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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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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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서화가 참수당하던 날, 황제 이건휘는 자신이 무엇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다. 열 해를 함께한 아내를 역적으로 몰아 죽인 황제. 그러나 그녀의 결백이 밝혀진 순간,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금지된 술법으로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이번 생만큼은 절대 그녀를 잃지 않으리라. 하지만 돌아온 서화의 운명에는 이미 다른 사내, 무현이 있었다. 그녀를 되찾으려는 황제의 집착은 사랑을 넘어 광기가 되고, 황후가 죽으며 남긴 저주는 제국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짐이 너를 죽였다면, 이번에는 세상을 죽여서라도 너를 갖겠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황제의 사랑. 그러나 서화는 두 번 다시 그의 여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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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황후의 목을 베어라
“폐후 윤서화는 들으라!”형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황궁 남문 밖에 마련된 처형장에 울려 퍼졌다.동이 트기 전부터 내리던 비는 반 시진쯤 전에 그쳤지만, 처형장에는 여전히 축축한 냉기가 감돌았다. 흙탕물이 고인 바닥에는 수백 명의 발자국이 뒤엉켜 있었고, 비에 젖은 깃발들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무겁게 흔들렸다. 처형대를 둘러싼 군사들의 창끝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으며, 그 너머로 몰려든 백성들은 저마다 목을 길게 빼고 높은 단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십 년 동안 대윤의 국모였던 여인이 역적이 되어 죽는 날이었다.장사꾼들은 가게 문을 닫고 나왔고, 아이를 업은 여인들은 군사들의 어깨너머로 처형대를 살폈다. 평소라면 황후의 행차를 보기 위해 길가에 엎드렸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들 앞에 선 여인은 황후의 예복 대신 낡은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폐후 윤서화는 황실의 재물을 사사로이 빼돌리고, 역도들과 내통하여 황위를 위협하였으며, 천명을 어지럽힌 죄를 범하였으니…….”죄목을 읽는 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에도 서화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탓에 뺨은 홀쭉하게 꺼졌고, 갈라진 입술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두 손목을 묶은 굵은 밧줄이 살갗을 파고들었으며,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둔탁한 소리를 냈다. 옥사에서 끌려오는 동안 비를 맞은 죄수복은 무릎과 소매 끝까지 흙탕물에 젖어 있었다.그럼에도 그녀의 등은 곧았다.열여덟 살에 황태자비가 되어 궁에 들어왔고, 스물여덟이 된 지금까지 수많은 의례와 연회를 치렀다. 무거운 봉황관을 쓰고도 흐트러짐 없이 걸어야 했으며, 때로는 온종일 대신들의 부인들을 맞이하면서도 단정한 미소를 잃지 않아야 했다.그 세월이 몸에 새겨 놓은 자태는 죄수복 한 벌로 지워지지 않았다.“고개를 숙이시오!”형관이 죄목을 읽다 말고 호통쳤다.서화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형관의 손에 들린 문서에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흉년이 들었을 때 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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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죽음 앞의 황후
다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 있었다.황태자 시절, 늦은 밤까지 서책을 읽던 서화의 손에서 붓을 빼앗으며 쉬라고 타이르던 사내였다. 겨울이면 그녀의 손이 차다며 자신의 소매 안에 넣어 주었고, 정무에 지쳐 돌아온 밤에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기도 했다.서화는 그가 황제가 된 뒤에도 그런 순간들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의 아내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황좌를 옮겨 앉아 있었다.건휘는 용머리 모양의 팔걸이를 움켜쥔 채 처형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서화가 옥사에서 끌려 나왔을 때부터 그의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머물렀다. 며칠 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야윈 얼굴과 상처 난 손목, 거칠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특히 비뚤어진 옷깃이 마음에 걸렸다.한때 궁인 수십 명이 옷매무새를 살피던 황후였다. 서화는 궁녀가 작은 주름 하나를 놓쳐도 꾸짖지 않았지만, 언제나 스스로 옷깃을 반듯하게 여미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목덜미가 드러날 만큼 옷깃이 흐트러져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건휘는 곁에 선 내관을 불렀다.“죄수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아라.”내관은 뜻밖의 명령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처형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은 죄수의 옷을 정돈하라는 황제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건휘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머리를 숙였다.