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111화

Author: 경옥
침묵이 길어졌다. 계연수가 제 소맷자락에 수놓인 목련이 몇 송이인지 다 셀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한참 뒤에야 휘장 안에서 기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보름만 있으면 돌아올 테니, 너는 마음 편히 아이를 낳는 데만 신경 쓰렴.”

잠시 말을 멈춘 황후가 쉰 목소리로 덧붙였다.

“서준이도 돌아와 아이를 보면 분명 기뻐할 게야.”

계연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중얼거렸다.

“보름이나 더요…? 어째서 그리 오래 걸리나요? 심정우는 다녀오는 데도 보름 남짓이면 됐는데요.”

“서준이는 회덕에서 처리할 공무가 좀 더 있단다. 연수야, 너무 애태우지 말거라. 서준이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말끝에 황후가 거세게 기침을 했다. 한참 만에 기침을 가라앉힌 황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날이 너무 춥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인 것 같구나. 며칠 안에 또 눈이 온다더라. 몸 잘 돌보고, 무사히 아이를 낳아야지. 이건 우리 모두가 기뻐할 일이 아니냐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주문춘귀   제1154화

    계연수도 백씨 곁의 장씨 어멈이 그토록 입이 무거울 줄은 몰랐다.따로 내력을 알아본 적은 없었다. 다만 줄곧 백씨를 곁에서 모셔 왔으니, 아마 어릴 적부터 함께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백씨와의 정 또한 여느 하인과는 달랐을 것이다.용춘 역시 쉽게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처럼.계연수는 손끝으로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사람의 뜻을 꺾으려면 약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장씨 어멈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여유는 없었다. 지금은 시간을 들여 하나씩 심문할 수 없었다.“우선 잘 감시하고, 다음 명을 기다리거라.”호위가 명을 받고 고개를 숙여 물러났다.어느새 날이 훤히 밝았다. 방 안을 밝히던 촛불도 이제는 별 소용이 없었다.계연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방 어멈에게 나직이 말했다.“수수한 옷 한 벌을 준비해 주거라. 지금 입궁해야겠다.”방 어멈은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목에 걸렸으나,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이제는 무슨 말로도 만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어린 세자는 바꿔치기를 당했고, 후작마저 변을 당했다. 그런데도 계연수가 버티며 이토록 냉정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다만 몸이 걱정되었다. 잠시 망설이던 방 어멈은 결국 허리를 숙여 조용히 권했다.“찾으러 나간 호위들의 소식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오늘 안으로 찾아올지도 모르잖습니까. 반나절만이라도 주무시고 기운을 차리시면 좋겠습니다.”계연수의 상태는 누가 보아도 좋지 않았다.계연수가 고개를 돌려 방 어멈과 눈을 맞췄다.“어멈, 나는 잠들 수가 없다. 눈만 감으면 아이와 부군이 떠올라. 형수님이 너무도 원망스럽다. 가죽을 벗기고 힘줄을 뽑아 버리고 싶을 만큼. 그 증오 때문에 더 잠들 수가 없어. 무슨 낯으로 자신은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지… 내가 멈추면, 그 여자는 틀림없이 이제 괜찮다고 여길 것이다. 내가 제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속으로 의기양양해하겠지.”“물론 태후는 더 원망스럽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자신은 법

  • 주문춘귀   제1153화

    물론 그들이 백씨를 위해 무슨 짓을 해 왔는지는 앞으로 하나씩 더 캐물어야 했다.일단 일을 마무리한 계연수는 지친 듯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방 어멈에게 시각을 물었다.입궁하기 전까지는 손에 쥘 수 있는 증거를 최대한 모아 두어야 했다. 이제 어느 정도는 갖추었다.방 어멈이 귓가에 나직이 시각을 알려 주자, 계연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장씨 어멈을 심문하러 간 호위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면 되었다.바깥방에서 약을 달이던 시녀가 주 태의의 처방대로 끓인 약을 조심스레 들고 들어왔다. 씁쓸한 약 냄새가 금세 방 안에 퍼졌다.방 어멈이 약그릇을 받아 들었다.“부인, 몸부터 돌보셔야 합니다. 우선 약을 드세요.”계연수도 알고 있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아직 한참 남아 있다는 것을.어떻게든 기운을 붙들고 앞으로 닥칠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말없이 눈을 든 계연수는 방 어멈에게서 약그릇을 받아 들었다.어지럼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등과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고, 온몸이 힘없이 늘어졌다. 등 뒤의 둥근 베개에 몸을 기대자, 눈만 감으면 곧장 잠들 것처럼 피로가 밀려왔다.쓴 약이 목을 넘어갈 때마다 몇 번이고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계연수는 손수건으로 입술을 단단히 눌러 간신히 참았다.방 어멈이 조심스레 등을 쓸어 주며 달랬다.“호위들이 이미 찾으러 나갔고 관아에도 알렸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사라진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어린 세자님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양아는 일개 시녀일 뿐이니 멀리 달아나지도 못했을 테지요. 경조부에도 성문을 지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어린 세자님은 복이 많은 분이니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다. 부인께서는 더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고, 침상에 누워 며칠만이라도 쉬세요.”그러나 계연수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기다리는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더 두려운 것은 양아에게서 아이를 넘겨받을 사람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되면 양아조차 아이가 어

