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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2화

작가: 윤지
비록 유주아가 말로는 강하게 나왔지만, 사실 그녀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남자였고, 힘도 훨씬 셌다. 심홍원의 손을 뿌리치려고 해도, 그녀에겐 역부족이었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화 풀고, 우리 이제 집에 가요.”

심홍원의 머릿속에는 못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유주아처럼 자존심이 강한 여자는 애초에 순순히 말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압적으로 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홍원이 눈짓을 보내자, 곁에 대기하던 경호원이 곧장 다가왔고, 심홍원은 망설임 없이 유주아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억지로 끌어안았다.

“됐어요, 주아 씨. 다신 이런 데 안 온다고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좀 풀어요.”

심홍원은 마치 유주아와 연인인 척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그녀를 바깥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옆에 있던 경호원도 능숙하게 그를 거들었다.

유주아는 여자인 데다 상대는 건장한 남자 둘이었다. 힘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고, 결국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심홍원이 사람들 눈앞에서 이런 짓까지 벌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그 순간, 박민정 일행이 이 모습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네.”

진서연이 비아냥거리듯 중얼거렸다.

민수아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여자, 아무리 봐도 저 남자 여자친구 아닌 것 같지 않아?”

박민정은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보여. 우리 따라가 보자.”

유주아가 저 더러운 남자에게 무슨 짓이라도 당할까 걱정이 된 박민정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박민정, 민수아, 진서연 세 사람은 곧장 클럽 밖으로 나갔다. 조하랑은 그 자리에 남았고, 설인하가 그녀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한편, 제우스 클럽 밖.

심홍원은 유주아를 억지로 차에 태우려 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유주아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강제로 관계를 맺은 뒤, 언론에 기사를 퍼뜨릴 계획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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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병원 문 앞에서.박민정은 가녀린 몸에 수척한 손으로 병원 임신 테스트 보고서를 들고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임신이 아니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인데 아직도 임신 못 했어? 왜 이렇게 쓸모가 없니? 너 계속 임신 안 되면 유씨 일가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땐 우리 집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한수민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차림에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삿대질했다.박민정은 두 눈이 퀭하고 가슴에 꽉 막혔던 그 말들이 결국 한 마디로 함축되었다.“미안해요.”“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얼른 남준의 아이를 낳으란 말이야. 알겠니?”박민정은 목이 확 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혼한 3년 동안 남편 유남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곁을 안 주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까?한수민은 약해빠진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저를 닮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차가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남준이한테 여자 한 명 찾아줘. 걔도 그럼 너한테 고마워할 거 아니야.”박민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친엄마란 자가 딸에게 지금 남편을 위해 여자를 찾아주란 말이나 내뱉고 있다니.그녀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박민정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마지막 말만 감돌았다.문득 귓가에 굉음이 한바탕 울렸다.그녀는 자신의 병이 더 심해진 걸 알고 있다.이때 문득 휴대폰 문자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의 3년을 하루 같이 보낸 문자였다.“오늘 밤 집에 안 가.”결혼한 이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집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아내인 그녀를 터치한 적은 더더욱 없고.3년 전 신혼 첫날밤에 유남준이 했던 말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너희 집안에서 감히 사기 결혼을 감행했으니 넌 인제 평생 고독하게 살 각오해.”평생 고독하게 살라고...3년 전 박씨 일가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화

    「남준 오빠, 그동안 잘 못 지냈죠? 그 여자 안 사랑하는 거 알아요. 우리 오늘 밤 만나요.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택시 타고 유남준의 회사로 가는 길에서 박민정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비는 그칠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유남준은 그녀가 회사로 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올 때마다 박민정은 뒷문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까.유남준의 전담 비서 서다희도 그녀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오셨어요, 민정 씨.”유남준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그녀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존재니까.박민정이 휴대폰 주러 회사까지 찾아오자 유남준은 미간이 확 구겨졌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 도시락, 서류, 옷, 우산까지 유남준이 놓친 걸 전부 회사로 보내온다.“말했잖아, 일부러 내 물건 주러 회사 안 와도 된다고.”박민정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미안해요, 깜빡했어요.”언제 기억력이 이렇게 나빠졌지?아마도 이지원이 보낸 문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랬나 보다.유남준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떠나기 전 박민정은 고개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준 씨, 아직도 이지원 씨 좋아해요?”유남준은 요즘 들어 박민정이 참 이상했다.자꾸 뭘 까먹지 않나, 이상한 질문만 해대질 않나, 그의 아내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유남준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렇게 심심하면 뭐라도 할 일 좀 찾아.”박민정은 결국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녀도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유씨 일가 어르신들이 그녀가 얼굴을 내비치면 가문의 체면만 깎는다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렸다.유남준의 어머니 고영란은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였다.“너 정녕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니? 우리 남준이가 청력에 문제 있는 장애인 아내를 찾았다고?”장애인 아내라...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최대한 바삐 돌아쳤다.먼지 하나 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화

