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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Author: 경옥
그것도 안 되면 차라리 계연수를 이곳으로 데려와 심서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계연수라면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른다.

하물며 심서준이 누구인가. 하늘에 걸린 달처럼 고상하신 분이고 경성의 모든 사람들이 앞다투어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또한 철두철미하고 차가운 사람이라 그의 주변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던 여인은 계연수뿐이었다. 이는 그의 심복으로 삼 년을 지내면서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문하는 홀로 술을 마시는 그가 안타까워 아래층으로 가서 해장약이라도 사오려고 나왔다가 용춘과 마주친 것이다.

그는 자신을 본 순간 눈에 띄게 당황하는 용춘을 보고 의구심이 들었다.

날도 어두워졌고 내일 떠난다는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을까?

용춘은 잔뜩 굳은 얼굴로 문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급히 뒤돌아섰다. 문하는 서둘러 용춘의 뒷덜미를 잡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갑니까?”

용춘의 손에는 심서준의 귀걸이가 들려 있었다. 막 귀걸이를 전당포에 팔러 가는 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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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333화

    이튿날 이른 아침, 계연수는 용춘을 불러 서둘러 그 물건들을 의원에게 가져가 보이라 했다. 그런데 용춘이 문을 나서자마자 마침 일찍 찾아온 고준안과 마주쳤다.고준안은 용춘의 품에 안긴 종이 꾸러미들을 흘낏 바라보았다. 은은한 약 냄새가 스쳤고 종이 사이로 상등품 송이버섯 한 귀퉁이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이른 시간에 둘째 도련님과 마주칠 줄 몰랐던 용춘은 급히 예를 올렸다.고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었다.“고모를 뵈러 가는 길이다. 너는 어디로 가느냐?”계연수의 당부를 기억한 용춘은 담담히 답했다.“약을 가지러 나갑니다.”고준안은 더 묻지 않고 한 걸음 비켜섰다.“가거라.”용춘이 먼저 지나가고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고준안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이 미묘하게 가라앉았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앞으로 향했다.오전 무렵, 계연수는 어머니께 약을 떠먹이고 있었다. 그때 뜻밖에도 큰 외숙모가 찾아왔다.그녀의 얼굴빛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사람이 바뀐 듯, 고씨 부인의 침상 곁에 앉아 살뜰히 안부를 묻고 손을 잡은 채 불편한 점은 없는지 거듭 확인했다.계연수는 큰 외숙모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이 지나치게 달라지면 반드시 그 이면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정오가 가까워질 즈음, 용춘이 돌아왔다. 의원에게 보인 물건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송이버섯 또한 최상급이라 했다.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물건에 문제가 없다면 문제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방 안에 있던 두 시녀는 이미 내보냈고, 오늘 아침에 팔려 나갔다고 했다. 음식은 모두 부엌에서 올라오는데 그곳은 사람도 많고 드나드는 이도 많다. 정말로 조사를 벌인다면 집안은 금세 소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상이 드러난다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누군가 독을 썼다는 확증도 없었다.계연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 일은 결국 밝혀내기 어려우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으로서는 이곳을 떠나는 것이 최

  • 주문춘귀   제332화

    고준안은 담담한 눈으로 장씨를 바라보았다.“어머니와 상의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계연수 말고 저는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어머니께서 끝내 막으신다면 저는 저승에 가서라도 연수의 복을 빌겠습니다. 연수는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합니다.”장씨는 완전히 경악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무게를 지닌 말 앞에서, 차라리 이 순간 자신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마저 스쳤다.자식이 저승에 간다니. 제 목숨을 끊어 복을 비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이혼한 여인을 위해 기도하겠다니.그 순간, 장씨의 가슴은 재처럼 식어버렸다. 돌연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온돌 위 작은 탁자에 놓인 바느질 바구니에서 가위를 집어 들고는 제 가슴을 향해 들이밀었다.“네가… 네가 어미를 죽게 만들 셈이냐?”고준안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정의 파문 하나 없이 소름 끼치도록 평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어머니께서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그 죄는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정 안 된다면 함께 가겠습니다.”말이 끝나자 그의 손에 들린 칼이 다시 한 치 아래로 내려갔다. 핏줄이 터지듯 붉은 피가 솟구쳤다.장씨의 손에서 가위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녀는 비틀거리듯 달려가 아들 앞에 엎드려 울부짖었다.“어미가 허락하마! 어서 칼을 치워라… 더 내려가면 정말 죽는다…!”고준안은 이미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끝까지 차분했다.“어머니께서 다시 마음을 바꾸신다면 저는 곧장 고모부 묘 앞에서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장씨는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머리가 백지상태가 된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그제야 고준안은 낮게 신음하며 칼을 떨어뜨리고 한 손으로 상처를 눌렀다.의원이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발치에는 이미 피가 한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방 안은 비린내로 가득 찼다.장씨는 제 소매로 아들의 상처를 감싸 막아보려 했다. 고준안의 얼

