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황후 서화가 참수당하던 날, 황제 이건휘는 자신이 무엇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다. 열 해를 함께한 아내를 역적으로 몰아 죽인 황제. 그러나 그녀의 결백이 밝혀진 순간,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금지된 술법으로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이번 생만큼은 절대 그녀를 잃지 않으리라. 하지만 돌아온 서화의 운명에는 이미 다른 사내, 무현이 있었다. 그녀를 되찾으려는 황제의 집착은 사랑을 넘어 광기가 되고, 황후가 죽으며 남긴 저주는 제국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짐이 너를 죽였다면, 이번에는 세상을 죽여서라도 너를 갖겠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황제의 사랑. 그러나 서화는 두 번 다시 그의 여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View More그날 밤, 황궁에는 다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황실의 옥새에 검은 균열이 생겼고, 제관청의 봉인문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열렸다. 중궁전의 처마에서는 발소리가 들렸으며, 궁녀들은 황후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수군거렸다.어떤 이는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뜰의 매화나무 아래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여인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백단향만 남았다.건휘는 그 소문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을 불러 물었다.그는 궁녀가 가리킨 장소를 직접 찾아갔다.매화나무 아래와 화장대 앞, 서화가 책을 읽던 작은 서재까지 살폈지만 그가 찾아갈 때마다 서화는 없었다.건휘는 점점 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눈을 감으면 서화가 처형대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저주가 귓가에 울렸다.'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이 아닌 다른 사내를 사랑하게 하소서.'건휘는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뒤틀렸다.서화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떠나 다른 사내를 사랑하게 해 달라는 저주까지 남겼다.건휘는 침상으로 돌아와 서화의 손을 붙잡았다.“안 된다.”그는 죽은 여인을 내려다보았다.“네가 어디로 가든 짐이 찾아낼 것이다.”서화의 이마에 입술을 댄 그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 넘기며 낮게 속삭였다.“다른 사내에게는 가지 마라. 죽어서도 짐의 황후다.”그때 침전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조덕수가 문 앞에 엎드렸다.“폐하, 제관청에서 급히 아뢸 일이 있다 하옵니다.”건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조덕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제천비가 갈라진 뒤 북쪽 별궁의 봉인이 풀렸사옵니다. 역대 황제들께서 출입을 금하셨던 곳이옵니다.”건휘의 손이 멈췄다.조덕수는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그곳에는 죽은 자를 되돌리는 금술이 기록되어 있다는 전설이 있사옵니다.”침전 안이 조용해졌다.
박원길은 입술을 깨물었다.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유귀비마마의 측근이옵니다.”건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원길은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구휼 장부의 수량과 날짜를 고친 일, 운송 경로를 바꾼 일, 황후의 인장을 이용해 거짓 증거를 만든 일까지 빠짐없이 고했다.건휘는 끝까지 말을 끊지 않았다.그러나 박원길이 진술을 마쳤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마지막 남은 표정마저 사라져 있었다.건휘는 침상 가까이 다가갔다.그는 서화의 손을 조심스럽게 이불 안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조덕수를 불렀다.“형부 좌시랑을 잡아들이고, 유채령의 처소를 봉쇄하라.”조덕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건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박원길을 죽이려던 자는 살아 있느냐?”“금군들이 붙잡아 두었사옵니다.”건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자의 입을 열어라. 누가 명을 내렸는지, 누구에게 돈을 받았는지, 어떤 자들이 장부를 고쳤는지 모두 알아내라.”조덕수는 황제의 얼굴을 살폈다.“폐하, 유귀비마마께서 연루되셨다면…….”건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귀비?”그는 낮게 웃었다.“짐의 황후를 죽인 자에게 아직도 귀비라는 호칭을 붙이느냐.”조덕수는 황급히 엎드렸다.건휘는 한동안 그를 내려다보다 서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짐은 서화가 살아 있을 때 그 여인의 말을 믿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그 대가로 서화가 죽었지.”건휘는 서화의 손을 다시 잡았다.“이제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겠다. 짐의 눈으로 확인하고, 짐의 손으로 벌하겠다.”그는 조덕수를 바라보았다.“유채령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궁의 누구도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그 순간 침전 안의 촛불이 한꺼번에 꺼졌다.궁녀들이 놀라 숨을 삼켰다.어둠 속에서 비단옷을 끌며 걷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사각.사각.건휘는 천천히 고