    “아직 제대로 된 사랑도 못 해봤죠? 남준 오빠는 나랑 있을 때 밥도 직접 차리고 또 내가 아플 땐 제일 먼저 달려왔어요. 나한테 했던 가장 달콤한 말은 바로 ‘지원아, 난 네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 이 말이었어요... 오빠가 민정 씨한테는 사랑한다는 말 한 적 있어요? 전에 나한테 엄청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오빠 유치하다고 항상 틱틱거렸거든요...”박민정은 묵묵히 들으며 이 3년 동안 유남준과 함께한 나날들을 되새겨보았다.그는 단 한 번도 음식을 차려본 적이 없다.그녀가 아플 때 관심의 말 한마디조차 없다.사랑한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박민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할 얘기 다 했어요?”이지원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너무 차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사람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그렇게 박민정이 떠난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왠지 모르게 이지원은 지금 이 순간 꼭 마치 박씨 일가의 후원을 받던 가난한 고아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박씨 일가의 귀한 따님 뒤에서 이지원은 영원히 웃음 팔이 피에로 역할이었다....박민정이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12년이나 좋아했던 남자인데, 한때 그녀도 아이처럼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했었는데...박민정은 문득 또다시 두 귀가 아파서 보청기를 빼내더니 그제야 선홍빛 핏물이 고인 걸 발견했다.그녀는 습관처럼 보청기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옆에 내려놓았다.잠이 오질 않아 휴대폰을 가져와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상단 스토리에 이지원 계정이 보란 듯이 초록색 테두리로 되어 있었다.클릭해 보니 박민정을 ‘친한 친구 리스트’에 넣어 오직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첫 장은 대학교 때 이지원과 유남준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 있었고 유남준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두 번째 장은 둘의 카톡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유남준은 너무나도 상냥한 말투로 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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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화

    박민정은 제 방으로 돌아가 약을 한 움큼씩 퍼먹었다.귓등을 만져보니 손끝에 피가 잔뜩 묻어나왔다.순간 의사의 당부가 뇌리를 스쳤다.“박민정 씨, 사실 많은 질병의 악화는 환자의 기분과 관련이 있어요. 반드시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고 낙관적인 태도로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합니다.”낙관적이라, 말이 쉽지.박민정은 최대한 유남준의 말을 되새기지 않으려고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두 눈도 질끈 감았다.날이 어렴풋이 밝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약이 작용했는지 청력도 조금은 회복됐다.그녀는 창밖에 쏟아지는 햇빛을 넋 놓고 한참 바라봤다.“비 그쳤네.”한 사람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은 단 한 가지만이 아니다.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쌓이다가 결국 사소한 일로 폭발하게 된다. 그건 차가운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일이 될 수도 있다.오늘 유남준은 외출하지 않았다.이른 아침부터 소파에 앉아 박민정이 사과하고 후회하길 기다렸다.결혼생활 3년 동안 그녀도 종종 화낼 때가 있었다.하지만 매번 울고 난 후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사과했다.이번에도 별다를 것 없다고 굳게 믿는 유남준이다.박민정은 세안을 마치고 평소처럼 어두운 톤의 옷을 입고 나왔는데 캐리어와 서류도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가 서류를 건넨 순간 유남준은 이혼합의서라는 몇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남준 씨 시간 될 때 연락해요.”그녀는 담담하게 이 한마디만 내뱉고는 캐리어를 끌고 문밖을 나섰다.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갰다.박민정은 그 순간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유남준은 이혼합의서를 손에 쥐고 소파에 앉은 채 온몸이 돌처럼 굳었다.그는 한참 넋 놓고 있었다.박민정의 뒷모습까지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그녀가 떠났다는 걸 알아챘다.다만 그 답답함도 한순간일 뿐, 그는 곧장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집 나간 걸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싶다.어차피 그의 전화 한 통, 말 한마디이면 박민정은 얌전히 옆에 돌아와 여느 때보다 살갑게 대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6화