“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곧 궁녀 하나가 처형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군관의 눈치를 살피며 서화의 비뚤어진 옷깃을 여몄다. 차가운 손끝이 목덜미에 닿자 서화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궁녀는 그제야 가까이에서 서화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술을 떨었다.“마마…….”중궁전에서 침방 일을 맡았던 어린 궁녀였다. 서화가 직접 이름을 불러 주었던 아이였고, 한겨울에 손이 터서 바느질을 하기 어렵다고 하자 약을 내려 주었던 기억도 있었다.서화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울지 마라.”궁녀는 고개를 깊이 숙였지만 눈물이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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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빼앗긴 봉황의 옷
그래서 더욱 단호해지려 했다.서화가 잘못한 것이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폐하.”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건휘는 기억에서 빠져나왔다.유채령이었다.그녀는 황제의 시선이 처형대에 머무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처럼 다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황제가 서화의 옷매무새까지 신경 쓴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손끝으로 소매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어찌 그리 마음을 쓰시옵니까? 폐후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폐하의 은혜를 모르는 모양이옵니다.”건휘는 대답하지 않았다.채령은 그 침묵을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곁에 앉았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비단 예복의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펼쳐졌고, 가슴에서 소매 끝까지 이어진 금빛 봉황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그것은 서화가 황후로 책봉되던 날 입었던 예복이었다.채령의 몸에 맞추어 지은 옷이 아니어서 어깨가 조금 넓었고 허리에는 급히 손본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 옷을 입겠다고 고집했다.오늘만큼은 모든 백성이 똑똑히 보아야 했다.누가 버림받았고, 누가 황제의 곁에 남았는지를.“폐하, 이 옷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사옵니까?”채령이 소매를 펼쳐 보였다.“중궁전에 있던 것을 가져오라 하였는데, 어찌나 정교한지 신첩도 놀랐사옵니다. 이 봉황의 눈에는 작은 보석까지 박혀 있더이다.”건휘의 시선이 봉황 자수에 닿았다.황후 책봉식이 끝난 뒤, 서화가 무거운 예복 때문에 어깨가 아프다고 투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직접 봉황관을 벗겨 주었고, 서화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것도 잊은 채 환하게 웃었다.'황후가 되기 싫으냐?''싫은 것이 아니라 너무 무겁사옵니다.''익숙해질 것이다.''그럼 폐하께서도 가끔은 이 무거운 관을 들어 주셔야 하옵니다.'건휘는 그때의 서화를 떠올리다가 손가락을 굽혔다.채령이 입은 예복이 갑자기 눈에 거슬렸다.“처형이 끝나면 갈아입어라.”채령의 미소가 잠깐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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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장부를 고친 여자
그 생각에 서화는 잠시 눈을 감았다.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마지막 순간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그때 처형장 가장자리로 화려한 가마가 다가왔다.유채령이었다.채령은 황제에게 폐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오겠다고 청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건휘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막지는 않았다.시녀들의 부축을 받아 계단을 오르는 동안 채령의 붉은 예복이 축축한 나무판 위를 길게 끌었다. 봉황의 금실이 움직일 때마다 번쩍였고, 그 화려한 빛은 흰 죄수복을 입은 서화와 잔인할 만큼 대비되었다.서화는 처음에는 채령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그러나 익숙한 봉황 자수가 눈에 들어오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 옷…….”채령은 기다렸다는 듯 치맛자락을 펼쳤다.“알아보시겠사옵니까? 마마께서 가장 아끼시던 옷이라 들었사옵니다.”그녀는 손끝으로 봉황의 날개를 쓸어내렸다.“폐하께서 버리라 하실 줄 알았는데, 아직 중궁전 의복함에 남아 있더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썩히기에는 아깝지 않겠사옵니까?”서화는 말없이 예복을 바라보았다.책봉식 전날 밤, 마지막 수를 놓던 상궁이 손가락을 찔러 피를 흘렸었다. 서화는 상궁을 꾸짖는 대신 약을 가져오라 명했고, 상궁은 울면서 평생 황후를 모시겠다고 했다.그 상궁은 폐위 직후 궁에서 쫓겨났다.채령은 서화의 침묵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였다.“아, 이제는 마마라 부르는 것도 옳지 않겠군요. 폐후께서는 오늘부로 황실 족보에서도 이름이 지워질 테니.”서화는 한참 만에 시선을 들어 채령을 바라보았다.“네가 원한 것이 이것이더냐?”채령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내 자리와 내 옷, 그리고 내 남편까지.”서화의 시선이 봉황 예복에서 채령의 얼굴로 옮겨 갔다.“그것들을 빼앗으면 모두 네 것이 될 줄 알았느냐?”채령의 눈가가 가늘어졌다.그녀는 주변의 형관과 군관을 살폈다.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었고, 형리는 칼을 손질하느라 두 여인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채령은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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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황제는 믿지 않았다
