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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3화

Author: 경옥
심한율은 말을 마치자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복잡하게 얽힌 마음 탓에 그 역시 손보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손보경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멀어지는 심한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할 줄 알았는데,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꼭 움켜쥔 제 손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긴 숨을 내쉬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몸종이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손보경의 얼굴에 어린 쓸쓸한 기색을 살피던 몸종은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인, 이제 태후마마와는 완전히 척을 지셨고 그 손아귀에서도 벗어나셨잖아요. 지금 부인께 남은 유일한 길은 심씨 가문에 머무는 것뿐인데, 어찌하여 둘째 나리를 방에 붙잡지 않으셨나요?”

손보경은 잠시 굳어 있다가 나직이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못 한다.”

정말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빈틈없이 처신할 수 있었지만, 유독 심한율 앞에서만큼은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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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226화

    마지막으로 방씨가 무슨 말을 할 듯 망설이다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우리, 여상이도 한번 볼 수 있을까?”그러고는 얼른 덧붙였다.“잠깐 얼굴만 보마. 후작의 아이지 않느냐. 우리도 얼마나 기다렸다고.”계연수는 방 어멈에게 취낭을 시켜 아이를 데려오라고 일렀다.취낭이 아이를 안고 들어서자 세 사람은 모두 그 곁으로 모여들었다.심여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포동포동한 뺨에는 배냇솜털이 채 가시지 않았고, 빛을 받은 작은 얼굴은 백옥처럼 희고 고왔다. 세 사람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고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촉촉한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자, 진씨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조그만 손을 살며시 쥐었다.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아이였건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쩐지 눈매며 이목구비가 심서준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계연수와는 그다지 닮지 않은 듯했다.하지만 성정만큼은 아버지와 달리 순할 것 같았다. 이렇게 곤히 자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린 심서준은 누구도 제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으니까.한번 안아 보려고만 해도 싫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말도 못 하던 때부터 그랬으니, 심 노부인이 얼마나 진땀을 뺐던가.세 사람은 한참을 들여다보고도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이따금씩 손길이 닿는 통에 결국 잠에서 깬 심여상이 눈을 뜨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그런데도 세 사람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집안에 큰 변고가 닥치고 슬픔이 겹쳤다 한들, 심여상은 모두가 아끼는 귀한 아이였다. 이 겨울, 집안에 찾아든 유일한 기쁨이기도 했다.취낭이 젖을 먹이러 심여상을 안고 나가자, 방씨도 어느덧 한낮이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계연수의 병색이 짙은 것을 보고 거듭 몸조리를 당부한 뒤에야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물러났다.계연수의 처소를 나온 세 사람은 한동안 탄식을 금치 못했다.예전의 계연수는 얼마나 밝고 눈부셨던가. 살결은 희고 고왔으며, 어디서든 웃는 낯으로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 주문춘귀   제1225화

    방씨의 말을 듣고 진씨도 입을 다물었다. 섣불리 단정할 일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심태숙도 연루되어 있다면, 괜히 나서서 그를 두둔한 셈이 되지 않겠는가.진씨는 계연수를 돌아보며 다시 다독였다.“걱정하지 말거라. 우리는 당연히 동서 편이다. 집안에 등을 돌리고 남과 한통속이 된 자가 있다면, 우리도 절대 감싸거나 덮어 주지 않을 것이다.”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눈 뒤, 계연수가 당부했다.“아이 일은 당분간 어머님께 말씀드리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몸이 좀 나아지시면 그때 알려 드리려고요.”방씨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말거라. 우리도 그 정도 분별은 있다.”그러고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나는 동서의 그 아이가 복이 많은 아이라고 믿는다. 아직 찾지 못한 건 누군가 데려다 보살피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 않느냐.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그 아이가 동서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지.”계연수도 그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방씨에게 다시 당부했다.“넷째 형수님께서 형부로 잡혀가신 일도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알리지 말아주세요. 괜히 다들 제게도 불똥이 튈까 두려워하다가 불필요한 소란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집안부터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에요.”방씨도 옳은 말이라 여기고 선뜻 대답했다.“알겠다. 해서는 안 될 말은 우리도 하지 않을 테니 마음 놓거라.”“오늘 온 것도 동서가 걱정돼서다. 지난번 오문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 막상 와서 보니 몸이 이 지경이라 더 마음이 쓰이는구나.”“다른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사람을 보내. 어머님도 우리가 살필 테니. 집안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일수록 서로 힘을 모아야지.”“집안일도 감당하기 벅차면 내게 맡기거라. 나도 여러 해 살림을 맡아 왔으니 그 정도는 해낼 수 있다.”계연수는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도움이 필요하면 형수님들께 부탁드릴게요.”방씨가 얼른 말을