    업무상의 문자 말곤 지금까지 꼬박 하루가 지났는데 박민정은 그에게 사과의 전화나 문자 한 통도 없다.“언제까지 참는지 두고 봐!”유남준은 휴대폰을 옆에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냉장고 문을 연 순간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음식 외에 갖가지 한약들이 들어 있었는데 대충 하나 꺼내 보니 ‘불임 치료, 1일 5팩’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불임 치료...유남준은 고약한 한약 냄새를 맡으며 전에 박민정의 몸에서 났던 약 냄새가 이 한약이란 걸 깨달았다.그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제아무리 약을 먹는다고 임신이 될까?유남준은 가차 없이 약을 내던지고 인제야 그녀가 화난 연유를 알 것만 같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침실로 들어간 그는 푹 휴식을 취했다.박민정이 없으니 앞으론 돌아오고 싶을 때 마음껏 돌아와도 된다, 일부러 그녀를 피하지 않아도 된다.그날 밤 유남준은 아주 잘 잤다.오늘은 절친 김인우와 함께 골프 치러 가는 날이다.하여 아침 댓바람부터 옷방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나왔는데 습관처럼 오늘 집에 안 온다는 말이 튀어나왔다.“나 오늘...”박민정은 이젠 집에 없다. 앞으론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골프장.유남준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흰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더 자상해 보였다.훤칠한 체구에 골프장에 서 있으니 영화배우를 방불케 했다.스윙 한 번에 홀인원이다.절친 인우가 옆에서 칭찬을 남발했다.“남준이 오늘 컨디션 좋은데. 너 무슨 좋은 일 있어?”박민정이 유남준과 이혼하려는 일은 어제에 걸쳐 주변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데 김인우가 모를 리 있을까?그저 유남준의 입으로 한 말을 직접 들어야 진작 밖에서 기다린 이지원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으니 슬쩍 떠본 것이다.유남준은 물 한 모금 마시고 넌지시 대답했다.“별거 없어. 그냥 민정이랑 이혼하려고.”두 귀로 직접 들었지만 김인우는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남준의 절친으로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화

    이전 같으면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미세한 소리가 들렸으니까.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둔 쓰디쓴 약을 입에 물었다.어제는 3년 동안 지낸 두원 별장에서 나와 먼저 본가로 돌아갔는데 문 앞에서부터 엄마와 동생 박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왜 저런 쓸모도 없는 딸을 낳았지? 3년 동안 남준이가 글쎄 걔를 건드리지도 않았대! 온전한 여자도 아닌 주제에 이혼할 생각까지 해?”분노에 찬 한수민의 말이 예리한 칼날처럼 박민정의 심장을 난도질했다.엄마 눈엔 대체 어떤 여자만이 온전한 사람일까? 박민정은 알지 못했다.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 혹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동생 박민호의 말이 더 한심했다.“누나는 우리 집안 사람 같지 않다니까요. 다들 그러는데 유남준 첫사랑이 돌아왔대요. 누나가 이혼 안 해도 조만간 그 집에서 내쫓길 거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뒷일을 고려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얼마 전에 최명길 대표의 아내분이 돌아가셨잖아요. 우리 누나가 비록 청력에 문제 있긴 하지만 80이 넘은 영감탱이에겐 횡재나 다름없죠...”박민정은 그 말들을 되새기며 두 눈이 퀭해졌다.그녀는 애써 단념하려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유남준인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장 변호사님이라고 적혀 있었다.「민정아, 양도협의서를 유남준 씨한테 보내줬는데 태도가 썩 친절치 못했어. 앞으로 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박민정은 장명철에게 답장을 보냈다.「수고하셨어요, 명심할게요.」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한참 넋 놓고 있었다.자신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전부 유남준에게 준 건 얼마나 고상해서가 아니다.단지 그에게 너무 많이 신세 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결혼 전의 계약서대로 거액의 재산을 그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게 참 유감스러웠다. 아마 평생 결혼 사기죄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가야 할 듯싶다.박민정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도 전혀 배고픈 줄 몰랐다.그저 주위가 너무 조용하니 이런 정적이 두렵게 느껴졌다.보청기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화