유채령은 원본 장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측근을 불렀다.그녀는 이미 봉황 예복을 벗어 던진 뒤였다. 붉은 비단은 방 한구석에 구겨진 채 놓여 있었고, 화장대에는 급히 벗어 놓은 비녀와 장신구가 흩어져 있었다.“박원길을 없애라.”채령은 측근이 가까이 다가오자 목소리를 낮추었다.“그자가 살아서 입을 열면 우리 모두 끝장이다. 형부의 옥사에 머물고 있다 하니, 날이 밝기 전에 처리하여라.”측근은 잠시 머뭇거렸다.“마마, 지금은 금군들이 형부를 드나들고 있사옵니다.”채령은 소매 안에서 작은 검은 병을 꺼냈다. 병의 입구에는 밀랍이 단단히 발라져 있었고, 안에서는 짙은 액체가 느리게 흔들렸다.“죽에 섞어 먹여라. 흔적이 남지 않도록.”측근은 병을 받아 들었다.그가 물러가려는 순간 방 안의 촛불이 꺼졌다.채령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문은 닫혀 있었고, 창문에도 두꺼운 발이 내려져 있었다. 바람이 들어올 곳이 없는데도 촛불이 한꺼번에 꺼진 것이다.“불을 밝혀라.”시녀가 급히 새 초를 가져왔다.그러나 불을 붙이려는 순간 촛대 아래로 붉은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톡.시녀는 손을 멈췄다.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런데 또 한 방울이 떨어졌다.이번에는 촛대의 가장자리를 타고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시녀가 떨리는 손으로 촛대를 내려놓자, 채령은 그제야 피비린내를 맡았다.처형장에서 맡았던 냄새였다.“무엇이냐?”채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방 안 어딘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네가 원한 것이 이것이더냐?'채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처형대 위에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던 서화의 목소리였다.그녀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아무도 없었다.그러나 화장대 위에 놓인 봉황 비녀가 저절로 바닥에 떨어졌다.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채령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거울 속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그리고 그 뒤에 흰 죄수복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목덜미에 검붉은 피가 묻은 여인이었다.채령은 숨을 삼켰
형부의 관리들은 이미 대부분 퇴청한 뒤였다. 복도에는 등잔 몇 개만 희미하게 밝혀져 있었고, 바깥에서는 금군들의 발소리가 간간이 들렸다.박원길은 당직 관리에게 장부를 내밀었다.“폐하께 올려야 할 문서가 있소.”당직 관리는 장부를 펼쳤다가 얼굴이 굳었다.“이것이 무엇이오?”박원길은 마른 입술을 적셨다.“황후마마의 구휼 장부 원본이오. 형부에 제출된 것은 조작된 문서요.”당직 관리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박원길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부디 폐하께 올려 주시오. 황후마마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소.”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내가 죽더라도 이 장부만큼은 반드시 전해 주시오.”당직 관리는 장부를 품에 넣은 뒤, 박원길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며 금군을 불렀다. 그러나 형부의 좌시랑과 연결된 자들이 아직 관청 안에 남아 있었으므로, 박원길은 외부와 접촉하지 못한 채 형부 옥사의 별실에 머물러야 했다.그는 자신이 보호받는 것인지, 다시 입을 막히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장부가 중궁전에 도착했을 때, 건휘는 서화의 손을 잡은 채 침상에 앉아 있었다.피에 젖은 곤룡포는 아직 갈아입지 않은 채였고, 검붉게 굳은 옷자락에서는 짙은 비린내가 올라왔다.조덕수는 문서를 들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폐하, 황후마마의 사건과 관련된 원본 장부가 올라왔사옵니다.”건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조덕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서를 펼쳤다.“형부에 제출된 증거와 기록이 다르옵니다.”그제야 건휘의 손이 멈췄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무엇이 다르다는 것이냐?”조덕수는 장부를 건넸다.건휘는 서화의 손을 놓지 않은 채 한 손으로 문서를 받아 들었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읽던 그의 눈빛이 점차 달라졌다.수량이 달랐다.날짜도 달랐다.운송 경로까지 고쳐져 있었다.그는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원본을 작성한 서리 박원길의 진술이 적혀 있었다.'황후마마께서는 역도들에게 군량을 보낸 일이 없사옵니다.'건휘의 손가락이 멈췄다.그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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