 자극적이어서 자꾸만 룸미러에 시선이 갔다.“키스하게 해줘.”맞닿은 성진의 몸이 뜨거웠다. 그는 계속해서 민서의 손등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그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민서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민서야. 제발……”‘그쪽’도 아니고 ‘민서 씨’도 아닌 ‘민서야’였다. 간절하게 애원하는 속삭임에 그녀는 흔들렸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끌어내렸다.“아프게 하지 않을게. 약속해.”입술을 막고 있던 민서의 손이 치워지고, 성진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커피향이 났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민서는 눈을 감았다.나는 이 남자와의 키스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아닌 척 했지만 이 남자에게 끌리고 있었나보다. 나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존댓말을 쓰면서 거리를 두며 나를 배려해주는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나보다.눈물이 민서의 볼을 타고 흘렀다.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핥았고, 그녀는 입술을 열었다. 혀를 내밀어 그의 혀를 살짝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성진은 차 뒷좌석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곧 도착입니다, 형님.”“그래.”근식은 룸미러로 성진의 모습을 확인하고 씩 웃었다.황 회장과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조금 예민해진 성진이었다. 워낙 성진을 예뻐하는 황 회장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고객들 중 하나였다면 진즉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고간 이야기의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성진도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민서가 일하는 바로 가면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건 본 적이 없었다.“황 회장님의 제안은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알아.”“아시면서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형님?”“글쎄다. 영 내키지가 않네. 동혁이한테서 연락은?”“별 일 없다고 합니다. 좀 시끄러운 손님들이 와서 정신없이 바쁘다는 것 말고는 괜찮답니다.”성진의 미간에 골이 생겼다. 손님이 적은 한적한 가게라서 민서가 여유롭게 일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정신없이 바쁘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은 거였다.곧 차가 멈췄고 성진이 내렸다. 골목에 위치한 바 앞은 한적했다. 그는 거침없이 걸어가 바의 출입문을 열었다.“야, 애 죽겠다, 그만 먹여!”“먹고 죽어, 새끼야!”문이 열리자마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하나에 남자 넷 여자 하나. 바에 동혁과 남자 하나. 그는 빠르게 매장 내부의 인원을 파악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민서가 그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어서오세요. 오늘은 늦으셨네요, 손님.”“일이 있어서.”성진이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는 민서 앞에 앉았다. 바에 상체를 기대고 서 있던 남자가 성진을 보았다. 30대 중후반 정도의 늘씬한 남자였다.“민서 씨, 이거 차별 같은데? 이 손님은 왜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는 거야?”“단골이시거든요.”“나도 자주 오잖아. 나도 단골 해주고 반갑게 말 걸어달라고.”“자주 오시는 건 맞는데 우리 사장님 만나러 오시는 거잖아요. 우리 단골손님이랑 비교가 되나요.”“이거 서운한데?”“음, 저한
***성진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원체 그의 체력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민서가 매일 서투르게나마 상처를 소독해주었고, 단백질 위주의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수발은 근식의 몫이었다. 사무실과 병원, 성진의 아파트를 오가며 각종 약들과 보양식을 갖다 바쳤다.“빨리 나으십쇼, 형님. 혼자 하려니 죽겠습니다.”“엄살은. 내가 발 빼고 너 혼자 해도 되겠는데?”“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아시죠? 황 회장이 형님을 얼마나 찾는지 말씀드렸잖습니까. 양 전무 같은 경우에는 형님 없이는 못 맡기겠다고, 형님 복귀하면 연락 달라고 합디다.”“츱, 까탈스런 영감탱이들.”근식이 입혀주는 수트 재킷 단추를 여미며 성진이 혀를 찼다.“황 회장님이 급하신 모양이더라고요, 형님.”“그 양반이 급하거나 말거나.”시계를 차고 지갑을 챙긴 성진이 방을 나와 현관으로 걸어가는 동안 근식이 소지품을 챙겨와 그 뒤를 따랐다.“그래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형님. 황 회장님이 그래도 제일 큰 고객인데 말입니다, 형님.”“시끄러워.”“그러지 마시고, 형수님한테 가기 전에 잠깐 아주 잠깐만 황 회장님 얼굴 보고 갑시다, 네?”계속해서 졸라대는 근식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그 태도에 성진은 걸음을 멈추고 근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뭐냐?”“뭐가요?”“그 영감이 뭐라 그래? 또 지랄맞게 굴어?”근식의 눈동자가 슬며시 옆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성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그런 거 없었습니다. 워낙 그 양반 성격이 불같아서 그러지요. 일처리 느린 거 못 견뎌하시는 분이잖습니까.”“지금 간다고 연락해.”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마디 뱉은 채 걸음을 옮기는 성진의 뒤에서 근식이 쾌재를 불렀다. 성진이 직접 움직인다고 하니 일이 쉬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성진은 이상할 정도로 나이 많은 고객들에게 잘 먹혔다. 지금은 저렇게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틱틱거리지만, 막상 고객 앞에서는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할 것이었다. 깍듯
성진이 자세한 설명을 피하는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한 민서는 그가 자신을 보면서 웃자 흠칫 놀랐다.아니, 왜 웃고 그러세요. 그쪽이 깡패라는 것만으로도 불법적인 일 한다는 걸 다 설명하신 거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말 옮기는 일 같은 거 안 하니까 그만 쳐다보세요.어색해진 민서가 바쁜 척 손을 놀렸다.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아직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나 힐끔힐끔 성진을 확인했다.“큰일이다, 민서 씨. 저 사람, 민서 씨한테 관심있나봐.”카페 사장이 민서 쪽으로 상체를 바짝 기울인 채 속삭였다. 그런 거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그냥 깡패 아니라 되게 위험한 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혼자 있을 때 저런 손님 들어오면 무섭잖아.”“위험한 손님 아니에요. 오히려 진상 손님을 두 번이나 쫓아내주셨어요.”민서도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카페 사장이 ‘그래?’ 하며 놀라더니 성진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성진은 두 사람을 지켜보다 미간을 좁혔다. 두 여자가 서로 속닥거리다가 자신을 보며 웃는 모양이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빨리 마시고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여자는 민서에게 또 뭐라 속삭이고는 까르르 웃었다.“그러지 마세요, 손님. 전 당분간 누굴 만나거나 할 생각이 없어요.”“어머, 왜?”“그냥…….”여자가 손을 뻗어 민서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속삭였다. 가만히 듣던 민서의 표정이 난처한 기색으로 바뀌었다.마음에 안 들어.그는 다시 블랙 러시안을 들이켰다. 독한 알콜이 목구멍을 태울 듯 덥히고 넘어갔다.“그럼 나 섹스 온 더 비치 말고 다른 거 추천해줘요.”여자가 빨대로 남은 칵테일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얼음만 남은 빈 잔을 내밀었다. 민서는 잔과 코스터를 수거하고는 메뉴판을 꺼냈다.“이거랑 이것처럼 이름이 섹스 온 더 비치같이 좀 선정적이다 하는 칵테일이 보통은 달콤해서 마시기 좋아요.”“그러다 훅 가고?”여자가 민서에게 윙크를 날렸고, 민서는 손가락 총을 쏘았다.“그렇죠.”“흐응, 궁금하네.”