    문 앞에서 은정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정이 깼어? 아줌마가 우리 민정이 제일 좋아하는 만두 빚었어. 식기 전에 얼른 먹어.”은정숙의 목소리에 박민정은 서서히 기억났다.두원 별장에서 나오고 병원 가서 병 보인 후 마지막으로 아줌마 보러 왔었지.그녀는 머리를 살짝 내리쳤다.‘기억력은 왜 또 이렇게 나빠진 거야?’이제 막 당혹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잔꽃 무늬 침대 시트에 핏자국이 큼지막하게 나 있었다.오른쪽 귀를 만졌더니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었고 손을 펼쳐보니 피로 흥건했다.보청기도 빨갛게 물들었다...박민정은 서둘러 티슈로 귀를 닦고 침대 시트도 전부 거둬냈다. 은정숙은 그녀가 내려올 기미가 없자 베란다로 올라갔다가 시트를 씻고 있는 박민정을 보았다.“왜 그래?”“생리 왔어요. 조심하지 않아 시트에 묻혔더라고.”박민정이 웃으며 해명했다.침대 시트를 다 씻고 아줌마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잠시만의 평온함을 만끽했다.은정숙의 목소리는 때론 똑똑히, 때론 어렴풋이 들렸다.박민정은 너무 두려웠다. 앞으로 이 목소리도 못 들으면 어떡하지?아줌마가 알고 나서 속상해하시면 어떡하지?그녀는 이곳에서 반나절 더 있다가 저축한 돈 일부를 몰래 침대 머리맡에 숨겨두고 나서야 아줌마와 작별 인사를 했다.떠나갈 때 은정숙은 그녀를 정거장까지 배웅하며 아쉬운 눈길로 손 흔들었다.박민정이 떠나간 후에야 은정숙도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문득 앙상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결국 유앤케이의 내선전화에 연락했다.대표이사 사무실의 비서는 박민정 씨 가정부가 대표님을 찾으신다고 그대로 알려주었다.오늘은 그녀가 집 나간 지 3일째 되는 날이고 유남준이 그녀에 관한 전화를 받은 첫날이다.유남준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기분이 째질 것만 같았다.‘역시 3일을 못 버틴다니까.’은정숙의 늙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유 대표님, 저는 민정이 어릴 때부터 보살펴온 가정부 은정숙이라고 해요. 제발 부탁드리는데 더는 우리 민정이 다치지 않도록 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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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정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남자와 말다툼을 벌이는 진서연을 말렸다. 그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충고하는데 말 좀 가려서 하세요. 누가 여자는 클럽에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정하기라도 했어요? 클럽에서 술 마시는 여자는 다 나쁜 여자예요?”남자는 연달아 망신을 당하고 박민정에게까지 반박당하자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의 신사적인 태도는 한순간에 사라져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기나 해?”“너희 엄마가 말 안 해줬어?”박민정은 똑같이 되받아쳤다. 그녀의 그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그 남자의 얼굴은 눈에 보일 정도로 시커멓게 변해갔다.“그래, 좋아. 어디 두고 봐.”남자는 한 마디 내뱉고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박민정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그리고 곁에 있던 설인하가 먼저 입을 뗐다.“성원 씨한테 연락해서 대신 처리 좀 해달라고 할게요.”“그럴 필요 없어요. 우린 계속 놀던 대로 놀면 돼요. 여기 사람들도 많은데 그 남자가 더 이상 뭐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박민정은 밖에 경호원도 두고 있었기에 그 남자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박민정의 말에 설인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곁에 있던 진서연도 한마디 거들었다.“잊지 마세요. 저 싸움 잘해요.”설인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맞네요, 맞네요. 깜빡할 뻔했어요. 저 인간 꼭 한 번 제대로 손 좀 봐줘야겠어요.”한편, 그 남자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이 곳으로 놀러 온 유주아와 마주쳤다.순간, 남자는 얼굴빛이 확 변하더니 유주아에게 물었다.“주아 씨가 이런 곳엔 어쩐 일이에요?”유주아의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그녀와 맞선을 본 남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은 심홍원이었다. 그의 아빠는 확실히 상업계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유명 항공 그룹의 대표직을 맡고 있었다.유주아의 아빠는 늘 그녀에게 심홍원은 착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했었다.하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900화