  • 주문춘귀   제1224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사촌 형수들도 아직 자세히 모르는 듯했다. 계연수는 돌아온 뒤에도 심씨 노부인에게 구체적인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 노부인이 충격을 견디지 못해 병세가 더 깊어질까 염려스러웠다. 작은 희망이라도 남겨 두어야 몸을 추스를 힘을 내실 터였다.하지만 맏사촌 형수가 묻는 지금까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 오래 감출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계연수는 두어 마디로 간략히 사정을 설명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도 곁에 앉은 형수들은 듣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진씨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형부에서 넷째 형수를 잡아갔다더니, 설마 형수가 안에서 손을 써서 그자들을 도왔다는 것이냐?”계연수는 다시 한번 기침을 하더니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방씨의 낯빛이 분노로 홱 변했다. 낮게 짓씹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 독한 것.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제 조카잖아. 대체 어떻게…….”계연수는 눈을 감았다. 백씨가 그토록 위험한 짓을 감행한 까닭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셋째 사촌 형수도 낯빛이 달라졌다.“예전에는 멀쩡하던 사람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것이냐? 그런 죄를 저질렀으니 옥에서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 죽어도 할 말이 없지.”“심씨 집안사람이면서 같은 집안사람을 해치다니. 동서는 잘못한 거 없다. 그런 화근은 없애 버려야 한다.”방씨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백씨는 늘 셈이 밝고 처세에도 능해 두루 인맥을 쌓아 온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갑자기 이토록 끔찍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방씨가 계연수에게 물었다.“정말 백씨가 한 짓이 확실한 것이냐?”계연수는 메마른 입술을 가볍게 다물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방씨를 바라보았다.“큰형수님, 확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아요.”차분하면서도 기운 없는 눈길에 방씨는 잠시 멈칫했다. 생각해 보면 계연수는 매사 빈틈없이 처신했다. 근거도 없이 이토록 단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미 형부에 넘겨 처리하게 했다는

  • 주문춘귀   제1223화

    방씨는 안쓰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계연수가 처음 심씨 집안에 시집왔을 때만 해도, 방씨 역시 남몰래 사람들과 입방아를 찧곤 했다. 심서준의 배필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차츰 가까이 지내면서 계연수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성품이 곧고 속에 다른 꿍꿍이가 없었다. 집안 살림을 맡은 뒤에도 사촌 일가인 자신들을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었다.이렇듯 집안에 큰 변고가 닥쳤으니, 심씨 집안사람들끼리 더욱 마음을 모아야 했다. 태후가 저지른 짓은 이미 노부인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황제가 아무리 감싸려 한들, 심씨 집안에서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방씨가 계연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동서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우리도 다 안다. 태후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들었고. 그러니 마음 놓고 몸조리하거라. 우리 심씨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세상에 영원히 감출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오늘 큰숙부께서 대전에서 눈물로 태후의 죄를 성토하셨다더구나. 벽에 머리를 부딪쳐 목숨으로 뜻을 밝히려 하실 정도였다니.”방씨의 목소리에도 차츰 울분이 배어들었다.“태후가 주원길과 손을 잡지만 않았어도 후작께 그런 일이 생겼겠느냐? 죽은 건 우리 심씨 집안사람이다. 큰숙부께서 그렇게까지 하신 것도 온 조정과 세상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리시려는 거지. 심씨 집안의 충직하고 올곧은 신하가 태후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 그 일로 온 집안이 비탄에 잠겼다는 걸 말이다. 지금 조정 안팎이 들끓고 있으니 태후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태후에게 진 원한은 우리 심씨 집안 모두의 원한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거라.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해 나가자. 앞으로 시간은 많아. 태후도 언젠가는 반드시 죗값을 치를 테니.”그 말을 듣고서야 계연수는 의지할 곳 없이 떠돌던 마음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이런 것이 가족이었다.가족에게 일이 생기면 함께 나서서 풀어야 했다. 심소연이나 이수옥처럼 제 한 몸 보전할 궁리부터 하는 것이