형관이 급히 달려왔고, 채령은 놀란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는 곧 눈가를 붉히며 처형대 아래의 군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폐후께서 죽음을 앞두고 정신이 흐려지신 모양이옵니다. 저는 그저 마지막 위로를 드리려 했을 뿐인데…….”서화는 채령의 변명을 듣지 않았다.“폐하!”그녀가 황제를 불렀다.십 년 동안 수없이 불렀던 호칭이었다.그러나 오늘의 목소리에는 애원보다 분노가 짙었다.“폐하께서는 들으셔야 하옵니다! 제게 씌워진 역모의 죄목은 조작되었사옵니다. 유채령이 방금 제 앞에서 장부를 고쳤다고 인정하였사옵니다!”처형장에 모인 백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군사들은 창을 세워 사람들을 뒤로 밀어냈고, 형관은 당황한 얼굴로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채령은 황급히 단상으로 시선을 돌렸다.건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그는 서화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채령을 모함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조정에서 여러 차례 심문을 거쳤고, 대신들이 올린 증거에는 황후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서화가 결백하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문서가 그녀를 가리키겠는가.하지만 서화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건휘는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불안을 다시 느꼈다.그녀는 한 번도 저런 얼굴로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황태자 시절, 서화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아끼던 궁녀를 감싸기 위해 대신들 앞에 나섰을 때에도, 구휼 창고를 열겠다며 조정의 반대를 무릅썼을 때에도 그녀의 눈빛은 늘 같았다.건휘는 그 눈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그는 의심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지금 서화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내린 판결을 다시 살펴야 했다. 조정 대신들을 의심해야 했고, 채령의 말도 확인해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건휘는 턱을 굳게 다물었다.그에게는 진실을 확인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폐후를 진정시켜라.”황제의 명령이 내려오자 군관 둘이 서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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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집행하라
유채령은 단상으로 돌아오자마자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붉은 예복의 치맛자락이 바닥에 넓게 퍼졌고, 채령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폐하, 신첩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건휘는 처형대를 바라본 채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느냐?”채령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목이 메는 듯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폐후께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싶다 하시기에 가까이 갔사온데, 갑자기 신첩을 붙잡고 무서운 말씀을 하셨사옵니다.”그녀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황제의 표정을 살폈다.“자신이 죽으면 폐하께도 평생 화가 미칠 것이라 하셨사옵니다. 황실의 천명이 끊어질 것이라고…….”건휘가 고개를 돌렸다.“그런 말을 했다고?”“예. 신첩이 너무 놀라 감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사옵니다. 신첩을 미워하시는 것은 이해하오나, 어찌 폐하와 대윤까지 저주하실 수 있단 말이옵니까.”채령의 눈물이 손등으로 떨어졌다.건휘는 다시 처형대를 바라보았다.서화는 더 이상 그를 부르지 않았다.그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차라리 계속 억울하다고 외치고, 자신에게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녀가 울며 용서를 구했다면 황제의 권위에 흠집을 내지 않고도 살릴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서화는 언제나 그랬다.그가 손을 내밀면 자신의 방식대로 잡으려 했고, 물러서라 명하면 옳지 않은 일에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황후가 된 뒤에도 구휼 창고를 열겠다고 조정 대신들과 맞섰으며, 황실의 재정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자신의 패물을 내놓았다.그때 건휘는 그녀를 자랑스러워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고집은 황제의 명령을 거스르는 불순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그 변화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채령은 황제가 오래도록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를 잡았다.“폐하, 처형 시각이 지났사옵니다.”건휘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채령은 손을 거두지 않은 채 한 걸음 더 다가왔다.“대신들과 백성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사옵니다. 지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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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마지막 믿음