    제우스 클럽.조하랑도 한걸음에 달려왔다.박민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랑아, 너 아직 배에 아기가 있잖아. 어떻게 여기 왔어?”조하랑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렸다.“걱정 마. 나 술 안먹잖아. 오랜만에 우리끼리 모이는 건데 나만 빼놓을 수 없잖아?”“그럼 약속한 거야. 조금 있다가 조심해야 해.”박민정은 그녀를 가장 안쪽 자리에 앉히며 사람들이 부딪히지 않도록 했다.“알겠어!”조하랑이 약속했다.그녀는 임신한 후로 사실 별로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가끔 입덧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박민정은 그녀를 보호해야 할 동물처럼 여기며 그녀 옆에 앉았다.민수아, 설인하, 그리고 진서연은 신나게 놀았다.진서연은 원래 정민기를 부르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거절했다.“절대 안 돼! 오늘은 우리의 날이니까 남자는 데려오지 마.”“알았어.”진서연은 약간 실망했다.그녀는 요즘 정민기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의 진지한 모습도, 때로는 냉정한 모습도 좋았다. 매일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박민정 근처에 미녀들이 모여 있으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한 부잣집 아들이 다가와 말했다.“다섯 분 미녀분들, 오늘 술값은 제가 전부 쏘겠습니다.”“쏘신다고요?”민수아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통 큰 모습에 감탄한 줄로 알고 말했다.“네, 마음껏 드세요. 전혀 부담 갖지 마시고요.”남자는 말하면서 시선은 설인하의 얼굴에 머물렀다.솔직히 다섯 명 중에서 설인하가 가장 예뻤다.만약 박민정의 얼굴에 흉터가 없었다면 설인하와 비견될 만했을 것이다.“아름다운 여성분, 저와 춤 한 곡 괜찮으세요?”그는 손을 내밀어 설인하에게 향했다.설인하는 조금 느끼한 그의 손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안 괜찮아요.”남자의 손은 공중에 멈췄다.옆에서 민수아는 그저 웃겼다. 저 남자는 누구지? 방성원 사모님도 못 알아보는 건가? 이곳 제우스 클럽은 바로 방성원의 소유였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9화

    박민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외할머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 집은 원래 제 것이었어요. 단지 나중에 경매에 넘어갔고 여러 사람을 거쳐 박민정 손에 들어갔다고요.”“그러면 그 애가 너한테 돌려줘야지. 딸이라니, 게다가 양녀인데 어떻게 박씨 집안의 집을 차지할 수 있어?”김말숙은 집과 재산은 아들에게 줘야 하는 것이지 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박민호도 그녀가 나이가 많아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외할머니, 어쨌든 앞으로 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시면 안 돼요. 지금은 정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이고, 유남준 씨의 부인이잖아요. 외할머니 친손자인 저도 그 사람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요!”김말숙은 이 말을 듣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그래, 알았다. 앞으로 그 애한테 함부로 안 할게. 그런데,”김말숙은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었다.“유씨 집안의 그 아가씨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하지 않았니? 그 애가 결혼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니? 내가 전에 유씨 집안이 갔었을 때 그 부부가 어찌나 얄밉던지.”박민호의 눈빛이 수상하게 변했다.“저희끼리는 안 되겠지만, 누나와 형부라면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그는 자기 주제를 알았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유주아에게 장가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누나는 지엔 그룹의 대표이고, 형부는 IM 그룹의 책임자였다. 두 사람이 도와준다면 유주아의 부모도 감히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그러면 다행이고. 그 유주아 부모라는 사람들 너무 거만하더라. 네가 그 집 딸을 데려오면, 나중에 걔네 집안을 아주 제대로 휘어잡을 수 있을 거야.”유주아 역시 외동딸이었다.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을 때 사고가 발생해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유주아와 결혼하는 것은 곧 그 집안의 재산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바로 박민호가 박민정에게까지 부탁한 이유였다.그는 이미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8화