  • 주문춘귀   제331화

    고준안은 어머니의 놀란 외침을 들은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어머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칼을 꺼낸 건 남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장씨는 여전히 경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고준안은 칼집을 옆 작은 상 위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소매를 걷어 손목을 드러냈다.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칼날을 손목 위에 갖다 댔다.찰나였다. 붉은 핏방울이 톡 하고 맺혔다.장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와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그의 앞에 주저앉았다.칼끝은 여전히 손목 위에 놓여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맥을 베어버릴 듯한 위태로운 각도였다.장씨의 손은 떨렸다. 잡고 싶으면서도 감히 손대지 못했다.“준안아…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무슨 일이냐…!”고준안은 무릎 꿇은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눈빛은 서늘했고 음성은 담담했다. 마치 손목의 상처가 전혀 아프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어머니는 왜 작은 고모와 연수를 그리 대하십니까? 옛날에 고모부께서 아버지를 끌어주신 일을 잊으셨습니까? 제가 어떻게 국자감에 들어갔는지도 잊으셨습니까?”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날이 서 있었다.“어머니께서 계속 그들을 박대하신다면 저는 더는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지하로 내려가 고모부께 사죄하겠습니다. 그 화가 어머니께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장씨는 눈물 어린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네가…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이 어미는 누구를 위해 이러는 줄 아느냐? 다 너와 네 누이를 위해서다. 너를 장가 보내고 네 누이 혼수를 마련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연수가 사가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너도 보지 않았느냐? 혼수가 없으면 며느리로서 얼마나 업신여김을 받는지,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준안은 고개를 낮추었다가 다시 들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그래서 그들을 그렇게 대하십니까? 작은 고모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리고 연수는 또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이 몇 년간 어머니

  • 주문춘귀   제330화

    작은 식함이 계연수 앞에서 열렸다. 뚜껑이 들리는 순간, 달콤한 향이 번져 나왔다.안에는 사탕떡 두 조각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였다.그녀는 이 과자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맛이 좋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값도 만만치 않았다.계연수는 상자를 받아 들고 고준안을 바라보았다.“오라버니, 앞으로는 이런 거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무로 바쁘실 텐데, 제 일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고준안은 웃었다.“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그 말에 계연수의 가슴이 순간 조여들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말을 잃었다.그러나 고준안은 대답을 바라지 않는 듯,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일찍 쉬거라. 나는 돌아가겠다.”그는 더 머물지 않았고 이 일을 핑계로 시간을 늘리지도 않았다. 계연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몸을 돌렸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계연수의 목이 묘하게 메였다.용춘이 그녀 손에 든 상자를 보며 낮게 말했다.“아가씨께서 처음 고가에 오셨을 때도 둘째 도련님께서는 늘 맛난 것을 보내셨지요.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하시네요.”계연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쥐었다가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섰다.그녀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목욕을 마쳤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사탕떡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네가 먹어라.”용춘에게 넘긴 뒤, 그녀는 침상에 기대앉았다.시선은 어느새 심서준이 내밀었던 열쇠에 머물러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상자에 넣어 두었다.언젠가는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물건이었다.그 무렵, 고준안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마당에 들어서자 하인이 전한 말이 귓가에 남았다. 오늘 어머니가 또 혜란원에 다녀왔다는 소식이었다.그의 발걸음이 멈추더니 얼굴이 서서히 식어 갔다.곧장 어머니의 처소로 향했다.그 시각, 장씨는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집안의 지출 하나하나를 꼼꼼히 계산하느라 밤마다 한참을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시각에 아들이 찾아온 것이 의외였지만 반가운 기색

  • 주문춘귀   제329화

    계연수는 지금 당장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득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어머니는 때로는 고집을 부렸으나 딸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이라면 결국은 따라주곤 했으니 말이다.먼저 집을 구해버리면 된다. 일이 이미 굳어버린 뒤라면 어머니도 더는 어쩌지 못하실 것이다.계연수는 눈을 내리깔았다. 말없이 잠시 서 있다가 점점 여위어 가는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니 가슴이 저려왔다.“이 일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오늘은 일찍 쉬세요.”고씨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계연수의 얼굴에 스친 피곤을 보고는 많은 말을 삼켰다.“그래….”계연수가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바람이 복도를 스쳤다. 그녀는 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낮추어 춘화에게 물었다.“큰 외숙모가 또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춘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소리로 답했다.“큰 부인께서… 아가씨는 이제 큰 방에 기대어 사는 처지라 하시며, 은혜를 모른다 하셨습니다.”계연수는 밤빛 속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한층 옅어졌다.얼굴에 스친 기색은 비웃음 같았으나 실은 깊은 씁쓸함이 더 짙었다.춘화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과거 아버지가 계실 적, 고씨는 고가를 위해 아끼지 않았다. 두 외숙을 돕자고 늘 설득했던 이도 어머니였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냉대가 돌아왔다. 은혜를 모른다니, 그 말이야말로 아이러니였다.이 집안 두 사내의 입학에 힘쓴 이가 누구였던가? 계연수가 사옥현의 집에서 고단한 날을 보내면서도 명절마다 값비싼 물건을 보내왔던 일은 또 무엇이던가?그녀는 단 한 번도 계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 무엇을 바라란 말인가?초봄의 밤은 유난히 차가웠다. 계연수는 생각을 접고 다시 물었다.“오늘 새로 온 두 아이는 어떠느냐?”춘화가 재빨리 답했다.“훨씬 부지런합니다. 노부인 쪽에서 보낸 아이들입니다.”계연수는 비로소 안도했다.그러다 문득 오늘 밤 심서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마차 안에서 그가 단독으로 묻던