구석자리에 숨어서 애정행각을 벌이던 커플이 나가고 민서가 테이블을 치우고 돌아오는데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손님이 없으니 일찍 문 닫고 집에 가자고 하려던 성진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만을 표했다.“어서오세요.”여자는 민서의 인사에 환하게 웃으며 아는 척을 한 후 성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원래 이 시간에 오면 손님이 없었는데, 오늘은 손님이 두 분이나 계시네요?”“다른 손님이 없을 때 주로 오셔서 그래요. 오늘도 같은 걸로 드릴까요?”“네. 섹스 온 더 비치로 주세요.”자주 오는 손님인지, 여자와 민서는 살갑게 안부를 주고받았다.“가게 문 닫고 나서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날이 있어요. 술 한 잔이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사람들 바글바글한데서 혼자 청승 떨기 싫은 그런 날이요. 그런 날엔 여기서 칵테일 한 잔 마시는 게 최고더라고요. 그리고 이왕 마시는 거 맛있는 걸로 마셔야죠.”“원래 혼술하러 오시는 분이 많아요. 조용히 한두 잔씩 드시고 가시고요.”허리케인 글라스에 얼음을 담으며 여자의 넋두리 같은 말에 민서가 웃었다. 쉐이커에도 얼음을 담는 민서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성진 쪽으로 여자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동네에선 못 보던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아, 네.”“근처에 사시나요? 이렇게 근사하게 생기신 분인데 제 기억엔 없어서요.”“아니요.”“댁이 어디신데요?”“……닥산동입니다.”“어머, 멀리도 오셨네요? 근처에 볼일이라도 있으셨나봐요.”“……직장이 근처라.”“어머어머, 무슨 일 하시는데요?”보드카에 이어 오렌지 주스를 쉐이커에 붓던 민서가 눈을 들어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혼자서 칵테일 마시러 오는 손님들 중에 가장 빨리 친해진, 붙임성 좋은 카페 사장이었다. 말 수 적은 성진이 귀찮아하는 것이 민서에게는 너무나 잘 보이는데, 손님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깡패입니다.”카페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민서는 ‘쿡’ 짧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민서가 성진과 심상치 않은 사이임을 넌지시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민서를 포기하지 못한 듯, 시덥잖은 농담을 계속해서 던졌다. 민서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걸 본 남자의 일행이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내가 뭐 큰 걸 바라는 건 아니란 말이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이거든. 가끔 특식도 먹고 말이야. 맛없는 것도 가끔 먹어 줘야, 아! 원래 먹던 게 맛있는 거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단 말이지.”“그런가요? 전 맛없는 건 굳이 찾아먹지 않는 편이라서요.”“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먹어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요?”능글맞게 웃는 남자에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어 한숨을 내쉬는데, 옆에서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던 성진이 참지 못하고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이봐.”“어린놈이 말이 짧네.”앉아있는 성진을 아래위로 훑은 남자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툭 내뱉은 말에 성진의 뒤에 서 있던 동혁이 발끈했다. 성진이 손을 들어 동혁을 말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파리한 안색으로 앉아있는 성진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는 성진의 생김새도 남자의 생각에 힘을 보냈다.하지만 정면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성진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오른쪽 눈썹 위에서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칼자국이었다. 조금이라도 옆으로 비껴 지났다면 실명했을지도 모를 위험한 흉터였다. 그리고 구부정하게 앉아있을 때는 몰랐던 성진의 넓은 어깨와 큰 키에 위압감을 느꼈다.“그쪽도 예절이 썩 훌륭하지 않더라고.”남자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낭패였다. 작고 여리여리한 민서가 사귀는 남자래야 대단할 게 없다 생각했다. 자신이 민서에게 추근덕거릴 때 옆에서 조용히 지켜만 보기에 배알도 없는 놈인 줄 알았다. 덩치 큰 놈이 형님이라 깍듯하게 칭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옆얼굴이 곱상해 만만한 상대라는 오판을 하고 말았다.“아니…… 그게 아니라…….”성진이 남자에게 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