    정호철은 그녀가 화를 내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그의 눈가가 온통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정수미 역시 그것을 알아채고 마음이 아파졌다.“정 대표님, 화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설득하지 마세요.”정수미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나 때문이지?”정호철은 목이 메었다.정수미는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당신과 살 생각 없어.”정호철은 목에 바늘이 꽂힌 듯 고통스러웠다. 그는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 알아요.”“그럼 정말 평생 혼자 살거니?”정수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분명하게 말했는데도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정호철은 정말 외골수였다. 그는 다시 한번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혼자 사는 게 뭐가 나쁜지 모르겠어요. 대표님이 저를 좋아하지 않고,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결혼하지 않는 건 대표님 잘못이 아니에요.”“그리고, 따님과 약속했어요. 대표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켜드리고 나서,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요.”정수미는 베개에 기댄 채 숨을 쉬었다.“알겠어. 더 이상 강요하지 않을게.”정호철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또 한 가지.”정수미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민정이가 이전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했으니 죄책감 느낄 필요 없어.”“안 됩니다!”정호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당시 제가 따님과 예찬이를 거의 해칠 뻔했어요. 제가 멀쩡히 살아있다면 저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결심한 일은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정수미는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알겠어. 하고 싶은 대로 해.”정호철은 그제야 다시 얌전히 앉아 그녀에게 물었다.“의사 불러드릴까요?”정수미는 의아해하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7화

    정수미 역시 박민정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체리를 하나씩 입에 넣었다비록 입안 가득 쓴맛이 감돌았지만, 딸이 직접 씻어준 과일을 먹으니 달콤하게 느껴졌다.“맛있다.”정수미가 웃으며 말했다.박민정은 그녀가 또 불편해할까 봐 너무 많이 주지 않았다.조금 먹인 후 박민정은 그녀의 팔을 안았다.이제 두 사람의 관계는 가족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아마 이것이 핏줄의 힘일 것이다.정수미는 박민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민정아, 남준이 일은 어떻게 됐니?”“괜찮아요, 남준 씨가 다 해결했어요.”박민정이 대답했다.“그럼 됐어.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남준이는 아주 유능한 아이라서 아무에게도 괴롭힘당하지 않을 거야.”정수미가 말했다.“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박민정은 일어나 문을 열자 정호철이 손에 많은 음식을 들고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정호철은 박민정이 지금 여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표정이 약간 어색해졌다.“아가씨.”“호철 아저씨.”박민정이 예의 바르게 불렀다.예전에는 박민정이 정호철을 정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호칭이 바뀌니 정호철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 정 대표님을 돌보러 오셨군요?”그도 뉴스를 통해 유남준에게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유 대표님은 괜찮으신가요?”“네, 괜찮아요.”박민정이 대답했다.“다행이네요, 다행이야.”정호철은 그렇게 말하며 문 앞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박민정은 그가 어머니를 잘 챙겨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어쩔 줄 몰라서 서 있는 것을 보자마자 말했다.“마침 나가서 바람 좀 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오셨네요. 저희 엄마랑 이야기 좀 나눠주세요.”“네.”정호철은 흔쾌히 대답했다. 박민정은 그제야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나가자 정호철은 조심스럽게 병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정수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6화