  • 주문춘귀   제1222화

    계연수는 시녀를 시켜 답을 전하게 했다. 몸이 불편해 만나기 어렵다는, 그나마 예의를 갖춘 거절이었다.밖에서 기다리던 이수옥과 심소연은 계연수가 자신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상했다.최씨는 만나 주면서 자신들은 보려 하지 않는다니.전갈을 전하러 나온 시녀마저 냉담한 표정이었다. 헛걸음한 이수옥은 불쾌했으나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심소연을 데리고 돌아섰다.방 안에서는 계연수가 위 집사에게 당부를 마친 뒤 은빛 베개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곁에 선 방 어멈이 목소리를 낮췄다.“셋째 며느님과 셋째 아가씨께서 이때 찾아오신 걸 보면, 선처를 청하러 오신 게 아닐까요?”계연수의 입가에 찬 웃음이 스쳤다.“선처라니. 그 아이들까지 탓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야지.”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어떤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잘해 줄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방 어멈은 가슴이 덜컥했다. 부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밖으로 나온 심소연은 인적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물었다.“오숙모께서는 왜 저희를 만나지 않으실까요?”이수옥이 답했다.“일부러 그러시는 거겠지요.”그러고는 심소연을 바라보았다.“생각해 보세요. 이제 오숙부도 돌아가시고 맏아들마저 잘못되었잖아요. 저희를 억눌러 놓지 않으면 오숙모께서 무슨 수로 이 집안에서 입지를 지키시겠어요?”“속으로는 저희까지 어머님처럼 관아에 끌려가기를 바라실지도 몰라요. 그래야 이 부저를 혼자 마음대로 하실 수 있지 않겠어요?”심소연은 들을수록 두려워졌다. 당장 아버지에게 가서 대책을 의논하려 했다.하지만 도중에야 아버지와 큰오라버니 모두 관아에 나가고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셋째 오라버니는 오전까지 부저에 있었으나, 중간에 한 차례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에는 의논할 사람 하나 없었다.심소연이 다시 이수옥을 바라보았다.“오숙모께서 정말 그렇게까지 하실까요?”이수옥이 입술을 다물었다가 말했다.“그야 저도 모르지요. 헌데 생각해 보세요. 오숙부

  • 주문춘귀   제1221화

    최씨는 이수옥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 웃음이 터질 뻔했다.그녀는 이수옥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정말 어머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기를 열심히 빌거라. 아니면 끝까지 조사하다가 동서도 연루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이수옥은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그 일이었다.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면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없을지 몰랐다.설령 화를 면하더라도 시어머니가 잘못되면, 앞으로 이 부저는 계연수가 좌우하게 될 터였다. 자신들은 그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이수옥이 최씨를 바라보았다.“형님은 걱정도 안 되세요?”최씨는 소매를 여미며 이수옥에게 눈길을 주었다.“아까도 말하지 않았더냐. 나는 양심에 거리낄 게 없으니 걱정하지 않는다.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이나 전전긍긍하는 거지.”그 말을 끝으로 최씨는 이수옥이 어떤 표정을 짓든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서 가 버렸다.이수옥과 심소연은 한동안 그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았다.심소연이 이수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형수님은 지금 오숙모와 가까우시니 두렵지 않으신가 봐요. 저희는 어쩌죠?”“저희도 지금 오숙모를 뵈러 갈까요?”심소연의 생각은 단순했다. 한시라도 빨리 계연수의 환심을 사야 했다.마음속으로 아무리 원망스럽고 화가 나도 소용없었다. 당장 무사히 이 일을 넘기고, 앞으로도 부저에서 부귀를 누리며 살려면 계연수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아버지도 어젯밤 엄하게 당부했다.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고 오숙모의 아이마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번 일로 부저가 큰방 손에 들어올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헛된 기대는 품지도 말라며, 이제 유일한 살길은 계연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큰방의 나머지 식구들만큼은 너그러이 봐주기를 바랄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심소연과 이수옥이 이곳에서 최씨를 기다리며 소식을 캐물을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계연수가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이수옥은 계연수에게 찾아가 살갑게 구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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