서화는 칼이 뽑히는 소리를 들었다.쇠붙이가 칼집을 긁으며 빠져나오는 소리는 생각보다 길고 선명했다. 형리는 그녀의 뒤로 다가와 머리카락을 한데 모았고, 굵은 손으로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자세를 고쳐 앉혔다.살갗이 당겨지는 통증에 서화는 이를 악물었다.처형대 아래에서는 누군가 흐느끼고 있었고, 군사들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웅성거리던 백성들도 이제는 대부분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서화는 그 얼굴들을 오래 기억하려 했다.열 해 동안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그들을 위해 황실의 창고를 열었고, 대신들과 다투었으며, 때로는 남편의 노여움까지 감수했다.그 모든 일이 역모의 증거가 되어 돌아왔다.형리는 칼날을 천으로 한 번 더 닦은 뒤 서화의 옆에 섰다.“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소?”서화는 잠시 눈을 감았다.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궁에 들어오던 날, 부친 윤정록은 딸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평소 엄격하고 말수가 적었던 사람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황실에 들어가면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부디 몸을 먼저 지켜라.'서화는 그때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태자 전하께서 저를 아껴 주십니다.'얼마나 어리석은 믿음이었던가.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폐하께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형관이 황제를 바라보았다.건휘는 말없이 손을 들었다.허락이었다.서화는 마지막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한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내.그를 위해 열 해의 청춘을 바쳤다.그가 황제가 되던 날에는 누구보다 먼저 무릎을 꿇었고, 정적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에는 자신의 친정까지 설득해 그의 편에 세웠다.밤새 정무에 시달린 그가 돌아오면 직접 차를 달였고, 열병으로 쓰러졌을 때에는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한 채 곁을 지켰다.서화는 그 세월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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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황후의 저주
건휘의 입술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황제가 아닌 남편이 부르는 이름이었다.서화는 그 소리를 들었다.그러나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폐하.”형관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형을 집행해도 되겠사옵니까?”건휘는 서화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목덜미에는 형리가 칼을 대기 좋은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그제야 그가 내린 명령이 눈앞에서 실체를 갖기 시작했다.서화의 목이 잘린다.그녀가 다시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다시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중궁전에서 기다리지도 않는다.건휘의 손이 움직였다.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채령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폐하, 백성들이 보고 있사옵니다.”그 한마디가 황제를 붙들었다.건휘는 이를 악물었다.황제의 명령은 이미 내려졌다.이제 와서 거둔다면 조정은 무엇이라 하겠는가. 역모의 증거를 믿고 폐후를 처형하려던 군주가 마지막 순간 사사로운 정에 흔들렸다고 비웃을 것이다.그는 자신의 권위를 잃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서화는 언제나 그랬듯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굴복하리라 생각했다.살려 달라고 한 번만 청한다면.단 한 번만.그러나 서화는 끝내 그 말을 하지 않았다.건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서화는 황제가 손을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그 작은 움직임 하나로 자신의 죽음이 결정되었다.이상하게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열 해 동안 저 손을 잡기 위해 수없이 기다렸다. 황제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중궁전의 등불을 늦게까지 밝혔고, 그가 다른 여인의 처소에 머문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 모든 기다림이 오늘 끝났다.서화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궁궐 지붕 너머에는 제천제가 열릴 때마다 불을 밝히던 높은 제천등이 보였다. 대윤의 천명이 이어지는 한 꺼지지 않는다는 등불이었다.어린 시절부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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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늦어 버린 명령