    “그럼 박민호에게 뭐라고 설명할 건데?”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박민정이 요즘 박민호에게 잘하는 것이 박민호 본인 때문이 아니라, 과거 박형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결국 박민호는 박형식의 유일한 아들이었다.“생각 좀 해볼게요.”박민정은 눈을 감았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떴을 때 유남준에게 말했다.“이 일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먼저 알아봐야 할 게 있어요.”박민호는 꽤 오랫동안 자신을 찾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중매를 서달라니, 박민정은 그 속셈에 뭔가 숨겨진 내막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래, 알았어.”병원 문 앞에 도착하자 차가 멈췄다.박민정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유남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깊고 아름다운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민정아.”“왜요? 또 무슨 일 있어요?”박민정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이리 와 봐.”박민정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내려앉았다.운전기사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박민정은 어색해하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별거 아니야. 그냥 이마에 뽀뽀한 거야.”이상하게도 그는 박민정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비록 짧은 하룻밤일지라도 아쉬웠다.박민정의 얼굴은 불타는 듯 붉어졌다. 그녀는 그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여기 사람도 있는데.”“괜찮아. 아무도 못 봐.”유남준은 개의치 않았다.박민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남준 씨 때문에 못 살아.”그녀가 다시 가려고 하자 유남준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내가 뽀뽀했으니, 너도 나한테 뽀뽀해 줘야지?”이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뻔뻔해졌을까?자기가 뽀뽀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박민정은 손을 빼내려 했지만 유남준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남자의 뺨에 입을 맞췄다.“됐죠?”“응.”유남준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었다.박민정은 그런 그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몇인데 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5화

    박민정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계속 본론은 숨기고 쓸데없는 얘기만 하는 모습에 더는 못 참고 그의 말을 끊었다.“나 곧 퇴근해야 하는데 별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누나, 잠깐만! 혹시 뭐 하나 부탁해도 될까?”“뭔데?”“내가 지금 형부 도움으로 회사 하나를 차렸잖아. 얼마 전에 고객 만나러 갔다가 한 여자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얼굴도 엄청 예쁘더라고.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혹시 누나가 중간에서 다리 좀 놔줄 수 있나 해서.”예상치도 못한 부탁에 박민정은 어안이 벙벙했다.여태껏 박민호는 연애는 많이 해봤지만 매번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지는 못했다.그러나 말투가 진지한 걸 보니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누구인데?”“유주아 씨. 유씨 가문에서는 이미 유명한 분이던데 누나도 몰라?”왠지 귀에 익은 이름이라 박민정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유명훈의 장례식에도 왔었는데 그의 형제분 손녀라고 했고 유남준의 사촌 여동생이었던 걸로 기억했다.그러나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이름은 들어봤는데 얼굴은 모르겠어.”박민정은 솔직하게 답했다.“그러면 도와줄 수는 있는 거야?”“내가 한번 물어봐 줄게.”박민호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고마워, 누나!”“먼저 말해두겠는데 물어봐 준다고 했지, 그 뒤에 일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해.”사실 그녀도 현재 박민호의 조건으로 유씨 가문의 여자를 만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그러자 박민호가 빠르게 답했다.“난 누나를 믿어.”그렇게 통화가 끝나자마자 박민정이 회사 1층으로 내려와 보니 유남준의 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데리러 올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차 문을 열어줬다.“퇴근해도 할 일이 없더라고.”박민정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에게 물었다.“혹시 유주아 씨랑 친해요?”“유주아?”유남준은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왜 갑자기 주아에 대해 묻는 거야? 나랑 안 친해.”유주아는 유명훈 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4화

    유남준은 그제야 진정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그러자 박민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굳이 상대해서 뭐 해요?”“그래.”유남준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이지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사실 박민정도 애써 쿨한 척 괜찮다고는 했지만 방금 눈앞에서 본 이지원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그런 눈빛은 진짜로 미친 사람 외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될 만큼 충격적이었다.박민정은 돌아가기 전 원장에게 물었다.“혹시 이지원 씨는 평소에도 많이 폭력적이었나요?”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에 온 이후로는 말도 잘 듣고 다른 환자분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약 그런 환자가 들어오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피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설마 방금 사모님께 손을 댔나요?”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정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알겠습니다.”원장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알렸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 지인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 의사인데 이런 환자한테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곁에 있으면 좋다고 했거든요.”사실 원장도 진작에 김인우를 통해 이지원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하여 박민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답했다.“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곳을 빠져나왔고 원장은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이지원의 병실에 비교적 폭력 성향이 센 환자를 안배해 뒀다.박민정이 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때 보였어? 이지원이 진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어?”그러나 박민정은 대답 대신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남준 씨는 어땠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그러자 유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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