  • 주문춘귀   제328화

    심서준은 말을 마치고 더 머물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휘장을 걷고 냉담한 기색 그대로 마차에서 내렸다.계연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심장이 가늘게 떨렸다. 저도 모르게 휘장을 들어 올려 다시 한 번 그를 찾았다.화등이 막 밝혀진 거리, 사람들로 가득한 인파 속에 그는 길게 선 학처럼 서 있었다. 검은 옷자락이 밤빛과 겹쳐 더욱 차갑게 보였다.하지만 그는 매번 그녀가 막다른 길에 설 때마다 손을 내밀었다. 방금도 아무 말 없이 열쇠를 남겨두지 않았던가.그는 언제나 침묵했고, 그러면서도 늘 그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서툴게 그의 품으로 쓰러졌을 때도 단 한마디 나무람 없이 묵직하고 안정된 힘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지금 이 순간, 계연수는 그를 불러 세우고 싶었다. 왜 자신을 돕는지, 자신이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자리인지 묻고 싶었다.그러나 그 냉정한 뒷모습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의 화려한 마차 곁으로 호위들이 다가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휘장을 들어 올렸다.두 사람 사이에는 겹겹의 산맥이라도 놓인 듯했다.그는 고귀했고 단정했으며 높은 자리에 있었다. 자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설령 답을 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계연수는 자신이 심서준을 향해 품은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곁에 서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그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결국은 평온하게 정리될 것만 같은 기묘한 안도. 그것이 두려우면서도 놓기 싫은 감정이었다.*계연수가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저녁을 마치고 침상에 기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방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연수야, 네가 큰 외숙모가 보낸 그 두 계집아이를 곤란하게 했다고 하더구나?”계연수는 옆에 선 춘화를 바라보았다.춘화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아가씨, 저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헌데 오늘 큰 부인께서 오셔서 빈정대는 말을 한참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그녀가 말을 이으려 하자 어머니는 단번에 끊어버렸다.“춘화는

  • 주문춘귀   제48화

    따뜻하고 은은한 황색의 사등 아래에서 계연수는 감히 몸을 피하지 못한 채, 그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안을 억누를 뿐이었다. 심서준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는데, 손끝 아래 닿은 그녀의 피부는 따뜻했고 극도로 아름다운 눈에는 놀람과 동요가 서려 있었다. 짙고 풍성한 검은 머리칼이 붉은 입술과 새하얀 이를 더욱 또렷하게 돋보이게 했다. 마치 무산의 비와 안개가 어른거리는 듯, 노련한 매의 발톱 아래 웅크린 어린 토끼처럼 연약해 보였다.더욱 괴롭히고 싶을 만큼 위태로웠다.몇 해 만에 다시 본 그녀는 예전보다 한층 더 요염해져 있었다.

  • 주문춘귀   제50화

    사부 안, 큰 마님 임씨의 정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사금희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고 이명유 역시 방 안에 함께 있었으며, 사옥현은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고 있었다.사옥현의 눈빛에는 은근한 피로가 배어 있었고, 다시 한 번 미간을 문지르며 사금희를 향해 말했다.“누님, 걱정 마세요. 이미 돕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요.”사옥현의 분명한 말에 사금희는 그제야 안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이것만큼은 꼭 기억해. 그녀가 무슨 수를 써서 네게 매달려도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 보고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은 아니

  • 주문춘귀   제51화

    임씨는 사옥현이 계연수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장 돌아가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문득 입을 열었다.“돌아가서 이 일도 잘 이야기해 두거라. 그 아이가 더는 헛된 기대를 품지 않도록 말이다!”사옥현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드물게도 계연수의 일로 인해 긴장이 감돌았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오늘 밤의 눈은 유난히도 거셌다. 그날 밤보다도 더 많이 쏟아지는 듯,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수행인이 우산을 받쳐 눈을 막아 주었지만 사옥현은 그대로 눈밭 속으로 발을 들였다.

  • 주문춘귀   제39화

    그 순간 로원은 더는 아무것도 가릴 여유가 없었다.지금 이 자리에서 말 한마디만 잘못 내뱉어도 곧 만겁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길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정신없이 심서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도어사 대인, 부디 제 변명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고준은 비록 제 처제의 부인 쪽 친족이기는 하나 제 처남 사옥현은 대리사에서 근무하며 줄곧 공정무사하기로 이름난 인물입니다. 게다가 처남과 그 부인의 사이는 실로 좋다고 할 수 없고 그 부인을 마음에 두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을 위해 제게 청을 넣을 리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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