  • 주문춘귀   제1152화

    취낭이 아이를 안고 다가왔다. 계연수는 그 품에 안긴 희고 포동포동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배불리 젖을 먹고 편안히 잠든 아이의 작은 손이 잠결에 살짝 움직였다.겨우 눌러 두었던 울음이 다시 치밀었다. 다른 아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흐려졌다.계연수는 힘주어 눈을 깜빡인 뒤, 취낭에게 아이를 데리고 물러가게 했다.취낭은 돌아서기 전 계연수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희고 고운 얼굴은 거의 투명할 만큼 창백했고,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취낭도 까닭 없이 가슴이 먹먹해졌다.취낭이 물러난 뒤에야 벽월을 들였다.벽월의 눈에는 뚜렷한 불안이 어려 있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가 어깨를 눌러 바닥에 꿇어앉히자, 벽월은 긴 의자에 앉은 계연수를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계연수는 여우털 갖옷을 벗어 두고, 연둣빛에 분홍 기가 감도는 깃 세운 짧은 솜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고운 피부에 잘 어울리는 옷감 위로 흰 동백꽃 자수가 정교하게 놓여 있었다.그러나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슬픔도 기쁨도 없었다. 자애로운 눈매를 지닌 옥관음상이 아무런 감정 없이 내려다보는 듯했다. 눈동자 깊숙이 깃든 냉담함에 벽월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벽월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려 문안했다.계연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큰부인께서 너를 어머님 곁에 두고 시중들게 한 것이, 어머님께 독을 먹이기 위해서였느냐?”막 고개를 들던 벽월은 느닷없는 질문에 눈빛부터 흔들렸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둘째 부인이 막 출산을 마치자마자 자신을 끌고 와 이런 말을 하다니.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이는데, 계연수가 먼저 말을 이었다.“부인할 필요 없다. 양아가 이미 네 일을 전부 털어놓았으니.”벽월은 놀란 나머지 두 눈을 크게 떴다.어쩐지 지난밤 큰부인의 부름을 받고 나간 양아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니. 양아도 둘째 부인의

  • 주문춘귀   제1151화

    취낭이 심씨 부저에 들어왔을 때, 제 아이를 낳은 지는 겨우 이틀이 지난 참이었다. 마침 부군이 쇠를 두드리다 손뼈를 다쳐 치료비가 필요해지면서 유모 일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계연수도 그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취낭이 찾아온 날 곧바로 유모로 정했다. 혹시 모를 일을 막고자 취낭을 다시 집으로 보내지는 않았고, 대신 사람을 시켜 돈을 전해 주게 했다.계연수의 시선을 받은 취낭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난밤 뜰에서 벌어진 일을 제 눈으로 본 탓이었다. 계연수가 호위들에게 산파의 가죽을 벗기게 하는 참혹한 광경이 아직도 생생했다.혹여 자신도 무언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취낭은 겁에 질려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계연수는 두려움에 움츠러든 그 눈을 바라보았다. 스물일곱이나 여덟쯤 된 여인이었으나, 눈빛은 맑았다. 보기에는 참으로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계연수는 취낭을 일으켜 세운 뒤, 옆에 놓인 긴 의자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고 어지러운 생각을 하나씩 가다듬었다.방 어멈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부인, 아이를 한번 안아 보시겠습니까?”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방 어멈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권했다.“그럼 침상에 누워 잠깐이라도 쉬세요. 지금까지 한숨도 못 주무셨잖습니까.”계연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직 쉴 수 없었다.그때 발 너머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곧 시녀가 용춘을 찾으러 갔던 호위가 돌아왔다고, 용춘을 찾았다고 알렸다.계연수가 들여보내라 이르자, 시녀의 부축을 받은 용춘이 들어왔다. 뒤따라온 호위가 찾아낸 경위를 아뢰었다.용춘은 화단 뒤에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던진 암기에 뒤통수를 맞아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범인은 무예를 익힌 자가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밤중에 그토록 정확히 맞히기 어렵습니다.”보고를 들은 계연수가 명했다.“오늘부터 누구도 부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거라. 대감과 도련님들을 곁에서 모시는 시종들만 드나들 수 있도록 하