“폐하?”건휘가 소리쳤다.“멈추라고 했다!”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처형장까지 닿기 전, 형관의 붉은 깃발이 내려갔다.형리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순간 모든 소리가 끊어진 듯했다.서화의 흰 옷깃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칼날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녀의 몸이 앞으로 무너졌고, 처형대 아래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 아이의 눈을 가렸다.노파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건휘는 계단 중간에서 멈춰 섰다.그가 보았던 것은 칼날이 내려오는 순간이었다.그리고 그다음에는…….서화가 없었다.방금 전까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던 여인이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다.건휘의 손에서 옥패가 떨어졌다.딱.차가운 돌바닥에 부딪힌 옥패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그는 그것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서화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건휘는 다시 걸었다.처음에는 천천히, 곧이어 거의 달리다시피 처형대로 향했다.군사들이 놀라 길을 열었다.“폐하! 위험하옵니다!”내관이 뒤따라왔으나 황제는 돌아보지 않았다.그는 계단을 뛰어올랐다.처형대 위에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건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손을 뻗으려던 순간, 형리가 황급히 엎드렸다.“폐하, 형은 이미…….”“닥쳐라.”건휘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화의 어깨를 붙잡았다.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불과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으므로.건휘는 그 온기가 믿기지 않았다.“서화야.”그가 다시 불렀다.“짐이 왔다.”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이제 되었으니 일어나라.”그는 서화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피가 검은 곤룡포에 스며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짐이 잘못했다.”입술이 떨렸다.그 말을 내뱉는 데 열 해가 걸렸다.“네가 원하는 대로 하마. 중궁전으로 돌아가도 좋고, 네 친정으로 가도 좋다. 다시는 채령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건휘는 품에 안긴 여인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목소리가 끊어졌다.“눈을 떠라.”그 순간이었다.황궁 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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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황제의 광기가 시작되었다
황궁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제관들이 땅에 엎드려 울부짖었다.“천명이 끊어졌사옵니다!”누군가 절망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황후의 죽음과 함께 대윤의 천명이 끊어졌사옵니다!”건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검게 변한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이 공포에 질려 달아나고 있었다.그의 곁에서는 유채령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승리를 확신하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그러나 건휘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품 안의 서화가 너무 조용했다.그토록 많은 말을 하던 여인이었다.그가 늦게 돌아오면 왜 늦었느냐고 묻고, 식사를 거르면 건강을 해친다고 나무라고,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여인이었다.그런 서화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건휘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명령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자신은 황후를 폐위한 것이 아니었다.사랑했던 여인을 버린 것도 아니었다.자신의 손으로 죽였다.그것도 수많은 백성이 지켜보는 앞에서.건휘의 입술이 비틀렸다.“누가…….”그가 고개를 들었다.형관과 군사들이 공포에 질려 엎드렸다.“누가 서화를 죽이라 했느냐?”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황제의 명령이었다.모두가 알고 있었다.건휘 자신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짐이 언제…….”목소리가 갈라졌다.그는 품 안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짐이 언제 너를 죽이라 하였느냐…….”그 순간 처형장 뒤편의 거대한 제천비에서 천둥 같은 굉음이 터졌다.쩌억!하얀 비석 한가운데에 검은 균열이 생겼다.그 균열은 순식간에 비석 전체로 퍼져 나갔다.제관들은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황제는 서화를 끌어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의 손가락 사이로 서화의 피가 흘러내렸다.건휘는 그 피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이 내렸던 명령을 떠올렸다.'집행하라.'불과 얼마 전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그 짧은 명령으로 서화가 죽었다.이제는 아무리 황명을 내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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