  • 주문춘귀   제1150화

    더 듣지 않아도 계연수는 누가 한 짓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어머님께 드릴 약은 새로 처방하셨나요?”주 태의가 서둘러 대답했다.“염려 마십시오, 부인. 마침 약상자에 청심환과 인삼환이 있어 노부인께 드렸습니다.”“직접 먹여 드리셨나요?”“예. 제가 직접 드렸으니 안심하십시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방 어멈에게 강보에 싸인 죽은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주 태의에게 사인을 살펴보도록 할 생각이었다.강보는 계연수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그것이 다시 눈에 들어오자 가슴 한쪽이 날카롭게 저며 왔다. 계연수는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차마 한 번 더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갓 태어난 제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작은 몸이었다. 보고 있으면 자꾸만 잃어버린 아이가 떠오를 것 같았다.방 어멈이 안고 온 죽은 아이를 보고 주 태의는 크게 놀랐다. 그러나 함부로 캐물어서는 안 될 일임을 알았기에,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겉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입을 벌려 혀 안쪽까지 확인했다.잠시 뒤, 주 태의가 계연수에게 고했다.“이 아이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해친 듯합니다.”“어떻게 죽었나요?”“독에 중독되었습니다.”“설태가 희미하게 검게 변해 있습니다. 제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두일 겁니다.”주 태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목소리를 낮췄다.“우두는 독성이 강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반 각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습니다. 다만 이 아이에게 쓴 것은 독성을 줄이도록 법제한 천오인 듯합니다. 그래도 갓난아이가 먹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길어야 며칠을 버틸 뿐이지요. 이렇게 어린아이에게는 약의 양을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조금만 어긋나도 얼마나 버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또 천오에 중독되었는지는 맥만 짚어서는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혀뿌리에 생긴 검은빛도 죽은 뒤 반나절 안에 사라집니다. 이 아이는 숨을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아 중독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시간이 더 지났다면 배를 갈라

  • 주문춘귀   제1149화

    계연수의 뺨은 창백했다. 눈을 내리깔자 손마디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더는 백씨의 말을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다. 계연수는 호위에게 백씨의 입을 막으라 이른 뒤, 방 어멈의 손에 의지해 몸을 곧추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백씨는 멀어지는 계연수의 등을 보며 무어라 더 말하려 했다. 그러나 입을 틀어막은 천 뭉치 탓에 웅얼거리는 소리만 어지럽게 새어 나왔다.문이 다시 닫히자 그 마지막 소리마저 끊겼다.방 어멈은 계연수를 부축해 처소로 돌아가며 조심스레 달랬다.“부인, 큰부인께서 하신 말씀은 마음에 담지 마세요. 부인과 후작께서 그리 금실이 좋으셨는데, 부인이 후작께 해를 입혔을 리 있겠습니까.”계연수는 이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아무 말 없이 걸으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거듭 짚어 보았다. 백씨가 끝내 잘못을 뉘우치지 않겠다면, 자신이 모질게 군다 한들 원망할 수는 없을 터였다.하늘이 희붐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등롱의 흐릿한 불빛이 어른거릴 때마다 땅 위로 드리운 옅은 그림자도 유령처럼 흔들렸다.처소의 문 앞에는 주 태의가 와 있었다.방에 누워 몸을 추슬러야 할 계연수가 밖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자, 주 태의의 얼굴에 드물게 안타까움과 질책이 함께 떠올랐다.“부인께서는 어찌 이리 몸을 돌보지 않으십니까?”환자의 고통을 살피는 의원으로서, 제 몸을 이토록 소홀히 여기는 모습을 보고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여인에게 출산이 큰 고비라면, 산후조리 역시 그에 못지않은 고비였다.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병을 얻으면 평생 앓을 수도 있었다.계연수는 누가 보아도 몹시 쇠약해져 있었다. 출산한 직후부터 움직이며 찬바람까지 맞았으니, 이미 몸의 근본이 상하기 시작한 터였다. 이대로 몸을 혹사하는 모습을 주 태의는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계연수도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계연수는 넋이 빠진 채 몸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